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하얀색 물감을 산에다 부어놓은 듯하다. 오월에 들어서자마자 버선 모양 꽃 주머니들을 터뜨리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바람이 살랑거리기도 하면, 짙은 꽃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오월이다.
라일락이나 장미를 대표적인 오월의 꽃으로 꼽지만, 알고 보면 아까시나무 꽃이야말로 오월에 만발하여 봄을 완성시키는 꽃이다. 하얀 꽃을 피워냄으로써 비로소 산색(山色)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흰 꽃들은 많지만, 아까시꽃만큼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피지는 않는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부른다. 아카시아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수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로 부르고 있는 나무의 정식명칭은 ‘아까시나무’이다. 아카시아는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미모사아과 수종이다. 그래서 온대기후인 우리나라에서는 자랄 수 없다. 고로, 동구 밖 과수원 길에 아까시아꽃이 활짝 피어서는 안 된다. 아까시아 꽃잎이 바람에 날리니 지금쯤 고향에 뻐꾹새가 울어서도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종(種) 이름 Robinia pseudo-acacia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가짜 아카시아’가 되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에 로비니아라는 스페인 장교가 북중미 원산인 아까시나무를 유럽으로 가져오면서 아까시아나무와 흡사하다는 뜻으로 붙인 학명이란다.
’아까시나무‘라는 한국어 이름 역시 일단 ‘아카시아’라는 이름에 바탕을 두었는데, 가시가 많다는 특성도 한몫했다.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입에 익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정해졌으니 아까시나무로 부르는 게 맞다.
아까시나무는 쓸모가 참 많은 나무이다. 첫째, 매우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전세계의 꿀 생산량 중에서 아까시꿀이 가장 많다. 우리나라 꿀 생산량 중에서도 70% 정도가 아까시꿀이다.
둘째, 콩과식물로서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시킨다. 그래서 따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며 토양까지 비옥하게 만든다. 황폐화된 토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최적인 수종이다,
셋째, 나무의 성장속도가 빨라 녹화사업에 적합하다. 또 목재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며 잘 썩지 않는 만큼 방부처리를 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최근 유럽지역에서는 친환경 가구제작에 널리 이용하고 있다.
위와 같은 장점을 지닌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아까시나무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아까시나무를 마구 심어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게 함으로써, 끝내 우리나라를 황폐화시켰다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의 주도로 아까시나무를 들여온 것은 사실이다. 본래 한반도에는 없던 나무로, 1900년대 초에 일본군들이 주둔해 있던 지금의 용산 육군본부 자리와 경인선(京仁線) 철도변에 처음 심어졌다. 독일 총영사 크루프의 추천에 따라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심도록 한 것이다. 이후 일제에 의해 황폐화된 산과 들에도 심어져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졌다. 6.25 한국전쟁 이후에도 아까시나무가 녹화사업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들여 온 나무라는 편견과는 달리, 아까시나무는 오히려 우리나라 산림녹화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심지어 쓰레기더미였던 난지도에 공원을 조성할 때도 가장 먼저 심은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였다.
물론 아까시나무가 왕성한 번식력과 무성한 잎 때문에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황폐한 땅을 복구시키는 능력에 비하면 말할 바가 못 된다. 아까시나무가 땅을 훼손하여 삼림을 해친다는 말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아니, ‘개소리’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 [conspiracy theory]도 개소리에 포함된다.
영어권에서도 같은 뜻의 단어가 있다. 바로 ‘bullshit’이다. 그런데 거짓은 무엇이며 개소리는 무엇인가? 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과 교수인 해리 G. 프랭크는 그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은 하는 사람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개소리[bullshit]를 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앞뒤도 맞지 않는 개소리가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개소리가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가끔 보너스로 0.1%정도 맞아떨어질 경우, 그 개소리를 하는 사람의 신뢰도는 급격하게 증가한다. 고작 0.1%에.
오늘날 개소리는 여느 거짓말보다 더 곳곳에 만연해 있다. 개소리는 사회에 주는 피해도가 가장 크다. 근거 없는 정보로 분노를 조장하여 사회를 분열시켜 혼란에 빠트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거짓과 개소리가 세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확연히 다르다. 거짓말이 괭이나 삽 정도라면, 개소리는 불도저 급으로 사회에 해를 끼친다.
『걸리버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1710년에 이미 “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을 그 뒤를 절룩거리며 쫓아간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개소리가 인간사회에 만연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의 개소리 확산 속도나 범위는 지금에 비하면 ‘쨉’도 안 된다.
지금은 개소리의 전성시대다. 모바일 등 인터넷매체를 활용하는 순간, 개소리는 무차별적으로 전달되고 확산된다. 페이스북, 유튜브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사언론이 아닌 유력신문사나 방송사에서도 심심찮게 개소리를 해댄다.
그렇다면 개소리는 왜 하는가? 딱 한 마디로 돈이다. 기사는 클릭 수에 따라 돈이 된다. 유튜버들에게는 ‘좋아요’와 ‘구독’이 곧 재산이 된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확고한 이념이나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 따위는 자본과 시류에 따라 언제든지 교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로지 ‘코인(coin)빨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걸리버여행기』를 살펴본다. 걸리버는 ‘후이넘’의 나라(말이 사람을 다스리는 곳)에서 야후(Yahoo)라는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동물들을 만난다. 그들이 누구였던가? 바로 인간과 매우 흡사한 존재들이었다. 소설에서 야후들의 탐심과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한 후이넘이 이렇게 말한다.
“야후들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결점을 증대시키고 보충하는 일로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는구나.”
왜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굳이 자기들이 개발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이름을 Yahoo라고 이름 지었을까? 향후 인터넷이 가장 역겨운 동물인 야후(인간)들이 난장판을 벌리는 개소리 장이 되리라 예측한 것은 아니었을까?
첫댓글 표가 돌아왔네요
가끔씩이라도 좋은 글 꾸준히 올려주세요
좋은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