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인 정신’ 하면 이탈리아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될까?
오래토록 변치 않는 가치를 예술로 빚어낸 장인에 대해 생각한다!
기술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명장이 한 작업에는 예술이라는 혼이 깃든다.
장인은 최고의 기술자를 말하지만 ‘장인 정신’은 여기에 예술적 감각을 더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최고의 명장들이 만든 명품, 이탈리아에는 이런 장인 정신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구치, 프라다, 페라가모, 페라리 등은 모두 이탈리아 장인 가문 출신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천년 가까운 시간 동안 키워온 도시 국가의 유구한 장인 정신을 이으면서 시작되었다.
■ 책소개
이 책은 시간을 머금은 나라 이탈리아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삶과 인생을 관통하는 기본 철학인 ‘장인 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뜨면 새로운 제품 모델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호흡이 느린 사람은 사물에 익숙해질 여유조차 없다. 시간이 만들어낸 정신적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물건이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물질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채울 수 없는 헛헛함에 더욱 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진짜를 추구했던 사람들, 시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던 장인들이 살았던 나라이다.
현재는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언론에서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의 앞글자를 따서 ‘돼지들’PIGS이라고 부르며 유럽연합의 열등생이라고 조롱하고 있지만 화려한 예술과 인문학의 발달을 가져온 르네상스 때부터 키워온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축적된 시간의 힘을 가진 이탈리아,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가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은 인정하고 본다.
장인 정신이란 무엇이고, 오래토록 변치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탈리아인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장인 정신의 DNA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들과 현대의 이탈리아 명품 가문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알아보자.
■ 출판사 서평
여전히 유효한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
이탈리아 스타일의 뿌리를 찾아서!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박아 만든 추리닝’이라는 말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결국 중국 상인의 인해전술에 져서 서울에는 온통 싸구려 추리닝이 넘쳐흘렀지만 말이다.
여기서 ‘이탈리아 장인’은 그대로 최고의 품질을, ‘한 땀 한 땀’은 정성과 희소성을 대표하는 말이다. 귀한 재료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만들어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명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품을 말할 때마다 왜 이탈리아 장인이라는 단어가 쫓아다닐까? 손재주와 감각, 거기에 성실성까지 따지면 유럽의 다른 나라도 충분히 자격이 될 텐데 말이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도 패션감각, 그 정밀성과 뛰어난 손재주로 유명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성이 존재한다. 아직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중세의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 14세기 이탈리아는 제일 먼저 화려한 예술과 인문학의 발달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동방과의 교역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는 최고의 장인을 고용해 불멸의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당대의 장인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더욱 뛰어난 창조성, 예술성, 퀄리티를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가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명품에는 ‘장인 정신’이라는 환상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최고의 기술자가 창조성과 정성을 더해 빚어낸 물건이 바로 명품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과거에는 이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명품이란 장인은 사라지고 대기업이 예술적인 스토리텔링, 역사, 사람들의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조합해 만들어낸 신기루가 되었다. 신기루는 도달하면 도망간다. 그러면 인간은 또 다른 신기루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소유욕이 도달해야 할 그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신기루에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이 바로 장인 정신이다.
이렇게 명품은 산업화되었지만 아직도 이탈리아인들의 삶 곳곳에는 장인 정신이 살아 있다. 피렌체의 골목길 한구석에는 여전히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가게가 존재하고 이탈리아인들은 옛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자기 스타일대로의 가치를 추구하는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치 평행우주론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티치아노,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벽화와 건축물에 둘러싸여 천년의 시간이 주는 감각과 정신을 그대로 흡수하는 이탈리아인,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 이 책의 구성
현대 명품의 탄생_ 명품의 장인
악마는 왜 다른 브랜드의 옷이 아니라 프라다를 입을까, 이탈리아 최고 명품 브랜드 구치는 어떻게 해서 창업주 가문의 사람들이 회사 운영에서 쫓겨났을까, 장인 정신을 지키며 일과 사생활에서 전부 성공을 거둔 구두의 미켈란젤로 페라가모의 비즈니스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또 르네상스 시대 옷 한 벌 값이 웬만한 집 한 채 값에 맞먹을 정도로 화려한 직물을 자아낸 섬유 산업의 선진 도시 피렌체의 영광은 다시 재현될 것인가? 패션계의 이단아이자 전혀 다른 스타일을 탄생시킨 로베르토 카발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후예로 꿈의 슈퍼카 페라리를 만들어낸 엔초 페라리의 이야기 등. 현재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의 창업 정신과 성공, 그리고 변화한 모습들을 통해 이탈리아 명품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천재 예술가들의 나라_ 예술의 장인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부딪히게 되는 예술의 천재들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들어서는 순간, 많아도 너무 많은 천재들 때문에 구경해야 하는 것이 엄청 늘어나 정해진 시간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정말 천재가 발에 채일 정도라는 말이 딱 맞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이런 아름다운 작품에 예술이라는 지위를 붙여준 것이 몇 백 년 되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르네상스 이전까지 화가나 조각가는 건축물의 마감과 장식을 담당하는 기술자에 지나지 않았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문물의 교류로 점점 안목이 높아지는 후원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1595년 보헤미아 황제는 회화를 예술로 여겨야 한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이탈리아 예술의 장인들과 몇 백 년씩 이어져 내려오는 가면, 유리공예 장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술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알아보자.
영혼을 담은 슬로푸드_ 요리의 장인
사람들은 흔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탈리아 요리사에 프랑스 애인, 영국 집사에 독일 기사를 둔 사람이라고 말한다. 유럽 네 나라의 특징을 이보다 더 함축시킨 말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요리 하면 프랑스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탈리아를 최고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를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금세 ‘아하!’ 하고 수긍하게 된다. 프랑스 요리의 뿌리를 찾아가면 갈수록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요리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로마시대 때부터 다양한 요리를 개발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뜨린 문화 선진국이었다. 세계 최대의 팬클럽을 가진 피자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요리로 대접받는 이탈리아 서민 요리 파스타, 젤라토와 에스프레소를 개발한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내는 이탈리아 포도주와 증류주 그라파, 종갓집 와인 식초 발사미코, 돼지고기 가공품의 왕 프로슈토 등은 시간과 정성이 빚어내는 장인의 맛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몸에 배어 있는 나라. 이는 수천 년 동안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자긍심이 DNA에 각인되어 나오는 자신감이다.
책속으로 추가
15세기의 이탈리아는 천재적인 명장들로 넘쳐나던 시대였다. 이 천재 예술가들이 현대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처럼 전국에 불려 다녔다니 생각만 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르네상스 3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뿐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이들이 기술자로 분류되는 장인 계급이다 보니 역사적인 기록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자료를 통해 꽤 재미있는 일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14, 15세기 예술가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바사리의《예술가 열전》에 이런 에피소드가 많다. 바사리에 의하면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1435~1488는 제자인 다빈치의 그림에 너무 기가 죽어 붓을 꺾었다고 한다. 이 시절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도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었다. - 본문 124~125쪽
그런데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이런 아름다운 작품에 예술이라는 지위를 붙여준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이렇게 기라성 같은 거장들로 넘쳐나던 르네상스 시절, 서서히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에 변화가 일어났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문물의 교류로 점점 안목이 높아지는 후원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의 예술가는 기술자이자 고전과《성서》에 해박한 교양인, 정신적 부문까지 아우르는 철학자가 되어야 했다. 이를 통해 명성을 얻은 거장은 여기저기 불려 다녔고 자연히 몸값도 올라갔다. 비록 길드에 소속된 기술공의 신분에서 출발했지만 ‘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은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무지몽매한 일꾼이 아니라, 점차 자신의 화풍과 개성을 갖는 그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예술가’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결국 보헤미아 황제 로돌프 2세Rodolphe II, 1552~1612는 1595년 4월, 프라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제 회화는 장인의 기술로서가 아닌 하나의 예술로 여겨야 한다.” - 본문 130쪽
베네치아에서 ‘가면’이라는 말은 다른 유럽의 카니발처럼 두꺼운 종이나 가죽으로 얼굴만 가리고 한순간 행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역할까지 완벽하게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냥 옷을 입고 패션쇼하듯 걸어 다니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의상, 품행, 말투까지 껍질의 인물로 빙의되는 자체를 말한다. 완벽하게 그 역할에 녹아들어 정말 그 가면의 자신이 되어야 하는 유희였다. 이들은 가면을 쓰고 수십 날을 가상의 인생을 살았다. 바꾸어 말하면 법관이나 추기경의 가면을 쓰려면 드라마 속의 배우처럼 그 동작과 언어까지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는 역할의 옷과 가면을 무리해서 입으면 온종일 말 한마디 못할 수도 있었다. ‘발연기하려면 그 가면을 쓰지 말 것’, 이것이야말로 베네치아 마스크의 무서운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베네치아의 모든 시민은 착란상태illustrissimo가 되었던 것이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가면 밑에서 소심한 자들은 용감해졌고, 부자는 가난한 자의 코스프레를 했으며 거지는 왕이 되었다. 카니발이 끝나고 가면을 벗어야 하는 시기가 되면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갔다.
“카니발이 끝나고 난 아침은 파헤쳐진 무덤 같았다. 도시의 경쾌함과 음악은 모두 사라지고 무희와 악사들은 생쥐로 변해 있었다.”
어느 작가의 탄식어린 표현이다. - 본문 197~198쪽
이탈리아에서 꽤 고급이라는 레스토랑에 가보아도 뭔가 부족하다 싶은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탈리아가 여러 가지로 낙후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게다가 언론에서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의 앞글자를 따서 ‘돼지들’PIGS이라고 부른 것이 영향을 주기도 했을 거다. 유럽연합의 열등생인 이들을 조롱하는 투로 붙여준 별명이다.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조상이 물려준 유산을 끼고 게으름만 피우고 있으니 북쪽의 선진국들이 비아냥거릴 만도 하다. 좋은 환경에 포도주와 올리브오일이 쏟아지니 내일 나라가 망해도 오늘 와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주의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겨루며 세계에서 먹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친구가 하나둘 생기며 이런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문할 때마다 새록새록 발견하게 되는 이들의 문화는 결코 우리가 무시할 스케일이 아니다. 정이 많고 따뜻했으며, 로마의 후예답게 대국다운 배포도 있었다. 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몸에 배어 있는 나라. 이는 수천 년 동안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자긍심이 DNA에 각인되어 나오는 자신감으로 보인다. - 본문 221~222쪽
이탈리아는 전국 방방곡곡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인의 손맛이 나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 많다. 산업적으로 배양된 표준 효모가 아니라 집집이 자연 효모를 쓰기 때문에 바로 옆 동네에서 만들었는데도 그 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품질의 편차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이 자국에서 소비되다 보니 사실 표준화할 필요도 별로 못 느꼈다. 그래서 세계 시장에 나오며 좋지 못한 평판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탈리아도 1960년대에 들어오며 변하게 된다. 수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프랑스를 모델로 품질 관리와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포도주에는 재미나는 부분이 많다. 같은 값이라도 잘못 고르면 품질이 영 형편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헐값에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포도주 애호가 중에는 이탈리아 포도주 마니아들이 많다. 골라 먹는 재미에, 수천 년의 시간과 땅의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278~279쪽
모데나는 앞서 슈퍼카를 소개할 때 이미 언급되었다. 여기에 갈색을 넘어 거의 검은색의 진한 발사미코 식초 또한 이탈리아와 유럽연합에서 원산지보호를 받고 있는 모데나의 특산품이다. 발사미코란 이탈리아어로 향이 좋다는 뜻이다. 우리가 발삼 샴푸니, 발삼 향이니 하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너무도 잘 아는 것 같은데도 실은 딱히 아는 바 없는 것도 바로 이 발사미코이다.
21세기가 되기 전까지 이 식초는 유럽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웰빙 바람을 타고 일종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비싼 것은 와인 중의 최고 등급만큼이나 값이 나간다. 일반 와인 식초가 2유로 정도라면 진정한 발사미코 식초는 1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에 숙성 간장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숙성 식초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진정한 발사미코는 종갓집 며느리처럼 장인 중의 장인이 한 술 한 술 금지옥엽으로 다루며 나무통에 익혀 만든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 본문 351쪽
장인 정신을 논할 때 작은 약방에서 시작해 모직업 길드로 갈아탄 후, 자본을 축적하여 은행가 길드의 맹주로 떠올라 결국에는 피렌체의 권력마저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피렌체 교외의 작은 마을 출신인 메디치 가는 피렌체로 이주해 플랑드르(북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쳐 있는 지역)에서 양모를 수입해 가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피렌체는 모직물을 값싸게 들여와 유럽에서는 구할 수 없는 동방에서 온 색색의 염료로 염색한 후 비싼 값에 유럽의 왕족들에게 재수출했다. 이를 통해 엄청난 자본을 축적했는데, 이 한가운데 메디치 가문이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탈리아는 섬유와 이를 이용한 패션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 피렌체 상인들은 양의 가죽도 싸게 들여와 이를 가공하여 질 좋은 가죽제품을 생산했기에 구두나 가방 등의 수공업도 발달하게 되었다. 피렌체 장인 정신의 기반은 이때부터 다져지기 시작했다. - 본문 22쪽
구치의 스토리는 르네상스 이래로 상인과 장인들이 이끌어온 피렌체라는 도시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메디치 가의 권력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두 가지는 자식 교육과 예술 후원이었다. 오랜 시간 귀족의 역사로 이루어진 유럽에서 핏줄의 정통성이 없다는 것은 큰 약점이었다. 그래서 메디치 가의 수장들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서관을 만들어 희귀본들을 수집하고, 아카데미아를 운영하여 학자들을 끌어모아 자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켰다. 예술가 집단을 조직적으로 양성하여 피렌체를 유럽 최고의 트렌드 도시로 만들었다. 그들은 가문의 부와 명성은 영속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위대한 로렌초’로 불리는 로렌초 메디치Lorenzo di Piero de' Medici, 1449~1492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권력은 50년을 넘기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세운 건축물은 오래도록 우리 가문의 영광을 전해줄 것이다.”
그가 옳았다. 재물도 인간도 다 사라지고 없지만, 피렌체라는 아름다운 도시와 예술품들은 아직도 그 영광을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 본문 56~57쪽
아름다운 기계와 그 기계가 주는 속도감에 영혼을 빼앗겼던 엔초 페라리는 자동으로 속도를 내는 수레바퀴와 새의 날개에 영혼을 빼앗겼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닮았다. 언젠가 이탈리아 TV에서 본 영화 《다빈치》가 생각난다. 뛰어다니는 말이나 나는 새의 운동을 보며 동력을 전달하는 기계를 고안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다빈치의 모습이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가슴 깊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도록 알파벳을 반대로 써서 기록한 다빈치의 기록 아이디어 노트에는 여러 컷의 자동기계 설계도가 수록되어 있다. 물론 지금 현대인이 보기에는 아이들 공작놀이 정도밖에는 안 되는 것이지만, 마차나 사람의 다리밖에는 이동수단이 없었던 15세기에 자동으로 추진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차를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스프링에 힘을 축적하여 기어 역할을 하는 톱니바퀴를 통해 힘이 전달되며 굴러가는 이것은 자동차라기보다는 자동수레라 하는 게 더 적합하지만, 바로 이 ‘자동’automatic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당시로는 거의 타임머신에 필적하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론적 기계였던 거다. - 본문 108~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