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바가지 (콩트)
작가: 백화 문상희
*낭독을 위한 최종 수정본입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바가지를
소재로 꾸며본 콩트입니다,,
https://youtu.be/AUjAZSdfUf4?si=_hyPuGcPhnV7Zbur
옛날 원님이 고을을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충북 하고도 저 끄트머리 물 좋고 산세 좋은
괴산 땅 고을 사또 사돈에 팔촌인 박생원은
삼십 대 초반에 초시에 합격하고
책 속에 빠져 장원 급제를 목표로 주경야독이었다.
가난 탓에 삼십이 넘도록 장가갈 꿈도 못 꾸고
홀어머니 모시고 근근이 끼니만 때우는 선비라
동네 처녀들이 쳐다보지도 않으니 포기한 혼례다
"아들아~!"
"예, 어머니!"
"점심 먹고 동네도 한 바퀴 돌고 좀 그래봐라!
동네 처녀 얼굴도 보고 그래야 장가를 가지!"
"아이고 어머니!
우리 형편에 장가는 무슨 장가입니까?"
"그래도 이 어미는 걱정이다 아들아!
네가 장가를 들어야 나 죽어 저승 가서 니 아비에게
할 말이라도 있지 않겠냐 쯔쯔쯔!"
작년 관아에서 회갑 때 원님을 처음 알현했을 때 일이었다.
"그래, 박생원이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사또 어른!"
"사돈댁 집안사람이라 내가 자네를 유심히 지켜보았네!
관상도 좋고 초시에 합격을 했다니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 복시에 꼭 합격하게나!"
박생원은 사또에게 극구 칭찬을 받은 것이었다.
두 집안이 내생에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최진사댁 막내딸은 눈이 높아 삼십이 넘도록
시집가기를 거부해 눈에 가시였다.
그러나 아비 생신 때 가난하지만 훤칠한 박생원을 한번 본 뒤로
시집을 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시집을 가지 않아 눈에 가시였는데 당연지사
사또에게는 소원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건넛마을 원님 댁에서 매파를 보내왔다.
"춘천댁 집에 계신가요?"
"뉘시오?"
춘천댁은 방문을 열어젖혔다.
"네~, 아랫마을 박무당입니다!"
"누추하지만 어여 들어오시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아~,그 시기 고을 원님 심부럼 왔지유~!
윈님 막내딸이 올해 꼭 삼십을 채웠는디
평생 시집 안 간다고 우기다가 이 집 아들
칠복이 도령을 보고 홀딱 반해서 시집을 가겠답니다 글쎄!
그래서 원님이 지보고 몰래 매파를 서라고 했시유!"
박무당은 호들갑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고을 원님은 딸 시집보내며 신신당부를 했다.
"박생원 집안이 옛날엔 그런대로 기와집 지키며
잘 살았단다.
그러나 그 집 애비 박첨지가 금맥 찾는다고
광산을 일구다가 망해서 화병으로 죽고부터
집안이 풍지박산 났다고 내가 들었다 알았느냐?"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그러니 시집가서 절대로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잔소리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예~, 아버지!"
"머지않아 과거에 급제할 사람이니 그리 알거라!
그리고 먹을 양식은 내가 사람을 시켜 수시로 보내주마!"
"알겠습니다, 아버지!"
수연이 아씨는 아버지 잔소리를 들어면서도
입가엔 그저 좋아서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쨌거나 가난 때문에 장가가기를 포기한 터에
칠복이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 부산을 떠는데도
칠복이 박생원은 그저 무덤덤했다.
수연 아씨는 원님댁에서 머슴과 식모들에게 대접만 받고 살다가
정지간에 불 때는 것도, 밥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새아가~!"
예~., 어머니!"
"정지간 생활은 안 해봤을 테니 천천히 배워보거라.!"
"예, 어머니!
솜씨는 없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청주 목사 아들도 싫다고 했던 원님댁 막내딸 수연이는
매운 연기에 컥컥거리면서도 입가엔 웃음꽃이 피었다.
"서방님 ~, 저녁상 차렸습니다
어여 나오셔서 드시지요!"
계면쩍은 박생원이 그제야 골방에서 나왔다.
험, 험, 정지간 출입도 안 해봤을 텐데
고생시켜서 미안하오이다!
"아이고 서방님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그나저나 아버님께서 선물 받은 귀한 인삼주를
보내주셨습니다!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서방님!"
홀아비 냄새만 진동하던 박생원 집 비좁은 방안에
수연 아씨가 시집을 오고부터 깨가 쏟아졌다.
어머니는 늦게서야 장가든 아들 생각에
또 민망한 구석도 있어 수시로 바깥으로으로 나갔다.
'아이고 어머니 또 어딜가시게요.?"
"오늘은 윗마을 언니집에 집안 제사가 있단다!
제삿밥 얻어먹고 새벽녘에나 올 게다!"
사실 제사는 핑계였고 윗마을에 춘천에서 시집온
동갑내기 과부댁이 있어 아들 장가든 이후로는
어머니는 신혼에 방해가 될까 해서 수시로 피난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수연 아씨는
서방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아양을 떨었다.
"서방님 저도 한잔 마셔봐도 될까요?"
"마셔도 괜찮다면 한잔 해 보시구려!"
박생원은 가난 탓에 원래가 소심하고 무뚝뚝했다.
소연 아내는 늦게 시집와서 사내맛을 봤으니
어머니가 자리를 비워준 덕분에 잠자리를 서둘렀다.
소연 아내는 대충 상을 물리고 이불을 깔고
남평에게 말을 건넸다.
"서방님~,
얼른 침소에 드시지요!"
소연 아내는 가끔 고을 원에 잔치가 있을 때마다
호기심에 조금씩 맛을 본 술이었지만
오랜만에 마신 인삼주에 취기가 올라 홍당무 얼굴이 되었고
코맹맹이 소리까지 색기가 줄줄 흘러넘쳤다.
"험, 험 알겠소이다!"
신혼방이라 해봤자 두 평 남짓 창하나 딸린 골방이었다
인삼주가 들어간 탓인지 몰라도 신혼방에는 깨가 쏟아졌다.
금세 문풍지 사이로 새색시 교성이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동갑내기 과부 친구가 친정에 가서
할 수 없이 일찍 돌아온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문틈으로 흘러나온 며느리 교성에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시어머니는 늦었지만 자손을 보겠구나 하는 안도감에,
또 한편으론 나이 삼십 줄에 서방이 죽어 홀로이 살아온
청상과부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시어머니는 외로운 마음에 먼저 간 서방님 얼굴을 떠올리며
담벼락 넘어 달을 쳐다보았다.
박서방 또한 허구한 날 서책만 보고 변소 갈 때 외에는
바깥출입도 없었으니 신혼 재미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식량은 원님댁에서 가져와 집안 살림을 하였고
그 덕에 가난길은 면했던 것이다.
세월은 유수 같아 흐르고 흘러 일 년이 훌쩍 지났고
소연 아내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고
시어머니는 외아들이 늦게서야 낳은 손주라
애지중지 정성 들여 보살폈다.
새해 설을 보내고 난 정초 어느 겨울날이었다.
박생원 동네엔 보름 내내 눈이 내려 산 아래 마을과 길이 끊어져
통행이 어려웠다.
머슴이 가져온 식량도 떨어져 밥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도
박생원은 주야장천 책만 읽고 있었다
하여, 속이 터지는 박생원 부인은 잔소리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신 아버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부엌에서 빈 단지를 바가지로 벅벅 긁어 소식을 알린 것이다.
박생원 부인도 아이를 놓은 뒤로는 잔소리가 조금씩 늘었다.
박생원 부인 역시 화가 나면 습관처럼 단지를 긁었다.
박생원 부인은 잔소리나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서 잔소리 대신에
바가지로 단지를 벅벅 긁어 화풀이를 했다.
조선시대 속담에도 그때부터 마누라 잔소리를
바가지라 불렀다고 전해졌다.
박생원은 어쨌거나 이를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험, 험, 내가 처갓집에 다녀오리다.!"
박생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빈 지게를 지고 나섰다.
이에 민망한 부인은 말리는척 하였다.
"아이고, 서방님, 어쩌시려고요 이 눈길에.!"
"어쩌겠소 부인, 쌀이 떨어졌다고 하니
염치 불고하고 내가 장인어른께 다녀오리다!"
고을 관아에 도착한 박생원은 그래도 이 집 사위라고
대뜸 일갈을 날렸다.
"이리오너라~!
험, 험, 이리오너라~!"
박생원은 큰기침을 하며 목소리에 기합을 넣었다.
"그래 박생원 왔는가!
우리 수연이는 잘 있는가?
얼른 날이 풀려야 외손주를 안아볼 텐데 허허 참!"
"예, 장인어른,
아들놈은 똘방똘방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만
집에 쌀이 떨어져 염치 불고하고 왔습니다!"
"그래그래, 안 그래도 눈이 녹으면 보내려고 했네!
그나저나 자네 과거 시험은 언제쯤 볼 텐가?"
"예, 장인어른!
올해 춘삼월이 지나면 한양 과것길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공부는 많이 했는가?
자네는 명석하니까 분명히 잘 될 것이네!
우선 날 풀리면 곡식을 보낼 테니 걱정 말게나!
그리고 과거 보름 전에 말과 머슴을 보낼 테니
노잣돈 걱정 말고 과거시험이나 잘 보게나 알겠는가?"
"예, 장인어른!
은혜에 꼭 결초보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따스한 어느 봄날 주야장천 책 속에서 살던 박생원
드디어 과거 볼 준비를 했다.
친정집에서 보낸 머슴과 말을 타고 한양으로 떠났으니
이 집 며느리도 두어 달은 청상과부 신세가 되었다.
박생원 부인은 서방님 한양 떠난 지 보름이 지나서
무료함도 달랠 겸 친정집 나들이에 나섰다.
박생원 부인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등에 업고
친정집에 도착했다.
고을 원님은 느지막이 본 외손주를 안고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환갑을 지낸 후 고령에 접어든 수연아씨 친정아버지
원님은 정사를 볼 수가 없어 사직서 상소를 올렸다.
시냇물 소리 졸, 졸, 졸, 버들가지 휘휘 늘어진
단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말 요랑소리가 땡그랑땡그랑 들려왔다.
창을 든 군졸 서너 명이 앞뒤에서 호위를 하였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사또 어른 행차요!
물렀거라, 물렀거라, 어사또 어른 행차요~!'
뭔 소린가 하여 놀란 박생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손주를 둘러업고 담 너머로 빼꼼히 바라본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말 꼬삐를 잡은 머슴은 사돈집 돌쇠였고
말에서 내린 것이 과것길에 올랐던 박생원이었다.
기절초풍한 박생원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렸다.
"아이고 아들아!
달포 간 소식도 없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더냐!"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자 장원 급제를 했습니다.
임자도 그동안 고생 시켜서 미안하오이다!"
안 그래도 입이 큰 박생원 부인은 함박웃음에다
커다란 눈에 눈물만 뚝, 뚝 말을 잊지 못했다.
박생원은 장인어른인 사또께서 고령에 사직서 낸 것을 알고
첫 부임지를 고향 마을로 선택한 것이었다
목청이 우라지게 큰 포졸 관아 앞에서 목청껏 외쳤다.
이리오너라~,
신임 사또 행차요~!
어사또 행차요~!"
마당에 내려선 장인어른은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 허, 허,
내가 사람을 헛보진 않았노라!
박생원 자네가 큰 인물이 될 줄 알고서 내가 딸내미
시집을 보냈노라!"
"소생, 장인어른께 결초보은 하고자 노심초사했나이다!"
박생원 부인이 빈 쌀독에 바가지 긁는 바람에
박생원 장원급제하여 기울어진 가세도 바로잡았고
바가지 긁던 며느리 또한 어사또 부인이 되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