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10년 2월 21일. ☆ 산행지 : 경남 함양 삼봉산(1,187m)-금대암. ☆ 산행코스 : 백장암-서룡산-투구봉-삼봉산-등구재-백운산-금대산-금대암-마천중학교. ☆ 산행거리: 15,5km. ☆ 함께한 인원 : 산우님(23명).
- 들머리인 백장공원에서 배낭을 메고서 -
나는 정말 산객인지 노마드인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벌써 복수초 피는 봄이다. 아지랑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봄이다. 밀어낼 수 없는 무게이다. 밟아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 지우개다.
지난 2008년 초겨울의 추억을 밟으며 삼봉산으로 향한다.
- 산행 개념도 -
- 백장암 삼층석탑(百丈菴三層石塔, 국보 제10호) -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적멸만이 스치우는 백장암을 지나치기 아쉬어서 -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은 부처님의 法印說 속에 다 쓰여있다 하지만 나는 몸을 죽여가며 평안을 얻고자 한다.
몸을 괴롭히며 세상을 주유하는 동안 내 마음은 배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러기에 삶이 꼭 평안과 풍요만을 위한 것이라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세상 먼지를 떨구어내고 가장 나다워 지는 길이 오로지 내 평정심을 닦는 길이다.
- 동행하신 대선배님이시자 대단하신 산객님 -
그윽한 자연 눈을 아주 가늘게 하여 볼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을 바라본다.
왜? 그리우니까. 두고 온 것 지나온 것들이 다 거기 있을 것 같으니까. 인간은 늘 외로운 존재니까..
- 서룡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바래봉과 덕두봉 -
智異西北마루금을 바라다 본다. 회백으로 마름하는 눈의 세상이 이상향처럼 아득하다. 나는 무언가 눈물 섞인 고백을 해 보고 싶기도 하고 '할'하고 의미없이 고함을 지르고도 싶었다.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제한된 세상의 깊이가 이렇게 나를 안절부절하게 할 줄이야. 눈 쌓인 산야에서 착 가라앉는 침잠함을 느끼고 싶었건만 마음은 오히려 들뜨고 생각은 먼 곳에서 맴들고만 있다.
- 함양 오봉산을 바라보고서 -
견고한 차돌처럼 산이 거세고 단단해 보인다. 독창에 화음반주를 입힌 레치타티보나 아리오소처럼 산 저쪽에서 공명을 이룬 오묘한 화성이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대지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 서진암 사거리에서 -
파란 하늘 아래 사스레나무의 은빛 수피가 눈부시다. 나는 겨울산의 신갈나무와 사스레나무, 자작나무를 좋아한다. 차가운 겨울날씨에 잘 어울리는 수피이다. 눈부신 고독감. 산행자들의 반려. 짙은 노스텔지어가 녹아있다.
- 투구봉에서 함께하신 회원님들의 모습 -
세상에서 여지껏 보지 못한 강렬한 눈빛들이 투구봉에 아름드리 걸려 있다. 새로산 크레용으로 푸른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크레용이 스민 자국처럼 사람냄새가 배어난다. 마음이 아주 작은 가지 끝에서 조차 빛난다.
- 투구봉에서 바라본 삼봉산 -
산을 빨리 오른다는 것이 더 높이 오른다는 것이 등반이 지니는 이상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산을 통해 느끼는 행복과는 다르다. 산행을 통해 느끼는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일종의 체험이다. 이런 느낌은 공유할 수 없다.
기압이 낮은 곳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듯한 기분이 행복이다.
- 투구봉에서 바라본 백운산과 금대산 -
투구봉에 다다르니 박무를 걸쳐입은 智異와 오늘 함께 할 백운산과 금대산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인가. 거친 숨 죽여가며 모처럼 평정심을 가져본다. 세상 그 누군들 스스로를 아름답게 할 권리쯤은 있는 법이니까..
- 투구봉에서 삼봉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눈속을 걷는 산님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고달픔이 느껴진다. 죽을 정도의 고난은 아닐지라도 모종의 저항을 느끼고 있음은 분명하다. 산행을 통해 얻는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고통을 담보하지 않는 산행은 없다. 다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닌가~!
- 삼봉산 정상석 -
마음은 마치 Fingal"s Cave로 나아가는 범선처럼 가볍다. 산 구비를 돌때마다 연방 탄성이 튀어나온다. 고통을 보상받을만한 경치가 아닌가.
苦行이 산행의 양념처럼 느껴질 즈음 산을 몇번 오르내리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삼봉산에 도착했다.
- 삼봉산에서 바라본 오도재 가는 마루금과 법화산 -
산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로 산을 제대로 읽거나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행이다. 산은 그냥 산일 뿐이다.
이것이 산에 대한 나의 가장 담백한 결론이다. 산이란 외자의 단어에는 실로 그만한 힘이 있다. 본질을 넘어설 수 없는 단호한 힘. 하늘과 땅이 분명한 원색으로 대결할 때 그 의미가 더 명징하다.
- 삼봉산의 얼음꽃 -
피부 바깥에 스민 햇살을 고픈배 참아가며 견디는 것처럼 나뭇가지가 얼음꽃을 이고 있습니다.
낯선 바람의 아우성도 사라지고 적요가 또 고요를 밀고와 나는 까닭도 없이 서글픈 마음을 가집니다.
- 지리둘레길 3구간 길목인 등구재 -
어디 깨어 있지 않는 촛불이 있겠는가. 세상은 이렇게 분명한 법이거늘 마음이 행위를 짓고 인연을 만들어 果報를 만들어 내니 삶은 늘 고단하고 힘들 수 밖에.. 이 길을 지나가는 자,
모쪼록 생각의 껍질 하나쯤 버리고 갈지어다.
- 등구재에서 백운산을 향하여 -
무엇을 등에 지고 걷는 것일까 무엇을 마음에 머리에 담고 걷는 것일까.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운 봄빛이 산님의 체향빛에 空이 가득하건만 정작 그는 그 空의 세계를 느끼실까~?
괴테의 詩처럼 산봉우리 마다 휴식이 가득하다. 무릇 삶이 팍팍하거나 슬퍼거나 외로울때나 또는 그 어떤 때라도 산에 한번 오를 일이다.
필라멘트처럼 반짝이는 저 눈부신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정녕 휴식에 묻힐지언정 결코 잠들지는 않겠노라던 그 어느 시인의 글 새삼 떠올려 본다.
- 금대산정 -
- 금대산에서 바라본 智異(좌로부터 두류봉~하봉~중봉~천왕라인) -
산은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산은 정복이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는 그 자체이며 세상을 헤쳐가는 방편이다.
靈의 계단을 오르는 장엄함이며 아름다움이요 삶의 턱을 넘어서게 하는 미소이다.
- 금대산에서 바라본 오도재와 구양리 -
산행은 도무지 Kitschy적이지 않다. 그냥 본 모습 그대로다. 내가 세상에서 아무리 허세를 떨어봤자 산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를 향한 과장된 표현과 동작들이 잘려나가고 자제를 통한 가장 미니멀한 태도만 남게된다. 나는 이것이 산에 대한 나의 정직성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로지 내 능력만큼 걸을 수 있을 뿐이다.
- 금대산에서 금대암 가는 중에 조망처에서 -
풍경에 생각이 스캐닝을 하듯 지나갑니다. 가슴에 쓰윽하고 느낌이 새겨집니다. 마치 고요한 연못에 파문이 일 듯 가슴에 물결이 일었다 닫힙니다. 곧 부질없는 짓임을 압니다. 세상은 본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내가 생각으로는 차마 덧칠할 수 없는...
- 금대암 가는 중에 조망처에서 바라본 지리와 삼정골 -
산에 오르는자, 모름지기 군말을 말아야 한다. 默言의 匍行이나 行禪의 경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라르고처럼 느리디 느린 리듬으로 산을 걷고 싶다.
군말하지 말아라. 산은 너를 초대하지 않았다. 다만 길 하나 내어주었을 뿐... 험한 산은 험한대로. 순한 산은 순한 산대로.
사람 대하기도 마찬가지다.
- 금대암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
하산길이 이렇게 마음에 쏙드는 경우는 드물다. 포근한 어미품과 같은 숲이 가는 겨울을 마중하고 있다. 우주의 생명력이 직접 나 자신에게 와 닿는 것이 아니라 오롯한 산길을 지나서 平和와 悟道를 가져보는 공간이며 보다 아늑한 숨결로 순화되어 가슴 구석 구석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행복한 산행길이다.
- 금대암에서 바라본 지리 천왕을 비롯한 동부마루금과 창암산 -
대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머리 속이 생각에게 조차 자리를 내어 줄 공간이 없다는 기분이 종종 들곤한다. 머리가 생각으로 꽉 채워진 것이 아니라 그냥 텅 비워진 채 그저 멍한 기분. 두려움조차 사라진 그런 기분을 종종 느낀다.
- 금대암에서 바라본 창암산과 연하선경~영신봉~오공능선 -
山의 존재가 나에게는 가르침이었다. 발로 느끼고 몸으로 깨닫는다. 투명한 깨달음의 향기가 높은 산에서 만나는 바람처럼 전해온다 바람은 고요를 더 깊게 만들었다. 문득 내 앞에 놓인 삶이 진중한 무게로 다가온다.
- 금대에서 지리주마루금을 병풍삼아 한 컷 -
산행의 가치는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행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사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 산길을 걸었으면 그만입니다. 친근한 벗을 만나듯 산을 만났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 금대암 나한전과 풍경들 -
산비탈이 水彩가 되살아나고 뒤미쳐 파란이 따라 일며 아쉬움의 가슴들이 나무들과 일제히 들썽거린다.
은연중에 어수선한 마음을 수습하여 빗질하듯 가슴 한켠에 두어본다.
마음 깊은 곳을 하프의 활이 쓱 긁고 지나간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전나무는 높이 40미터에, 가슴높이 둘레가 2.92미터로 현존하는 전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600년) 전나무로 조선 세종 때 행호스님이 이 사찰을 중건할 때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나무 뒤로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주마루금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 날머리인 마천중교(폐교) 가는 길 -
◈ 蛇 足 ◈
산을 통해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불현듯 담배를 끊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행의 덕목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마음을 비워라! 心卽佛이니라.
비워진 마음은 빈 마음일까, 채워질 마음일까 비워지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마음을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첫댓글 벌써 4년이 훌쩍 지나간 산행의 궤적을 회상하면서 이 게시물을 올립니다.
빛고을 하늘 아래에 살면서, 산행이라는 취미를 하는 사람들끼리,
이렇고 저렇고 한 사연으로 헤어짐을 한 이후~~
보고픈 얼굴들이 후기 속에 나타나기에 가슴이 울컥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山行의 德目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蛇足에 썼던 그 시절..
다시금 돌아갈 수 없슴에...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보니 많은 생각들이 겹칩니다.
새로움으로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비워야하지 않을까요?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으면
나는
힘든 산행을 마치고
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를 푸는 재미로
산을 타는 것 같다.
아름다운 풍광은 안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