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내 진정 사모하는 88
C. W. Fry 작사 · W. S. Hays 작곡; 《통일 찬송가, 1983》 88장
1.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 나는 새벽 별 주님 형언 할 길이 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울 때 좋은 친구 라
2. 내 맘의 모든 염려 이 세상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 하여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나를 지키 네
온 세상날 버려도 주 예수안 버려 끝 까지 나를 돌아보시 니
3. 내 맘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리니
물 불어 두렵잖고 창검도 겁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기 원하네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 나는 새벽 별 이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멘
예수님을 골짜기의 백합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노래한 이 찬송은, 구세군 악대의 창시자 찰스 윌리엄 프라이(1838 ~ 1982)가 성경말씀 아가서 2장 1절 『나는 사론의 수선화로다』란 구절에 의지하여 작사한 것이다. 《신중 복음가, 1919》편집 때 전영택(田榮擇, 1894 ~ 1968)목사 번역으로 304장에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찬송은 「구세군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프라이91838 ` 1882)가, 영국 링컨에 있는 윌킨슨씨 댁에서 써서 1881년 12월 29일자 구세군의 기관지 「전쟁의 함성」'Tbe War Cry'에 발표한 것이다.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프라이는 17살에 예수를 믿었다. 그는 바이올린 · 첼로 · 피아노 · 코넷 ·오르간 등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의 천재였다. 올더버리에 있는 웨슬리언 교회에서 오케스트라와 밴드를 쥐휘하였다. 그는 또한 솔즈베리에 있는 그리스도교선교회를 도왔으며,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1856 ~ 1929)를 도와, 아내와 아들 3형제로 가족밴드를 만들어 전도를 하였다. 4부자가 네 가지 악기를 합주하기도 하고, 남성 4부로 노래할 때는 데스칸트를 불러 큰 은혜를 기쳤다. 아들들도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들은 곡조는 무슨 조로든지 바꿔 연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보로 옮길 수 있는 천재들이었다. 프라이 가족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가족이 구세군의 전도단에 합류하였다. 1881년 프라이가 가족악단을 이끌고 런던으로 가서 윌킨슨 씨 댁에서 묵을 때, 신앙 간증으로 작사한 것이 『골짜기의 백합화』'LILy of THE VALLEY'라는 곡명의 찬송이다.
여기 붙은 곡조는 윌리엄 헤이스(1837 ~ 1907)가 작곡한 세속노래 「행길 밑의 통나무 오두막」이라는 곡조였는데, 프라이는 이를 고쳐서 자기 작사에 맞춰 「구세군 음악, 1883」제3권에 처음으로 실었다. 「불길 같은 주 성령,(184장)」도 프라이가 작사한 찬송이다.
작곡자 윌리엄 셰익스피어 헤이스(1837 ~ 1907)는 찬송가 작곡자가 아니다. 우연히 그의 곡조 하나가 편곡되어 채택되었을 뿐이다. 그는 1837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나, 거기서 세상을 따나 고향 케이브힐에 묻히었다.
인디애나주 해노버대학을 졸업하고 테네시와 켄터키 주지타운대학을 졸업하였다. 그의 첫 작사 「고향의 어린 것」은 1856년 조지타운대학에 재학 시절에 출판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루이스빌과 켄터키, 그리고 테모크랏 지의 기자로 취재활동을 하였다.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는 남군을 동정하는 노래를 작곡하였기 때문에 뉴올리언스에서 옥살이도 ㅠ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미시시피와 오하이오강 증기선박에서 일을 하다가 「그레이 이글호」의 선장까지 되었다. 후에 이를 떠나 루이스빌의 「커리어저널」의 칼럼니스트가 되어 30년 동안 근무하였다. 그는 바쁜 틈을 내어 작곡을 하여 300여 곡을 발표하였다. 『몰리달링』'Mollie Darling'이란 노래는 당시 100만 부 이상 팔려 나갔고 그의 노래책은 7만 5천 부나 팔렸다.
이 찬송은 생키의 《복음 찬송가》'GospeL Hymns NO5'에 처음 실리고 《복음 찬송가(1 ~ 6권 합본) 1894》367장에도 실렸는데, 6/8박자요 멜로디도 조금 다라랐다. 이러서 실린 생키의 《성가와 독창곡 888곡집, 1900》545장애도 같은 곡으로 실렸다.
오늘과 같은 편곡으로 나타낸 것은, 빌혼(1865 ~ 1936)이 출판한 찬송가 「최고의 영광, 1889」 73장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