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은희. 임낙성 - 명랑한 신혼여행(1960)
(동해풍 작사 / 김 현 작곡)
남남간에 만난정이 사랑에 꽃이피여
급행열차 삼등실에 몸을 실었소
"여보? 네! 좌석이 복잡한데! 괜찮아요^^"
청춘을 실고 희망을 실고 검은연기 뿜으며
뽀글 뽀글 뽀글 뽀글 눈웃음속에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젊은이 가슴
팔랑 팔랑 팔랑 팔랑 불타오른다 열차야 달려라
"여보? 네! 시장하지않아요? 괜찮아요"
우리들의 신혼여행 가슴이 뛴다
마음도 뛴다 열차야 달려라 달려
달여가는 지평선에 오곡이 춤을 추고
푸른 하늘 꽃구름은 노래 부르네
"여보? 응!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추풍령인데"
사랑을 실고 행복을 실고 기적소리 울리며
칙칙폭폭 칙칙폭폭 육로라 천리
랄랄랄랄 랄랄랄랄 푸른산천도
너울너울 너울너울 춤을 추노라
열차야 달여라
"여보 벌써 대구에요 응 그래 빠른데"
우리들의 앞길에는 세상도 좋다
할일도 많다 열차야 달려라 달려.
(1937~ ) 경기도 광주 출생, 서울 성장.
차은희(본명 최은섭) 향년 86세.
학력: 숙명여중, 데레사여고
1956년 콩굴대회 1등
부산방송(현KBS) 전속, 미도파레코드 전속
데뷔: 한많은 오륙도
목포의 비가, 갈매기 우는 목포항,
일성의 우리오빠, 대답없는 추억,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등으로 1950∼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원로가수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여배우 일기’ ,청춘 아베크’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등으로 1965년까지,
약 10년간 100여곡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1937년 9월 15일에 태어났다. 고향은 서울 본토박이 할아버지대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살았다. 할아버지께서 종로5가에서 여관함 제가 장충동에서 일제시대 국민학교(7살입학)
다녔다. 국민학교 2학년때 철원 포천군에 피난간적 있어요.
망한 부자의 농토를 샀다. 거기서 8.15가 되면서 재산 몰수되고 그리고 월남했다.
3학년때 서울효제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살기는 종로5가 쪽에서 숭인동에서 살다가
청량리 홍릉에 땅을 사서 기와집 지어서 같이 한집에 두집 생활했다.
6.25때 숙명여중 1학년때 인민군에게 사무실로 끌려 간적도 있었다. 영등포비행장으로
피난갔다. 피난 시절에 고생했다. 막내고모님이 이화여대를 나왔는데 비행장에
통역관으로 취직해서 고생을 조금 면했다.
고인은 1962년 공연단체를 이끌던 이춘식 쇼단장과 결혼한 이후 자녀 양육 등을 위해
1965년 신곡 발표를 중단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살아생전 후배 가수 임영웅을 유독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투병으로 누워 있다가도 TV에서 임영웅의 목소리가 나오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고.
차은희는 “평생 본 가수들 가운데 표정이나 표현력이 최고”라며 “선배로서 기회가
된다면 용돈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할 만큼 임영웅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