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스며드는 어둠을 피해
도망 가듯 지붕 너머로 꼬리를 숨겨버렸다. 삐거덕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방 문지방너머로 호두 돌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부르시는 나그네 설움 노래가 들려온다.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맛깔나게 아버지의 저음과 호두 돌리는 소리는 제법 화음을 이루지만 이 시간에 아버지의 노래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분명 어머니가 집에 없다는 뜻이다.
시청 위생과에서 제법 호통깨나 치며 근무를 하시던 아버지는 가족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표를 던져버리고 개인사업을 하신다고 선전포고를 하셨다. 호기있게 시작했지만 당신의 생각대로 될 턱이 있을까? 펜대나 굴리던 분인데 뜻 데로 될 리가 없다. 마음처럼 되지않는 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가게에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아버지의 부재는 엄마의 몫이 되어 떠밀리듯 가게로 나가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도망치듯 가게일을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때문에 늘 마무리는 엄마가 하셨다. 오늘도 그렇다. 예외없이 나그네 설움의 노랫소리가 나를 기다리는걸 보니 오늘도 어둠이 해를 다 삼켜야 들어오실 것이다.
방문쪽으로 “다녀왔습니다.하며 냅다 가방을 던지고 친구네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평소에 엄하신 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우리에게 학교생활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실게 분명하다. 어머니가 두고간 물기빠진 삶은 고구마도 먹기 싫었고 아니 어쩌면 엄마가 계시지 않은 썰렁함이 더 싫었는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카세트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아버지의 나그네 설움을 밀어 내고 있었다.
한참을 친구집에서 놀다가 문밖까지 새어 나오는 연탄불 위의 고등어 냄새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집으로 들어갔다.크지도 작지도 않은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저녁시간은 하루의 축복인듯하다. 그치만 어머니는 자반을 반쪽 뚝 떼어 아버지쪽으로 덜어 드린다. 식구들은 나머지 반쪽을 서로 먹으려 젓가락질만 요란하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냄새만 남아 있을뿐이다
늦은시간 아버지는 구성지게 나그네설움을 부르셨고 어머니는 뭐가 좋은지 옆에서 장단을 맞춰주셨다. 그런 시간이면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최고의 관객이였고 아버지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가수가 되어있었다. 나의 기억으로 두 분은 다투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 다니시고 약속 외에는 절대로 식사를 밖에서 하지 않으셨다.어머니 또한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늘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셨다.
대학교 4학년때 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을때는 아예 짐을 싸서 병원으로 들어가셨고 중환자실에 계실때는 어머니도 식음을 전페하며 마음을 아파했고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자 세상을 다 가진 듯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석달여 가까이를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는 왼쪽다리를 절뚝거리고 늘어진 왼쪽팔은 팔걸이로 고정하며 대문안으로 들어오셨다. 그 뒤로 늘어진 아버지의 팔만큼이나 축처진 어머니의 어깨위에는 짐이 가득 실렸다.
중간뇌가 막힌 아버지는 늘어진 왼쪽과 함께 말씀도 잃어버리셨다.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버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세상과의 통역자이자 대변인이 되셨고 현실을 못 받아들이신 아버지는 한동안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으시고 아버지건강과 말문을 트이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셨지만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어느 저녁이던가 어머니가 나그네 설움을 틀어 노래를 시작하니 말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노래를 하는 게 아닌가? 놀란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감격해 하셨고 이 소리에 우리는 모두 마당에 나와 아버지를 잡고 울부짖었다. 아버지의 무의식속에 나그네 설움 노래가 남아 있은듯하다 이후 나그네설움은 아버지의 말문연습의 교과서가 되었다.식구들의 저녁시간이 끝나고 나면 두 분이서 오붓하게 앉아 카셑트를 눌러 나그네설움을 부르신다. 두 분의 노랫소리에 호두장단과 어머니의 손뼉은 멋진 악기가 되어 하모니를 이룬다. 노랫소리에 마당을 지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 하늘을 보니 그 새 어둠을 뚫고 나온 별빛들이 관객이 되어 두 분의 노랫소리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게 아닌가?
그 후 어머니의 18번곡은 나그네설움이 되었다.
첫댓글 좋아요. 어머니 18번 곡이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