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 정기총회가 열린 4일 경주 교육문화회관에 모인 일부 선수들은 양준혁의 영입협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 일부 구단 고위층의 입김을 의심하고 있다. 원 소속구단인 LG가 협상을 아예 포기한 뒤 양준혁의 영입을 추진했던 구단은 삼성과 기아. 지금쯤이면 어렴풋이나마 연봉과 조건에 관한 이야기나 나올 법하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은 단순히 몸값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준혁을 비롯한 지난 선수협의 주축선수들은 이를 구단 고위층이 양준혁의 영입에 딴죽을 걸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선수협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양준혁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쉽게 선수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
즉 선수협 활동으로 '찍힌' 선수에게 불이익을 줘 앞으로 선수들이 단체행동을 못하게 하는 등 선수들을 순치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선수협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했던 몇몇 선수들이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사례는 많다. 초대 대변인이었던 강병규는 두산에서 SK로 트레이드된 뒤 옷을 벗었고, 마해영(삼성)과 심정수(현대)도 정든 팀을 떠나야 했다.
경주에 모인 선수들은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양준혁을 미아신세로 만들려는 각 구단과 KBO의 의도가 분명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이같은 의도가 있었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선수협은 회장을 맡을 사람이 없어 정기총회에서 제4기 신임회장 선출을 못하고 다음 대의원총회로 미뤘다. 신임회장이 유력했던 기아 이종범과 LG 유지현이 회장직을 고사하는 등 선수들 사이에서 나서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미 KBO는 선수협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선수협 활동=불이익'이라는 피해의식을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주는게 선행될 때 진정한 대화상대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