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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문학관아카데미 21기-16강 자료(2023년 12월 4일)
1. 반동탕서 (飯東湯西) /이정열
1 “야, 너는 왜 반대로 받냐?”
“혹시 이것도 이등병은 하면 안 됩니까?”
“아니, 그건 네 맘이지.”
단체로 밥을 먹으면 한 마디씩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군대에서 밥 먹을 때는 식판에 음식을 받았다. 모양이 같은 밥과 국 칸 하나씩에 반찬을 위한 칸 셋이 있다.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에 받는 게 보통이었다. 어디서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홍동백서와 같은 규칙의 일종이다. 옛날 옛적부터 그렇게 해왔으니 따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과 밥을 반대로 퍼담는 내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가끔 있다.
2 언제부터 밥과 국을 반대로 배치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게 편하다. 나름 이유가 있어서 반대로 먹는다. 집에서 먹을 때 빼고는 길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가족들에게만 풀이 해줬다. 이미 합리적인 이유를 여러 번 설파했지만, 밥을 차려주는 어머니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절대로 내 방식대로 놔주지 않는다. 앉을 때마다 국그릇 밥그릇 자리를 바꾸는 나를 비난한다. 자신이 차려준 식사에 손대는 걸 뭐라 하는 어머니 마음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 반동탕서로 먹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나머지 가족들은 나를 ‘이상한 놈’이라며 트집을 잡는다. 다 같이 밥 먹을 때마다 팬티 바람으로 식탁에 앉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난리인지 모를 일이다.
3 ‘넌 왜 항상 반대로 먹냐?’라는 말이 세 번째 나오면 줄줄 해설한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이기에 국보다 밥을 자주 떠먹는다. 밥그릇 위에서 수저가 자주 이륙과 착륙을 반복한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니 오른쪽에서 비행이 자주 일어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공항 근처가 중심지면서 번화가인 도시가 있나. 밥그릇 오른편에 국그릇을 놓으면 젓가락질 실수로 반찬을 떨어뜨리거나 옷에 묻은 먼지가 국그릇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 또, 인간의 팔은 안쪽으로 굽는 기능이 더 용이한데, 밥그릇을 중앙에 놓고 국그릇을 오른편에 놓으면 팔의 움직임이 덜 자연스럽다.
4 이와 같은 연유로 뼈나 가시를 놓을 접시를 오른쪽에 놓는다. 젓가락에서 미끄러진 음식이 떨어지거나 먼지가 내려앉아도 괜찮은 앞접시가 자리할 최적의 자리가 오른편이다. 입안에 들어갈 국그릇을 왼쪽에 놓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이게 반동탕서의 합리적 이유다.
5 여기까지 설명했는데도 잔소리를 계속하면 ‘당신이 먹는 국그릇에는 옷에서 떨어진 먼지가 제 것보다 더 많습니다’라고 응수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상대방도 귀찮은지 ‘집 밖에서는 그러지 마라’로 마무리한다. 그래서 밖에서, 특히 나보다 한참 어른들과 식사할 때는 반동탕서로 먹지 않는다. 제사상에 양념치킨도 올리는 요즘 세상에 반동탕서가 그렇게 잘못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2. K교수와 남자/ 김병연(5)
1)평소 친분이 있는 한 지인으로 부터 골프 부킹 요청이 들어왔다. 어느 교수한테 개인적으로 신세를 진 일이 있었는데 사정이 허락하면 라운딩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즉 시 흔쾌히 수락하였다. 상대는 모 대학 여 교수라고 귀띰해 주었다.
. 2)그 날, 골프 하우스에 마련된 식사 장소에 도착하였다. 지인은 교수를 소개하였다. 이제 불과 40대이며 두 자녀를 두고 있고, 무척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고 하였다.
첫 눈에 반했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던가.남자는 왜 이제서야 그녀를 보게 되었는지 가슴을 치며 애태워했다.
3)남자는 몹시 심란해졌다. . 또 허무한 짝사랑으로 끝날까 싶어서 그렇다. 현실이 달콤한 만남을 과연 허락해 줄지 노심초사다. 남자는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눈부신 미모에 잠시나마 넋을 내려 놓았다. 내 앞에 이런 여자가 앉아 있다니...머리가 텅 비는 듯한 느낌에 잠시 현기증이 일어났다. 이제 3개월 초보 골린이라고 다소곳이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종의 청순함을 엿보았다. 대학 교수라고는 도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앳띈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와의 계속된 만남을 내심 기대해 보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였다.
3)남자는 매사가 왜 이토록 늦게 이루어지는지 가끔씩 자신에게 반문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집은 울산이라고 했다.했다 사정상 학교까지 차로 매일 출퇴근 한다고 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저 습관이 되어서 괜찮다고 살짝 미소 지어보였다. 서울에서 초, 중, 고 , 대학을 나왔고, 미국 유학까지 했다고 했다. 남자는 그녀에게서 짙은 라일락 향기를 느껴보았다.
4)운동 내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느라고 자기 샷에는 전허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녀가 샷을 날릴 때 마다 '굿, 나이스, 샷 '하며 엄지척을 치겨 추기도 했다. 푸른 잔디를 걸어가는 그녀의 자태는 프로 모델 뺨칠 정도였다. 자그마한 쳬구에서는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6 번 코스를 마친 뒤 휴식차 그늘 집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수줍은 듯 한모금 하는 모습도 예뻐보였다. 초대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면서 그늘집 식대를 선뜻 계산하였다. 마음씨도 고운 것 같았다.
5) 하루종일 그녀와 유쾌하게 떠들고 웃어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남자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다음 달에도 제의했는데 바로 수락을 하였다. 남자는 순전히 그녀를 한번 더 만나기 위해서 그랬던 것 뿐이다. 수많은 라운딩을 해 보았지만 오늘만큼 이토록 가슴 벅찬 날이 있었던가 남자는 생각해 보았다. 결코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6)인연은 절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평소 남자가 지향하는 지론이기도 하다.오롯이 서로간의 무언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서 만들어진다고 확신해왔다.그런 의미에서 남자는 애써그녀와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기 보다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녀의 모습이 눈에서 아른거려 혼미해지도 한다.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린다. 세월의 간격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런 만남이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내심 가당키나 하는지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는 결국엔 허망한 결말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7)그녀에게 전화를 했다.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받지 않았다. 이내 톡으로 사연을 남겼다. 남자는 수십년 동안 줄기차게 짝사랑만 해왔다. 이제는 마침내 그 지독한 짝사랑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두번째 만남이 못내 기다려졌다.
8)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남자는 하루종일 그녀 생각에 일은 뒷전이다. 혹시나 그 날 비가와서 라운딩이 취소 될까봐 노상 일기예보에만 온통 신경쓰였다.분명 예보상으론 100% 비가 온다고 돼있다. 그렇지만 남자는 믿지 않읕려고 헀다.어찌 변화무상한 자연의 섭리를 인간 따위가 점 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애써 해 본다.밤새 뒤척이면서 몇번이나 잠에서 .깨어 밤 하늘을 쳐다봤는지 모른다. 구름만 잔뜩 낀 하늘만 있을 뿐이었다. 남자의 바램과 달리 빗방울이 조금씩듣기 시작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곧 그녀로 부터 전화가 왔다. 비 오는데 오늘 운동이 가능하느냐는 것이었다.아무 염려말고 골프장으로 출발하라고 재촉하였다
"알았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9)하지만 남자도 걱정이 전혀 되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속절없이 비는 야속하게도 내리고 있었으니까. 마침내 골프장에 도착하니 비는 더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취소를 결정해야만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남자는 이때 과감하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비가 오더라도 라운딩을 감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프론트에서 비용 결재하고 막 첫 홀로 나서는데 거짓말 같이 비는 멈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안색이 순간 환희로 변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연신 고맙다는 눈 인사를 던졌다. 라운딩 내내 구름만 잔뜩 끼었을 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그녀의 앙증맞은 골프 웨어는 푸른 잔디 위에서 더욱 더 눈부셨다. 또한 찰랑거리는 긴 검은 머리결은 남자의 눈을 호사스럽게 하였다.
그로부터 몇주가 훌쩍 지났다.어느날 폰에서 메시지가 떴다. 바로 그녀임을 알수가 있었다. 몹시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전에 있었던 라운딩 초청 답례로 울산 방어진에서 회를 대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저할 필요없이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몹씨 썰레이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단숨에 내달렸다. 고속도로 중간쯤 가는데 하늘 저 멀리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헸다.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세찬 비바람이 불어닥쳤다. 삽시간에 차 유리창 앞 10미터도 분간이 안될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억수같은 소낙비가 쏟아졌던 것이다. 가까스로 약속 시간에 도착했다. 30여 분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해서 연락해 보기로했다. 신호는 가는데 응답이 없었다. 순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횟집 창 밖 바다에서는 파도만 거세게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폰이 울렸다. 낯 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 혹시 오늘 만나기로 한 000 씨 아니십니까?" " 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000 교수의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제 처가 약속 장소로 가던 도중 빗길에 차가 미끌어져 가드레일에 부딪쳐서 인근 병원 응급실에 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경미한 사고이니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완쾌 후 다시 연락 드리도록 하지요 . 죄송합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 더 이상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망하지만 남자는 추억속에 그녀를 뭍기로 했다. 그녀는 정녕 괴테의 연인 '샤를로테'가 아니었다.
더 이상젏은 베르테르가 되지 않기로도 했다.
3. 대구탕(大口湯) /정동진2
찬 바람 부는 계절이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대구탕을 맛있게 하는 대구방송국 맞은편의 식당에 간다. 하얀 속살의 담백하고 쫄깃한 육질의 맛을 좋아한다. 대구(大口)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이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구 어획량이 많이 줄어 식탁에 올리기에 귀한 식자재였던 적이 있다. 지금은 지자체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겨울이 되면 그 지역에서 많은 양의 대구가 잡힌다. 대구는 회귀성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탕은 살과 내장을 넣어 끓여서 먹는다. 탕은 선호도에 따라 지리(맑은탕)과 매운탕으로 먹지만 그 맛은 일미다. 대구는 버리는 것이 없다. 고단백 식품이기도 하고, 몸통과 머리뿐만 아니라 내장이나 이리(정소)와 곤이(난소)도 요리에 사용된다. 대구의 머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구뽈찜으로 메뉴에 오르기도 한다. 또한 대구는 말려서 포를 만들어 술안주로 사용한다. 이 밖에도 대구는 다양하게 조리해서 먹는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어떤 조리를 해도 소소하게 귀하게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내가 자랐던 고향의 어시장은 언제나 힘이 넘치는 다양한 수산물들의 전시장이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 크고, 힘이 있고, 토실토실한 대구를 반갑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대구의 남획으로 귀한 물고기로 대접받았던 적이 있다. 대구는 역사적으로 동서양에서 아주 흔한 생선이었다. 서양에서는 대구의 서식량이 너무 많아 거름으로 쓸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았던 대구가 동서양 모두 지나친 포획으로 씨가 말라가던 때가 있었다. 다행히 동서양 모두 대구 개체 수 감소에 대한 보호 정책을 통해 거의 회복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자치단체들은 대구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매년 인공수정란을 바다에 방류해오고 있다. 우리는 연어가 강원도 남대천을 떠나 대양에서 먹고 자라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구도 방류하면 먼 바다로 나가 성장하고, 성어가 되어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최초에 방류했던 수만큼은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남해안의 풍족한 어장형성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 바다는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그런데 나는 고향을 떠나 온 뒤로 그곳에 오래 머물러 본적이 없다. 나를 붙들어 주저앉혀 마냥 어린 시절로 되돌릴 것 같다. 즐거운 추억도 있고, 부끄러운 추억이 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불현듯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뭔가 모르는 빚을 지고 있는 고향이기에 가슴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그곳을 향해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성일런가?
어획 철이 오면 어부들은 지자체의 포획 허가와 함께 조업을 시작한다. 이 덕분에 겨울철의 어시장은 여기저기 수족관에서 대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도락가는 싱싱하고 튼실한 놈을 무리하지 않은 가격으로 살 수 있어서 좋다. 사람들의 적절한 절제와 보호가 가져오는 노력의 과실을 같이 누리는 호사일 것이다.
우리는 흔하고, 볼 수 없거나 느낄 수 없다고, 남획하고 함부로 소모하기도 한다. 지천에 널린 것들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무한하지 않다. 일상에서 주의하여 관리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지키고, 보호하고, 키우고,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볼 일이다.
생명이 싹틔워진 곳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이다. 어디에 있거나 그곳으로 가 있다. 대구가 처음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것처럼~! 쌀쌀해지는 이 계절에 가끔 고향의 맛이 그리워지면 집사람과 같이 그 식당을 찾아 대구탕으로 달래 볼까 한다.
4. 먹성 그리고 감사 / 이호규
1) 몇 년 전 일이다. 외손자가 돌을 갓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포항 해안가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바닷가에 숙소를 잡고 모래놀이로 한창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식사 때가 되어 딸아이가 예약한 깔끔한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찬우도 아기용 의자에 앉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오면서 개인용으로 따뜻한 미소국을 주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미소국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찬우가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 아닌가. 놀란 우리는 왜 우느냐고 물었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할 때라 표현이 되지 않았다. 혹시 저한테만 없는 미소국 때문인가 싶어 물어보니 고개를 끄떡였다. 종업원한테 부탁해서 한 그릇 더 가져오니 울음을 뚝 그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혼자서 반은 흘리면서 열심히 떠먹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흡족한 듯이 눈을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2)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코로나19 시기여서 어디를 갈 때도 없을 때, 찬우는 외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내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자주 놀러 왔다. 사무실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어느 집으로 갈까 찾다가 황장군 갈비탕 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큰 뚝배기에 갈비탕이 나왔다. 갈비가 너무 뜨거워 건져서 식힌 후 살코기 부분을 골라서 줄려고 가위로 작게 잘랐다. 그런데 찬우는 그렇게 하는 게 싫다며 갈비를 통째로 달라고 했다. 오동통한 조그마한 손으로 갈비를 잡고 띁어 먹는 것이 아닌가. 살찜도 없어 보이는 부분까지 작은 입으로 야금야금 먹는 모습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갈비가 있는 음식은 모두 손으로 잡고 먹으려고 했다.
3) 두 돌이 지날 때쯤이었다. 대구수목원에 들렸다가 근처 메밀묵 집에 식사하러 갔다. 메밀 묵채를 시키고 메밀 부추전을 추가로 주문했다. 밀가루 대신에 메밀가루로 만든 부추전이 노릇노릇 맛나 보였다. 다행히 고추가 들어있지 않아서 찬우 입에 조금 넣어 주어보았다. 한입 물고는 식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또 와서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야금야금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식당 주인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주인아주머니께 맛있다고 엄지척하라고 하니 부끄러운 듯 뒤로 숨었다. 그 후로는 칼국수 집에 가서도 해물파전을 주문할 때는 고추를 넣지 말고 달라고 부탁했다.
4) 며칠 전 금요일 저녁에 우리 부부는 딸아이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찬우는 제 아빠와 집에서 TV를 보겠다고 다녀오라 했다고 한다. 미안한 아내는 찬우에게 줄 된장국을 두부와 팽이버섯을 넣어 심심하게 끓여서 보냈다. 주말 아침에 늦게 일어난 찬우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큰아이처럼 먹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다. 잘 먹는 모습을 본 아내는 흐믓해 하였다. 그러니 또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모양이다. 내일도 아이 엄마가 다른 일이 있어 유치원 마칠 때 데리러 가야 하는 모양인데 또 시장을 다녀와서 시원한 탕국을 한 솥 끓이고 있다.
5) 바뀐 나이 계산법으로 찬우는 다섯 살이다. 나이도 어린 것이 먹는 것을 보면 꼭 어른 식성을 닮았다. 아직 맵고 짠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뜨거운 것은 잘 먹지 못한다. 하지만 심심한 음식들은 어른을 뺨치게 좋아한다. 특히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김치도 맵지 않는 백김치를 그렇게 좋아한다. 시원한 물김치는 더 좋아한다. 사과나 복숭아도 깎아주면 싫어하고 통째로 주어야 좋아한다. 오이도 거친 부분만 정리하고 한 손으로 잡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외식하러 나가면 콩나물 무침을 꼬맹이가 퍼먹는 것을 보고 주인장이 대견하여 더 갖다주기도 한다. 약간 질긴 미역 줄기 무침도 좋아한다.
6)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타고난 식습성이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 집사람이 밥을 챙겨주러 가면 찬우는 할머니가 해주는 고깃국이 맛있다는 표현을 잘한다고 한다. 밥을 국에 말아 한입 털어 넣고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할머니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지금은 제법 대화 상대가 된다. 무 깍두기 김치를 씻어서 먹으며 "할머니, 이거 오래 두면 더 맛있는 거 알아?"라고 물었다. 자기 유치원 간식 할머니의 음식 솜씨도 좋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어른 입맛에 익숙한 것 같다.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걸보면 약간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거나 잘 먹는 것을 보면 나랑은 완전 딴판이다.
7) 우리는 자라면서 감사의 표현을 잘 해보지 못했다. 그냥 무덤덤하게 기껏 씨익 웃는 것으로 끝이었다. 어머니께 잘 먹었다고 말씀 한 번 드리지 못했다. 식당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접했을 때 주인이나 주방장에게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어린 아이들를 보며 가끔 반성할 때가 있다. 어른들도 감사한 것을 적극 표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찬우는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모두 맛있어요" 라고 하면서 소고기 무국에 들어있는 토시살을 잘도 먹고 있다. 이런 먹성처럼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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