역대하 9:13-31
찬송가 24장 ‘왕 되신 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은 어떤 상황에도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역대기는 다윗 왕조 중심의 이스라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를 기록할 당시 그 역사를 전달받을 일차 대상은 바벨론 포로 시대를 거친 사람들의 후손이었습니다. 본향으로 돌아온 포로 시대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낙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면 과거 다윗 시대에 누렸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역대기에는 다윗과 그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어 왕이 된 솔로몬에 관한 기사 역시 다윗에는 못 미치지만, 역대하를 시작하면서부터 역대하 9장까지 많은 양이 기록된 편입니다. 솔로몬 역시 부왕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렸기에, 역대기 기록 시기에 낙망하여 살아가고 있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간다면 솔로몬의 영광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음을 역대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역대하에 솔로몬 관련 기사 아홉 장 중 약 70%가 예루살렘 성전 관련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성전 관련 기사를 많이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장소인 성전 중심의 신앙 회복이 삶의 회복과 직결됨을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며 열왕기상 10장과 11장에 있는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졌기에, 그 결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 역시 그의 행위의 결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13-21)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금방패입니다. 이 금방패는 전쟁용이라기보다 의전용이였을 것으로 봅니다. 둘째는 상아와 금으로 만든 왕의 보좌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최고급 보좌로 추정합니다. 셋째는 왕궁에서 사용한 금그릇입니다. 은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 금이 풍부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13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14 그 외에 또 무역상과 객상들이 가져온 것이 있고 아라비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도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
‘세입금’으로 번역한 말은 해마다 들어왔던 금을 뜻합니다. 매년 666달란트의 금이 솔로몬에게 들어왔습니다. 666달란트는 오늘날 도량형으로는 대략 23톤(ton)에 해당합니다. 이 정도 무게를 가늠하려면 오늘날 공사장에서 건축자재나 폐기물을 싣고 나르는 흔한 덤프트럭의 적재 중량이 25.5톤(ton)임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666달란트 금으로 1돈짜리 금반지를 제작한다면 약 6백만개를 만들고도 남습니다. 그것으로 현재 서울시 인구에 2/3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연간 금수입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4절은 세입금 666달란트 이외에 금의 수입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관세 수입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것과 인접국 아라비아 왕들과 지방장관들이 보낸 것입니다. 금이 이렇게 풍부하다 보니 만들게 된 것이 금방패와 궁궐 금그릇입니다.
15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16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삼백 세겔이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금 방패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뉩니다. 큰 방패에 들어간 금은 육백 세겔, 작은 방패에 들어간 금은 삼백 세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세겔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열왕기상 10장의 기록에 있는 무게 단위 ‘마네’를 참고해서 그 무게를 추정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언급한 ‘세겔’은 11.4그램(g)의 1/2에 해당하는 무게로서 ‘성전 세겔’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큰 방패에 들어간 금의 무게는 약 3.3kg이고 작은 방패에 들어간 무게는 그 절반입니다. 오늘날 1kg(1000g)의 ‘골드바’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오직 그것 3개만으로 큰 방패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15절과 16절에 ‘쳐서 늘인 금’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금 방패는 금을 쳐서 늘여서 나무 위에 입힌 방패를 뜻합니다.
17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입혔으니 18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와 금 발판이 있어 보좌와 이어졌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19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양쪽에 섰으니 어떤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금 방패가 나무 골격 위에 금을 입힌 것처럼 금 보좌 역시 상아 골격 위에 금을 늘여서 입혔습니다. 보좌의 특징은 팔걸이와 사자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팔걸이가 달린 의자는 흔한 형태이지만 당시 나라들에 왕의 보좌에는 팔걸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보좌에는 통치와 심판을 상징하는 사자의 상이 양 팔걸이에 각각 하나씩 있었고, 보좌 아래 여섯 층계 양쪽에 하나씩 12개 총 14개가 있었습니다. 이런 보좌는 당시 어떤 나라에도 없었던 것으로써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잘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20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21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솔로몬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금이 풍부하여 왕궁에서는 금 그릇만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왕궁 창고에 은이나 은그릇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왕의 배들이 외국에 다니면서 실어 온 목록을 보면 은이 있었고, 24절을 보면 다른 나라 왕들이 솔로몬에게 준 예물 중 은그릇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며, 얼굴을 보기 원하여(22-28)
22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23 천하의 열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24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 25 솔로몬의 병거 메는 말의 외양간은 사천이요 마병은 만 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26 솔로몬이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의 모든 왕을 다스렸으며 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28 솔로몬을 위하여 애굽과 각국에서 말들을 가져왔더라
솔로몬의 부와 지혜는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컸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솔로몬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부와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솔로몬이 입은 영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역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6:29-30)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역대기의 오늘 본문을 읽다 보면 과거 솔로몬이 입은 영광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입은 영광은 솔로몬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어느 누가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 누리는 그 부귀영화는 ‘들풀과 들에 핀 백합화’보다 더 못한 부귀영화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할지라도 백합화를 창조하여 피울 수 없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땅에서 죽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죽음 기사는 단지 왕이 죽었다는 정형적(定型的) 역사 기록으로만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솔로몬이 장사되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되다(29-31)
29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 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0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사십 년이라 31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솔로몬의 죽음 기사는 이땅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보다 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과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영화보다 더 나은 시대가 메시아가 오실 시대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벨론 포로 시대의 후손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은혜의 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면서 동시에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을 때까지’의 의미로서 완전한 구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까지 과거 바벨론 포로 시대의 후손들처럼 이 시대의 환경에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부귀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나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허영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생명의 터전으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벨론 포로 시대 후손에게 영광의 시대를 소망하게 하심이 오늘날 메시아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된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에게도 예수님의 재림 이후 오게 될 영광의 시대를 소망하게 하십니다. 그 소망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광의 시대가 올 것임을 소망하며 허영의 시장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생명의 터전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되므로 민족과 국가의 수호와 발전에도 기여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전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2. 역대기 기자가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기사를 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3.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영화보다 더 나은 은혜를 오늘날 사람은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4.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여는 사람이라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통해 무엇을 소망해야 하겠습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