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맛은 어떻게 태어나나
에스프레소의 원료인 아라비카종 커피 버찌를 말리고 볶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적 반응
△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자기만의 커피를 만들 수 있다. 지난 11월7일 한국바리스타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전용씨.
원두 볶으면 다양한 향 방출
이탈리아의 대표적 커피매장인 일리카페의 에르네스토 일리 회장은 “에스프레소를 알면 커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프레소가 커피 ‘기술’의 결정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화학박사로서 과학을 이용해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만들겠다는 ‘희망사항’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전씨 역시 최상의 생두를 볶은 원두로 만든 에스프레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드래곤’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대회에 선보였다. 그는 붉은 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거품을 품고 있는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을 기본으로 다양한 ‘커피 음료’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그는 생두와 원두를 자유롭게 ‘요리’하는 커피의 장인이 되려고 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복잡미묘한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최적의 재배지에서 자란 생두를 알맞게 볶아 정성껏 내린 뒤 적절한 잔에 내놓으면 된다. 커피의 1차적인 맛은 생두에서 결정된다. 볶는 과정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악조건의 재배지와 생두 흠집 등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한잔의 에스프레소 원액을 추출하려면 50~60개(8g 안팎)의 생두가 필요하다. 최적의 수확기에 싱싱한 커피 버찌를 따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흠결이 있으면 품질을 떨어뜨린다. 물론 생두를 보는 탁월한 안목은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재료로 쓰이는 생두는 카페아 아라비카종으로 산비탈 지역에서 자란다. 가장 이상적인 재배지는 화산재로 뒤덮인 고산지대다. 커피나무의 크기가 2m도 되지 않는 아라비카종(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로버스타종은 12m 안팎)은 생두의 크기가 작고 밀도가 높으며 단단하다. 아라비카종은 인체에 이로운 성분이 많고 카페인 함유량도 적어 신경과민과 위궤양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다. 이에 비해 로버스타종의 카페인 성분은 중량의 2.4~2.8%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인체에 유해하다. 이런 아라비카종 커피의 버찌를 수확한 다음에는 건조와 세척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정 기간 햇빛과 공기에 노출시킨 뒤 기계에 넣어 외피를 제거하고 다시 말리면 생두로 거듭난다.
아무리 최상의 품질을 보이는 생두라 해도 불량품은 저장고에 들어가지 못한다. 광전자 세포를 이용한 ‘검열’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광전자가 불량품을 감지하면 흠집이 있는 생두를 바람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커피볶음기는 열을 이용해 생두의 화학적인 결합을 높인다. 생두는 250여개의 휘발성 분자종을 가지고 있어 향이 약하지만 볶음기를 통과한 원두는 800개 이상으로 수가 늘어나 진한 향을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 생두 세포에 있던 수분이 증기로 변해 당분이나 단백질, 지방질, 미네랄 등의 화학적 반응을 촉진한다. 이에 따라 원두에 글리코실라민과 멜라노이딘이 생성돼 이산화탄소와 함께 커피의 주요한 맛을 이룬다.
커피나무에서 버찌를 수확한 뒤 1년 이상 지나면 수분이 빠져 제 맛을 잃는다. (사진 / 곽윤섭)
생두를 볶는 과정에서 다양한 향이 방출된다. 향기 전문가들이 코와 색층분석법 등으로 파악한 방출 향기는 장미·초콜릿·버섯·치즈·땀 등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 고양이 냄새까지 난다고 한다. 대개의 향은 미세하게 남아 있지만 품질이 나쁜 원두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제거되지 않는다. 덜 여문 생두를 볶았을 때도 기분을 거스르는 냄새가 난다. 이렇게 볶은 원두는 필터 드립이나 에스프레소 머신 등의 조리법에 따라 커피 분쇄 기계로 갈아서 커피로 마시게 된다. 원두를 갈기 전에 조개 모양으로 속이 비었거나 깨져 있는 원두를 골라내야 최상의 맛을 낸다.
가정에서 원두 조리하는 법
이런 원두를 조리하는 것은 바리스타만의 몫이 아니다. 얼마든지 가정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다. 원두 상태로 구입해 그때그때 갈아서 마시는 게 좋다. 만일 종이필터를 이용하려면 원두를 너무 가늘지 않게 갈아야 한다. 이때 종이필터를 끓는 물에 살짝 헹구면 종이 냄새가 없어진다. 물이 끓을 즈음에 불에서 내려 종이 필터에 갈은 원두를 넣고 주둥이가 가는 주전자에 담긴 물을 서서히 부어 커피를 내리면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면 물의 온도를 93도 안팎으로 데워 기압을 9로 압축한 뒤 30초가량 여과해 원하는 커피를 내린다. 그렇게 해서 오일과 섬유조직 등에서 나오는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게 된다. 현재 카페인이 없는 커피를 마시려면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생두를 증기에 쪄서 수분을 50~60%대로 높인 뒤 솔벤트와 이산화탄소, 물 등을 이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카페인이 없는 천연 커피나무에서 버찌를 딸 수도 있다. 육종으로 아라비카종 커피나무보다 카페인이 15배가량 적은 커피나무가 개발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유전자조작 커피나무에서 커피 버찌를 딸 수도 있을 것이다. 카페인이 있더라도 안전한 커피를 즐기려면 반경 8km 이내에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 지역에서 3년 이상 자연비료만 사용한 유기농 커피를 ‘카페 데 베르’에서 즐기는 것도 괜찮다.
잃어버린 절반의 커피를 찾아서 질좋은 생두와 갓볶은 원두의 맛을 즐길 순 없을까…자가로스팅 매장 등이 보여주는 ‘진짜’ 커피
△ 당신은 커피의 맛과 향을 즐겨 보셨나요? 자가 로스팅 매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갓볶은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커피를 내려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 / 곽윤섭)
요즘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이혁태(32)씨는 커피를 재발견한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5년여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커피의 맛을 알았다. 국내에서는 ‘맥심’이나 ‘초이스’ 혹은 자판기 커피에 익숙했던 그에게 ‘에스프레소’는 신기하기만 했다. 에스프레소는 원두 가루를 압축해 기계적으로 농축액을 추출해내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다양한 재료를 섞은 ‘에스프레소 음료’는 끊임없이 그의 입안을 자극했다. 최고급의 아라비카 원두만을 계절에 따라 공급하는 신선한 ‘블렌드 커피’를 즐기면서 원두커피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처음으로 커피콩인 ‘생두’를 구경하기도 했다.
한국 스타벅스, 미국과 같은가
그렇게 커피 마니아가 되어가던 이씨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국내에 들어오면서 ‘스타벅스’가 자랑하던 그윽한 커피의 향과 맛, 풍미 등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스타벅스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스타벅스는 1999년 7월 서울 이화여대 앞에 1호 매장을 설립한 이래 지난해 55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107개의 매장을 거느린 스타벅스 코리아는 테이크아웃 문화의 전도사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커피 제품이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슬로건은 한치의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경험한 커피 맛을 느끼려고 에스프레소 매장을 찾았다가 ‘쓴맛’만 삼켜야 했다. 정말로 스타벅스 커피는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태평양을 건너며 본래의 맛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생두는 볶는 순간부터 산화가 이뤄진다. 원두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습기나 빛·공기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타벅스 코리아 양재선 마케팅팀장은 “특별히 제작한 ‘향 보존 팩’(Flavor-Lock Valve Bag)으로 원두의 향미를 보존한다. 원두에서 나오는 가스는 밖으로 배출하고, 외부의 공기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은 에스프레소에 첨가하는 ‘우유’나 ‘시럽’의 차이일 뿐이다. 선박으로 들여와 통관·검역·유통 등의 절차를 밟아도 볶은 뒤 한달 안팎이면 소비자에게 공급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스타벅스 등 테이크아웃 매장의 원두 신선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 로스팅(roasting·생두 볶기) 전문가 전광수씨는 “원두커피는 생두를 볶아서 만든 식품이다. 진공팩을 이용해도 향미가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미국에서 마시는 커피는 질 좋은 원두를 볶은 뒤에 곧바로 사용하기에 최상의 맛을 낸다”며 “지금으로선 테이크아웃 매장에서 원두의 제 맛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최상의 커피는 양질의 생두를 볶은 뒤 적어도 한달 이내에 갈아서 내려 마시는 것이다. 스타벅스 본사는 국내의 매출액이 급증하면서 고객의 신선도 요구에 따라 로스팅 공장을 세우려고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부지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이씨가 신선한 커피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는 없었다. 입소문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매장에서 직접 볶은 원두와 음료를 파는 곳이 있었다. 이른바 자가 로스팅 업소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1998년 이화여대 부근에 문을 연 ‘비미남경’이었다. 이곳의 탄생은 재일동포 마쓰바라 아키모리가 경험한 도쿄 외곽 오하니자야역 선로변에 있는 카페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쓰바라는 커피장인 호리구치에게 커피를 배워 서울에 자가 로스팅 매장을 차렸다. 지금은 마쓰바라 사장의 조카인 정현정씨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비미남경에 커피를 주문한 다음날 원두를 받아 커피의 다양한 향미를 다시 즐길 수 있었다.
일본에서 ‘보따리’로 들여오기도
사실 국내에도 생두를 수입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뿐만 아니라 중소업체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서 양질의 생두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인스턴트 커피에 치중하는 대형 업체들은 대외적으로 생두 로스팅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테이크아웃 매장에 원두를 공급하고 있다. 국내외 중소업체들도 테이크아웃 매장과 일반 커피숍 등에 원두를 공급하지만 중저가의 낮은 품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업체들이 양질의 커피 농장에 접근하기 어렵고, 설령 접근해도 고가이기에 수입을 꺼리는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가 로스팅 매장은 양질의 생두를 주요 수입국을 통해 들여오기도 한다. 비미남경은 일본을 오가는 사람을 통해 ‘보따리’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정현정씨는 원두의 품질을 유지하려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생두는 수확 연도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유통기간이 1년 이상 길어지면 생두 속의 수분이 12%에서 9% 정도로 줄어 잘 볶더라도 제 맛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국내에서 유통되는 생두는 여러 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유통 과정에서 섞어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많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은 농장 단위로 품질관리를 거친 생두만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한다.
△ 생두를 커피볶음기로 볶아 식히고 있는 모습. (사진 / 곽윤섭)
다양한 커피맛을 즐기려면 커피볶음기를 보유한 매장을 두루 찾아야 한다. 한 매장에서 로스팅을 한다고 해서 60여종에 이르는 상품화된 생두를 모두 보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씨는 서울 마포구 대현동에 있는 소형 로스팅 매장 ‘빈스서울’을 발견했다. 겨우 시음할 수 있는 테이블 두개가 달랑 있을 뿐이고 30여종의 생두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 11월20일로 개업 1주년을 맞은 빈스서울 대표 김동진씨는 1980년대 후반에 사진을 공부하러 일본에 갔다가 요코하마 ‘생두집’을 드나들며 로스팅을 알게 됐다. 귀국한 뒤 자영업을 구상하다 자가 로스팅 매장을 떠올린 뒤 일본을 오가며 기술을 습득했다. 지금은 요코하마 생두집에서 제작한 소형 로스팅 기구를 이용해 240g 단위로 생두를 볶아서 팔고 있다.
자기만의 원두 만들려는 사람들
이런 가운데 자기만의 원두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커피 볶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씨도 로스팅을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적어도 10년쯤 뒤면 원두커피 시장이 30%쯤으로 확대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체인에서 ‘바리스타’(Barista·커피를 뽑아서 고객과 교류를 하는 사람)가 원두를 취급해 에스프레소 음료를 만든다면, ‘로스터’는 생두의 특징에 따라 최고의 맛을 내는 원두로 볶아낸다. 만일 이씨가 커피 장인이 되려면 나주대학의 바리스타학과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 진학해 로스터와 바리스타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서울 명동 퍼시픽호텔 뒤편의 ‘전광수 커피하우스’나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허형만의 커피집’에 드나들며 커피에 관한 배움을 넓힐 수 있다. 10년 넘게 로스팅에 관심을 기울인 전광수씨가 로스팅 ‘기술’을 보급하고 ‘감각’을 전하기 위해 차린 매장이다. 후미진 골목 2층에 자리잡은 매장이기에 일반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볶은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이나 로스팅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커피하우스는 두대의 중형 커피볶음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광수씨는 아직까지 정말로 원하는 생두를 볶지 못했다. “커피의 맛은 생두가 결정한다. 지금은 원하는 생두를 구하는 게 힘들지만 자가 로스팅업이 활성화되면 양질의 생두를 공동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커피의 맛을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들. 커피 교육장을 운영하는 로스팅 전문가 전광수씨가 향과 색깔로 볶고 있는 원두를 살피고 있다(왼쪽). 자가 로스팅 매장 ‘비미남경’을 운영하는 정현정씨(맨 위)와 ‘빈스서울’을 로스팅 전문점으로 가꾸고 있는 김동진씨(위). (사진)
차츰 최상급의 원두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양질의 생두를 공급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제 맛을 내는 원두로 커피의 진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 9월부터 생두를 매장에 공급하고 있는 ‘커피스톡’은 우리나라 커피 문화를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해 생산한 최상급의 생두만을 전용 창고(warehouse)에 보관한 뒤 국내에 들여온다는 것이다. 커피스톡 유통사업부 여선구 실장은 “생두 유통의 신기원을 이루려고 한다. 기존의 생두보다 비싸지만 매장에서 한잔당 100원 정도만 추가하면 누구나 최고의 향미를 즐기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커피업체들도 발빠른 대응
이렇게 자가 로스팅 매장에 마니아의 발길이 이어지고 신선한 원두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스턴트에 주력하던 대형 커피업체들도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 매장에 갓 볶은 원두를 공급해 최소의 기간에 소모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동서식품은 대형 로스터 기기에서 생두를 한달에 세번 볶아 국내 브랜드 매장에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볶아진 커피를 선박으로 들여와 6개월가량 유통시키는 해외 브랜드에 맞서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양질의 생두를 사용하는 해외 브렌드와 한달 이내의 유통기한으로 신선도를 높인 국내 브렌드의 원두커피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커피를 마셨던 것일까. 물론 마신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커피였다. 이젠 나머지 절반의 커피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뉴요커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나 영화 <유브 갓 메일> 등에서 보았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원두의 제 맛을 담아내지 못하는 종이컵 하나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는 원두커피에서 에스프레소 브렌드로 취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의 위세는 꺾일 줄 모르고 원두커피는 향만을 날렸을 뿐이다. 에스프레소 음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생두로 커피의 진가를 확인하려는 이혁태씨. 그는 지금 커피의 향과 맛 그리고 색깔, 소리 등에 푹 빠져 커피 향기 날리는 겨울을 보내려 한다.
한겨레21 2004년11월24일 제53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