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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록의 수필세계
- 우리는 왜 ‘한량이’의 수필에 매료되는가 -
“문학과 자연은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하는 매개다. 자유가 주는 고귀함을 인지하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자유에 대해 끝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는 보이지 않는 숭고한 경지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은 한량이 꿈꾸는 최고의 경지다. 그 옛날 퇴계 이황, 이덕무, 이익, 김시습, 김삿갓을 닮은 한량이고 싶다.”
- <한량이> 중에서-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치적 인간인 호모 폴리티쿠스, 경제적 인간인 호모 이코노미쿠스, 도구적 인간인 호모 파베르 등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려는 수많은 명칭들이 있지만, 나는 언어적 인간인 호모 로퀜스라는 명칭에 가장 마음이 끌린다.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로 끊임없이 경험세계를 이야기를 하는, 배재록 작가의 수필을 읽으면, 문학언어가 주는 마력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이야기를 듣는 듯한 친밀감을 주는 배재록의 수필은 오늘의 고통을 잊게 하는 치료적 힘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보다도 좋다. 배재록의 수필 속으로 마음의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오늘의 삶을 다시 바라볼 용기가 샘솟을 것이다.
배재록은 과잉된 감정을 예리한 지성으로 절제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수필가라 하겠다. 그는 수필 속에 참다운 자기 생활의 모습을 드러낸다. 참신한 생활철학을 어떻게 구현하여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의 실상으로 구현한다. 배재록의 첫 글쓰기는 초등학교 때 전국 고전읽기대회 출전한 후 독후감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중학교 때는 울진군 백일장에서 동상을 받고, 고교 교내백일장 2회 장원, 대학교 시절 백일장에 입상하는 등 글쓰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현대중공업 재직 시절 사보에서 주관하는 문학상과 현대백일장에 여러 번 입상하기도 했다. 회사 내 동호인단체인 ‘소붓문학회’를 오래 이끌었고, 더 나아가 공단문학상 입상인 모임인 ‘울산사랑문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런 중책은 그에게 끈임 없는 글쓰기를 강압했다. 두 아들을 키우며 ‘완두콩과 홍삼원’이란 가족신문을 만들어 전국대회 대상을 두 번 받기도 했다.
이런 글쓰기 경력으로 배재록은 수준 높은 종합문예지인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을 하고. 이어서 2018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목포문학상을 타는 등 심오한 글자가 안식을 주는 수필창작에 몰입하게 된다.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출신 문인단체인 곰솔문학회, 에세이문예 출신 작가회인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이번에 첫 수필집을 펴냈다. 그의 수필집은 자연의 빛깔과 인정의 향기가 서정이 되어 내면을 촉촉이 적시는 정감의 세계를 향하고 있으면서,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과 인연의 소중함을, 모성과 그리움을 청량한 눈과 마음으로 그리고 있어 감동을 준다. 그의 수필에는 다 태우지 못한 삶의 갈망들이 들끓고 있고,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풍성한 의식세계에 머물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안식처가 있어서 습기와 통증을 소멸시켜 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대지에 꽃피울 봄을 불러오는 작가라 하겠다. 세계가 삶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보편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키를 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수필은 문학적 향기를 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수필집의 강점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창조적 내포를 담고 있는 참신한 의식이 작품 속에 넘실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배재록의 <내 기억 속의 풍경화>는 위의 준거를 충족시키고 있는 글들이라고 하겠다. 그의 글은 그가 살아가면서 남긴 흔적과 체온이며, 그것이 정서화되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리얼하게 펼쳐진 삶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소설적인 감동을 주며,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을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수필적인 매력이 넘쳐난다고 하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배재록은 삭막한 도시적 기계의 틀 속에서 인간성의 이해와 인간애를 추구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작품을 직접 살펴보면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무서운 끈기와 집념의 작가가 시간의 길에서 만난 문학혼을 어떻게 수놓고 있는지를 현미경을 가지고 살펴보자. 수필의 숲에서 만난 생의 연금술이 지닌 힘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1. 그리운 날의 풍경, 토포필리아
수필은 자아와 그리움을 찾아 나서는 작업이다. 현재는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과거를 잃고 현재에 묻힐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회상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찾아 바로 세우는 일이 바로 수필적 생활이다. 포근하고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의식의 산실이었던 유년기 속에 있는 흑백 사진처럼 아련히 남아있는 인정을 배재록은 오늘날의 건조한 풍요와 대비해 촉촉한 모습으로 구체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이것을 저것으로 치환하는 문학원리가 수필의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에 그의 글은 문학적 성취도 빛난다. 대단한 필력이다. 다소 안정된 공간에서 배재록이 마주하는 수필적 공간은 유년의 애환을 담은 애련한 사진으로 인식된다. 하늘을 안고 들어온 햇살이 모인 과거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여러 특성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장소애, 바로 토포필리아라 하겠다. 그의 수필집 첫 작품은 책의 제목으로 쓰인 <내 기억 속의 풍경화>다. 아주 적절한 배치라 하겠다.
온 세상이 달빛에 비춰지는 날이면 기억속의 풍경은 그을음 솟는 호롱불처럼 깜빡 거린다. 산이 높아 둥그렇게 내민 하늘은 끊임없이 다양한 그림을 그려낸다. 별빛이 꽃이 되어 지천에 피면 거대한 대자연의 영화화면 같은 하늘은 풍부한 감성을 키우게 했다. 67km 산을 닦아 만든 물길을 우렁우렁 흐르는 왕피천은 내 유년의 큰 보고다.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애인이 되어 유년의 나를 소환한다. 물빛 무희를 하면서 내 기억 속으로 다가온다. 긴 낚싯대를 물속에 던져 센 물살로 단련된 물고기를 건져내던 강태공. 가난했지만 물속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는 배고픔을 물리치게 한다. 물새 울던 왕피천 물줄기가 은빛 햇살로 반짝이며 향수를 곱씹게 한다. 입술이 새파랗게 되도록 자맥질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내 기억 속의 풍경화>에서 -
배재록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가장 두드러진 그림자 형상은 ‘왕피천’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가시지 않을 짙은 향기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 시절의 추억은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독 그에게는 강하다. 그러기에 왕피천은 그의 눈을 뜨이게 하고 애인이 되어 유년의 그를 소환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의 대다수 작품들은 과거 회고적 그리움으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재록이야말로 눈물의 습기를 통해 황홀한 기적을 만나는 작가다. 수필이 실존적 불안을 표현하든, 소시민적 생활의 애환을 그리든, 병든 사회에의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든 간에, ‘문학성’ 속에 그 대상을 용해하고 있다는 점이 배재록 수필의 강점이다. ‘물새 울던 왕피천 물줄기가 은빛 햇살로 반짝이며 향수를 곱씹게 한다’라는 벼랑 같이 느껴질 정도의 미학적 사유가 녹아든 어구를 적재적소에 놓을 때까지 그는 감각의 촉수를 수없이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문학성이란 말이 상당히 막연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주제와 구성 그리고 표현의 공감도를 의미한다. ‘온 세상이 달빛에 비춰지는 날이면 기억속의 풍경은 그을음 솟는 호롱불처럼 깜빡 거린다. 산이 높아 둥그렇게 내민 하늘은 끊임없이 다양한 그림을 그려낸다.’라는 표현은 그의 수필가적 문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공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형상화의 표본이다. 어떻든 그의 수필은 인문학적 사유로 공감을 주기 때문에 멋과 맛뿐만 아니라 향기를 지닌다. 그 향기는 내면의 솔직함에서 나온다. 또한 작품과 작가는 일치한다. 수필적 삶의 진실이 그대로 자신의 수필 속에 투영되기에, 향기가 난다. ‘가난했지만 물속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는 배고픔을 물리치게 한다.’는 대목은 배재록에 있어서 삶의 진실과 수필의 진실이 같음을 증명한다. 일상을 조탁하는 정서의 힘이 멋을 한껏 우려낸 결과라 하겠다. 위의 인용 예문 말고도 여러 수필을 보면, 그는 어둠 속에서도 환히 피어나는 피안의 세계를 가진 작가임을 알 수 있다.
핏기가 없는 울산의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 하늘을 떠 올린다. 고향을 떠나온 지 43년이 넘기고 있어 제2 고향이 된 울산이다. 갓 태어난 날개로 나는 법을 익혀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이 울산이다. 파란 고향 하늘엔 세월 넘어 가 버린 동심으로 가득하고 자욱한 그리움 밟히는 추억이 묻어난다. 마음이 흐르다 멈추면 그리움이 시나브로 고인다. 껴안고 싶은 바람 스치고 별과 달이 놀러 오는 고향하늘이 그리워하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리고 힘들 때 고향은 어머니 품속이 되어준다. 그리다와 울음이 합성된 그리움이 향수다. 우렁우렁 흐르는 왕피천과 두메산골 골짜기 초가지붕을 떠올리며 노스탤지어를 앓는다. 마음이 까맣게 타는 향수병을 앓아 본 사람은 그리움의 의미와 원천을 잘 안다. 눈 감으면 아리고도 행복했던 향수가 떠오른다. 1급수 왕피천에 자맥질해 뱀장어를 잡아 올린 기억이 생생하다. 내 최초의 낙원 안태고향이 그립다.
- <고향>에서 -
<고향>은 그가 살아왔던 시간들 중에서도 가장 짙은 ‘왕피천’의 추억을 동반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왕피천의 향기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 그의 유년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필의 특성 중 하나가 자조적 성격이다. 수필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는 거와 같다. 수필 <고향>에서 작가는 아름다웠던 추억의 변주곡에 초점을 둔다. 그러면서 평온했던 자신의 처지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갓 태어난 날개로 나는 법을 익혀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이 울산이다. 파란 고향 하늘엔 세월 넘어 가 버린 동심으로 가득하고 자욱한 그리움 밟히는 추억이 묻어난다. 마음이 흐르다 멈추면 그리움이 시나브로 고인다. 껴안고 싶은 바람 스치고 별과 달이 놀러 오는 고향하늘이 그리워하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리고 힘들 때 고향은 어머니 품속이 되어준다.’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 수필에서 유년의 추억과 자신의 삶을 하나의 끈으로 묶는다. 그 운명의 사슬이나 속성에 탐닉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그리움의 정서를 고향을 통해 드러내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추억이 물결치는 수필은 단연 <고향>이다. ‘그리다와 울음이 합성된 그리움이 향수다.’라는 작가의 표현은 그가 활어디자이너임을 말해준다. ‘우렁우렁 흐르는 왕피천과 두메산골 골짜기 초가지붕을 떠올리며 노스탤지어를 앓는다. 마음이 까맣게 타는 향수병을 앓아 본 사람은 그리움의 의미와 원천을 잘 안다.’는 작가는 왕피천, 초가지붕에다 인간사를 투영하고, 자신의 삶까지도 포갠다. 시골에서 태어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는 작가이기에 투사된 서정은 짙은 공감의 근원을 확보한다. 그리고 유년의 삶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데도 성공한다. 왕피천은 자기 존재를 스스로의 눈으로 응시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이 수필은 자기 응시의 경로를 통해 견뎌온 삶의 향취를 풍긴다고 하겠다. 왕피천의 여운과 유년의 삶을 연결시켜 정서적으로 풀어낸 것은 배재록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이런 이미지의 결합이 문학적 성과를 거두는 이유는 뭘까. 추억이라는 벼랑 끝 궤적을 연상케 하면서 성장 과정에서 놓쳤던 유년의 추억을 불러내어 그는 치유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1급수 왕피천에 자맥질해 뱀장어를 잡아 올린 기억이 생생하다.’며 작가는 흔들림 없이 지켜왔던 자신의 삶을 자맥질을 통해 길어 올리고 있어 감동을 준다.
세월의 행간에 묻혀 진 어머니표 농주는 마시면 좋은 민족의 술이다. 인상 좋은 농주가 알싸한 향을 풍기며 달착지근한 맛을 낸다. 한 주전자로 여러 입을 대접하는 너그럽고 인정 많은 술이다. 오랜 정이든 푸근한 농주다. 삶을 음미하게 해주고 소박한 문화를 느끼게 하는 술이다. 바깥세상의 소리를 내 놓는 술이며 내면의 세계를 경청할 수 있는 술이다. 술이 마중물이 되어 자신과 교감하며 내면을 조망 할 수 있게 만든다. 마주하는 서로의 갈등이 풀리고 기쁨을 엮어주는 마법을 지닌 술이 농주다. 어머니표 농주는 마신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꾸는 마법사다.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화나게 만드는 신령스러운 재주로 마음대로 부린다. 술을 마신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누리는 능력을 덤으로 준다. 내가 어머니표 농주를 그리워하며 자주 찾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 오는 날과 궁합이 잘 맞는 술이 농주다. 굴피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마중물이 되어줄 그 농주가 그리워진다. 향수를 소환해 그 구수한 농주미각을 음미하고 싶다. 비 오는 날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농주를 넉넉한 사발에 부어 미각을 음미하고 싶다. 농주에 담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실컷 마시고 싶다. 어머니의 삶이 녹아있는 농주를 마시며 그리운 노스탤지어를 달래 본다. 어머니표 농주는 지쳐있는 몸과 마음에 수액처럼 에너지를 가득 채워 준다.
<어머니표 농주>에서 -
이 작품은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작가의 인상이 ‘농주’를 통해 잘 나타나 있는 글이다. ‘어머니표 농주는 지쳐있는 몸과 마음에 수액처럼 에너지를 가득 채워 준다.’는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어머니는 작가의 가슴에 살아있는 불굴의 정신이다. 배재록의 수필을 이루고 있는 두드러진 그림자 형상은 누가 봐도 ‘어머니’다. 어머니는 배재록 수필의 근본적인 핵이다. 그의 사고 영역에 ‘어머니’는 언제나 항상 존재한다. 융에 의하면, “그림자는 어머니, 즉 집단 무의식으로 향한 글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야말로 우리의 무의식에 영원히 살아있는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어머니표 농주>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헌신적 삶의 모습이 녹아 있다. 특히 이 수필은 문학적 형상화가 빛난다. ‘민족의 술’ ‘너그럽고 인정 많은 술’ ‘오랜 정이든 푸근한 농주’ ‘소박한 문화를 느끼게 하는 술’ ‘마법을 지닌 술’ ‘비 오는 날과 궁합이 잘 맞는 술’ 등의 표현은 ‘이것’을 ‘저것’으로 하는 문학의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단연 압권이다. ‘농주’라는 메타포로 인해 어머니의 삶이 문학적으로 잘 구축되고 있다. 격정의 순간에도 감정의 절제를 통해 품격을 갖추려고 한 것도 좋았다. 이처럼 그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채워주는 작가인 것이다.
2. 가화만사성의 현장, 부부애의 숨결
배재록 수필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사랑하는 이에로의 지향성이다. 그 그리움의 귀착지는 아내의 품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아내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연모곡이 수필집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 그만의 독특한 정서라고 해야겠다. 대부분 수필들이 존재의 근원과 필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직조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지극한 정성, 사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작품 <전업주부가 되다> 가 입증한다.
겉에서 보면 자신이 화소가 된 것 같은 인상이 강한 작품이나 주제의식은 아내사랑에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 변혁만 이루면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아픔이 허물을 벗고 한 순간에 환한 모습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는 현란함은 한때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행복의 실체는 아니다. 물질만으로는 생명을 틔울 수 없다. 이 수필은 화목한 가정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배재록의 수필적 정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인간적 향기라 하겠다.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군소리 없이 도맡아 해줬다. 그 덕에 회사에 전념하여 어렵사리 부장까지 승진하며 명퇴할 수 있었다. 아내도 결혼 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육아와 전업주부로 전환을 했다. 결혼 초 살림을 살아보지 않아서 전업주부 일에 나만큼 서툴렀다. 다행이 한때 같이 살았던 여동생이 요리를 잘 해 일부 전수를 받았다. 그렇게 시작해 아내는 전업주부생활로 전환했다. 다양한 반찬 만들기에 눈을 뜬 아내는 당당한 전업주부 자격으로 대부분 외식을 지양하고 집밥을 선호했다. 아내가 지은 밥이 죽이 되고 눌러 붙어도 밥투정 없이 넘어갔다. 내 직장생활과 아내 전업주부생활이 역사를 남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아내가 사회복지사 직장을 나가며 나에게 기본적인 살림 일을 교습시켰다. 사정상 싫으나 좋으나 내가 집안일을 거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험하지 않고는 모르는 전업주부의 희로애락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쉽지 않지만 가정을 경영하는 경영자로서 나름대로 솔선수범하고 있다. 끝도 없고 티도 나지 않고 집안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늘어난다.
-<전업주부가 되다>에서 -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 갖는 의미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충족의 기쁨 없이 삶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엄숙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씀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아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나는 한다.’라는 이 순응의 자세는 그를 무한한 포용성의 얼굴을 가진 작가로 부각시킨다. 삶을 원망하고 현실에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삶의 질이 어느 한 순간에 돌변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수필은 부부가 역할을 나누어 가지며 행복을 찾아가는 상황 제시를 통해 우리 시대 부부상을 다시 반추한다.
또한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추억이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인생관과 버물어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일상사의 사소함에서 출발된 행복들이 노정된 이 글은 인간적 삶의 소중한 경험이요, 수필가는 그 경험의 전파자임을 말해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끈끈한 부부간의 연대가 아니겠는가. 순수한 연모와 향기 나는 부부애보다 더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끝도 없고 티도 나지 않고 집안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늘어난다.’는 멘트가 살짝 가슴을 찌르면서, 여운의 맛을 준다. 이런 맛이 있어 문학성이 생겨나고 공감도가 형성되는 게 아닐까.
오는 길에 아내는 어젯밤 10만원 하는 등을 절 안에 달았다 이야기 했다. 알뜰한 아내가 낭비하는 일을 본적이 거의 없었으니 수긍했다. 소통은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힘이라 했다. 마음 읽기는 수양이 필요하다. 아내 마음에도 어느새 불심이 가득 차 있어 보였다. 불심에 취한 아내가 집에 오면서 오늘은 세 군데 절에 가면 좋다며 또 다른 절로 가지고 보챘다. 지아비 가슴에 불심으로 가득 채우려는 아내의 마음을 깨닫게 했다. 감기약에 취해 온 몸이 불편한 내가 불심을 빌려 그러고 싶었지만 권위로 만류를 했다. 부처는 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성철 스님을 세기며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외었다. 아내는 지인과 기어이 세 군데의 절을 갔다 오면서 부처가 되어 왔다. 아내의 권력이 나를 두렵게 했지만 오늘은 부처라서 안심을 했다. 아내 고집에 복종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은 부처님오신 날이었다, 바야흐로 불기 25621년 2017년 5.3일 있었던 일이었다.
- <부처님 오신 날에>에서 -
이 수필의 감상 포인트는 가정 내 권력의 변화를 살펴보는 데 있다. ‘복종’이 주는 어휘에서 눈물보다 끈적한 사랑의 향기와 지혜의 미학이 펼쳐져 있다. 부부간의 권력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수필은 여성상위시대인 현대사회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아내는 부처님 오신 날 기어코 세 군데의 절에 가야 좋다는 말을 믿고 이를 감행한다. 남편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바탕 부부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데, 싸움은커녕 작가는 오히려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아내에게 져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복종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에는 필시 신사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에게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모성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을 깨는 작가의 처신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스스로 무너뜨리는 권위가 여성상위시대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36년을 함께 살아 온 각시와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함께하는 인생’을 제2기 인생의 주된 목표로 삼았다. 등산과 문학을 같은 취미로 정했다. 노후를 위해 건강과 내공을 기르기로 했다. 노인이 되어가는 지금 동행자로 평생을 함께 해야 될 내 각시를 바라본다. 문학이 마중물 되어 연애로 만난 아내와 나는 썩 잘 어울리는 배필이다. 36년을 동고동락했고 이제는 노인의 시간을 동행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다.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도 늘고 주도적인 행동을 하드라도 잘 넘어갈 것이다. 나이가 더 들수록 외로워 질 것이다. 혼자 있을 시간과 번민이 많을 노후에 함께 하는 내 각시가 있어 우듬지처럼 든든하고 행복하다. 진정한 인생의 성취는 기쁨을 느끼느냐에 달려있다.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기쁘게 보낸 순간을 세면서 살아 갈 참이다. 인생은 고단하지만 아름답기에 기쁨을 즐길 줄 아는 재주를 연마하고 있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갓 결혼한 어여쁜 각시로 예우하며 살아갈 것이다.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을 이어주는 내 각시가 있어 인생은 살맛이 난다.
- <내 각시>에서-
<내 각시>라는 제목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각시’라는 말에 담긴 낭만성과 순수성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정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현대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월급봉투 주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편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부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배재록은 이런 진리를 ‘내 각시’라는 제재를 통해 잘 보여준다. ‘함께하는 인생’을 제2기 인생의 주된 목표로 삼았다.’는 문구는 부부애의 무한한 확장이다. 서로간의 다짐이 또한 감동을 준다. ‘각시’의 상징성에 뭉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부부간의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필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부부간의 정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배재록 수필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모습에는 남자의 따스함이 스며나고 있으며, 진솔한 고백이 반성적 성찰의 원리로 승화되어 순진무구한 인정의 미학이 묻어난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갓 결혼한 어여쁜 각시로 예우하며 살아갈 것이다.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을 이어주는 내 각시가 있어 인생은 살맛이 난다.’는 진술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남자의 진한 다짐이 들어있다. 수필 문학이 지닌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공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소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작가의 진솔함이 인정에 뿌리내려 있어서일 경우가 많다. 배재록 수필의 최대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이요, 진한 사랑의 표백에 있다. 이것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필문학으로서의 가치와 문학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3. 조국 근대화의 기수론과 긍정미학
배재록 수필의 세 번째 큰 물줄기는 크게 부산기계공고 출신 작가라는 데서 드러나는 자부심과 향토서정과 휴머니즘의 추구라는 사상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기치로 내걸고 세워진 특수목적 고교 시절의 향수와 고향의 추억을 통해 보편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이 배재록 문학의 본령이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이와 함께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과거에 대한 추억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귀소성이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속성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던, 또는 오랫동안 살아오던 고향에서 계속 살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다. 특히 도시 문명의 확산과 산업 사회 진입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되었다. 작가는 찬란한 유년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지금은 결혼을 해서 울산에서 살고 있다. 그 그리움이 창작동기가 되어 생성된 수필은 그리움이 강물처럼 출렁인다.
먼 심해에서 뻗쳐 온 금빛 광휘, 불끈 솟구친 햇덩이가 전국에서 모인 100여 명 동기생들에게 환희를 주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묵살한 아침에 영롱한 태양이 방어진반도에 떠올랐다. 묵직한 봄바람이 불어 만남을 축하했다. 신이 축복을 내린 3월16일 국립부산기공 10회 동기생 등산대회가 시작됐다. 올 해는 내가 동기회장으로 있는 울산 염포산에서 주관해 분주했다. 낯익은 얼굴, 저마다 가슴에 국립부산기계공고 이름표를 패용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도 더러 눈에 띈다. 선뜻 다가가서 악수로 인연을 맺는다. 우연히 만나 관심을 주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는데. 반가움 하나가 잡은 두 손에 맴돈다. 동기생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필연이다. 전국 중학교에서 선발된 900명이다. 전국 어디에 가도 만날 수 있다.
- <고교동기생 등반대회>에서 -
배재록은 비상을 꿈꾸는 작가다. ‘우연히 만나 관심을 주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는 그의 표현대로 그는 인연을 귀히 여기는 작가다. 수필 속에는 출신학교에 대한 애정이 뜨겁게 요동친다. 그가 다녔던 부산기계공고는 70년대 산업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근대화의 기수를 양성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있는 가난한 수재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휴일, 열쇠, 그리고 방학이 없는 학교라고 해서 3무학교로 통했다. 동해의 부상을 바라보며 해운대 언덕 위 10만 평의 부지에 대학 캠퍼스보다 더 멋진 교정이 펼쳐져 있는 기계공고를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학교 출신들은 인생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이 해설을 쓰고 있는 필자도 기계공고 출신이다. ‘반가움 하나가 잡은 두 손에 맴돈다. 동기생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필연이다.’는 진술은 작가의 동기의식에 필연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긍정을 위한 상승심리와 함께 긍정효과에 대한 믿음이 싹트게 마련인 것이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욕구가 강해지면서 많은 동기들이 배재록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직장과 멀어져 있는 작가로서 기계공고 출신이라는 인연의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작가를 자기 긍정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등반 속에서 우정과 추억을 다지는 일은 어쩌면 퇴직 후 한량이로 살아가는 작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안성맞춤이므로 작가는 일상적 사건을 동기생 등반대회라는 제재를 투여해서 문학적 사건으로 승화시키고, 이 작품 속에서 기계공고 출신의 자부심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900명의 동기들은 내륙은 물론 저 멀리 백령도, 울릉도, 제주도, 남해도, 진도 출신들이다. 만나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이들과의 만남은 글이 되고 만다.
바닷물에 반 욕을 하는 두 개의 섬이 나체로 보인다. 숨기는 것 없이 나체를 드러내며 육체미를 자랑한다. 숨기는 일도 숫기도 없다. 햇볕이 내려와 앉은 지형은 풍미를 풍기며 사유를 가득 머금고 다가온다. 독도는 보배의 터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군사적 요충지로 국가 안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 기점으로 우리 주변 바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또 화석 연료를 대체할 미래 자원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전 국민이 30년 사용 가능한 양이 매장되어 있어 보배의 터를 증명하고 있다. 꿈의 식수 해양심층수가 흐르고, 북극항로 교통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감흥 가득히 호강을 누리고 귀환하는 눈에 비친 아름다운 한반도 지도위로 푸짐한 햇살이 쏟아진다. 울릉도로 회귀하여 도동 독도박물관을 관람했다. 전시관은 하나 같이‘독도는 우리 땅’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독도가 역사, 문화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뜨악한 일본의 허구성을 세세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몽니를 물리치기 위해 혈기왕성한 20대 독도경비대원 40여명이 경계를 서고 있다. 깔끔하게 그려진 한반도 지도를 떠올리며 천진한 애국심을 핥아 본다.
- <돌섬 독도>에서 -
독도는 언제나 오라고 손짓하지만 독도를 갈 기회도, 간다고 해도 입도 성공률이 낮은 섬이다. 그러하기에 언제나 먼 거리에서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는 오영수의 갯마을을 읽으며 혹독한 바다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배재록은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살아왔기 때문에 절절할 수밖에 없는 애국심을 독도 체험을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 <돌섬 독도>를 통해 나라사랑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음미하게 한다. ‘깔끔하게 그려진 한반도 지도를 떠올리며 천진한 애국심을 핥아 본다.’라는 묘사에서 정서를 압축해서 간접화하는 그의 문학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나는 독도에 중요한 삶의 의미를 주면서 애국을 노래하는 수법도 대단히 전략적이다.
일본은 주로 독도를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섬을 어디까지나 영토주권 차원에서 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섬은 해양영토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유권의 싸움 안에는 단순한 주권뿐만 아니라 한일 국민간 서로간의 자존심이 내재되어 있다. 이 작품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향해 ‘제발 꿈 깨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배재록의 수필적 지향이 일상의 현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독도의 숨소리와 그 맥박, 역사적 의미를 찾아가는 발견과 깨달음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식에 저항성을 더하는 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뢰즈는 문학을 다양한 차이를 가치화하는 저항담론이어야 한다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이 글은 저항성의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작품이다.
목포의 관문이며 학의 날갯짓을 형상화한 목포대교가 엉덩이를 흔든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잇는 총길이 4.12km다. 북항과 고하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천연기념물 500호 갓바위의 삿갓이 화려한 야경을 선보이며 유랑의 춤사위를 한다. 서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풍화혈(타포니, tafoni)이다. 자연의 예술 작품은 마치 스님 두 분이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스님이 영산강을 건너 나불도 닭섬으로 건너가려고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과 지팡이를 놓은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세계 최대의 부유식 바다분수‘춤추는 바다분수’가 너울댄다. 276대 분사용 노즐과 96대 분사용 펌프가 70m 높이로 물줄기를 현란하게 뿜어낸다.
횟집에 세발낙지, 농어, 돔, 민어, 전복, 펄 낙지가 허기진 나를 유혹한다. '산해진미'를 선보이며 남도의 맛으로 미각을 감칠 나게 한다. 세발낙지에 소주 한잔을 넣자 속이 데모 한다. 향긋한 바다냄새가 겹치는 별미다.대한민국 맛의 수도 목포는‘목포의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목포의 눈물>에서 -
이 작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안식뿐만이 아니다. 잊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향수와 우리가 진짜 돌아가야 할 세계에 대한 발견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향토적인 소재의 발견은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배재록의 수필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작가의 긍정원리뿐만 아니라 삶의 반성적 성찰대에 자신을 세우는 데 있다. ‘세발낙지에 소주 한 잔을 넣자 속이 데모한다. 향긋한 바다냄새가 겹치는 별미다. 대한민국 맛의 수도 목포는 ‘목포의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일침을 놓은 이 대목은 목포에 대한 완고할 정도의 애정이며, 자신을 받아준 운명적 존재에 대한 애착이라고 볼 수 있다. 배재록은 자신을 껴안아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모습으로 목포의 바다 앞에 서있다. 현실이 각박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는 목포에는 눈물만 있지 않다고 항변한다. 그의 이 수필에는 목포에 대한 애정의 향기가 인생에 대한 애정으로 환치되어 서려 있다. 중심적 접근에서 이탈하려는 인문학적 사유가 빛나는 수필이라 하겠다.
4. 뜨거운 열정의 노래, 추억의 자리
따뜻한 온기를 지니지 않고서는 감동을 주는 한 편의 수필을 쓸 수가 없다. 수필은 예로부터 정의 문학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래서 필자는 ‘수필은 초코파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배재록 역시 어느 기계공고 출신 작가와 마찬가지로 정서적으로 건강한 생명의 기가 넘쳐흐르고 있고, 불타오르는 인생의 중요성을 느끼는 마음이 심중에 가득하기에 지금까지도 삶을 한량으로 살아온 것이다. 무한한 자유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한량 나그네에게 필수적인 가치가 바로 열정이 아니겠는가. 상당수 작품들은 이런 가치들을 품고 있다. 그의 수필은 그 열정을 형상화해낸 정서의 빛깔이자, 심오한 성찰 속에서 획득되는 철학적 울림의 멋과 힘이라서 감동을 자아낸다고 하겠다.
모닥불 피워놓고 보내는 시골 여름밤의 그때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마음도 넉넉했고 옹기종기 작은 초가지붕들의 낮은 담장 사이 정감이 오가는 평화로움 그대로였다. 모닥불은 무엇인가를 가슴에 지니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풀잎과 풀벌레들 역시 그러한 의미에서 배재록의 인생을 밝히는 불꽃 같은 존재다. 고향에서 뛰어놀던 나날은 그에게 낭만을 수놓게 했고, 오늘날 작가로 태어나게 한 일등 공신들이다. 지금에 와서도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삶의 자양분을 키워 준, 궁핍한 시대의 은혜로운 낭만과 순수가 깃든 곳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배재록이 귀소적 회귀 심리 속에서 고향을 못 잊어 그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그의 수필 한 축에는 이런 시골 추억이 제재로 되어서 휴머니즘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겠다.
요요한 골짜기에 환한 불빛을 빚고 밤은 깊어간다.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의 초대형스크린이 장작 냇내와 어우러져 여름밤의 감흥을 한껏 부추긴다. 내 인생도 어둠속을 헤매다 피어오른 불꽃같은 존재다. 인생을 밝히는 불꽃 하나를 만들어 죽는 날까지 밝고 영롱하게 빛나게 하고 싶다. 가만히 밤의 대지에 귀 기우려 본다. 소야곡 멜로디가 풀잎과 함께 춤을 추며 우아하게 흘러나온다. 온갖 풀벌레가 노천 무대에서 울음 짓는 그곳에 모닥불이 탁탁 소구춤을 추는 여름밤 낭만은 행복을 창출하며 감회를 준다. 은하수의 자잘한 별무리를 자분자분 헤아리며 모닥불은 꺼져 간다. 모닥불에 비쳐진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자세로 고쳐 본다. 삶이 아파도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해야 할 용기를 잃지 않고 싶다. 삶이란 모닥불과 같은 것이다. 활활 피어올라 정열적으로 세상을 밝히다가 한 줌 재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내 삶도 그렇게 황홀하고 역동적이고 싶다. 내 인생의 불꽃이 활활 피어오른다.
- <불꽃>에서 -
작가는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무작정 집을 나서서 인적이 드문 외딴 시골에 탠트를 치고 야영에 들어갔다. 사는 것은 떠나는 것이긴 하지만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탈영토성의 기운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는 게 권태로울 때 무작정 집을 떠나보는 것이다. 불안할 때,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생득적인 감성이다. ‘내 인생도 어둠 속을 헤매다 피어오른 불꽃같은 존재다. 인생을 밝히는 불꽃 하나를 만들어 죽는 날까지 밝고 영롱하게 빛나게 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불꽃’이란 제재에 잘 녹아난다. 그래서 이 수필도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은, 타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그 당사자에게는 마냥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의 열정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는 불꽃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삶이 아파도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해야 할 용기를 잃지 않고 싶다. 삶이란 모닥불과 같은 것이다. 활활 피어올라 정열적으로 세상을 밝히다가 한 줌 재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내 삶도 그렇게 황홀하고 역동적이고 싶다.’고 그는 노래한다. 이처럼 뜨거운 삶에 천착해 보인 수필이 있었던가. 흔들리는 자신을 다 잡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신성한 구도자처럼 느껴지는 것은 자기 생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리라. 더욱이 남자의 삶에 있어서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불꽃이란 원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심장과도 같은 것이며, 우리의 삶과 영혼을 성숙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다면 그것은 곧 삶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얀 찔레꽃이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스토리텔링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깊은 계곡에는 가재가 많았다. 밤중에 기름기 많은 소나무 관봉으로 된 횃불 들고 가재를 잡으러 갔다. 불빛을 따라 바위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가재를 잡았다. 보릿고개 때 먹었던 그 가재 맛이 짙은 찔레꽃 향기를 타고 내려앉았다. 순진했던 유년 나로 돌아가 보았다. 천연기념물 팔손이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응원했다. 잎이 여덟 갈래로 갈라져 손바닥 모양을 한 두릅과 나무가 귀한 몸을 갸웃거렸다. 유람과 순례를 오가며 걷기 시작했다. 눈길 주는 풍경이 죄다 신천지였다. 비진도 수문장인 작은 춘복도가 화장을 짙게 한 여인으로 다가왔다. 감성 모자를 씌워 찡한 여운을 주고 경계 없는 바람이 가슴을 데워 놓았다. 대자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비진도가 신령으로 다가왔다. 내 마음은 작은 섬 물가에 내려놓은 아이마냥 촐랑거렸다.
- <비진도 유람>에서 -
배재록은 순수파에 속한다. 이 수필에서 우선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인정이요, 휴머니즘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이다. 수필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수필은 제재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통해 문학적 방식으로 쓰여야 할 글이다. 그것이 문학적 방식인가 아닌가는 이 수필 ‘보릿고개 때 먹었던 그 가재 맛이 짙은 찔레꽃 향기를 타고 내려앉았다’라거나 ‘비진도 수문장인 작은 춘복도가 화장을 짙게 한 여인으로 다가왔다. 감성 모자를 씌워 찡한 여운을 주고 경계 없는 바람이 가슴을 데워 놓았다.’처럼 구체적 형상을 통해 자기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인가 아닌가하는 점에 따라 구분된다. 옛날의 선인들은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를 중시하였으며, 수필적인 방식을 통해 선비정신을 길렀다. 작가는 비진도 여행을 통해 찔레꽃을 보고, 그 상관물을 통해 옛 추억을 떠올린다. 인용 예문에서도 묘사가 압권이다. 이 수필은 여행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구체적 형상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미적 감동을 준다.
꼭 40년으로 돌아가 부산의 옛 거리를 유람했다. 삶을 즐기지 못하고 미래희망을 위해 매진한 과거의 아린 그림자를 염탐했다. 나이테를 늘려가는 시간에 현재를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야 한다는 시사점을 도출했다. 부산의 과거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추억은 영원히 존재 할 수 없는 무형물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갈치 시장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과거란 되돌아보면 낭만과 아픈 복고감성이 교차되는 법이다. 오래전 있었던 것처럼 돌아 올수 없는 시간이 서성인다. 되돌리는 일은 이젠 연연하지 말라한다. 과거를 미화하면 미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라고 종용했다. 40년 전 과거를 걷는 일은 사색과 순례의 여행이었다.
<과거순례>에서 -
수필의 소재를 ‘생활’과 ‘자연’에서만 찾으려 하는 작가가 있다면, 소재의 빈곤과 작가의식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다. 수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수필 쓰는 일은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소재가 어찌 ‘생활’과 ‘자연’뿐이겠는가. 그 표현 방식이 어찌 ‘고백’뿐이겠는가. 수필가들은 폭넓은 소재를 통하여 그 작품세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수필이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 좀더 그 지평을 넓혀 갈 수가 있을 것이다. 훌륭한 수필가는 구경꾼이요, 방랑자라고 했다. 수필이 생활인의 애환만을 크게 받아들인다면, 작품세계를 스스로 좁히게 된다. 배재록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수필이 보여주는 메시지의 한 축에는 ’현재의 현재화‘라는 예리한 깨달음이 잡고 있어 평자를 안도하게 했다. 이처럼 ’과거의 현재화‘를 버리고 ’현재의 현재화‘를 추구하겠다는 확고한 작가의 다짐이 오늘의 배재록을 키웠다고 하겠다.
배재록의 수필이 거처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자기표백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의 영토에서 낮추는 작가다. 생을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작가다. 인생을 칼칼하게 씻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수필이 지녀야 하는 공통적 요건 중에 하나가 대상을 바라보는 심미적 안목이다. 심미적 안목이란 화려하거나 현란한 언어 구사와 거창한 주제와 경이로운 소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작품을 통해 이르는 효과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인간의 흥건한 정이 배어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자리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할 때, 문학적 미학은 완성된다. 무심한 사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정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원시적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물상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존재론적이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 소재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인연의 소중함과 우리-되기의 힘
배재록은 다 태우지 못한 삶의 갈망들이 들끓고 있는 작가다. 심기 속에 전류처럼 정이 따뜻하게 흐르는 작가다. 이 수필집은 일상에서 꽃피우는 인연의 소중함과 견고한 인성의 노래로 수놓아져 있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이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웃의 인연과 만남의 소중함을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현대는 다양한 욕구가 충만해 서로 좌충우돌하지만,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는 단절과 소외로 특징되는 시대다. 문학이 문학만을 위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아래 작품 <빗장을 열다>는 판에 박은 듯한 안내문 같은 정보전달, 소개 형태의 형식에서 탈피하고 있어 감흥을 준다. 주제의식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촉, 개인적 체취가 강하게 풍겨 본격수필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오래 전, 차장 진급을 위해 부서장 문을 두드렸던 일이 생각났다. 부서장은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가 버렸다. 본립도생(本立道生)을 강조하며 더 강하게 빗장을 쳤다. 부서원들은 부서장을 융통성이 없는 샤일록 같은 냉혈한이라 놀렸다. 승진하기 위해 문호를 열어 달라고 아부를 해도 아무런 답이 없다. 어떻게 하면 문을 열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부서장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절대로 승진을 할 수 없다. 로비를 하고 으름장을 놓아서라도 승진을 하고자 하는 내 욕구는 너무나 강렬했다. 부서장은 마음의 문뿐만 아니라 빗장까지 쳤다. 문은 공간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기도 하는 존재다. 오직 승진하기 위하여 빗장을 걸어 버린 부서장의 문 앞에서 열리기를 배회하는 내 심정은 강렬했다. 그냥 문이라면 망치로 부셔버리기라도 할 수 있지만 사람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었다. 내가 때를 쓰고 노크한 문은 중역 단위로 기회가 있는 특별승진이었다. 부서장의 문을 열어서 포상을 받게 되면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회마저도 다른 부서에 넘어가고 나는 승진누락의 쓴맛을 봤다. 실패 쓰라림은 극도의 방황과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인생에 있어서 큰 실패에 속하는 승진은 눈물과 회환의 쓴맛을 보게 했다.
- <빗장을 열다>에서 -
이 수필을 읽으면, 그의 글은 하나같이 삶의 원형, 삶의 진리를 파헤친 지혜서란 생각이 든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은 논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인과율에 의해 삶은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삶의 변증적 법칙을 ‘승진 실패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음의 문’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사람을 하나로 모우고, 경직되고 얼었던 마음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고 의미화한 데서, 그가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어쩔 수 없어 사는 것이 아니라 승진의 욕구를 강하게 노정하며 사는 길은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관성에 따라 사는 것보다 열린 자세로 부서장에게 다가감으로써 작가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도 진화 발전할 수도 없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하고 난 이래 순리에 반하지 않고 현재까지 왔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도 평화롭게 살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작가는 ‘마음의 문’이라는 말로 풀어헤치고 있다.
휘파람 소리를 낸다. 입술로 내는 소리기에 다른 선율보다 파열음이 많다. 숨이 입술을 진동해 내는 휘파람 소리. 귀를 자극해 소리를 노래로 바꾼다. 음률을 타고 음악적 가락을 생산해 내는 휘파람 노래를 즐겨 부른다. 따로 휴대할 필요도 없이 몸에 있어 내킬 때 한 곡조 연주를 해서 좋다.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보다도 여타 악기 소리보다도 휘파람 노래가 마음을 더 울리고 치유해 준다. 어느새 입술이 만들어 낸 요술을 애호하게 되었다. 내 영혼의 소리기에 심금을 울리게 하는 음률과 가락에 동화 되곤 한다. 작은 오케스트라 같은 휘파람 노래에 미묘한 음색과 강약의 떨림에 감흥이 묻어난다. 애창곡 한 곡조 부르고 나면 그 후음은 지친 영혼을 달래준다. 휘파람 소리는 혼자만의 고독한 나를 달래주는 유희가 되었다.
- <휘파람소리>에서 -
이 작품에서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치유’의 필요성이다. 작가는 휘파람 소리를 좋아한다. 휘바람은 치유의 수단이 된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건강한 영혼을 바라는 작가의 건강한 인식이 녹아 있어 뜨거운 감동을 자아낸다. 그는 사람들을 새롭게 결속시키는 힘을 가진 작가다. 긴 인생을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휘파람으로 자신을 비워내며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려 할 때, 후회 없는 인생이 보장되는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바란다. 현대적 삶의 어두움은 바로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치솟는 이 끊임없는 안락을 원하는 이기심과의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몸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도 낼 수 있는 휘파람 소리가 고독한 자신을 달래주는 영혼의 소리라고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소리를 낸다는 데’에 있다.
남들이 알아주듯 말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도마 같은 사람에게 존경을 보냈다. 도마처럼 크기가 작아도 속은 넓고 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마가 되어 시퍼런 칼날을 받는다. 예리한 아픔도 피하지 않는다. 향나무처럼 자기를 찍는 칼에 향을 묻히면서 받아들인다. 도마는 몸을 내 주며 잘 되도록 배려하는 자기희생을 사명으로 한다. 그러나 뭇 사람들은 도마의 희생정신을 쉬이 본받으려 하지 않는다. 도마는 요긴하기는 하나 대게는 인정받지 못한다. 대우는커녕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여간한 차별에도 화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칼날에 도마가 동강아 나면 내버려 지고 내동댕이쳐지는 것으로 끝이다. 내 주변에는 도마 같은 사람 보다 칼을 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칼을 들면 없던 힘도 생겨 갑질을 해댄다. 하는 일에 거슬리면 그냥 찍어 넘겨버린다.
- <나무 도마>에서 -
자기 삶에 대해 누구나 쉽게 부끄러움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체취에서 풍기는 향기를 더해주는 글이라 하겠다. 수필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생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작가의 진술처럼, 우리 주변에는 도마 같은 사람 보다 칼을 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이 점점 들어나고 있다. 도마정신은 타자와 우리-되기다. 자기 헌신은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수필은 힘의 문학이다. 그 힘은 작가의식으로부터 나오지만 도마정신의 고양으로부터도 나온다. 생각이 머물지 못하고 인정들이 들고 나는 시간이 제각각이며 말에 칼날보다 아픈 비수가 실려 간다. 도마보다 칼이 되길 원하는 이 시대의 흐름을 ‘도마’라는 제재에 담아 문학적으로 조리해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배재록의 역량이 빛나는 것이다. 이 수필은 추상의 세계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구체화하기 때문에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무엇보다도 제재를 통해 주제를 우려내는 솜씨의 탁월성이 배재록 수필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하겠다.
III.
위에서 다룬 작품 외에도 <노인과 개나리>, <칼을 갈다>, <지게작대기> 등등 배재록의 수필들은 “이것이 본격수필이다”라는 명제에 답하고 있어 성공적이다. 이 수필집의 작품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어떤 작품보다도 배재록의 수필은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현란한 색채로 나타나는 허욕의 삶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색처럼 겸허한 삶을 그려낸 수필은 한 편의 멋진 어른을 위한 동화다. 또한 배재록의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을 실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성공적이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 발견의 문을 열어준다. 언제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배재록 수필은 존재 의의를 지닌다. 그는 보다 인간적인 향기로 자세를 고쳐 잡고 무딘 칼을 갈며 살아가는 한량이다.
수필의 본령은 인간 구원에 있다는 허드슨의 정의처럼 배재록은 득실거리는 사회의 군중 속에서 무엇보다도 추억을 추출해 내어서 렌즈 밑에 정착시키고 그것을 멋스럽게 확대시키고 있는 점에서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내면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서 문학성이 빛난다. 언어의 활용면에서 문학수필의 멋을 한껏 우려내고 있어 읽을 만한 수필집이라 하겠다. 다섯 부류로 나누어지는 수필적 특성들은 고원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이제 그는 평생 자신을 지탱해 줄 지게작대기도 만들었다. 그런 지게작대기의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독자에게 일러두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배재록의 수필이 주는 첫인상은 힘차다. 인간의 강한 다짐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배재록 수필가가 걷는 한량의 길은 문사의 길이니만큼 퇴계 이황, 이덕무, 이익, 김시습, 김삿갓을 닮는 것이다. 더욱 더 향기로운 문인으로 겸손하게 성장해서 더 멋진 수필을 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정조준하며, 부드러운 필봉을 휘두를 때, 배재록은 의식있는 작가로서 크게 주목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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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리움과추억이
잊어질까
나만의언어들이
현대적인것에
버림받을까
꽁꽁숨겨두었던
나만의보석을 풀어보니
너무초라해 보잘것 없어
부끄럽게 느껴져
글에게 미안해 지네요
교수님의 좋은글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용기내어 봅니다
건강하세요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 용기를 내어보는 아사히 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