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차 대부산 산행기 - 박모철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11-18 09:58:20
219차 대부산 산행기 (한산도 도다리 씀)
2008년 11월 16일(일) 날씨 맑음
참가자 : 김병욱(대장), 황문수, 이민영, 조길래, 김인섭, 박은수, 김재일, 박모철
(사건 I) 민영아! 미안타.
“민영아! 도다리다~ 눈은 좀 우떻노? 병원에 가봤나?”
“어~ 모철이가! 좀 낫다. 병원에는 안 갔고 약을 계속 넣고 있다. 괜찮을 끼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하산길은 그야말로 낙엽 밟고 스키 타는 기분이었다. 평지에서도 발목까지 빠지던 낙엽이 깎아 지른 듯한 산 비탈에서는 발을 내딛는 족족 아래로 미끄러져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황대장이 며칠 전 답사를 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냥 왔더라면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안 되는 그 길을 반은 기며 반은 미끄러지며 내려 왔던 것이다. 앞으로 황대장을 필두로 몇몇이 먼저 길을 트고, 난 중간에서 민영이를 뒤로 하고 허부적 대며 내려 오는데, 간간히 내 몸을 비켜간 잔 가지가 민영이 얼굴을 때린다. 나름대로 조심하면서 민영이가 나뭇가지에 부딪히지 않도록 잔가지를 잡았다 살포시 놓기도 하고 머리를 숙여 피해 보기도 하였지만, 아뿔사! 한 순간 잔가지 하나가 민영이 눈동자를 바로 때려 버린 것이다.
(사건 II) 여보! 나 이번 주에도 등산 갈 건데……
218차 봉미산 산행을 다녀 온후로 등산의 맛에 슬그머니 빠져 버린 듯 하다.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즐거움과 매력이 다음에도 또 가고픈 유혹으로 내 머릿속을 배~ㅇ 뱅 돈다. 놀토였던 지난 주, 막바지 가을인데 어디 단풍구경이나 갔음 좋겠다던 집사람을 외면하고 봉미산을 다녀 왔건만, 이번 주말 대부산 산행에도 어떡해서든 쫓아 가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이번 주말엔 특별한 약속이 있냐는 집사람의 물음에 또 산행 가겠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별일 없다며 일요일에 같이 영화나 보자고 해 두었던 터다. ‘Quantum of Solace’나 ‘미인도’를 보잔다.
금요일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 여보 낼 오전에 당신 한국은행에 간 댔지? 나도 회사에 볼일이 있으니까 가는 길에 태워 주께. 그라고 영화는 토욜 오후에 보모 안될까? 음……일욜은 산행을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 문수에게 참석한다고 문자를 날렸다.
고속터미널 건너 쪽에서 쫄고 병욱이를 태워 집결지에 도착하니 우리가 일빠따다. 잠시후 민영이가 은수를 태우고 졸려 죽겠다며 차에서 내린다. 9시 조금 지나자 황대장이 인섭이와 길래를 태우고 마지막으로 합류하였다. 재일이는 대부산 들머리 동막으로 바로 온다며 문수 애마와 민영이 차에 갈라 타곤 대부산으로 향했다.
10시 정각, 동막의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계곡 옆을 난 등산로를 들어서니 시작부터 길이 보이질 않는다. 온통 낙엽이 뒤 덮인 데다 늦가을 이슬 마저 내려 헛디뎠다간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등산길은 시작부터 엄청난 경사길이어서 마치 머리 위로 보이는 하늘로 바로 꽂힌 듯 하다.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돌부리를 잡았다가 네발로 기어 한 고비 올라가니, 앞으로 오를 길도 하늘로 솟기는 마찬가지다. 여덟의 발부리에 밀린 낙엽 구르는 소리가 자르륵 자르륵 소리를 내며 파도에 밀린 몽돌해변 자갈 구르는 소리와 흡사하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낙엽을 밟아 보기도 처음인 듯싶다.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하던 재일이는 산등성이 평지를 지나며 ‘낙엽이 참 좋네!’ 라며 혼잣말로 가을을 음미한다. 여유 만만하게 한 발 앞서 길 안내를 하던 황대장은 간간히 아래쪽에서 낑낑대며 기오 올라오는 대원들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사건 III) 어! 막걸리가 없네
11시 40분, 대부산과 유명산 사이의 능선에 도착했다. 임도 옆의 펀펀한 곳에 자리를 펴고 일찍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려가서 하산주와 함께 삼겹살 파티가 있으니 점심을 쪼끔 일찍 먹는 게 좋겠다는 고수들의 수 읽기다.
도시락을 펴기도 전에 ‘누가 막걸리 없냐’며 예전 같으면 물을 필요도 없는 헛 질문을 던졌건만, 어!막걸리 챙겨온 사람이 없다. 허! 허~ 참!
때 마다 빠지지 않던 막걸리가 없어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영이가 본인처럼 세련된 휴대용병에 코냑을 챙겨왔고, 은수도 어제 등산에서 남긴 소주를 뼝아리 오줌만큼 남겨와 목구멍은 살짝 �이긴 했지만 못내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펭귄이 왔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하며 어제 술을 얼마나 멕있으면 오늘 같은 날 나오지도 못하게 했냐고 애매한 민영이와 은수가 덤터기를 쓴다. 술이 모자라니 식사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점잖기만 하다.
담에는 산행대장이 들머리에서 필히 사전 확인을 하든지, 출발전에 막걸리 챙길 사람을 지정하든지 해야 한다는 예기까지 나온다.
식사가 끝나고 먼저 유명산으로 난 완만한 경사길로 올라가니, 멀리 군사시설을 머리에 인 용문산 정상이 보이고 반대쪽 산 아래에는 남한강 줄기가 소리 없이 흐른다. 하늘에는 유명산 정상에서 출발한 행글라이드가 산 아래까지 활강하다가 차츰 차츰 산 위로 하늘 허공까지 솟아 우리의 눈길을 끈다. 저기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쬐끔은 달라 보이리라 짐작되지만, 허공에 매달려 자유롭게 비행하는 맛은 감히 짐작하기도 힘 드리라.
반대쪽 우리의 목적지 해발고도 784m 대부산 정상을 밟고 서서 간단히 증명사진을 찍고 1시 30분 하산주가 기다리는 전원 주택형 식당으로 출발~!
(사건 IV) 5공 패권은 누구에게?
1시간 40분 걸려 올랐던 길을 1시간 만에 낙엽 미끄럼을 타고 식당에 도착하니 2시 30분이다.
수돗가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미리 준비해 둔 삼겹살이 우리를 반긴다.
황대장의 선창으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하산주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익을 무렵, 황대장은 병욱이를 다정히 불러 건너편에 앉히더니 소주 한 잔을 건넨다.
황대장이 고심끝에 발표한 사실은 1~4공 대장이 비밀 회동을 통하여 두 명의 후계자 후보를 두고 설왕설래를 거듭한 끝에 쫄고 병욱이를 차기, 즉 5공 대장으로 낙점하였다는 병욱이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낭보를 발표하였으니 주변의 대원들이 박수로서 이를 환영하였던 것이다.
대장은 황대장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도다리도 일단 박수는 쳤다만 워낙 쫄고 병욱이의 고사가 일리가 있어 과연 5공의 패권이 누구 손으로 갈지 귀추가 주목 된다.
(사건 V) 팔불출
다시 동막 들머리에서 재일이가 먼저 떠나고, 황대장 차에는 인섭이와 길래가, 민영이 차에는 나와 은수 그리고 병욱이가 함께 가기로 하였다. 헌데 아까 산에서는 괜찮아 보이던 민영이 눈이 심상찮다. 눈이 상당이 불편한 모양이다. 내가 차를 몰기로 하였다.
큰 길로 들어서니 주말 나들이 나왔던 차들이 넘쳐난다. 이대로 가다간 40분만에 왔던 길을 2시간은 훨씬 넘게 걸릴 것 같다. 재봉이 사무실에서 다시 모여 당구 한겜 하러 갈 것 같은 분위기도 차가 워낙 막히니 슬그머니 마음이 바뀐다. 뒷좌석에 앉은 은수가 황대장에게 전활 걸어 차가 많이 막히니 그냥 헤어지자며 당구는 담으로 미루었다. 그래도 황대장 멤버들은 틀림없이 자기들끼리 한 겜 할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아마도 상국이도 불러낼 것이라며……
일요일 산행에는 현지에서 하산주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듯 하다며 담 부터는 서울로 돌아와서 하는 게 좋겠다는 말들이 오간다. 차 속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니 자식 예기가 나온다.
은수 아들래미는 인근의 양서고등학교를 졸업했단다. 자율고등학교라나? 대학2학년에 재학중인데 내년에는 해군장교 시험을 볼 모양이다. 쫄고는 인도 주재 덕분에 아들이 특례로 입학하였고, 민영이는 엄마 아빠 보다 훠~ㄹ 씬 인물이 나은 두 딸 사진까지 뵈 주며 딸 자랑에 신이 났다. 내친김에 그때 얘기 못한 우리 아들 예기도 잠깐 해보자. 한영외고를 나와 현재 연대 3학년 재학중이다. 군대 마쳤고.
다를 자식 농사는 잘 지은 것 같다. 원래 칭구들 골프 망치게 하려면, ‘요새 아~들은 공부 잘하나?’ 하고 한마디 던지면 그만이라는데 다들 해당 없는 것 같다.
(추신) 쫄고란 사람은……
쫄고 병욱이 배낭 뒤에는 아주 특별한 물건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담배 재떨이다. 장난 삼아 달고 댕기는 물건이 절대 아이다. 이번 산행을 오가며 쫄고는 내 차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귀가길에 올림픽대로가 워낙 막혀 한대 피워 물긴 하였지만, 담뱃재를 털 수 있는 빈 커피 캔을 발견하고 난 후였다. 그는 담배 꽁초는 물론 결코 담뱃재 한 톨도 차창 밖으로 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담뱃재를 털며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나칠 정도로 혐오감을 비쳤다. 왠만하면 꽁초까지 차창 밖으로 휘~익 던져 버리는 내 자신을 꾸짖기라도 하는 듯하여 속으로 부끄러운 맘 어쩔 수 없었다. 쫄고는 내 첨 생각과 달리 자신에게 엄격하고 반듯한 친구다. 등산 베낭에 재떨이를 매달고 다닐 생각을 하는 쫄고는 그렇지 못한 다른 골초보다 훨씬 용기 있고 믿음직한 친구다. 피워선 안될 장소에서 꼭 피워야 한다면 최소한 뒤처리는 확실하게 하는 그가 매력적이다. 조금은 거친 면도 있지만 에둘러 얘기하지 않는 그의 말투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다들 욕 봤소이다. 도다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