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해 여름, 세상 아무 것도 무섭지 않던 열아홉 살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웃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왔다. 바지 주머니에도 족히 두어 마리는 들어가겠다 싶게 형편없이 작은 새끼 고양이였다. 우리 식구는 그 고양이를 야옹이라고 불렀다. 그건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관습적인 호칭이지 정식 이름이라곤 볼 수 없을 터인데, 그처럼 이름 하나 지어주지 않고 야옹이라고만 부른 것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우리 식구는 처음부터 그 고양이에 대해 무심했다. 낯선 생명체 하나가 방안이며 마루를 잘잘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음에도 식구들은 첫 대면의 호기심이 지나고 나자 더는 고양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해 여름, 그 고양이 한 마리를 새 식구로 받아들였다는 것말고는 내 일상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아니다, 제법 중요한 사건 하나가 있다.
나는 그 해에 처음 자위행위를 배웠다. 늦봄인가 초여름인가, 때아닌 가랑비가 다소 을씨년스럽게 골목길을 적시던 어느 날 밤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는 연신 은밀한 상상을 떠올려가며 오래도록 성기를 흔들어 댔다. 그것은 성기와의 전투라 할 만했다. 손목이 뻐근했고, 이마와 목덜미엔 땀방울이 맺혔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긴장감으로 가슴은 내내 담 넘어가는 도둑처럼 파닥거렸다. 한참 후에, 피가 한쪽으로 몰리듯 등마루부터 시작해 온몸이 저릿해지는가 싶더니 펌프를 타고 오르는 물줄기처럼 강한 압력 속에서 희멀건 액체가 분출되었다.
그 짧고 격한 쾌감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견딜 수 없는 수치심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참담했다. 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저열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 가지를 빼면 그 해 여름 내 삶의 언저리에는 아무 중요한 일도 없었다. 하기야 그밖에도 몇 가지 사소한 일은 있다. 예컨대 <새나라 전기>에 취업한 일도 그 중 하나이겠다. 잠깐 그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나는 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반이었다. 당시 공고생들은 3학년에 올라서면 1학기 중반부터 현장 실습을 나가게 돼 있었다. 학생 신분이다 보니 실습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일 뿐 그것은 사실상의 취업으로서, 실습 나간 학생들은 학년말 시험과 졸업식 두 차례만 학교로 돌아오면 될 뿐 그밖에 모든 일에서 학교와는 무관했다.
아마 6월이었지 싶다. 나는 담임으로부터 같은 전기과의 급우 세 명과 함께 <새나라 전기>로 현장 실습을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 명은 즉시 수업 중인 교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가서는 성적 증명서 등 면접에 필요한 몇 가지 서류를 준비했다. 그것으로 학교 생활은 ‘쫑’이었다. 서류 준비를 끝낸 우리는 바로 가방을 챙겨들고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아직 수업 중인 시간이라 넓은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창창한 여름 햇발만 저 혼자 쏟아지며 여기저기 사금파리 같은 모래 비늘에 얼비쳐 나른하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우중충하고 탁한 빛깔의 실습장, 그 앞으로 제법 깔끔하게 조성돼 있는 길쭘한 화단, 운동장 한쪽에 사열이라도 받듯 일자로 늘어서 있는 낡은 평행봉들, 삼 년 동안 보아온 그 모습들이 왠지 처음 보는 것처럼 아련하게 낯설었다.
우리는 그 낯선 느낌에 취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이윽고 서로를 마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학교 생활도 끝이구나, 자 훨훨 날아보자!
우리의 웃음 속에는 분명 그런 푸릇한 들썽거림이 깔려 있었으리라.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로소 그토록 기다려 오던 빛나는 청춘의 대열에 막 첫걸음을 디디고 있는 거라고.
면접 날 <새나라 전기>에는 서울 시내의 각 공고에서 차출돼 온 54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형식적인 면접 절차를 거친 후 그 날로 부서 배치를 받았다. 곧바로 칙칙한 감청색의 작업복과 모자가 한 벌씩 지급되었고, 학생들은 생산계장을 거쳐 각반 반장들에게 인계된 다음에 자기 자리 하나씩을 배정 받았다.
내 자리는 선풍기를 뽑아내는 컨베이어 라인의 세 번째 공정이었다. 거기엔 생전 처음 보는 에어드라이버가 시골집 처마의 옥수수처럼 공중에 매달려 건들거리고 있었다. 내가 배정 받은 자리로 다가가자 생머리를 뒤로 묶은 내 또래의 전임자 여공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며 공연히 피식 웃었다. 나도 씩 웃어주었다.
그 해 여름,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애구, 쥐한테 잡혀 먹히고 말겠네!”
여동생은 고양이를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고작 베개 높이에서 뛰어내리다가도 벌러덩 뒹굴고 마는 야옹이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 언제쯤 담장을 내달리며 쥐를 잡을 수 있을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기야 우리 가족이 야옹이에게 쥐잡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 같은 경우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야옹이를 보면서 그 놈이 어느 날 갑자기 피칠갑한 입에 쥐라도 물고 나타날까 봐 걱정이 대단했다. 그래서 처음엔 야옹이에게 가장 무심했던 어머니가 차츰 가족 누구보다도 야옹이 밥을 잘 챙겨주었다. 야옹이를 배고프게 만들었다간 큰일난다는 것이었다.
야옹이는 항상 가족 누군가의 몸에 기대어 있었다. 고양이처럼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동물도 없는 것 같았다. 특히 사람의 품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어쩌다 야옹이 생각이 나 이리저리 둘러보면 마치 숨어 있기라도 하는 양 누군가의 가랑이 사이나 허리께에 온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야옹이를 깔아뭉갰다. 방에 누워 있다가 무심코 옆으로 돌아누웠는데 순간 배 밑이 물컹하더니 야옹이의 비명이 자지러지게 튀어 올랐다. 내 허리에 감겨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몸을 움직이기 전이면 꼭 한번씩 주변을 살펴보고는 했다.
차츰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방바닥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가 자세를 한번씩 바꿀 때마다 둘레둘레 야옹이의 존재부터 확인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가족들이 그렇게 조심을 하는 데도 며칠에 한 번씩은 야옹이의 숨가쁜 비명이 터졌다. 하기야 야옹이는 그 수난을 통해 조금씩 우리 가족과 친밀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야옹이를 밟거나 깔아뭉개고 나면 그 미안함으로 해서 아무래도 다른 배려가 조금이나마 늘어나게 마련이었으니까.
<새나라 전기>에 나가면서부터는 야옹이를 볼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면접 때에는 빨간 날짜는 다 쉰다고 하더니 실제 근무에 들어가니 일요일조차 찾아 먹기 힘들었다. 거기에다 걸핏하면 잔업이 있었다.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되는 잔업 통보도 불만이었거니와, 거의 매일 자동으로 연장되는 그 ‘시간외 작업’에 왜 ‘남은 작업’이라는 뜻의 잔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자리의 공정은 콘베아에서 흘러 내려오는 선풍기를 받아 에어드라이버로 몸체 네 군데에 볼트를 조이는 일이었다. 에어드라이버는 버튼만 누르면 쉬이익 칼바람 소리를 내면서 자동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공상 영화의 첨단 장비만 같아서 에어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일이 제법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재미는 첫날의 몇 시간뿐이었다. 게다가 종일 지겹게 반복되는 그 단순 작업이라니, 하루 일을 끝내고 퇴근하면서 내가 했던 일을 돌아보면 도대체 자신이 생산에 관계된 무슨 일을 하긴 한 건지 그저 멍한 기분이었다.
우리 반원은 모두 스물한 명이었다. 그 중에서 남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에 불과했다. 아니, 반장 하나가 더 있었다. 자칭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고 떠벌리기 잘하던 그 사람의 성격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반원인 여공들에게 거침없이 상소릴 던지며 을러메는가 하면 어느 땐 친오빠인들 저럴까싶게 곰살맞게 굴었다. 반장은 또 ‘사회는 냉정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자기 딴에는 세상 경험의 선배로서 무언가 조언을 하려는 의도였을지 몰라도 들으면 들을수록 정나미 떨어지는 게 그 말이었다. 고압적인 말투로 지루한 훈시를 늘어놓은 다음에 양념처럼 따라붙고는 하던 말이었으므로 더 그랬을 것이다.
실습 나온 학생들 중에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게 된 아이들은 변전실에 근무하게 된 세 명뿐이었다. 나머지 싄한 명은 모두 생산과 소속이었다. 생산과에서도 검사반이나 모타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나마 테스터 등 몇 개의 기기를 조작하며 학교에서 배운 것을 써먹어 볼 수 있었지만, 나처럼 생산라인에 배치된 아이들은 종일 볼트나 조이고 푸는 게 일이었다.
일은 숨돌릴 새 없이 바빴다. 잠깐 화장실에만 다녀와도 내 앞의 콘베아에는 위에서 흘러온 일감이 바자회의 떨이 물건처럼 어수선하게 밀려있었다. 그러면 반장이 다가와 쏘아대기 전에 부리나케 처리해 다음 공정으로 내려보내야만 했다.
며칠 지나자 벌써 한심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십 년쯤 일해 봐야 겨우 반장이나 되어 콘베아를 오르내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정말이지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건지 하는 아득한 무력감이 온몸에 차 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 거의가 다 그런 자조감에 빠져 있었다.
일 주일이 지나자 일곱 명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 주일째에는 다섯 명이 떨어져 나갔다. 차츰 학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투덜투덜 메마른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고에 다니는 내 친구는 은행에 취업 나갔더라구. 빨간 날짜는 다 쉬지, 월급도 우리 두 배가 넘지, 걔네들 양복 입고 다니는 거 보니까 나하곤 벌써 다른 인생 같더라구.”
“어쩌다 사무실에 올라가면 사무직 여자애들 우리 대하는 것 봤지? 눈꼬리 올리고 틱틱거리기나 하면서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더라구.”
“반장 그 새끼들은 무슨 큰 벼슬 한다고 그렇게 입이 거냐. 젠장, 내가 뭐 빨아먹겠다고 공고 다녔는지, 아이구 더러워서...”
허나 그뿐이었다. 껌 씹듯 질겅질겅 자신의 하루 생활을 위악적으로 이죽거리는 것말고는 누구도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술과 담배만 늘었다.
그나마 학생들에게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여공들이 호의적으로 대해 준다는 점이었다. 여공들은 우리를 기존의 공원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학생들은 기름 냄새에 절어 있는 여느 공원들보다는 대체로 말쑥했고, 말 한 마디를 해도 좀더 재치가 있었으며, 그 또래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런저런 잡기에도 능한 편이었다.
나만해도 동네에서 어설프게 배운 솜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타 실력이 반원 중에 제일 나았다. 점심 시간이나 회식 같은 때에 그럴싸한 폼으로 ‘로망스’니 ‘에스터데이’ 등을 연주하면 여공들 모두가 그윽한 눈빛이 되어 바라보고는 했다. 어쩌다 밖에서 어울릴 때면 탁구 실력이 또 나를 돋보이게 했다. 게다가 여공들은 교복을 입은 우리들과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학생들이 데이트를 신청하면 거절당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공원들은 우리를 질시하는 편이었다. 우리 나이와 엇비슷한 젊은애들이 더 그러했는데, 그들은 우리가 탈의실에서 교복을 갈아입는 모습만 보아도 괜히 빈정거리고는 했다. 학교도 나가지 않으면서 뭐하러 교복을 입고 출근하느냐는 거였다.
그런 미묘한 질시와 경원이 바탕에 있어 생긴 일일 것이다. 마침내 한번은 실습생 중의 하나가 젊은 공원들 몇 명에게 뭇매질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학생 하나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들에게 제지를 받은 것이 그 싸움의 발단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학생들은 크게 흥분했다. 학생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저마다 한 마디씩 목소리를 높였다.
“개새끼들, 지들이 뭐야? 우리가 담배 피우든 말든 제 놈들이 뭔데 간섭하는 거야.”
“이 참에 버릇을 고쳐나야 돼. 우리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해야 된다구.”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학생들은 <실습생 협의회>라는 걸 조직하게 되었다. 실습생들의 권익 옹호와 친목 도모라는 다분히 구태의연한 목적이 전부였지만, 어쨌거나 회장과 총무 두 임원이 선출되었고 간단한 회칙도 확정하여 모임의 구색은 갖춘 편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나는 그 협의회의 총무를 맡게 된다.
중국집 방을 얻어 협의회 창립식을 가지던 날 학생들은 무슨 거창한 조직이라도 만드는 양 기분 좋게 들썩거렸다. 노조도 없는 회사였으니 하기야 42명이나 되는 단체란 무언가 막강해 보이기는 했다.
그 협의회가 최초로 결의한 일은 학생을 뭇매 준 공원들에게 복수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한 아이가 말을 꺼내자마자 이구동성으로 동의가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대번에 경쾌한 비장감에 휩싸여서는 사르르 전의의 눈빛을 피워 올렸다.
“으흐흐...”
한 아이의 음산한 웃음이 모두의 기분을 대신했다. 너나없이 온몸이 근질거려 못 견디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제안은 일사천리로 결의되었다.
창립식 바로 다음 날, 나는 협의회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공원들에게 도전장을 전했다. 치기만만하게 휘갈긴 그 도전장에는 근무가 끝나는 대로 회사 후문 밖에서 결투를 벌이자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뭇매를 준 공원들이라야 전부 여덟 명에 불과했으므로 결투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행여 동네 건달들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염려하여 약간의 각목까지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협의회의 그 첫번 사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겁을 먹은 공원들이 화해를 청해 왔던 것이다. 한판 신나는 결전을 기대하고 있던 학생들로서는 다소 맥이 풀리는 일이었지만 저쪽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오니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는 절대 학생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단단한 약조를 받고는 결투를 취소했다.
시시한 이야기 그만하고 다시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야옹이는 쑥쑥 자랐다. 웬일인지 야옹이는 아가 티를 벗고 나서도 집 밖으로는 나다니지 않았다. 애써 밖으로 데리고 나가도 대문만 벗어나면 기를 쓰고 품에서 빠져 나와서는 쪼르르 집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숫기가 없어 보였다. 그런 점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보다 재미가 적었다.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아양을 부릴 줄도 몰랐고, 같이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일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고양이는 비교적 과묵한 동물이었다. 사실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나는 과묵한 쪽에 점수를 주는 편이다. 정작 내 자신은 누구에게나 이물없이 말을 잘 하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입술에 침 마를 새 없이 따따부따 말만 많은 사람은 영 좋아지지가 않았다.
<새나라 전기>에는 엄청 수다스러운 여자가 하나 있었다. 그 여자는 내 바로 맞은 편 자리여서 나는 작업 시간 내내 그 쉼 없는 수다를 들어주어야만 했는데, 아아! 그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이던지, 아무 응대 없이 그저 열린 귀 가지고 대충 들어줄 뿐인데도 몇 분만 지나면 벌써 귀가 멍멍해졌다. 어떤 때는 의식마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수다를 흔히 따발총에 비유하던데, 정말이지 그 수위가 한계에 오르면 온몸 구석구석에 기관총 탄알이 날아와 박히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여공들은 대개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그 나이의 여자들이 누구는 안 그럴까만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들 웃고 많이 재재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나로서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물론 조용한 여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맞은 편 아래쪽에 있었던 정화라는 여자는 다소 지나치다 싶게 말이 없었다. 말수만 적은 게 아니라 동작 하나 하나가 옛날 반가의 규수처럼이나 다소곳하고 차분했다. 모두 흥청거리는 반 회식 때에도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혼자 적막한 툇마루에 앉아 ‘뜸북 뜸북 뜸북새’나 부르고 있어야 딱 어울릴 여자였다.
나는 그 여자 정화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런데 다른 여공들에게는 서슴없이 장난을 걸거나 퇴근길에 어울려 튀김도 사먹곤 하는 나였으면서도 정화 그 여자에게는 어쩐지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정화와 내가 서로 가까워진 계기는 내 첫 번째 안전 사고였다.
나는 근무한 지 한 달쯤 지나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선풍기의 목이라 할 짧은 쇠파이프를 결합하는 공정이었다. 몸체에 쇠파이프를 결합하면서 버튼을 눌러 목이 제대로 올라오는지 검사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목 위로 바람개비가 얹히면 그 무게로 해서 유연하게 오르내리게 되겠지만, 내가 조작하는 단계에서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쇠파이프가 비밀 무기처럼 기세 좋게 솟구쳐 올랐다.
내게 그 공정을 인계해 준 전임자는 조심하지 않으면 턱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 경고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여러 번이나 그 전임자가 쇠파이프에 턱이나 얼굴을 강타 당하는 모습을 보아 온 터였다.
“걱정 마요. 나는 한 번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전임자는 실실 웃기만 했다. 나도 속으로 웃었다. 정신을 놓고 일하니까 그런 꼴을 당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버튼을 누르면서 눈으로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인데 얼굴은 왜 갖다 대는가 말이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었다. 아니, 이론상으로는 맞았다. 선풍기를 몸에서 떨어뜨린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쇠파이프에 맞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그 일을 하다보면 나중엔 앉은 자세에서 선풍기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오후가 되면 양어깨와 팔은 물론이고 척추 아래까지 뻐근하게 결렸다. 결국 선풍기를 몸 가까이 끌어당기던가 아니면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을 해야만 했고, 그러다 보면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둔중한 쇠파이프가 턱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방심이란 무엇인가? 그건 일에 집중하지 않고 잡념에 빠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쉼 없이 연속되는 단순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정신은 오히려 반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고, 그러면 무아지경의 그 나슨한 긴장 사이로 순간적인 의식 마비가 오고는 했다. 예컨대 사고란 작업의 일부였다.
작업 닷새째던가, 아차 하는 사이에 쇠파이프가 턱 윗부분을 강타했다. 어이쿠! 나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턱을 싸쥐고 주저앉았다. 정신마저 몽롱해질 정도였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이나 일손을 놓은 채 턱을 쓰다듬어야 했다.
그때 정화가 내게로 왔다.
“이거 바르세요.”
정화의 손에는 작은 안티프라민 통이 들려 있었다.
“처음엔 몹시 아플 거예요. 잘못 맞으면 이가 부러지는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돼요.”
정화의 사분사분한 목소리가 개울물 흐르듯 내 귓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아마 멍청해져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계면한 얼굴로 안티프라민을 받아 쥐자 정화는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정화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사실 나는 벌써부터 정화를 바래다주고 싶었었다. 잔업이 있는 날이면 주변이 어둑해져서야 퇴근하게 되는데, 남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거나 정문 앞 공터에서 통근버스에 오르고 있을 때 정화는 혼자 회사 맞은편의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고는 했다. 오롯이 고개 숙이고 토각토각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정화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같이 걸어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안티프라민을 돌려준다는 핑계가 있었다. 나는 정문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정화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낮엔 정말 고마웠습니다.”
“뼈에 맞으신 것 같던데 내일은 조금 부어 오를 거예요.”
“집이 이 안쪽에 있나요?”
“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같이 걷게 되었다. 정화는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 나오는 동네 안쪽에 자취방을 두고 있었다. 왼쪽으로 다보록히 자란 푸성귀 밭이 죽 이어지고 길 오른쪽으로만 드문드문 주택들이 보이는 그 길은 외진 시골길처럼 으슥하고 한적했다.
“밤에는 조금 무섭겠어요?”
“늘 다니다 보면 괜찮아요.”
우리는 어느 허름한 사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화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거리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는 마당을 질러 쪽마루가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불이 밝혀지면서 방문 창호지에 정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어 사립문 앞에 한참 동안 어름거리며 서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면서도 나는 몇 번이나 정화가 들어간 방문을 뒤돌아보았다.
그 후로는 일 주일에 한 번 꼴로 정화를 바래다주었다. 같이 걸으면서도 정화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색해지지 않도록 무언가 계속 새로운 화제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러자니 정화 앞에서만은 나도 수다쟁이가 되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여자이기도 했지만 정화는 나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바래다주겠다고 하면 사양하는 경우는 없었다.
정화를 처음 바래다준 날로부터 한 달쯤 되었을까, 나는 생각지 않았던 일로 하루종일 정화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거기엔 조금 우스꽝스런, 사실은 서글프다고 해야 할 어떤 계기가 있다.
그 얼마 전부터 새나라 전기는 별쭝스런 규칙 하나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출근 시간인 8시 정각이 되면 회사 정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각을 줄여 보겠다는 회사 나름의 아이디어로서, 일 분이라도 지각하는 자는 아예 들여보내질 않겠다는 공고가 그 며칠 전에 내려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오 분쯤 늦게 회사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지각자들이 모여 경비와 작은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 정화도 있었다. 그 날은 마침 월요일이어서 정문에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회사 마당에 전사원들이 나와 조회를 서고 있었다. 그렇듯 아직 작업도 시작되지 않았건만 경비는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경비를 상대로 화를 내거나 사정을 해가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엄한 지시를 받은 경비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분이 흘렀고, 지각자들은 조회를 마친 사원들이 우르르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걸 굳게 닫힌 철망 뒤에서 멀뚱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건 참 처량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인간 결격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정화는 그때까지도 경비를 상대로 집요하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승강이에 지친 경비는 훌쩍 몸을 돌리더니 경비실로 들어가 버렸다. 정화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면서 돌아섰다. 돌아서는 정화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게 보였다.
개새끼들! 내 입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정문의 철망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그러자 나를 따라 몇 사람이 연달아 정문을 걷어찼다. 곧 경비가 씨근거리며 달려나와서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한바탕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그 서슬 푸른 기세에 다들 슬금슬금 물러섰지만 나는 지지 않고 끝까지 경비와 싸웠다. 똥감태기 쓴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경비는 싸워 봤자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했던지 다시 경비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정화를 돌아다보았다. 정화는 반쯤 고개를 숙인 힘없는 모습으로 발끝에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나는 다소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화에게 다가갔다.
“잘 됐지요 뭐, 이참에 하루 쉬는 거지요. 그까짓 하루 일당 가지고 죽고 살 것도 아니고 아예 휴가 얻었다고 생각하자구요.”
정화는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개자식들, 라인에 차질 생기면 지들만 손해지...”
나는 연신 혼자서 궁시렁거렸다. 솔직히 나로선 하루 쉴 핑계가 생겨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자기들이 일 안 시켜주겠다는데 구걸하듯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정화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회사 문은 결코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는 공원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패잔병의 꼴 한 가지였다. 나는 텅 비어 적요하기만 한 회사 마당을 물끄러미 건너보다가 정화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요. 내가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 드릴게요.”
정화는 서름한 눈빛으로 정문을 건너보고는 이윽고 마지못해 하는 얼굴로 나를 따라 돌아섰다. 우리가 큰길 쪽으로 몇 걸음 옮겼을 때 등뒤에서 일과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무적처럼 길게 울었다.
그 날은 참 즐거웠다. 시종 정화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를 쓴 덕분에 정화는 점심을 먹을 때쯤부터 조금씩 웃음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휴우, 드디어 성공이네!”
“미안해요. 아니, 고마워요.”
아, 그때 배시시 웃던 정화의 얼굴이라니. 그 다음부터는 사뭇 유쾌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탁구를 치고, 한적한 공원을 거닐었고, 영화 구경을 했고, 음악 다방에 앉아 시원한 냉커피를 마셨다. 이런 게 데이트구나! 정화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 한 자락만 떠올라도 나는 가슴이 온통 뻐근해졌다.
하지만 다음 날, 우리는 모처럼 즐거웠던 그 하루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반장이 우리 두 사람을 불렀다. 반장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우리 둘을 세워 놓고 호된 질책을 퍼부어 댔다. 나야 상관없었다. 고개를 푹 떨구고 중죄인처럼 서 있는 정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끝내는 줄 알았던 반장이 “사회는 냉정한 거야” 라면서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기어코 억누르고 있던 울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들여보내지 않는데 하루종일 문 밖에 서 있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어떻게든 들어와야지. 그렇다고 제멋대로 가 버려?”
“도대체 뭐가 제멋대로예요? 열어주질 않았다니까요.”
“그럼 전화라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지각도 부족해서 무단 결근까지 해?”
“하기 싫었습니다!”
“뭐야 임마!”
결국 반장과 한판 입씨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나는 결기를 바짝 세워 다라지게 밀어 붙였다. 말에 몰린 반장은 급기야 공구함까지 쳐들고는 내 머리통을 부수겠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는데, 그건 실수였다, 나는 씩 웃으며 옆에 있던 쇠파이프 하나를 챙겨 오른손에 거머쥐었다.
“해 봅시다! 나도 공고 삼 년 좆같은 세월에 싸움질만 는 놈이요.”
새끼 건달 같은 유치한 말수작이었다. 어쩌겠는가, 내가 온마음 바쳐 즐거운 날을 만들어 주었던 여자가 바로 그 일로 해서 모진 험구를 듣고 있는데야 열아홉 혈기방장한 나이로 목에 칼인들 못 대겠는가. 내가 그처럼 걸팍지게 나가자 반장 쪽에서 먼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동시에 반원들이 우르르 나서서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반장은 나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하기야 나 또한 반장에게 좀더 공손해지기는 했다. 어쨌거나 상급자 아닌가, 익숙해진 건지 무심해진 건지, 그 이후로는 반장의 행동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밖에도 매사에 체념하는 버릇이 들어갔다.
여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야옹이는 이제 책상이나 창틀 위에서도 가뿐히 뛰어내렸다. 기껏 몇 달 사이에 어른이 다 돼 있었다. 다행이 쥐는 물어오지 않았다. 부지런히 생선 토막까지 챙겨 제공하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야옹이는 어느 날부턴가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를 반가워하며 달려드는 건 아니었다. 내 눈과 마주치고 나면 그것으로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들어온 다음엔 더 이상 대문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를 기다렸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도무지 애교라곤 모르는 녀석이 어둑한 그 시간까지 대문턱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기다린다는 게 대견스러워 나는 가끔 생선을 사들고 와서는 통째로 야옹이에게 던져 주었다.
야옹이가 식사를 할 땐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한창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장난을 걸면, 이 놈은 생선을 갖다준 내 성의도 아랑곳없이 볼강스럽게 눈꼬리를 치켜들며 가르릉거렸다. 못된 놈! 그러나 생선을 다 해치우고 나면 이내 내 무릎을 타고 올라서는 비릿내 나는 혓바닥으로 내 손등을 쓱쓱 핥았다. 그러면 나는 핥는 대로 놔두었다가 야옹이가 떠나고 난 후에야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야옹이의 어떤 자세들은 그 가당찮은 근엄함으로 해서 나를 슬며시 웃음 짓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호랑이를 닮은 자세였다.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걸어갈 때, 혹은 앞다리를 반쯤 구부리고 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좌우를 살피거나 할 때에 그런 자세가 만들어지는데, 기껏해야 목침 정도의 덩치밖에 안 되는 놈이 그렇듯 근엄한 몸가짐을 연출한다는 게 나로선 여간 우습지 않았다.
물론 고양이의 전형적인 자세라면 역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야옹이가 똬리를 트는 장소는 주로 부뚜막 위였다. 처음엔 그 때문에 여러 번이나 놀랐다. 어두운 부엌에 들어서서 불을 켜는 순간 부뚜막 위의 시커먼 뭉치와 마주치게 되면, 그것이 야옹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의 일이 초간 서늘한 기운이 쭈뼛 머리끝으로 치솟는 것이었다. 내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자기를 보고 있으면 야옹이는 둥그스름한 털방석에 머리 하나 달랑 얹힌 듯한 그 똬리 상태에서 고개만 사부자기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 야옹이는 결코 먼저 고개를 돌리는 법이 없었다. 일점의 동요도 없이 일직선으로 맞받아 올려보는 그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흡사 박제된 동물의 그것처럼 섬뜩하기조차 했다. 고양이란 동물은 태생 자체가 먼저 눈길을 돌리지 않도록 생겨먹은 모양이었다. 언젠가 나는 ‘요놈 봐라!’하는 심정이 되어 내기라도 하듯 오래도록 야옹이를 마주 쏘아본 적이 있다. 그래봐야 오 분 남짓이었지만 결국엔 눈알이 아픈 내 쪽에서 먼저 물러서야만 했다. 야옹이는 그 동안 눈 한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고양이란 동물은 교활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멍청한 쪽에 가까웠다. 고양이가 개보다 지능지수가 높다고 하던데, 실제의 지능지수야 어떤지 몰라도 고양이는 도무지 사람의 감정을 눈치챌 줄 몰랐다. 어쩌다 성가신 마음이 들면 야옹이를 냅다 던져 버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이놈은 내 신경질 따위는 아랑곳없이 금세 빠르르 달려와서는 허리춤으로 파고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조금씩 야옹이가 좋아졌다. 놈의 과묵함,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자태, 내 기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멍청함, 그런 것들이 그럭저럭 야옹이의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렇듯, 그 해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세월을 죽여갔다. 그 해 여름에 내 삶에 끼여든 인상적인 일은 그것뿐이었다.
몇 가지 사소한 일은 있다. 얘길 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해 여름에 <새나라 전기>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공고 졸업반의 학생 신분으로 현장 실습을 나갔던 것으로, 하루종일 에어드라이버로 볼트를 조였고, 일당 540원이었고, 잔업과 휴일 특근까지 계산하면 한 달에 약 3만원 안팎의 월급이 만들어졌다. 그러면 2만원 정도는 집에 갖다 줄 수 있었다. 조금 적다는 생각이었지만 졸업을 해 실습생 신분에서 벗어나면 일당이 조정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참, 어떤 여공과 연애 비슷하게 사귀기도 했다. 정화라는 여자였다. 결코 연애는 아니었다. 여자도 나도 너무 조심스러웠고, 막상 이렇다 할 교제 같은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여자에게 짝사랑 비슷한 연정을 가지고는 있었고, 그래서 몇 번은 그 여자와의 동침을 떠올리며 자위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 여자 정화와의 마지막 기억은 떠올리기 착잡하다. 조금 우울한 기억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씁쓰레한 사건 하나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어느 날 작달만한 키의 젊은 공원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주물, 선반, 프레스 등을 다루는 생산2과 소속이어서 학생들과는 별로 접촉이 없던 공원이었다. 그는 나에게 ‘실습생 협의회’의 간부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간부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겨드랑이가 근지러웠다.
그 날 퇴근 후, 나는 협의회의 회장과 함께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다방에서 일곱 명의 공원을 만났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생급스럽기만 했는데, 그들의 진지하면서 간절한 표정엔 무언가 필사적인 의지 같은 게 깔려 있어 우리마저 덩달아 긴장시켰다.
“며칠 전에 동료 한 사람이 쇳물을 옮기다가 발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못해도 사나흘은 입원 치료를 해야 되는데, 뭐 사실은 흔한 사고지요. 그 정도는 이제 우리도 회사도 놀라지 않아요. 며칠 쉬면서 치료받으면 그만이지요. 헌데 그 친구는 병원에 단 하루만 입원했다가 오늘 출근했어요. 회사에서 공상 처리를 안 해주기 때문에 자기 돈으로 치료해야 되는데 돈이 없는 거지요. 그런 일은 당연히 공상 처리가 되야 하는 건데 회사에서는 우리 실수라고 몰아붙이기만 해요. 사고 당한 사람이 세게 나가면 공상으로 처리하긴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근무 불량으로 회사가 손해를 봤다고 우기면서 다음 임금 인상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공상 처리해서 간부들한테 미움만 받고 또 임금 인상에서도 제외되면 자기만 손해지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제 돈으로 치료를 하고 마는데, 공상이 아니니까 회사를 안 나오면 결근 처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절뚝거리면서도 나와서 일해야지요. 개 같은 경우 아닙니까? 당신들 같으면 어떡하겠어요?”
회장과 나는 멀뚱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들은 대로라면 확실히 개 같은 경우였다. 우리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다음 말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이건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서 예를 든 것뿐이지 사실은 더 심한 경우도 허다해요.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회사에서는 신경 안 써요. 퇴직금 몇 푼 주고는 퇴사시켜 버리고 맙니다. 누가 사고 내고 싶어서 사고 냅니까? 그런데 사고만 났다 하면 죄다 우리 책임이라는 겁니다.”
키 작은 공원은 차츰 자기 말에 스스로 달아올라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조심스레 우리 표정만 살피고 있었다.
이윽고 회장이 제법 대표다운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더러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우리는 이번 기회에 회사하고 단단히 한번 붙을 작정입니다. 언제까지 당할 수만은 없지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우리 일곱 명은 출근만 하고 일은 안 하기로 결정했어요. 우리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버틸 겁니다.”
“그럼 회사에서는 가만있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사실 일곱 명 가지고는 싸우기가 힘들어요. 우리가 밀고 나갈 때에 다른 사람들도 합세해 주기를 바라지만 바라는 대로 될지는 알 수 없지요. 사실 이미 같은 부서 사람들한테도 얘기를 해 보았는데 우리 일곱 명 외에는 더 모아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댁들한테 협조를 부탁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우리하고 함께 행동한다면, 학생들 숫자가 많으니까 회사에서도 지들 맘대로만 하지는 못할 겁니다.”
회장과 나는 다시 얼굴을 마주보았다. 말을 다 끝낸 공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번엔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네요. 애들하고 의논한 다음에 알려 줄게요.”
공원들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공원들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거듭거듭 부탁한다는 말을 던졌다. 그들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다음 날 바로 협의회를 소집했다. 회장은 전 날의 공원들 표정만큼이나 비장한 얼굴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의 표정도 전 날의 우리만큼이나 진지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회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회의랄 것도 없었다. 학생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공원들을 도와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전에 공원들을 테러하자고 할 때보다도 빠르고 단호한 결정이 내려졌다.
아마도 그건 학생들 특유의 순수한 정의감이었으리라.
그런 쳐죽일 놈들이 있나, 하고 거칠게 내뱉는 말속에는 학생다운 카랑카랑한 혈기가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또한 그런 결정엔 그간 켜켜이 쌓여 온 억하심도 한몫 했을 것이었다. 학생인지 공돌인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처지, 장래에 대한 막연한 초조와 불안,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쌓여 가는 자조감, 그런 것들. 게다가 학생들은 두려워할 게 하나도 없었다 할 것이, 비록 시원찮은 공고 출신이라지만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는 입장으로서 그까짓 콘베아 따위에 자기 청춘을 걸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수틀리면 사표 던지고 나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아이들끼리 늘 해온 게 그 얘기 아니던가. 이까짓 곳 때려치우면 우리가 어디 갈 데 없겠느냐고, 아이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의 사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들뜬 기분으로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유쾌한 기다림이었다. 어려운 처지의 공원들을 도와준다는 뻐근한 자부심, 회사와 한판 신나게 맞붙는다는 거친 호승심, 그건 수학여행 기다리는 것 이상의 상큼한 근질거림이었다.
공원들을 만난 이틀 후이던가, 나는 모처럼 정화를 바래다주게 되었다. 정화는 여느 때처럼 별 말이 없었다. 왠지 그날따라 정화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정화의 손을 잡아보고 싶고 입맞춤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속에서 정화를 바래다주고 있었다.
이윽고 정화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대로 돌아서는 게 아쉬워서 공연히 머뭇거렸다. 그때 정화가 몸을 돌리다 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생산2과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했다면서요?”
“네? 아, 네 그러기로 했지요.”
나는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어서 나온 정화의 말이 뜻밖이었다.
“고마워요.”
정화가 내 눈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화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퍼졌다. 네? 라고 내가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정화는 이미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공원들과 학생들의 연대 계획은 이미 회사 안에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우리 반에서도 여러 명이나 나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오고는 했다. 나는 그때마다 조금 우쭐거리는 기분이 되어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주의 토요일 오전이었다. 생산과장이 협의회의 간부인 회장과 나를 불렀다. 우리는 과장을 따라 본관 건물의 어느 으리으리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예쁜 사무직 여사원이 들어와 우리 앞에 뜨거운 커피 두 잔을 내려놓았다.
과장은 협의회의 활동에 대하여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던지더니 슬그머니 월요일의 계획 쪽으로 화제를 옮겼다. 쿵 하면 홀아비 월담하는 소리라 했다. 대충 의도를 짐작하고 있던 회장과 나는 과장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 소신을 밝혔다. 과장은 여유 있게 웃어가며 우리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우리는 거창한 외교 자리에라도 나와있는 듯 괜히 가슴이 뻑적지근했다.
“그런데 말이야...”
바투 다가앉은 과장이 전에 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과장은 더 이상 에두르지 않고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으며 우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과장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작업 시간을 빼먹고 있다는 나른한 행복감 속에서 우리는 그저 방 분위기에 맞는 기품 있는 동작이나 생각했다.
그런데, 차츰 마음이 흔들려갔다. 과장의 제안이 매력적이던 것이다. 앞으로 학생들은 원하지 않는 한 잔업이나 휴일 특근을 하지 않아도 좋다. 졸업 전까지는 토요일에는 오전 근무만 시키겠다. 과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귀를 번쩍하게 만든 말은, 졸업과 동시에 지금의 일당을 배로 올려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실습생 신분에서 벗어나면 일당 조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과장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일당이 배로 뛴다면 그건 오 년 이상 근무한 고참 공원과 맞먹는 액수였다.
“우리끼리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하고 의논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공원들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과장은 악수를 건네며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네들 지금 부서가 마음에 들지 않지? 나중에 원하는 곳 있으면 말해, 내가 그쪽으로 보내줄게.”
우리는 퇴근 즉시 학생들을 모아 협의회를 가졌다. 협의회가 생긴 이후의 세 번째 안건인 셈이었다. 전의 두 번과 달리 이번엔 팽팽하게 의견이 엇갈렸다. 여전히 정의로운 의협심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 생산과장의 제안에 솔깃해 하는 아이들, 머릿수마저 비슷하여 자칫 분열이라도 생길 듯 팽팽하게 갈린 두 패는 오래도록 입씨름을 벌였다.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았다.
“회장과 총무,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느닷없이 한 아이가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대번에 모두의 시선이 우리 두 사람에게 쏠렸다.
“우리야 전체 의견에 따를 뿐이지...”
회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자,
“의견이 통일이 안 되니 그렇지.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너희가 공원들이나 과장을 직접 만난 애들이니까 알아서 판단해 주면 좋겠어. 너희 둘도 의견이 갈린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두 사람이 똑같은 의견을 내논다면 우리는 늬들 결정에 따르마. 어때, 다른 사람들 생각은?”
처음 말을 꺼냈던 아이가 그렇게 말하며 좌중을 둘러보았고,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모두 그 아이의 말에 동의했다. 지쳐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우리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끈적끈적한 침묵이었다. 그 느닷없는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잠깐 어색하게 웃었다. 몸이 옥죄이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우리는 과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쪽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공원들과의 연대 계획은 없던 일로 돌아갔다. 학생들은 언제 팽팽한 엇갈림이 있었냐는 듯 곧 모든 걸 잊고 걸쭉한 뒤풀이 순서로 넘어갔다.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한다 이거지...협의회 만든 보람이 있네...연대 행동을 주장하던 아이들까지도 덩달아 헤살거리며 들뜬 분위기에 휩쓸렸다.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하자마자 일전에 나를 찾아왔던 공원을 만나 협의회의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 공원은 십 초쯤 나를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살차게 돌아섰다. 잠시 마음이 께름했지만 나는 곧 훌훌 털어 버리고 조회를 서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조회가 끝나 오전 작업이 시작되자 공원들은 자기들 일곱 명만으로 예정된 태업에 들어갔다. 생산2과의 누구도 그 태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쪽에서 그들을 제지하는 것도 아니어서 태업 자체는 일단 별일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그들은 무슨 유인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면서 소리 높혀 구호를 외치고는 했다. 그리고 가끔 그들이 부르는 절도 있는 노랫소리가 소란한 기계음을 뚫고 이쪽으로 넘어오고는 했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화라락 고개를 들어 생산2과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렇듯, 엷은 안개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다니는 심상치 않은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그 일곱 명의 비장한 태업은 그저 자기들만의 돌발적인 일탈로 처량하게 진행되었다.
다음 날 아침, 회사 벽보에는 생산2과의 공원 일곱 명을 해고한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자식들...그럴 줄 알았지.”
어느 쪽을 탓하는 것인지 몇 사람이 혀를 차며 궁시렁거렸다. 그리곤 허청하게 웃으며 자기 자리로들 흩어졌다. 출근했던 공원들 일곱 명은 사무직 사원들에 의해 강제로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하루만의 태업은 그렇게 끝났다. 사람들은 그날 오후도 되기 전에 벌써 태업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가는 듯했다.
이튿날 나는 회장과 함께 생산과장을 찾아가 변전실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청했다. 과장은 신경 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제 곧 지겨운 콘베아를 벗어난다고 정신이 느슨해져 그랬는지 나는 그 날 두 번째로 쇠파이프에 턱을 강타 당했다.
그 며칠 후였다.
나는 모처럼 정화를 바래다주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얼른 골목 입구로 달려갔다. 회사 앞에서부터 같이 걸어가면 남의 눈도 있고 해서 처음 바래다주던 날을 빼고는 대개 그렇게 골목 입구에서 기다리고는 했던 것이다.
잠시 후에 색색의 화사한 사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퇴근 시간엔 언제나 푸릇한 활기가 넘친다. 정문 앞은 깨알처럼 튀어 오르는 웃음소리와 수선스런 작별 인사로 흥청거렸다. 이윽고 정화가 무리에서 빠져 골목 입구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올리며 정화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정화는 나를 보고서도 걸음을 세우지 않았다.
바람처럼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정화가 말했다.
“따라오지 마세요!”
뭐라고 말했지? 나는 잠깐 어리뚱하게 서 있다가 뒤늦게 정화의 말을 되새겼다. 따라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했다고 머릿속의 뇌가 반복해 주었다. 그 억양도 되살려 주었다. 송곳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던 억양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짙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정화의 뒷모습을 창망히 바라보았다. 정화의 등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이는 듯했다. 토각토각, 정화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무척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정화를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정화네 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정화는 이미 방에 들어가 있었다. 창호지의 희읍한 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자박자박 끓어올랐다. 이윽고 나는 조심스레 마당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대문 앞에서 돌아서 가곤 했으므로 마당 안으로 한 걸음 들이민다는 게 월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마당을 질러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쪽마루에 손을 짚고 노크를 할까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안에서 어떤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다른 곳에 취직하기로 했어. 너도 그쪽으로 와라.”
“안 돼. 그나마 여기에선 숙련공 대우를 받고 있는데 거기 새로 가 봐야 일당만 적어질 거 아니야.”
“...하긴 뭐 꼭 같은 회사에 다닐 필욘 없겠지.”
“여기서 멀어?”
“조금, 성수동이야. 자주 올게. 아예 우리 동거하면 어떠냐?”
“아직은 안 돼.”
“그래. 하기야 나도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 조금만 기다려, 내 꼭 돈 벌고 만다. 개새끼들!”
“그런 말투 싫다고 했잖아.”
“...그 자식들은 잘 있어?”
“누구?”
“그 배신자 새끼들. 교복 입고 깝죽대는 놈들 말이야.”
“......”
나는 쪽마루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을 돌아 나왔다. 그였다. 내게 찾아와 협조해 달라고 말했던 그 키 작은 공원이었다.
대문 앞에서 한번 더 방을 돌아본 다음에 나는 천천히 큰길 쪽으로 걸어나갔다. 사방이 적막했다. 구름에 가려 있던 달빛이 내려 깔리면서 골목길은 한층 쓸쓸해 보였다. 내가 막 골목 끝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컹컹! 개새끼들이 마구 짖어대고 있었다. 구름이 다시 달빛을 가렸다.
그 해 여름,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를 얻어 온 것이어서 우리 집에 올 때는 무척이나 작았었다.
“애구, 쥐한테 잡혀 먹히고 말겠네!”
여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여름이 끝날 때쯤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그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슬픈 일이 생겼다.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생전 대문 밖에도 나가지 않던 놈이었으므로 가족은 걱정이 대단했다. 나는 옆집에서 자전거까지 빌려 타고는 하루종일 고양이를 찾아 동네를 헤맸다. 어디서 자동차에 치인 것인지, 쥐약을 잘못 먹고 죽기라도 했는지, 갖가지 상상이 떠오르며 가슴이 시큰거렸다.
야옹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러 날이나 야옹이가 나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던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가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눈시울을 적시고는 했다. 그런 날 밤이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는 온몸이 땀에 절어 가며 그 해에 처음 배운 자위행위에 몰두했다. 행위가 끝나고 나면 매번 참담했다.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그 해 여름, 고양이를 키우던 일과 자위행위를 배운 일 말고 내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