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날 운문선사가 대중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그대들에게 지나간 15일 전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15일 이후의 일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 보라.”
그리고는 대중들의 대답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다.” / 운문선사의 어록에서
좋은 날이란 어떤 날일까..
사람마다 조금 씩 다른 것을 떠올릴 것 같지만..
공통점은 근심이나 걱정 스트레스가 없는 날이 아닐런지..
동서고금의 성현의 한결같은 말은 모든 걱정 스트레스는 죽음이 있기에 생긴다고 했다.
죽음이 없다면 스트레스가 없을까?.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천 년을 사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들이 나오는데.. 그들을 보면 자기 삶을 고통스러워한다.
지독한 지루함을 내뱉으며 차라리 죽기를 희망한다..
그런 것 쯤을 모를 리 없는 성현들일 터인데 죽음이 근심의 근본 원인이라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천 년이 아니라 이백 년을 사는 인간이 없고.. 늘 시간에 쫓기듯 사는 게 인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그뿐 아니라 백 년을 살아도 지나간 백 년이 하루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기에
죽음은 걱정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보는 것 같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날이란..
머니가 원없이 많아 상관이나 부하에 시달리지 않고 넉넉함과 여유 속에 시간을 보내는 날이리라.
그런 날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열심히 사람에게 시달리며 일을 한다.
그렇게 젊어서 일을 하고 나이 들어 은퇴하니 제법 모아 논 머니가 있어 넉넉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자들이 주위에 제법 많다.
그런데 겉으론 평온하게 보이지만 어쩌다 속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근심이나 걱정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납 부러울리 없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도.. 근심 걱정은 샘물이 고이듯 모일뿐 아니라 넘쳐흘러 바다를 이룬다.
동양의 성현들은 근심 걱정을 없애려면 적은 것에 만족하라고 했다.
매일 먹는 음식이건만.. 음식을 먹기 전에 불자들은 올리는 기도가 있으니..
"이 음식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애쓰신 님들의 공덕을 고마워하며.." 하는 공양게가 그것이다.
밥만 보더라도..
농부들은
소쩍새 우는 봄 부터 국화가 피는 가을까지 벼를 땀 흘리며 키웠고.. 누군가가
벼를 쌀로 만들어 누군가가 밤새 시장으로 운반했고.. 누군가가
음식점이나 가정에서는 시장에서 쌀을 사와.. 누군가가
깨끗이 쌀을 씻고 쌀솥에 넣어.. 밥을 만들어
이 밥상에 올라왔다.
내가 매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에.. 공양게를 진심으로 생각하며 감사한다면..
많은 분들에 대한 고마움에 미소가 떠오르며..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밝은 미소나 웃음은 스트레스를 밀어내기에.^^.
그러나 일상은 먹은 음식이 소화도 되기 전에 다시 스트레스가 샘물처럼 밀려온다.
그럼에도 성현들이 한결같이 죽음이 병의 원인이라고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혹시 죽음이란 말에는 주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죽는다'에 나오는 주어인.. 곧 아상[아트만]이 근본 이유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운문 선사라 하더라도 숨을 쉬고 있다면 근심 걱정 없는 하루를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나간 날을 잊고, 보름 후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에 이르는 나[자아]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자아가 없으면 무엇이 있어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받느냐 말이다.
'나는 자아가 없다'라고 깨닫고 있으면 일상에서 진짜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며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와도 과연 편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금강경>에는 아상이 없으면 매일이 좋은 날일 수 있다 하고..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 되려면 아상(我相) 뿐 아니라 법상(法相)도 없어야 한다고 한다.
법상(法相)이라니?.
상(相)이란 말은 마음에 생긴 상(想)이 고체처럼 존재가 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법상(法相)이란 법이 존재화 또는 존재가 된 상태다.
나는 산천초목과 해와 달이 뜨는 세계 속에 산다고 하는데..
이때 세계를 존재라고 한다.
존재란 나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내가 세상에 있건 없건 매일 해가 뜨듯이 머물고 있다.
그렇게 알고 의심하지 않고 있는 세계가 바로
아상과 법상이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금강경>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아상이 없고 법상이 없다는 것은..
나라고 아는 아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너 또는 일체라고 하는 법상은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으로..
그런 깨달음이 바로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 되는 최고의 보약이라 하는 것.
위 말을 이해하면..
"운문 선사라 하지만.. 운문이 아니고, 이름이 운문일 뿐"이라는 말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