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이라는 시골에 살면서 예술영화를 본다는 건 대단히 큰 노력과 성의를 요구하는 일이다. 처음 괴산에 이주하니 영화관 자체가 없었다. 인근 도시인 충주나 청주까지 시간 맞춰 나가야 하니 웬만한 영화는 집에서 올레TV로 보고 말았다.
그러다 자연드림파크가 생겼을 때 개봉관이 3개관이나 생겨서 환호성을 질렀다. 일주일 단위로 새 영화가 걸린다. 비로소 올레TV를 벗어나 개봉 영화들을 스포 없이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영화들 중에 많은 작품이 이곳에선 상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3개관 중 한 곳이라도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그런 영화들은 손바닥만한 태블릿으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이 영화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 인생에 엄청난 지분을 갖고 있는 음악감독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명곡들이 웅장하게 펼쳐질 게 분명한데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 아래 그의 음악들을 즐기고 싶었다.
충청 지역 상영관을 검색해본다. 놀랍게도 대전, 세종시도 없다. 괴산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청주 CGV아트관을 찾아본다. 어떤 날은 밤 10시, 어떤 날은 밤 12시에 단 1회 심야상영만을 하고 있다. 보러오지 말라는 얘기지. 그 다음으로 비교적 갈만한 거리, 천안에선 하루 한 번 13:20분 상영이 있었다.
괴산에서 왕복 세 시간. 상영시간 세 시간. 폭염으로 들끓는 한여름 낮, 휴가라 생각하고 천안으로 길을 나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삼복더위에 먼 길을 달려와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웠지만 정말 잘했다고 나를 계속 칭찬했다. 오래된 자료 화면은 망점이 깨지고 화면이 흐렸지만 오히려 지금 시대 경험할 수 없는 필름영화 시대의 향수를 일깨워주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1년부터 작업을 시작한 그의 영화음악 인생은 1970년대를 지나 1980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최정점에 도달했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하는 서부영화의 시작과 끝과 같은 존재였다. 우연하게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학교 동창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했던 그의 서부영화들은 머나먼 대한민국 헐리우드 키드들의 어린시절을 장악했다.
그때는 엔니오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내가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된 영화가 <원스 어픈어 타임 인 아메리카>다. 대학생이 되어 비로소 자유롭게 내가 선택한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영화예술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을 때 만났던 영화. 그만큼 문화 충격도 컸고 감동도 커서 내 인생 영화 목록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 영화에서 엔니오의 음악은 전율이었다. 그때 이 걸작을 만든 음악 감독으로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당시 이 영화는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야기 전개가 회상으로 시작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설명은 충분치 않아서 보고나서 스토리 라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도대체 무슨 얘기지?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감독의 편집본이 영화사에 의해 난도질당한데다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중요 장면들이 많이 빠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된 까닭은 1920,30년대 미국 사회의 혼란과 밑바닥 인물들의 비극적 서사, 빼어난 영상미, 아역 배우의 창고 안 발레 씬 등 명장면이 수두룩했고 시대적인 감성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뭔지 잘 알 수는 없이 애매모호하지만 총맞은 것처럼 마음을 파고 들었달까. 거기에 안개를 뚫고 나오는 팬플룻의 흐느끼는 음색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https://youtu.be/Jj5Xczethmw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미션>작업과정을 회고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던 엔니오의 서부영화 시절은 그냥 즐거움으로 가득했고, 이어서 등장한 이탈리아 영화들은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나와 연결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원스 어픈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와서 비로소 내 영화인생의 시작과, 청춘의 한 시절을 소환하더니 드디어 <미션>에 이르러 감정은 극대화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개봉 당시 갓 개관해 최상의 음향이라고 홍보하던 <호암아트홀>에서 눈물 펑펑 쏟으며 봤던 영화. 영화도 감동이었고, 그 시절 극장에 앉아있던 나의 20대가 떠오르면서 화면에 삽입된 미션의 명장면들에서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가 있었구나....이런 아름다움을 꿈꾸었지만 세상은 더 극악해지고 말았구나....
영화 <미션> 작업은 마치 신이 내린 듯 홀려서 작업했다는 엔니오. 처음엔 영화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워서 음악이 필요치 않은 영화라며 그 작업을 거절했지만 문득 떠오른 영감으로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탄생했다.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 엔니오는 이 곡에 가사 붙이기를 거부했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이 간절하게 애원해 노래로 만드는 걸 허락했고 그렇게 <넬라 판타지아>라는 또 하나의 명곡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https://youtu.be/V-m5u0OFF_E
영화음악으로 최정상에 올랐지만 본격 클래식에서 벗어나 상업 음악을 한다는 열등의식, 스승의 질책, 음악의 본류로 돌아가고픈 개인의 열망들이 어우러져 영화음악인으로 성공을 거둔 후에도 그는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명성을 얻은 후에는 지속적으로 교향곡을 만드는 등 정통 클래식 음악의 반열에 서있고자 노력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영화음악은 저급한 상업예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클래식 음악계는 어떤 크로스오버 작업도 끌어안지 않았다.
또하나, 영화음악이란 말 그대로 '영화'를 위한, 영화 속에서의 음악이기에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이 영화음악가로서의 아쉬움이었다. 엔니오는 이를 뛰어넘기 위해 영화의 보조가 아니라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그만의 음악세계를 구현했고 , 결국은 영화가 아니어도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완성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https://youtu.be/vaLF25_jMIk
(내가 좋아하는 라포엠의 두 테너 유채훈,최성훈이 콘서트에서 듀엣으로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
영화를 보며 놀라웠던 점은 엔니오가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도, <미션>으로도, 심지어 <시네마 천국>으로도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명백히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아카데미의 전횡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아카데미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2007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주었다. 뭔가 굴욕적이다. 굴욕을 영광의 트로피로 바꿔준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다. 엔니오를 추앙해 그의 음악을 많이 갖다 썼고, 싫다는 그를 설득해 끝내는 영화 한 편을 같이 하고야 만다. <헤이트풀8>. 결국 이 작품으로 2015년, 엔니오는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고 만다.
아카데미에 6번 노미네이트된 끝에 결국 수상을 하자 울먹이는 노익장의 모습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긴다. 아카데미가 뭐라고? 한편으로는 그의 회한이 단순히 트로피 하나때문은 아니었을 것임을 세 시간 러닝타임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2020년 사망했다.
전세계 뮤지션들이 엔니오 모리코네를 향한 헌정앨범을 냈고 이듬해 추모음악제가 열렸다. 아버지를 따라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가 신화가 되어버린 <석양의 무법자>ost에 가사를 붙였고 이탈리아 남성 크로스오버 그룹인 '일볼로'가 노래해 '넬라 판타지아'에 이어 또 하나의 걸작 'The ecstasy of gold'가 탄생했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록 그룹 <메탈리카>는 엔니오를 존경해 무려 40년 동안 그들의 공연에서 이 음악을 인트로로 사용해왔다. 그때마다 메탈리카만의 록 버전으로 새롭게 연주된 음악. 짧지만 그들의 무대도 보여주어서 반가웠다.
이 음악을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이 노래한 버전으로 들어본다.
https://youtu.be/Tx0uCBrGxq8
영화는 끝났고, 나를 포함해 백 석짜리 객석을 채운 다섯 명의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묵직한 감동. 좀처럼 길을 나서고 싶지 않은 불볕 염천에 왕복 세 시간 길을 달려 천안까지 영화를 보러 갔다 왔지만 안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던 나들이였다.
영화 마지막에 언급되었던, 그의 음악은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을 내 스스로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 총맞은 것처럼 가슴에 와서 박힌 인생곡도 있었고, 느끼지 못했지만 내 인생 언저리를 늘 떠돌고 있었던 수많은 멜로디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거장은 사라져도 음악은 남았다.
***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길을 나서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KBS라디오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었다. 마침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가 나왔고, 청취자 중 다섯 명을 뽑아 그의 특별판 LP를 증정하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끝나지 않은 감동을 이어 문자로 사연을 보냈고, 당연하게도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오늘 당첨 문자가 왔다.
야홋! 이런 기적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다니!!!!
엔니오, 고맙습니다!!!
첫댓글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이 딱 맞네요.^^
저는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를 비디오영화로 처음 보고 알 수없는 애잔한 감정을 오래도록 갖고 있었어요. 소녀가 춤추는 장면을 훔쳐보는 소년...
영화관 안 다닌지 오래인데,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도 오늘 알았네요. 늦었지만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극장이 안 된다면 부족한 폰으로라도. ㅎㅎ
상영관이 너무 없지만 혹시라도 갈만한 거리에 있으면 꼭 극장에서 보시길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