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나훈아의 우열
(독자께 먼저 고지 드립니다. 필자가 본 칼럼에서 記述하는 내용은 절대적이 아닌, 하나의 수사적 표현이며 記述의 방법에 있어 기존의 技術을 달리하여 쓰는 주관임을 밝힙니다. 부디 오해나 시비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비록 가수는 없고 紙上에서만 국한하는 것이지만, 배호와 나훈아의 우열을 논하는데 있어 간과하기 쉬운 하나의 사실을 전제하여야 한다. 그것은 게임의 공정성이다.
이를테면, 배호는 '60년대를 아세아레코드에서 활동하고, '69년 지구레코드사로 전속 '71년 타계까지 약 3년 동안이 음색이 가장 완숙한 배호의 정점이다. 사람들은 지구에서 발표된 배호의 총 68곡만을 배호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반면 나훈아의 경우는 칠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작금의 모습을 나훈아의 전부로 평가한다. 이것은 잘못된 비교다. 배호가 정점이면 나훈아도 정점에 있었던 시기만으로 한정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나훈아의 군 입대 전 최고의 전성기인 '70~'73년 발표 곡만으로 한정한다.
한국가요사 100년 동안 수많은 기라성의 가수들이 있었지만, 만약 어느 누가 필자에게 한국에서 최고의 으뜸가수(남자가수에 국한하여)가 누구냐고 물는다며는, 나는 한참을 망설이는 척 하다가 다음과 같은 가수를 나열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볼 것이다. 이중 누가 최고인가를.
남인수, 백년설, 배호, 나훈아.
나는 조금 망설이다 南仁樹와 百年雪을 명단에서 우선 배제 시킬 것이다. 남인수 백년설의 경우 두말이 필요 없는 가요계의 전설이며, 완벽한 가창력과 신들린 흐름으로 노래를 요리하고 이끌어 가는 재능은 100년 동안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인데 어찌 완벽하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완벽의 극치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단에서 南과 百을 배제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필자가 살아왔던 시기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분들이라 필자와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된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배호, 나훈아의 존재가 너무도 독특하고 이들의 재능을 흉내 내는 것조차가 불가능하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남인수는 미성으로 음의 대역이 3옥타브를 왕래한다. 가수로써 천혜의 재능이고, 더 말할 나위 없는 장점이지만 상대적으로 저음이 취약한 것 같이 보이는 약점(?)이 있다. 쉽게 자동차로 표현하면 남인수의 경우는 이를테면, 상시 고 rpm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와 같아서, 서행(정적)이어야 할 순간에도 rpm이 높다. 이것은 음역 넓음의 의미를 무색케 한다. 이것은 또 심리적으로도 절정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공학적으로 고도의 긴장상태(고 rpm)는 20초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인데 남인수의 음역은 상시 긴장 상태를 유지하므로 간혹 심리적 피로와, 절정에서 격정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음악적 요인이겠지만) 절정 또한 진성이랄 수도 가성이랄 수도 없는, 다소 모호한(?) 경계에 머물고 안착한다. 이것은 감동의 반감요인이다.(남인수 팬은 반론을 제기 하겠지만)
배호는 극단적인 저음의 가수이므로 저음에서는 색소폰 저부의 바람 훑는 소리가 난다. 이것은 배호만이 가진 특징이다. 그러함에도 배호의 고음은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 절정의 찰라, 일순간 끓어오르는 순간의 rpm 응답도(상승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것은 잔물결이 출렁이는 강물 위에 한줄기의 물이 분수처럼 솟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이 허리케인으로 휘몰아쳐 주변의 모든 것을 뒤집고 바닥의 모레까지 긁어 끌어올리는 용솟음의 일진광풍이다. 이것이 배호의 카타르시스요 진면목이다. 같은 '미','솔'이라하더라도 남인수의 것과 배호의 것은 다르다.
그럼 나훈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훈아는 고음가수로 분류되지만, 저음 또한(工學 용어를 빌려서)'응력-변형곡선'[1]의 '탄성한도'[2]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음의 이탈이나 뭉개짐이 없다. 따라서 찰지다. 그리고 그의 주특기 고음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배호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실린더 내부 고압의 응축이 일순간 폭발하여 torque 무한대로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다. 여기에 나훈아 특유의 비브라토가 더해져 나훈아의 절정은 아름답다. 지나간 자리에는 멋의 황홀이 뭉개뭉개 피어오른다. 이것이 나훈아의 '72년, '73년의 모습이다.
나는 두 명의 명단을 앞에 두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다. 쉽게 배호와 나훈아 중 우위가 분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부른 최고의 노래를 몇 곡 감상해 보고 우와 열을 가리고자 한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종말', '비 내리는 명동', '비 내리는 경부선', '0시의 이별'.
참으로 애절하고, 음울하고, 구성지다. 그리고 처절하다. 배호 아니면 어느 누가 이처럼 인간 심연의 고독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나훈아 것을 감상해본다. '좋았다 싫어지면', '산딸기', '사랑아 다시한번', '흰구름 가는길', '녹슬은 기찻길'.
나훈아,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서 어떻게 기차 화통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또,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그러한 창법이 어떻게 실재로 재현되는가? 신묘하다. '녹슬은 기찻길'에서는 마치, 기차가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단숨에 평양까지 치고 올라갈 것만 같은 울분이다.
배호와 나훈아. 배호가 깊이의 장행정이면 나훈아는 속도의 단행정이다. 즉 배호는 덤프트럭이고, 나훈아는 스포츠카다. 여기서 어떻게 우열을 구분하랴! 음대가 좋으냐, 미대가 더 좋으냐를 따지는 것 같고, 밤이 좋으냐, 낮이 좋으냐를 구분 짓는 것만 같다. 그래도 운명적으로 한명을 선택하라면, 나는 깊이 보다는 속도를 선택하겠다. 이것은 우열이 아닌 멋을 추구하는 필자의 취향이다.
그래도 배호는 행복하다. 도플갱어 같은 월연스님이 있지 아니한가? 나훈아의 경우는 택도 없는 가짜 나훈아들이 원숭이짓으로 나훈아를 희화화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론이다.
이상(以上, 理想, 異狀, 異常, 李箱?).
본의 아니게 남인수, 백년설 선생을 거론한 점 송구하나, 글의 전개상 그러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 바랍니다.
(주)
[1] 응력-변형곡선: 공학용어로서 부재에 외력이 작용했을 응력과 변형의 상관관계를 곡선으로 나타낸 도표.
[2] 탄성한도: 부재에 외력이 작용하여 변형이 발생하고 그 외력을 제거했을 때 변형이 0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응력-변형 곡선 상의 최고 한계점. 끝.
사랑은 이제 그만.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