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매출이 높은 대형 대리점주 중 A 점주가 필자를 데려간 곳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요정이라는 곳이었다.
부산 국제시장을 끼고 깡통 시장을 지나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대궐 같은 기와집은
고래 등 같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담벼락과 기와 장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깃든 아주 멋진 집이 내 앞에 나타났다.
촘촘히 켜진 야외 등은 오색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고, 커다란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문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맞이하는 정원과 잘 만들어진 돌탑들, 은은히 풍겨오는 이름모를 은은한 식물의 향기, 조그맣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높이고 수많은 방마다 불이 켜진 곳에는 국악의 향연장이라 해도 손색없는 음악 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로 가득 찼다.
인기척과 함께 버선발로 뛰어나온 한 여인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를 반겼다.
맨 끝 방으로 안내받은 우리 일행은 방으로 들어가자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방 한쪽에는 장구를 앞에 두고 처분만 바라는 양 한복 입은 여인이 자리했고 그 뒤로 쳐진 병풍은 수려한 산수화와 잘 어울려져 있었다.
이윽고 자리에 앉자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마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도자기로 빚은 술잔에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며, 싱싱한 젊은 영계를 데리고 왔다면서 깔깔 웃었다.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창피한 마음과 어색함으로 빨리 이 자리를 일어나고 싶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마담은 문을 열고 한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은 필자보다 더 어린 소녀 같았고, 불빛에 비치는 한복 치마는 속옷을 안 입은 모양인지 속살이 훤히 비춰 무척 민망스러웠다.
이어서 뒤따라온 여인은 좀 나이가 더 들어 보였지만 25살 정도의 여인으로 똑같은 복장으로 나타나 A 점주 옆에 앉았다.
마담은 어린 여인(소녀)을 내 옆에 앉히고, 잘 모시라고 말한 뒤 문을 열고 사라졌다.
A 점주는 나에게 아무 부담 없이 잘 놀다 가자고 말하며 여인들에게 노래 한자락 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구를 앞에 둔 여인이 흥겨운 가락을 연주하자, 장구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는데 목소리는 꾀꼬리 같았고, 음정 박자까지 완벽한 구성진 노래는 인기가수 능가하는 실력에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잔 씩 돌던 술잔은 어느새 바닥을 보였고, 이어진 술병들이 쌓이는 속도보다 취기가 더 오른 나는 더이상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여인은 살며시 일어나 소위 말하는 스트립쇼를 선보이는데, 언제 변한 건지 조명은 분위 있게 바뀌어 있었고, 장구의 여인은 사라졌고, 색소폰 연주자가 자리해 있었다.
분위기 있는 조명 속에 끈적이는 색소폰연주와 19금보다 더 진한 여인의 스트립쇼는 사회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필자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창호지를 곱게 바른 방문 틈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라 자릴 박차고 일어나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어젯밤 나이 어린 여인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한송이 백합 같은 모습으로 꿀물을 내밀었다.
지난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없지만, 방안을 둘러보니 정갈하고 깔끔한 방안에, 향기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 숙취로 아픈 머리가 금방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소녀 같은 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스트립쇼가 끝나고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나를 옆방으로 데리고 가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재웠다며, 아무일도 없었으니 걱정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마침 일요일 휴무로 편히 쉰 나는 다음날 출근하자, 도 다른 대리점주가 저녁을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다.
난 몸 상태가 안좋아 다음에 하자고 미루니, 누구와는 술 마시고 누구는 밥도 안 먹냐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전날 일이 알려졌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불려 나간 자리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려니, 간단하게 술한잔 하자고 데리고 간 곳은 또 다른 유흥세계인 룸살롱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에게 말로만 들었던 룸살롱은 부산 유흥의 일번지라 부르는 남포동의 중심가에 자리했고,
입구에서부터 서양식으로 꾸며진 호화로운 시설과 눈부신 네온사인만 봐도 혈기 왕성한 나에게는 흥분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안으로 안내받은 우리는 널따란 테이블 주위로 척 봐도 알 수 있는 고급 쇼파와 룸 내부에는 화장실까지 구비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웨이터로 보이는 나비넥타이의 젊은이가 주문을 받았다.
당시 유명한 양주(이름은 기억 안 남)와 안주(통과일/호스티스들이 옆에 앉아 직접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줌)들을 주문하자, 아가씨들이 마담이라 불리는 나이 많은 여자와 함께 들어왔다.
B 점주(편의상 두 번째라 B로 칭함)는 나에게 맘에 드는 아가씨를 선택(요즘으로 치면 초이스)하라고 말했다.
나는 좀 머뭇거리자 B 점주가 선택하여 내 옆에 앉히고, 자신도 다른 아가씨를 선택했다.
이윽고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B점주는 밴드를 불렀고,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밴드는 기타와 올 겐, 스피커를 비롯한 음반 기계들이 세트로 꾸며졌다.
당시는 술 파는 노래방(보도 영업)은 몇 년 뒤에 나왔으며, 룸살롱 같은 유흥 업소는 밴드에 의존하여 소위 말하는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는 시대였다.
B점주의 성화에 못이겨 마이크를 쥐고 노래 한 곡을 불렀다.
가수 함중아의 ‘안개 속에 두 그림자’를 나름 멋있게 불렀다고 자부하며 무대를 내려오자, 환호 소리와 함께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앵콜이 쇠도했다.
안 이어서 몇 곡을 더 부르자 취기도 가시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이 지나고, B 점주로부터 차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카페에 들어서자 B점주는 모자를 눌러쓴 모르는 사람과 앉아있다가 나를 반겼다.
인사를 하라며 소개해준 이는 바로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 함중아 였다.
8부에 계속
첫댓글 인생 드라마입니다.
말로만 듣던 요정과 룸살롱.
상상이 안되지만 통과~~
국장님 노래는 꼭 들어봐야 겠습니다.
코로나 끝나면 언니하고 함께 가는 걸로.
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