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하모래톱문학상 산문부문 당선작] 정문숙
■우수상
까치발을 내려놓고 / 정문숙
십년 만에 찾아온 곳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데도 떠난 곳을 다시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오래된 생채기를 되새김질하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지영이와의 통화가 불쑥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지영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 성적이 상위권인데다 영어선생님을 하겠다는 당찬 꿈이 예뻐서 애정을 갖고 지켜봤던 아이였다. 수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며 고민을 털어놓고, 기쁜 일도 나에게 먼저 알리곤 했었다. 지영이가 고1이었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외할머니 집으로 간 후 우리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지영이. 그 아이는 오래전 그때처럼 나에게 상담을 해왔다. 교직을 이수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데 지금 형편으로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말끝에 나에게 수업을 받을 때가 그립고, 그때처럼 산길을 같이 걷고 싶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나도 한동안은 그때 그 시절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미동을 지나 사하구가 시작되는 곳, 까치고개. 이곳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원생들은 대부분 집 근처 초중고생들이었다.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방학 때는 가능하면 오전에 수업을 끝내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 산을 오르곤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꿈도 함께 그렸던 곳이었다. 정든 옛 터를 앞두고 보니 그때가 어제인 듯 선명하다.
구두를 벗어 차에 두고 운동화를 꺼내어 신는다. 발이 편해지자 온몸이 편안해진다. 산도, 집들도 한 무릎 다가앉는 것 같다. 추억도 한층 생생해진다. 간만의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는다.
아파트 뒤로 돌아가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진 담장을 따라 걷는다. 성냥 곽처럼 작아서 마치 동화 속의 요정들이 살고 있지 않나 싶던 집들이 나온다. 이 길을 곧장 따라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사방이 탁 트이고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자주 그곳으로 아이들을 데려가곤 했다.
“깍깍깍, 깍깍깍”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치소리가 정답다. 모든 게 변했지만 까치 소리는 여전하다. 이곳은 내 청춘의 한 시절을 내려놓았던 곳이다. 제2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듣는 익숙한 까치소리가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아 괜스레 울컥해진다.
“짝짝짝, 쪽쪽쪽”
까치소리를 말로 표현 하라했더니 지영이가 알려준 것이다. 우리를 반기는 박수소리, 우리를 격려해주는 뽀뽀소리 라며 까르르 웃곤 했다. 까치는 사람과 친숙한 새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곳에는 유난히 까치가 많았다. 까치들의 합창에 아침 일찍 눈을 뜨곤 했으니까.
산길로 접어드니 까치 몇 마리가 눈에 띈다. 가느다란 발가락에 힘을 주고 뒤꿈치를 들고 콩콩거리며 걷는다. 벌레를 잡는지 부리로 콕콕대며 땅을 쪼고 있다. 오고 가는 등산객들의 발걸음 소리가 익숙해서인지, 인기척을 못 느끼는 것인지 일부러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풀밭을 걸어도 저희들끼리 수다삼매경에 빠져있다. 마치 작은 교실에 앉아 재재거리던 아이들처럼 정다운 한때를 즐기고 있다.
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가끔 안부를 물어오기도 한다. 경찰이 된 아이도 있고, 군인의 길을 가고 있는 아이, 간호사가 된 아이도 있다. 학창시절을 나와 함께 걸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시간의 위력이라는 걸까.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 크게 남아 있는 곳이지만 돌아보면 그마저 아름답게 채색이 되어 있다. 쫓기듯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던 곳. 그런데도 신접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고 또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곳에서의 추억이 때때로 그리웠다. 그 시간 속에 나의 청춘도 있고, 안쓰러운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간 지영이도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지영이와 연락이 닿았다. 약속을 하고 커피점에서 만난 지영이는 사내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대학교 1학년 때 동급생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기르며 일을 병행하면서 어렵사리 학업을 마쳤다고 했다. 아직은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며 희희낙락해도 좋을 나이건만 직장 생활에 육아까지 감당하느라 지쳐보였다.
얼마나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던 것일까.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말갛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어 그리 바쁜지 차 한 잔을 다 마시지도 못한 채 뛰다시피 되돌아서던 지영이는 아이를 맡기고 바삐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환한 웃음 뒤에 숨겨진 그늘이 보이는 것 같아 헤어지고 난 후에도 한동안 짠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영이의 지금 모습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지영이가 외할머니 집으로 갈 무렵 나 역시 혼란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중국을 거래 선으로 하는 무역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선배의 말만 듣고 전 재산을 들고 덥석 뛰어들었다. 그러나 들여온 물건은 하자 투성이였다. 결국 환불 요청이 쇄도했고, 그 비용까지 더해서 빚이 얹어진 꼴이 되었다. 투자하면 배로 돌려주겠다던 돈마저 떼이고, 남편의 꿈을 부추기던 나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했던 죄과는 혹독했다.
늘어나는 빚이 목줄을 죄기 시작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수강생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업직에 뛰어들었다. 그 후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나를 추스르기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지영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랐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마저 끊고 살았다. 그때의 습성이 몸에 뱄는지, 지금도 남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끼니도 거른 채, 휴일도 없이 일할 때가 많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옥녀봉을 샅샅이 훑던 붉은 해가 저 멀리 다대포 바다로 뉘엿뉘엿 기운다. 외국의 어느 마을처럼 이색적인 정취의 감천마을이 보이고, 컨테이너를 싣고 트레일러가 오고 가는 감천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장림과 다대포가 쥘부채처럼 펼쳐져 있고, 부챗살처럼 쭉쭉 뻗은 도로에는 차들이 한낮의 열기를 식히며 느릿느릿 달린다. 해는 구름과 어깨동무를 하고 바다를 품에 안으며 살며시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뜨거운 열기를 풀어놓고 잔 숨을 토해내는 저 태양처럼 이 순간 나도 잠시 익숙하던 까치발을 내려놓고 있는 참이다. 푸근해진 마음속에 풍경도 담고, 사람도 담고, 하루의 끝을 알리는 태양도 담는다. 오랜 허기를 채운 듯, 살 것 같다.
다음에 지영이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힘들면 가끔은 까치발을 내려놓으라고.
■우수상
강가에 앉아 / 정미선
오늘은 강물이 황토빛이다. 상류 지방에 집중호우가 말없이 물빛을 바꿔놓았다. 나는 강가에 앉아 바다와 조우하는 강물의 설렘을 지켜보고 있다. 바다와 만나는 강이 하도 커서 강인지 바다인지도 얼핏 구분 되지 않는다. 자리만 바꿔 앉으면 바다요, 앉은 자리에서 방향만 틀면 강인 이곳 하단은 강물이 깊게 흘러서 도무지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렵다.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내 고향마을은 아직 강이 되지 못해서 그럴듯한 이름조차 없는 하천이 있다. 이름이야 있겠지만 그것은 물길이 제법 잡히는 곳에서나 불릴 것이고 우리 마을의 도랑은 그 이름의 상류의 상류라서 지도에 나와 있는 번듯한 이름으로 조차 불리지 못하는 곳이다. 계곡물을 모으고 강으로 가고자 하는 그 상류의 하천으로 ‘큰또랑’이라고 부르며 자랐다.
여름이면 으레 몇 번씩 큰물이 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하나둘 강둑에 모여 물 구경을 했다. 윗마을, 그 윗마을에서 떠내려 오는 호박이며 오이를 건져 공인 듯 차고 놀았고, 강둑에 서서 두려운 눈으로 살아있는 무엇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허우적거리는 돼지도 떠내려 오고, 닭은 죽어서 흰 종잇조각처럼 물살을 타고 멀어졌다.
또 갖은 가제도구들이 둥둥 떠내려가기도 했다. 서랍장은 서랍을 잃고 몸체만 허전하게 떠갔고, 커다란 함지박은 뒤집힌 채로 물살에 출렁거렸다. 누군가의 집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을 손 때 뭍은 살림살이들. 엊그제까지도 요긴한 손길을 받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휩쓸려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순도순한 정이 떠내려가 수장되고 익사 당했다. 큰물이 지면 허술한 집에서는 추억조차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린 우리는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지만 물의 거대한 힘에 늘 압도당했다. 둑에서 어른들이 술렁대면 아이들까지 두려운 표정이 된다. 윗마을에 사는 누군가 논에 물꼬를 트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발을 헛디뎌 물살에 휩쓸러 가서 그를 찾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면 불어난 냇물은 더욱 무섭게 보였다. 물살도 거세게 느껴져 더 이상 애호박을 건져볼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 두려웠던 냇물도 비가 그치고 이삼일만 지나면 멱을 감을 수 있게 순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물장구를 치며 한나절 더위를 식히게 하는 고마운 변신. 큰도랑은 여름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놀 거리를 제공했다. 고동을 잡기도 하고, 버들강아지를 꺾기도 하고, 둑에 모여 소쿠리가 가득하도록 쑥이며 나물을 캐기도 하고,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변해 엉덩방아를 찧게 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내川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그 마을을 떠난 지도 오래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물가에 산다. 이 거대한 도시를 감싸고도는 낙동강은 늘 말이 없다. 출렁거림도 적고, 큰물이 지거나 가물어도 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만조기와 간조기에 맞춰 은근히 올랐다가 또 슬며시 수위를 낮출 뿐이다. 어릴 적 그 변화무쌍한 냇물과 너무도 대조적인 낙동강.
새벽이면 고요히 해무를 품고 있는 강을 만날 수 있다. 솜털을 적시는 축축한 안개 속에 앉아 귀 기울이면 끼룩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안개 자욱한 갈대숲에서 새들은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강을 수수수 깨운다. 거대한 강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 한데 도무지 요란스럽지 않다. 강은 외부의 어떤 변화에도 믿음직한 큰 형님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묵직하고 든든하게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간밤에 기록을 깨는 큰 비가 내렸는데도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큰 강은 말수가 적다. 어릴 적 큰도랑은 비가 오면 빗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마을 사람들을 둑에 모이게 했다. 냇물은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웅웅거림으로 큰물이 졌다는 것을 알리며 거센 물살을 일으켰다. 그 끝에 거대한 집하장이 있는 것인가. 주변의 것들을 끌어 모으며 버럭버럭 화를 내며 출렁거렸다.
큰도랑에 비하면 지금의 이 강은 참으로 젊잖다. 석양이 걸릴 때 강가에 앉으면 가슴에 그리움이 가득 찬다. 딱히 누구를 향한 그리움이라거나 어디를 향한 그리움인가를 규정지을 수 없는 막연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럴 때면 누구에게라도 눈인사를 건네고 싶고, 행운을 빌어주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은 먼 산을 경계로 노을이라는 이름으로 강물 위에 선홍빛 채색을 해 놓는다.
아, 황홀한 데칼코마니!
내 가슴은 온통 선홍색으로 물들어 헤어 나올 수 없는 신비한 비경에 실눈을 뜬다. 붉은 기운은 하늘 가득 비단 천으로 펼쳐지고 새들의 비상이 그 천을 가른다. 하늘도 강도 온통 붉은 빛이 가득하고 나는 기막힌 노을빛에 그만 풍덩 빠지고 만다. 노을이 지면 그 노을 속에서 오래 된 이름이 걸어 나올 것 같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서운한 얼굴이 떠올라 조그마한 목소리로 이해를 구하고, 그래서 그와 금세 화해되어 예전처럼 노을을 등지고 물장구를 치며 놀고 싶어진다. 큰도랑에서 멱을 감던 그 때로 돌아가 저녁 내음이 나는 것도 모르고 둑에 앉아 옷을 말리며 나란히 석양을 보고 싶다. 붉게 물든 옷에서는 노을 물이 뚝뚝 떨어지겠지. 오늘의 저 큰 강은 내가 실눈을 뜨며 유년의 큰도랑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다. 물의 흐름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도 보여주지 않고 담담하다.
가끔은 존재의 무상함이 몰려온다. 일상의 반복은 헛된 몸짓일 뿐이고,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믿었던 것에의 배신. 삶은 허무해서 너무도 허무해서 어떤 것에 무게가 있고 가치가 있는지 초차 구분해 내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와 시간의 흐름에 능동적인 것과 그저 둥둥 떠가는 수동적인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구분해 내지 못한다. 그럴 때는 그 모든 혼란을 안고 가만히 강을 본다. 한동안 현기증에 몸을 맡기고 강과 호흡을 맞추다보면 눈앞에서 모든 사물들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다가, 내 자신도 온갖 것들과 함께 둥둥 떠다니며 균형을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물처럼 고요히 침묵하게 된다. 내 안에 내가 묵직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온다. 그래서 나의 모든 혼란도 가라앉고, 흙물처럼 가라앉아 혼란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게 된다. 허무한 삶에 허무한 강. 그래서 허무는 허무로 치유된다.
어릴 적 큰도랑은 성장의 도랑이었다. 이야기의 도랑이고 놀이의 도랑이다. 그래서 큰도랑은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그리고 큰물이 질 때면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도랑이었다. 내가 돌아가고픈 어머니 품 같은 곳이다.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동화집의 하천이다.
나는 강가에 앉아 있다. 유년의 큰도랑이 흐르고 흘러 이렇게 대견하게 컸는가. 내가 깎이고 굴절 될 때마다 성장을 멈추고 주저앉았던 그 많은 시간동안 강은 이토록 훌륭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닦아 왔는가. 이제 나는 나이 먹은 채 혼탁한 영혼을 끌고 강가에 닿았다. 세월이 앉은 나는 향기로운 어른이 되지 못하고 미발육의 이유마저 교묘히 전가시킬 무엇을, 그리고 누군가를 탓하며 강가에 앉았는데 강은 잿푸른 빛으로 그윽하게 나를 다독인다. 어린 날의 맑은 목소리가 스민 강은 이제 해탈하여 포근하게 나를 감싼다. 잘 놀아준 친구였던 그가 이젠 치유를 자청하고 있다. 묵언의 성자가 된 강은 내 푸념을 다 들어주며 위로한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따스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