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꽤 오래 전 일이다. 후배들이 책상 위에 초코파이를 쌓아놓고 제를 올리고(?) 있었다. 검정색 바탕의 락 티를 입고서 말이다. 의아하여 연유를 물었더니 오늘 커트 형님이 돌아가신 날이란다. 얘들 참 엉뚱하네, 귀엽기도 하지. 당시의 추모 대상에 대해 나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후에 ‘네버 마인드’ 앨범이 내가 락 음악을 듣게 되는 시발점이 될 줄도 모른 체 말이다. 커트 코베인이란 인물에게 매료되면서 한참 관심을 가질 즈음, 그가 1994년 4월 5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심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교실 한 켠에서 “어이구~ 어이구~”하며 제를 지내던 후배들의 곡 소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자신들이 좋아해 마지 않았던 존재의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을 나 역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1년 전 일이다. 갑자기 후배가 메신저로 말하길 장국영이 죽었댄다. 날짜를 보니 만우절이길래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터넷 뉴스 홈에 가보니 정말 사실이 아닌가. 그것도 스스로 삶의 막을 접어버린 자살이라니. 그렇게 내 2003년 만우절의 끝은 거짓말 같은 실제 상황이 주는 당혹스러움이었다. 1년이 지난 즈음, 주위 사람들에게 장국영 얘기를 꺼냈더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되었냐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 언론이 또 대중들이 일제히 안타까워 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다고 한다. 사람이 무엇인가 기억하는 데 있어 사소하더라도 단서가 있으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했던가. 1년이 지난 지금, 절친한 지인들의 생일도 다 기억 못하는 내가 그의 기일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그날이 만우절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거짓말 같았기 때문에, 동시에 거짓말이었으면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의 얘기는 그들이 남긴 말들과 글, 그리고 행적을 보고 전적으로 주관적 감정이입에 의한 ‘미루어 쓴 부분’이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커트 코베인과 장국영의 자연인으로써의 면면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개인적으로 그들의 음악과 영화는 10대와 20대를 풍미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버린 그들에 대한 애상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가장 정직하고도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다. 따라서 나의 짚은 바가 다소 과장되고 반감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그저 그들을 기념하고 싶다. 단지 그것 뿐이다. 초코파이를 쌓아놓고 그를 회상하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과 자아와의 너무 이른 이분화4월에 그것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말고도 면면에서 그들은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둘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세상에 회의적이었다. 간단한 이유로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트의 평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은 그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재능 있는 커트였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이리 저리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왜소하고 곱상한 외모 덕에 학교에서 faggot(계집애 같은 남자를 이르는 은어)이라고 불리며 동성 연애자 취급을 받았고, 파티에 가장 같이 가기 싫은 남자애로 뽑히곤 했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보다 그가 더 의지한 것은 헤로인과 마리화나였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는 커트의 고백은 그가 너무 일찍 실망해버렸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국영은 결혼을 믿지 않았고 결혼에 대한 꿈이 없었다고 한다. 유복하긴 했으나 부모 혹은 주위 친지들의 행복하지 못한 개인사를 많이 보아온 덕에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그는 다분히 회의적이었다. 일생을 통틀어 그가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은 딱 한 번이라고 한다. 22살에 그는 <가유희사>에서도 같이 공연한 바 있는 모순균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장국영의 청혼을 거절했고 이 실연이 그에게 미친 바는 컸다. 4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그는 단 한번의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양성애자냐고 묻는 언론의 질문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 남자 여자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외로웠고 진정 사랑하고 싶어 했다. 그가 평소 가정을 중요시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결혼에 대해 이상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현실이 그와 같지 않았음이 그를 더욱 더 외롭게 만들었으리라. 모순균에게 당한 실연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체념의 동기가 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듯 하다.
단순히 그들이 참 힘든 세상을 살았더라고 하는 얘기를 늘어놓자는 것이 아니다. 추측컨대 범상치 않았던 그들의 오리지널리티가 발산하는 감성의 모티브가 그것일까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어릴 적부터 예민했었고 내면의 세계에 지나치게 귀 기울인 나머지-그것은 어찌 보면 백치처럼 순수한 나르시즘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거부는 그 기저에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동반하게 되고 그 이분법적 사고 기저엔 일종의 우월감이 존재한다- 남들보다 (지나치게) 유별났다. 타인이 주는 상처 혹은 실망에서 그들이 도피하는 방법이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사고와 나름의 모토를 켜켜이 쌓아가고,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문제 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언제 어느 형태이든 예고치 못한 패닉으로 그들의 발목을 잡은 순간은 간헐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적당한 안위를 추구할 일말의 뻔뻔함 조차 없었던, 그래서 매우 바보스러울 만치 순수하고 정직했다고 할까. 편해지기 위해서 아픔을 잊는(혹은 적당히 넘어가는) 법조차 몰랐다. 당연히 친구가 없을 수 밖에 없었던 커트는 Boddah라는 가상의 친구와 대화하곤 했다. 커트나 장국영이나 외부와 그다지 화합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습관 같은 어울림은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소위 왕따 기질이라고도 할 수 있을) 장국영도 내성적이었고 별로 말이 없는 데다 친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과 연기에 영혼의 호흡을 싣다그들은 세상에 대한 적잖은 불신감과 실망감, 그로 인한 냉소와 조롱을 각자의 음악과 연기에 투영시켰다. 너바나의 음악 곳곳에서 나타나는 비주류의 정돈되지 않은 느낌과 반골 기질은 그의 성향을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이다. 그 거친 느낌이 이유 없는 정돈을 거부하는 무정향의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은, 거꾸로 보면 기존 질서를 애써 거부해야 할 만큼 상처 받았다는 반증일지도. 장국영 또한 후기작으로 갈수록 그의 이목구비가 담아내는 슬프고 허무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동사서독>에서 냉소 뒤켠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구양봉과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이도공간>의 짐에게서 왠지 그의 실상의 내면이 오버랩되는 것은 우연만이 아닐 것이다.
<아비정전>의 아비와 <해피 투게더>의 보영은 철모르는 존재다.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분히 자학적이다. 아비와 보영이 가진 일종의 피해의식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의 마음을 할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자신마저 팽개치는 치기어린 앙탈을 부렸다.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슬퍼하는 좌절의 몸부림이었다. <패왕별희>의 데이와 <풍월>의 충량 또한 이루지 못할 사랑의 굴레에서 스스로 지쳐 죽을 때까지 헤어 나올 수 없었던 바보 같은 순수함이 있었다. 이들 캐릭터들에겐 지친 자의 그늘에서 오는 음울함이 웅크리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진지함이 유난히 우수에 차다 못해 기구한 인물들에게서 퍽 어울렸던 것은 그의 평소 성향과 전혀 무관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영웅본색>시리즈도 있고 <천녀유혼>시리즈도 있다. 송자걸과 영채신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그늘 때문에 괴로워하는 복잡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영화 속에 캐릭터와 장국영의 선이 고운 외모가 조화를 이룬 경우에 가깝다. 선이 고운 외모에서 파생되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때론 소극적이기까지 한 이미지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이 의도하는 애절한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타고난 외모를 이용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 장국영이 꽃미남 스타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이처럼 빼어난 신파조의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작을 하는 홍콩배우의 특성에서 그 또한 벗어나지 않았다. 대체로 <아비정전> 이전의 배우로써의 그의 모습이란 잘생긴 배우가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에 다름 아니다. 이 때의 그의 캐릭터들은 영화가 취하는 사건에 몰입하는 인물이었지 내면의 복잡다단함에 치중하는 정서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살지연>에서 커다란 안경을 쓰고 ‘무심수면’을 흥얼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삶의 고뇌를 찾아보긴 힘들다. <성탄쾌락>과 <위니종정>에서의 코믹 연기도 물론 말할 나위 없다. 한가지 예외는 매염방과 공연한 88년작 <인지구>이다. 그는 <인지구>에서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잣집 도련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관금붕의 연출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지구>는 장국영에게 정말 어울리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짐작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나중에 장국영이 찍은 <화전희사>에선 <인지구>의 독살 장면에 대한 패러디가 나온다. 그리고 <인지구>에서 매염방을 따라 극단에 들어가 경극을 하는 장국영의 모습은 마치 <패왕별희>의 데이를 연상케 한다.
<아비정전> 이후에도 그는 다작이었다. 왕가위가 또 첸 카이거가 끌어냈던 내면의 진지함이 매 영화마다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이란 그는 본래 타고난 외모에의 의존을 벗고 스스로 연기의 도를 이루었다는 인정과 칭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비정전>과 <패왕별희> 그리고 <동사서독> 그리고 <해피 투게더>에서의 냉소적이지만 슬픈 그의 모습에서 배우 장국영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경탄은 지금 작품들을 다시 보아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물론 <금옥만당>이나 <종횡사해>, <금지옥엽>, <백발마녀전>, <야반가성>도 꽤나 볼만한 작품이긴 하다. 그러나 전자와의 차이점은 후자의 작품들은 비교적 포인트가 명확한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전자는 장국영이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에너지가 십분 발휘된 영화들이고 어찌 보면 (보는 이에 따라) 지지부진하고 청승맞을 수도 있지만, 영화가 의도하는 기본 감성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이라면 이들 영화는 그들 뇌리에 깊이 박히는 작품일 것이다. 이런 나의 경도가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왕가위식 읊조리는 고독에 대한 공감과 지독한 외로움과 가슴 깊이 그늘을 드리울 수 밖에 없었던 슬픔을 그 또한 느꼈을 거라는 성급한 감정이입에 다름 아닐 수도 있지만 여하간 그들 작품은 배우로써의 장국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해피 투게더>의 보영의 연기는 요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피 투게더>하면 양조위의 연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해피 투게더>의 초반의 장국영과 양조위의 정사씬이 삭제된 채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정사씬이 들어간 카피를 먼저 본 다음 시간이 지나 정식 출시된 비디오를 볼 때의 그 황당함이란. 시작부터 보는 이의 감정이 틀린 데 어찌 제대로 된 <해피 투게더>에 동참했다 할 수 있을까. 진정 행복하지 못한 일이다.
순간 그의 불꽃은 강렬하게 타올랐던 것일까. 97년 작 <해피 투게더>를 제외하곤 90년 대 중반 이후 작품에선 장국영만의 아우라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럭 저럭 평균작이거나 (그저 볼 만하다는 측면에서) 아니면 대개가 그닥 기억에 남지 않는 작품이니 말이다. <색정남녀>에서 그가 보여준 감독으로써의 열정은 어쩐지 <희극지왕>에서 주성치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첸 카이거와 조우하여 의욕적으로 <풍월>을 찍긴 했으나 이전 스타일에 대한 매너리즘이 느껴져서인지 <패왕별희>의 감흥이 되살아 나지 않는다. <친니 친니>도 상당히 오밀조밀한 영화이긴 했으나 장국영은 양념 역할이다. 유작 <이도공간>은 보면서도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초반의 그럴듯한 긴장이 말미에 가선 터무니 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그를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데 말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있었다.
다수의 의견은 하나의 최면이며 함정에 지나지 않는다장국영이 양성애에 대해 관대했듯 커트 또한 그러했다. 차이점이라면 실제로 동성 연애자가 아니었던 커트 코베인은 개인적 고수 차원에서 관대의 입장을 취했던 장국영에 비해 동성애를 맹목적으로 터부시하는 다수의 우매함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동성연애자로 오해받았던 커트 코베인은 오히려 내가 게이로 취급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을 정도다. (그는 은행 벽에 ‘호모가 지배한다’라고 낙서를 하여 체포된 전력이 있다.)
그가 인간에 대한 증오를 줄곧 느껴왔던 이유는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에서도 알 수 있듯, 이유 없이 강요되는 집단의 룰에 대해 전혀 타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동성간의 사랑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당치 않은 다수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가 커트니 러브의 인형 드레스를 입고 다니고 공공연히 자신은 양성애자라고 떠벌린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마초 혹은 마초가 빚어내는 패권 성향 대해 반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니 그의 눈에 쫄바지로 한껏 근육을 드러낸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가 곱게 보였을 리가 만무하다. (실제로도 그 둘은 앙숙이었다.) 다수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체질적 반골 기질을 가진 그는 주저 없이 사회의 마이너의 편을 들었다.
벗어날 수 없는 그늘, 그것을 떨칠 수 없었던 순수함
좋게 말하면 그들은 사뭇 순수하고 진지했었고 나쁘게 말하면 잡념이 너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고 한 커트나 감정이 피곤하여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고 한 장국영의 선택은 같았다. 스스로 백기를 들어 버리는 것. 여하간 그래도 둘은 대중의 스타였다. 아니 지금도 그러하다. 자신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커트 코베인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부담스러워 했고 애초의 순수성을 망각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메이저적인 것에 대해 순수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했던 청년이 거꾸로 메이저로 격상되자 체계에 대해 가졌던 반골 기질이 모순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커트는 괴로워했다. “성공? 성공에 딸려오는 부분들은 분명 나를 괴롭히고 있다. 정말이지 죽는 게 낫다고 생각을 할 정도이다.”라는 커트의 말처럼 그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를 저해하는 족쇄 같은 것이었다.
삶이 고단한 와중에도 그저 누군가의 집에서 합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던 커트의 말을 상기시키며 그의 유서를 읽노라면 그의 팬으로써 일말의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그만큼의 세상이 주는 명성이 없었다면 그는 이렇게 일찍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의 재능으로 인해 기꺼운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재능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주목이 정작 본인에겐 자책의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에필로그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친모에게 나 또한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리라 뒤 돌아 보지 않은 채 끝까지 걸어가는 남자가 있었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지 않아 나 또한 세상에 대해 기회를 주지 않으리라 죽음을 선택한 장국영과 아비가 교차되는 순간이다. 커트 코베인과 장국영은 그렇게 고단한 마음의 짐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기도 했다. 가버린 다음에야 그들을 더욱 더 안타까워 하는 이 간사한 팬의 끄적임의 마무리란 막상 그 끝에 다다르고 나니 쉽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그리워 할 거라는 다짐 같은 것은 왠지 상투적인 것 같다. (이제 와서 그들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덧붙이며)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괴로워했고 결과적으로 나약한 선택을 한 그들이었으나 외려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끝까지 고민했던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울러 레슬리도 그러하길 바란다. 다시금 생각난 커트가 남긴 유언장의 이 문구처럼 말이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P.S.
모 잡지를 보니 드디어 커트 코베인의 일대기가 영화화된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구스 반 산트가 메가폰을 잡고 <헤드윅>의 마이클 피트가 커트 역할을 한다고 하는 데 <벨벳 골드마인>에서의 이완 맥그리거가 분한 커트 와일드는 생전의 커트와 매우 비슷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감도 없지 않으나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이다. 언제고 장국영의 일대기가 영화화될 날이 올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