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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산행후기
속도전을 치루 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지루한 건 금물인데
1월(18구간) 산행후기는 글 쓴 내가 봐도 장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산행후기는 가급적 짤막하게 마무리하겠지만 자신이 없네요.^^
랜턴을 챙겨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는데 문경의 모 식당에서 단체로 아침을
먹는 바람에 산행시간이 지연되어 자연스레 해결됨을 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격언을 들먹거려도 될지 모르겠다.
하늘재 야영터에 비박하는 대간 종주 팀들이 보였다.
대형 배낭들을 보니 두려우면서도 한편은 부러운 두 가지 감정이 묘하게 섞였다.
우리 팀이 산행준비와 기념촬영을 한다고 부산을 떠니 침낭 속에서 한밤중인 줄 알고
취침하던 사람들이 기상하는 듯했다.
등산로 들머리 부분에서 만난 돌무더기가 첨엔 너들지대의 크고 작은 돌덩이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산성(석성)의 흔적이었다.
어느 시대 어떤 용도로 쌓았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용도 폐기되어 우리들과 같은
등산객들의 등산화에 밟히면서 급격히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문경은 충청북도와 경계에 있는 경상북도의 최 북방 지역이라 고대(삼국시대)
에는 국경이었을 가능성이 큰 곳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고 평화의 시대에 잘 먹고 잘 사는 우리들의 현재 입장으로선
수 백 년 혹은 수 천 년 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양상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중장비가 전무했던 조건으로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무거운 돌덩이를
나르고 쌓고 하는 일이 무지 고된 일임을 아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아 어느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주저 없이 밟고 지나는 것도 모자라 휘파람을 불거나 혹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선조들이 강제 동원되어 관리감독자(노가다 십장?)의 눈치를 보면서 돌을 나르고
쌓을 당시는 얼마나 고되고 힘든 노동이었으리라.
그리고 이 석성 주변에서 만약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피가 뿌려졌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그리 가벼울 수만 없다.
적지 않는 세월동안 산행을 하면서 수많은 산성의 흔적들을 지나쳐도 별 감흥을
느끼지 않다가 언젠가부터 산성의 돌 하나하나에서 민초들의 고달픈 삶의 채취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성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애잔해졌고 고혼들을 위무해주고
싶어졌다.
언제 읽었는지 잘 모르지만 춘원 이광수의 단편 소설 ‘가실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신라 사람인 가실이가 연모하는 여자의 연로한 부친이 국경수비대로
징집받자 대신 입대한다.
소설 전체 내용을 지금 다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고구려 군사와 전투가 벌어져
신라군이 전멸을 당하고 고구려 병사가 죽은 신라 군사들을 확인 사살하는
과정에서 죽은 체하고 있던 가실이가 고구려 병사에 들켜 서로 싸움을
벌이다가 싸움을 멈추고 둘이 나누는 대화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당시 비록 삼국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의사 소통이 가능하여 나라간의
특별한 문화 차이가 없었다.
백제나 고구려나 신라의 병사 개개인은 서로 원한이 없었고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탐욕, 과시욕, 정벌욕 등으로 인해 개인의 의사완 달리 어쩔 수
없이 동원되어 명령에 의해 아니면 살기위해 서로를 살상할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알게 되어 서로 죽이지 않고 화해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내용이었다.
물론 현실과 전혀 다른 이광수 개인의 철학적인 소산으로 꾸민 소설이었지만 타협과
평화주의자인 내게 있어선 소설의 주인공인 가실이의 휴머니즘이 큰 감흥을 주었다.
(이광수는 비록 적극적인 친일파로 분류되어 후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소설들은 매우 훌륭한 편에 속한다)
만약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차대전 종전 후 나온 가실이의 주제와
비슷한 인간의 휴머니즘을 다룬 고미가와 준뻬이(五味川 純平)의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을 추천하니 꼭 탐독해보기 바란다.
나는 이 소설을 세 번 읽었다.
이 책은 부친이 장서하고 있던 책 중에 하나였는데 초딩 오학년에 처음
읽었을 땐 사춘기 소년의 지대한 관심사로 전체 내용보다 남녀 간의 애정묘사에
치중해서 보았다.
인간의 휴머니즘 및 폭력성 혹은 반전 등의 굵직한 주제는 중학교 진학해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다.
서점하는 마누라를 만나서 삼십대 후반에 다시 읽었고, 읽을 때마다 감동의 폭과
깊이가 달랐다.
설국을 쓴 가와바다 야스나리란 사람도 노벨문학상를 수상했는데 이런 훌륭한 소설을
쓴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나름 울분을 품은 적도 있었다.(물론
소설가가 나타내고자하는 예술성과 미학성을 보는 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겠지만...)
소설 내용의 전개도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밀양의 깡촌에서 살 때 취학 전부터 영화보기를 무척 좋아해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가설극장에서 무심코 본 1962년작 김수용 감독 김석훈, 엄앵란, 황해 등이
출연한 ‘대지여 말해다오’라는 영화가 이 소설을 번안(줄거리나 내용은 그대로 두고
지명이나 인명 등을 시대에 맞게 각색함)하여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일본소설을 우리나라가 영화화할 만큼 소설은 주제의식도 강하고 갈등구조도 박진감이
넘치고 세부 장면 묘사도 사실감(리얼리티)이 넘친다.
다시한번 추천하는데 꼭 읽어보시라 재미는 소인이 보장함다.^^
산성 터를 지나자 쨀쨀거리며 흐르는 샘터 물 한 모금 씩 하고 마주친 등산로는
급격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식사를 한 후 적당하게 휴식을 취하지 않고 바로 산을 오르면 힘이 드는데
경사마저 만만찮아 초장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기합을 받는 기분이었다.
포암산 정상은 일망무제의 조망이 가능한 곳이었으나 가시거리가 좋지 않아
환상적인 조망감은 없었다.
다만 남쪽으로는 주흘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북쪽에서는 예사스러운 모습이
아닌 월악산의 영봉만이 주변의 모든 산세를 평정하고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주흘산은 남서쪽에서 조망해야 경북사람의 특이한 성격(?)과 같은 특이한 산세를
맛볼 수 있다.
즉 우리가 1월에 산행한 18구간에서 주흘산 진면목을 고스란히 조망할 수 있지만
운 나쁘게도 그 땐 눈이 내려 그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전진하면서 좀 더 줌업된 월악산 영봉을 촬영하고자 했으나 등산로 주변의 잡목이
가려 결국 포암산 정상 같은 전망 터가 다시 나오지 않아 월악산 영봉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해발 천고지가 넘나드는 경우 양지쪽은 벌써 봄인데 응달쪽은 여전히 겨울이
잠복하고 있었다.
눈이 녹아 단단히 결빙된 빙판(엉덩방아 지뢰)이 낙엽 밑에 매설되어 있음을
모르고 넋 놓고 가다간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어쩌다가 미끈덕 하고 빙판을 밟으면 정수리에 땀이 밸 정도로 아찔했다.
앞서 가는 동료들이 후미에 오는 동료들에게 지뢰 매설을 경고하는 소리가 때때로
적막을 깼다.
늦겨울과 초봄의 간절기인 3월 초순의 산천은 년 중 제일 볼품이 없기도 하거니와
햇살에 노출된 등산로는 질퍽거려 걷기가 영 불편했다.
그러나 가만히 귀 기울이면 우리들이 지금 밟고 있는 이 질퍽거리는 등산로 밑에는
이름 모를 초목의 뿌리들이 용틀임을 하고 있고 등산로 주변의 죽은 듯이 잠자고
있는 나무의 까칠한 수피 아래에선 곧 닥칠 봄을 위해 가지 끝으로 수액을 퍼 올리는
펌프질이 요란하게 들릴 것이다.
몇 몇 회원들이 등산로 주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보고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만 사람 키보다 한참 더 높은 부위에 매달려 있어 그림의 떡을 보는
셈이었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어 나무 타는 실력도 보일 겸 내가 나무에 올랐지만
발판이 될 만한 중간 가지가 없어 오르기가 불편하고 힘도 많이 소모되었다.
(2만8천원짜리 타이즈 허벅지 안쪽에 구멍이 나 귀가 후 짜깁기 했음 ^^)
겨우살이는 수 십 가지의 질환에 두루 사용되는 약초다.
동의보감에는 임산부의 태동이 이상이 있을 때 에 사용한다고 실려 있다.
민간에서는 신경통,관절염,고혈압,신경안정 등의 질환에 주로 사용하고 있으나
사람에 따라 효과 및 효능이 천차만별이다.
의학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체의학으로 치료를 하는 곳에서 겨우살이(비슬토)를 사용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양, 한방 정식 의학계에선 대체의학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말기 암환자들의 경우에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도 잡는다는
식으로 회생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대체의학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겨우살이 처방도 대체의학에 포함되는데 겨우살이 열매에서 추출한 엑기스를
암 환부에 직접 주사하여 완치 및 증상 완화 혹은 시한부 삶의 질이 증대되는
임상 결과에 대한 신문기사를 여러 번 읽은 적은 있지만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2004년부터 약 삼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종 약초 채취를 하였으며 특히
겨우살이는 전북 무주 인근에서 대량 채취하여 판매한 바 있어 겨우살이의
생태 및 관련 정보를 적잖게 연구해서 잘 알고 있다.
요즈음 겨우살이는 거의 만병통치에 가까운 약재로 과장되게 알려져 중국산
까지도 거래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겨우살이가 좋은 약재이긴 하지만 절대로 만병통치는 아니며 겨우살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있을 때 겨우살이의 진면목이 새롭게 발견되지 않을까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겨우살이도 산야에 늘려있는 무수한 다른 약초와 마찬가지로 증상과 체질에
따라 적정량을 끈기 있게 장복하면 치료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보약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건강을 한 방에 해결하려는 경향도 농후하다.
물론 질병이 생겼을 땐 적절한 치료와 약으로 다스려야 하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과 과음 과식을 가급적 피하고 적당한 운동을
꾸준하게 하면 끝이다.
그것에다 덤으로 양서를 꾸준하게 읽고 인생에 대해 깊은 사색과
사유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백살까지도 장수할 것이다.
겨우살이를 채취하느라고 나무를 타고 용을 쓴 탓인지 체력이 급격히
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르막 길엔 앞서 가는 강 총무의 무거운 발걸음 못지않게 나도 죽을 맛이었고
누가 좀 쉬어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을까하는 심정이었다.
백두대간 구간 종주중 제일 힘이 드는 느낌이었다.
절간에서 비린 것을 먹지 못해 허해서 그런가 싶어 보약이라도 한 첩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ㅇㅎㅎㅎ ^^)
대미산에서 중식을 취하려는 잠정계획을 포기하고 대미산 못 미친 안부에
낙엽을 정리하면서 중식 터를 마련했다.
준비해온 버너에 불을 지피고 코펠에 만두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늘 얻어먹기만 해서 담부턴 나도 십시일반해서 라면 혹은
라면 끓일 생수나 버너, 코펠 같은 것을 분담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데
놀부님이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다.
네 개조로 나눠 조별로 취사에 필요한 먹거리와 장비를 분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대간 팀에서는 그런대로 재롱(?)을 잘 피우는 재학 씨와 처음처럼님이 불참하여
팀의 분위기가 왠지 숙연해보였다.
김 선배님이나 나와 같은 숙연파들만 구성되어 산행을 하면 무미건조하다.
평소 번잡함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지금만큼은 그들이 그립고 아쉽다.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이지만 잘 익은 김치를 제일 좋아한다.
오늘도 하니씨가 가져온(?) 적당하게 익은 알타리무(총각무) 김치가 내
입을 즐겁게 했다.
중식을 마치고 남은 알타리무 김치봉지는 내 몫이었다.
이름은 그럴듯한 大美산이었지만 이름과 걸 맞는 것이 하나도 안보여 섭섭했다.
대미산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난 후부터 철저하게 산행대장 바로 뒤에 따라
붙었다.
981고지를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중간지점이라는 표지석에서
모여 단체기념촬영을 했다.
놀부님은 늘 휴대하던 무겁고 성가신 DSLR 카메라 대신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콤팩트 디카를 갖고 왔다.
별도 구입한 것이 아니고 딸내미 것을 가져왔단다.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가슴에 매달고 다니면서 꺼집어 내고 다시 집어 넣고 하는
게 얼마나 거추장스러우며 교환렌즈까지 챙겨온다면 자신이 등산객인지 찍사인지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하였을 것이다.
간단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이며 지극히 편안한 일임을 오늘에사
실감했으리라.
이제부터라도 홀가분하게 삽시다.^^
첫 구간부터 종주를 시작한 회원들이 상호 격려를 하였으며 특히 놀부님이
여성회원들에게 치하를 했다.
놀부님의 말에 동감한다.
살림 하는 여성으로서 발빠른 남자들에 뒤지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는 대간 종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13구간부터 동참한 나로서도 남은 구간만큼은 개근하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의 종착지인 차갓재까지 산행대장과 나 김 선배님 이렇게 세 명이 선두로
쉼 없이 달렸다.
김 선배님은 오늘도 오르막에선 힘든 기색을 보이기도 했으나 나나 다른 젊은 후배들이
김 선배님 연배가 되었을 때 저만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하고 늘 자문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령자로서 묵묵히 산행에 임하는 김 선배님이야말로 후배들의 산행
의지를 북돋우는 큰 귀감이라고 본다.
차갓재에서 하산한다는 말을 얼핏 들어 산행대장에게 얘기하고 차갓재에서
2십여분 기다려도 후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갓재 못 미처 하산한 것으로 판단되어 휴대폰을 날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미 후미팀은 되돌아오지 못할 길로 하산해버린 것이 확인되어
우리는 작은 차갓재까지 계속 강행군하여 안생달로 하산했다.
놀부님을 포함한 후미팀은 벌써 하산하여 머루주 공장 앞 빈터에 모여 앉아
상수씨가 공장에서 개인돈으로 구입한 머루주와 오미자주를 시음하고 있었다.
벌써 취기를 드러내는 회원도 있어 나도 뒤질세라 그들이
마시고 남은 머루주를 허급지급 연거푸 들이키니 달짝지근한 맛이 혀에 감겨왔다.
정말 꿀맛이었고 술자리에서 나처럼 술을 탐하는 이가 없어 내 몫이 항상 차고 넘쳐
나는 늘 행복하다.^^
산 맛 좋고 사람 맛 좋은 산행이 좋은 술 맛으로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시간이
빡빡혀서 목욕은 생략하고 천안에서 만찬을 즐기고 각자 고홈했다.
불참한 재학,종률 씨! 20구간 산행 시에는 얼굴 꼭 쫌 보입시더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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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후기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 이름은 조 성률 입니다.
지송해유 ^^ 그렇고보니 조 종률보다는 조 성률이란 이름이 더 친근하네요. 몸은 회복되었는지 궁금하고 다음 달엔 꼭 얼굴 봅시다.
전처사님 산행후기 감사합니다.....저는 글쓰는 재주가없어서.....처사님 정말 감사합니다....(^ㅁ^)
이번 산행은 대간종주를 계속 해야하는가??하는 회의가 들만큼 그 지겹도록긴 오르막에서 잠깐 했습니다.. ..처사님 발걸음음 항상 경쾌해서 저만 힘든줄 알았는데..다행입니다..산행후기중 산 맛좋고 사람 맛 좋은... 이맛에 자꾸 중독되어 담 산행이 기다려 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