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4 - 돌아가고 싶은 집
일주일 감금 동안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감금이 되면서 내 생의 첫 해외여행도 무산 되었다. 출발 삼일 전이라 취소를 하면서 위약금을 많이 물었다.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이라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심도 컸다. 꽁꽁 얼어붙은 날씨가 꼭 내 마음만 같았다. 입원실 창문으로 보이는 병원 주차장에도 겨울이 빽빽하게 내려앉았다. 주차 해놓은 내 차의 지붕에 덮인 눈이 며칠 째 그대로다. 퇴원 하루 전날 간호사에게 애원하디시피 해 사람이 없는 시간 잠깐 내려가 차를 양지쪽으로 옮기는 걸 허락받았다.
얼어서 열리지도 않는 차 문을 겨우 열고 햇볕이 가장 좋은 쪽으로 옮겼다. 다행히 퇴원을 축하한다는 듯 낮 동안 햇살을 가득히 내려서 언 눈이 다 녹았다. 구급차와 함께 내 차도 출발할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다. 격리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일찍 퇴원 수속을 밟았다. 구급차가 출발하고 나도 곧바로 뒤따랐다. 요양원에 입소한 엄마는 날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엄마가 보호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노인장기 요양제도에 감사한 마음이다. 엄마가 없는 집이라 맘 놓고 치웠다. 요양원에 갖다 줄 엄마 옷만 좀 챙기고 나머지는 청소 처리 업체에 맡겼다. 친정집은 건평 10평으로 마당도 없는 집이다. 세탁기 냉장고 등 쓸 만한 물건은 중고거래상에게 넘겼다. 집을 다 치우는데 52만원을 달라고 했다. 돈이 좋긴 좋다. 내가 하면 한 달을 치워도 골병만 들고 다 못 치웠을 짐들이 하루 만에 말끔히 다 사라졌다. 아무 것도 없는 집은 참 쓸쓸하고 서글펐다. 뚜껑이 덮인 우물과 반쯤 부서진 연탄창고 문이며 동그마니 앉아 있는 장독과 금이 간 소금단지 하나. 텅 빈 변소도 옛 모습 그대로 먼지 속에 앉아 있다. 천장이 다락방인 화장실은 원래는 부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살게 되면서 시에서 독거노인 지원 사업 도움을 받아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교체하면서 욕실 겸 화장실로 개조를 해 줬다. 부엌이 화장실로 바뀌면서 주방은 마루로 승격했다. 큰방과 작은 방 사이 마루에 수도를 넣어 싱크대를 설치해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
집이 구조가 편리해졌다고 해도 물건들이 질서 없이 너저분해 친정에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었다. 성당에 자매님들이나 수녀님까지도 정리를 해 주겠다는 걸 거절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엄마는 집 정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너저분하고 불결해도 참고 엄마랑 있다 보면 그 불쾌한 냄새도 적응이 되곤 했다. 막상 모든 짐을 깨끗이 치우고 나니 텅빈 집이 지나온 낡은 세월이 누추한 모습으로 드러나 마음이 더 황량해졌다. 집은 역시 사람이 살아야 숨을 쉬고 온기를 품는 모양이다. 돌아가고 싶은 집, 그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집이 진정한 집이다. 집을 위해서도 수리를 서둘러야 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