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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스키를 타지 않았다. 좋아한 것도 아니고 싫어한 것도 아니다. 그냥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 같다. 그래서 이민교회에서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스키 캠프를 갈 때에도 따라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양하며 전도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고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신약성경을 200번 이상 읽었다. 암송도 수백 구절은 너끈하게 했다. 개인 전도도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여 수 백 명은 족히 넘게 예수님을 영접시켰다. 구원의 메시지는 복음전파로 짧으면 30분에서 보통 2시간 동안 왜 인간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도와주는 메시지이다. 기도는 하루에 보통 2-3시간씩 했고, 하루 금식은 수도 없이 했고 3일 금식도 많이 했으며 최장으로는 10일 금식도 해 봤다. 또 찬양인도자로 공식적인 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한 것만 해도 대략 2천 회가 넘는다. 신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을 전후로 3년 동안 교회에서 기거하면서 새벽기도회부터 철야기도회까지 모든 예배와 성경공부와 사역에 동참했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관심 밖에 일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목사가 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이 때에 내 나이가 34살이다. 개척교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고난과 가시밭길…. 특히나 이민교회에서의 개척교회, 더 어렵고 더 힘들고…. 처음 개척을 했을 당시 둘째 형님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막내야 바람이나 쐬러 가자” 하면서 내 손을 잡아 이끄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가게 된 곳이 바로 스키장이었다.
개척 1년 만에 교회 문을 닫고 머리를 밀었다. 하나님께 죄송하고 송구하고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예수님 보다 먼저 달려가도 한참을 앞서서 뛰었던 것이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지만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경험이었다. 처음 개척을 할 때에 약속했던 것이 있어서 1년 만에 깨끗이 교회 문을 닫고 이후로 제 사역에는 가족들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 다른 교회에서 각자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다시 시작된 부목사 생활,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사이비나 이단의 교주처럼 뉴저지에서 가장 큰 교회를 꿈꾸며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던 목회자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400명이었던 교회가 3달 만에 60명의 교회로 전락했다. 엄청난 상처와 충격이 수많은 지체들에게, 영혼들에게 주어졌다. 나는 40일을 금식기도한 후에 사임을 했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광야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사역지를 구하는 일 때문에 고생을 해 본적이 없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교회에서 먼저 사역을 요청해 줘서 너무나도 쉽게 사역지를 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3년이 넘도록 사역지가 정해지지 않는 것이다. 임지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구해지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사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단에 서지 않는 목사는 살아 있어도 실상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음 사역지가 바로 구해질 줄 알았는데 내 뜻과는 다르게 담임목사 청빙 공고에 지원서를 낼 때마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목사가 이중직을 갖고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버는 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목사는 강단을 통해서 주어지는 양식으로 먹고 사는 존재이고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살더라도 교회를 섬기면서 충성하는 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살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3년 동안 소위 세상적인 일로 취급되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 한 마디로 수입이 없었다. 그런데 매달 렌트비며 전화비, 전기료, 자동차비, 보험료, 음식비 이런 비용이 나가야 했다. 어떻게 견디며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보라. 나는 이 때에 광야에서 만나가 매일매일 주어졌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 주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0%는 아니었다. 50% 그리고 나머지 50%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신용카드의 한도가 끝까지 차게 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와 두 딸을 책임져야 하는데 사역지는 정해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에 내 나이가 40이다. 가장의 책임감이 컸던 탓일까 3년간 일을 하지 않고도 한 번도 각종 공과금을 늦게 낸 적이 없었지만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 몸에 빨간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낫다. 그리고 가끔씩은 풍을 맞은 것처럼 입이 완전히 돌아가기도 했다. 돌아간 입은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맛사지를 하며 계속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3일이 지나서야 제대로 다시 돌아왔다. 몸에 두드러기가 났을 때는 병원을 가고 싶은데 건강보험이 없었던 터라 병원을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번 갔다 오면 최소한 $200, $300불은 족히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둘째 형님이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분전환이라도 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스키장을 따라 갔다. 이 날 아침 나의 온 몸은 목에서부터 발끝까지 빨간 두드러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내가 문둥병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키 초보자인 나에게 형님은 초보자 코스에서 몇 번 가르쳐 주더니 바로바로 Green, Blue 심지어는 상급자 코스인 Black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초보자 코스인 그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중급자 코스인 불루부터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솔직히 겁이 났다. 왜냐하면 초보자이고 스키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 내가 사양하지 않고 모두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적에 탔던 롤러 스케이트 때문이다. 나는 롤러 스케이트 선수보다도 훨씬 더 롤러 스케이트를 잘 탔다. 대회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선수들과 같이 달려 보아도 내가 더 빨랐고 피겨 스케이트 선수가 반원을 그리면서 뒤로 회전을 하는 것이나 앞으로 턴을 하는 것이나 갑자기 단 한 번에 정지를 하는 것이나 선수들보다도 더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문인지 스키에서 단번에 눈발을 휘날리면서 갑자기 급정지를 하는 하키스탑(Hockey Stop)을 한 번에 배웠다.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고 따라해 보니 바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급경사에서 속도가 빨라져서 무서워지면 Hockey Stop으로 섰다가 다시 내려가고 또 Hockey Stop으로 서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초보자지만 겁도 없이 블랙 다이아몬드 슬로프를 내려갔던 것이다. 급경사를 내려갈 때에는 다른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여기에서 살아남아서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안전하게 슬로프 밑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온 신경을 집중해서 스키를 타고 집에 와 보니 옷은 모두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내 몸은 마치 어린 아기의 피부처럼 깨끗하고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이 모습을 아내가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후로 아내는 제가 스키를 타러 가는 일을 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2주 동안 콜로라도 주로 스키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지지해 주었다. 스키가 남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 몸이 두드러기로 가득 찼던 것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변한 것을 보고 이것은 의학적인 방법으로 고칠 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스키라는 도구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40이 넘어서 본격적으로 스키를 배우게 되었다. 스키는 참 많은 것들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스키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 산 아래로 언덕을 타고 내려가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높은 산은 골도 깊다. 골짜기가 깊지 않으면 결코 높고 큰 산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대기만성이란 말도 있다. 큰 그릇은 만드는데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교육은 100년지대계란 말도 있다. 큰 인물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성숙한 인격자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세월도 필요한 법이다. 지나놓고 보니 인생 자체가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이 연속적으로 교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르막 길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올라 갔다가 내려가게 되고,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오르막 길에 있을 때에는 겸손해야 하고 내리막 길에 있을 때에는 희망과 소망을 갖고 다시 재도약을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면 된다. 스키는 이러한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균형감 Balance
균형감은 스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균형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넘어지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끝이다. 스키는 0.001초를 다투는 경기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이다. 만약에 알파인 경기에서 1초의 차이가 났다면 그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실력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넘어지면 안 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을 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수 23:6)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강점 보다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첫째는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고, 둘째는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셋째는 교육과 선교, 전도, 봉사와 섬김이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고, 넷째는 나눔과 누림이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균형, Balance를 잃어버리면 스키도 신앙생활도 모두 잘 할 수 없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 가듯이 비행기가 두 날개로 하늘을 날아오르듯 균형을 이루고 Balance를 맞출 때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달릴 수도 있고 하늘을 날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삼. 절대 겸손해야 한다.
스키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서 교만하면 안 된다. 자신의 실력에 맞게 자신에게 맞는 레벨에서 즐기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스키를 타러 가면 거의 예외 없이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은 꼭 보게 되는 모습이 있다. 그것은 바로 Ski Patrol, 구조대원에 의해서 산 밑으로 실려 내려가는 모습이다. 대부분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겁이 없기 때문에 속도를 절제하지 않고 슬로프의 상황에 상관없이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즐거움을 위해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 보니 원치 않는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 스키를 타는 것을 보면 아침 일찍 슬로프의 컨디션이 제일 좋을 때 시작해서 정오나 오후 1시쯤이면 스키를 마치고, 간단하게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시고 하산을 하신다 이것이 사고 없이 60이 넘고 70이 넘어서도 스키를 탈 수 있는 비결이다. 또한 이분들이 스키를 타는 모습을 보면 속도를 내기 보다는 정석적인 기술을 사용해서 한 턴, 한 턴 정확하게 S자 턴을 그리면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스키를 타는 것이다. 나 또한 70, 80이 넘어서도 스키를 타려고 한다. 체력이 떨어지고 다리 근육의 힘이 약해지게 되면 기술을 사용해서 한 턴 한 턴 내려오면 얼마든지 나이를 먹어서도 스키를 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잠 18:12)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며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나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스키는 절대로 교만하면 안 된다.
사. 때에 맞게 해야 한다.
스키는 슬로프의 상황에 따라서 그 때 그 때에 맞춰서 타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날, 같은 슬로프라고 해도 오전과 정오와 오후의 상태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슬로프의 변화에 맞춰서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슬로프는 오후가 되면 고속도로의 아스팔트 같이 잘 정돈이 된 것 같은 그루밍(Groomed)이 없어지게 되고 세미 모굴(mogul)처럼 여기 저기가 움푹 파이게 된다. 비포장 도로에서 포장도로처럼 달릴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날씨가 따뜻해 지고 온도가 높아지게 되면 눈이 녹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얼음 음료수처럼 슬러쉬(slush)가 되기도 하지만 정오의 강렬한 햇살에 눈이 녹았다가 오후에 다시 온도가 떨어져서 슬로프가 얼기도 한다. 그러면 이 때에 맞춰서 스키를 타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아니다.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조화롭게 거기에 맞춰서 순응을 하는 것이 스키를 안전하고 재미있게 타는 요령이라 할 것이다. 맑고 화창한 날에 시원한 바람까지 부는 경치가 좋은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하고, 이슬비로 약한 비가 내리는 날하고, 장대비는 아니지만 빗줄기가 제법 굵은 비로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날하고,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억수 같은 폭우가 폭풍우 속에서 내리는 날하고 운전을 하는 원리는 같아도 운전을 하는 방법은 그 때, 그 상황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스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전도서(3:1-11)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증거해 주고 있다. 또 잠언서(15:23)는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라고 했다. 말 한 마디도 때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운전을 하는 것이나 스키를 타는 것이나 다 때에 맞게 타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다양함 속에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통일성 속에서 다양함을 존중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란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성부 하나님, 성부 예수님, 성령님 삼위의 하나님 이시나 각각 다른 사역을 감당하시지만 완전하신 하나의 하나님이란 것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함과 통일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스키는 한 가지 방법으로 타는 것 같지만 그 한 가지 원리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슬로프와 내가 하나가 되어서 조화롭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온전히 스키를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오. 눈이 없으면 스키를 탈 수 없다.
스키와 눈과의 상관관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키는 눈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운동이기 때문에 눈이 없으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스키 선수들은 여름이 오면 유럽이나 칠레와 같은 나라로 눈을 찾아서 전지훈련을 떠난다. 스키 선수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독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해도 실상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있으면 아무것도 없다 해도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그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하는 것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기쁘고 감사하고 즐겁게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방 지치고 번아웃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령님과 함께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마치 스키가 눈 위에서 스르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오듯이 은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사의 믿음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오직 예수! 성령충만! 아멘. 아멘.
육. 겁을 내면 안 된다.
무서움과 두려움을 갖게 되면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올 수 없다. 특별히 중사면이상 급사면의 슬로프를 타게 되면 속도는 자연적으로 빨라 질 수밖에 없다. 월드컵 경기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활강하는 모습을 보라 순간 시속 120-130km의 엄청난 속도로 언덕을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100미터 달리기를 9초에 끝내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인 것이다. 그런데 스키는 1초에 130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일반 아마추어 스키어들도 상당한 속력으로 활강을 한다 왜냐하면 스키는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산 정상에서 베이스로 내려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스키의 매력 중에 하나가 바로 speed속도감이다 그런데 속도와 경사도에 겁을 내면 어떻게 스키라는 스포츠를 즐길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성경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두려움을 갖게 되면 그래서 담대하지 못하면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없고 적과 싸워서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말씀해 주셨다. 스키도 신앙생활도 두려워하고 겁을 내면 안 된다 나를 붙들어 주시고 굳세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죄와 싸워서 이기고 무서움과 싸워서 이기고 나를 공격하는 모든 적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스키의 부츠는 앞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부츠를 신고 서면 땅과 직각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상체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 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야 언덕 아래로 스키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스키 점프나 월드컵 경기에서 고속으로 선수들이 활강하는 모습을 보면 한결같이 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앞으로 바짝 기울인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게 중심이 뒤로 쳐지게 되면 곧바로 중심을 잃게 되고 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속도가 나고 경사가 급경사로 기울어지게 되면 될수록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자세를 바로잡고 앞으로 언덕 아래로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는다.
성경은(눅 9:62)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해 주면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천국 본향을 향하여 소망을 갖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끝내 뒤를 돌아보아서 소금기둥이 되어 심판을 받은 롯의 아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스키도 신앙생활도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 것이다. 스키는 산 정상에서 아래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 갑니다’란 찬송의 가사처럼 천국 본향을 향해서 소망을 갖고 복음 들고 앞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해 나아가는 것이다.
팔.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스키는 대회가 아닌 이상 한 슬로프를 여러 사람이 같이 타고 내려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동선이 겹치게 될 때,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자동차와 자동차가 부딪치는 것만이 접촉사고가 아니다. 나와 다른 스키어가 부딪치는 것 역시도 접촉사고인 것이다. 스키에서 일어나는 큰 사고들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해서 넘어지는 경우는 순간적으로 안전하게 엉덩이부터 넘어지거나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게 넘어지는 등 나름 대처를 할 수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경우는 예상치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다른 스키어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그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비교하고 나의 턴 크기를 조절하여 될 수 있으면 서로가 부딪치지 않도록 해서 서로가 안전하게 내려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막 12:31, 갈 5:14)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지니 이것이 새 계명이며 가장 큰 계명으로 온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한 마디로 주위를 살펴서 이웃들을 돌아보고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나만 생각해서 내 만족만을 위해서 스키를 타면 안 된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생각과 시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을 배려하면서 같이 슬로프를 내려올 때, 모두가 안전하고 재미있는 스키를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구. 무릎을 모을 수 있어야 좋다.
초보자와 중급자일 때는 무릎을 모으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상급자가 되고 최상급자가 되면 무릎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왜냐하면 고급 기술을 익히려면 이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굴스키는 무릎을 벌리고서는 멋있게 안전하게 제대로 탈수가 없다. 이 말은 무릎을 벌리고서도 탈 수는 있겠지만 자세도 엉망이고 쉽게 잘 넘어지며 부상도 쉽게 얻을 수 있고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무릎을 붙이면 급경사에서 안정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쉽게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으며 날씨가 따뜻해져서 슬로프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 또 그루밍이 되어 있지 않은 정돈되지 않은 슬로프에서도 안전하고 쉽고 빠르게 내려올 수가 있다. 매우 유용한 기술인 것이다.
신앙적으로 보면 기도의 손을 모아야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해야 한다. 무릎을 벌리고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가 없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려면 반드시 무릎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무릎을 모으는 것은 스키를 탈 때도 기도생활을 할 때도 꼭 필요한 것이다.
십.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한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이듯이 스키도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잘 탈 수 있다. 왜냐하면 굉장히 에너지 소비가 많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체가 잘 발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 허벅지와 장단지의 근육에 힘이 있어야 하고 지구력과 인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재미있고 즐겁게 스키를 탈 수가 없다. TV에서 중계해 주는 알파인 스키 대회의 영상을 한 번 보기 바란다. 남자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여자 선수들의 허벅지의 두께를 보면 그 크기에 놀라고 그 넓이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훈련을 많이 하고 연습을 많이 했으면 그렇게 되었겠는가 생각해 보라 시속 120-130Km로 내 달리면서 방향을 바꿔서 코너를 돌 때 그 압력을 오롯이 스키와 두 발로 견디어 내는 것이다. 하체의 튼튼한 힘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키를 잘 타기 원하는 분들은 평상시에 많이 걷고, 많이 뛰고, 많이 하체 운동을 꾸준히 해서 기초 체력을 강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기초신앙, 기본신앙이 튼튼하게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몰아치는 고난과 환난이 닥쳐올 때에 그것을 이겨낼 수가 없다. 기도 훈련도, 말씀 훈련도, 기쁨과 찬양의 훈련도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십일. 스키는 믿음이 중요하다.
가파르게 깎여 있는 급사면을 빠르게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속도를 조절하지만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내려오는 것이 또한 스키이기도 하다. 이것이 스키의 매력이다. 이렇듯 안전하고 빠르게 급사면을 타고 내려오려면 내가 갖고 있는 스키 기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아무리 경사가 급하고 무섭게 깍여 있어도 탑 & 테일 컨트롤, 센터 포지션, 카운터 로테이션, 정강이(Shin) 컨트롤, 업 & 다운, 폴체킹, 숏턴, 미들턴, 롱턴, 카빙 숏턴, 카빙 미들턴, 카빙 롱턴, 좌우 중심이동, 리듬감 등등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자세를 언덕 아래로 낮추고 기술을 사용하면 안전하고 빠르게 급사면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의 악셀을 밟으면 속도가 높아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속도가 낮아지며 핸들을 돌리면 핸들을 움직이는 대로 차가 나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경사가 아무리 급하고 무서움이 들 정도로 깎여 있을 지라도 내가 습득한 기술을 믿고 그 기술들을 사용해서 내려가면 안전하고 빠르게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롬 1:17)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응답도 받고 믿음으로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키도 결국은 내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갖고 타는 것이고 신앙생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큰 믿음을 크게 칭찬해 주셨다. 믿음으로 스키도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십이. 스키는 소망이 소중하다.
스키의 시즌은 비교적 짧다. 눈이 없으면 스키를 탈 수가 없는데 눈이 녹지 않고 산에 쌓여 있는 기간이 길지가 않기 때문에 스키어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매우 소중한 계절이다. 필자가 사는 뉴저지와 뉴욕은 주로 1월에 시작하여 3월 둘째 주나 셋째 주면 시즌이 끝난다. 그러면 버몬트 주로 4시간을 운전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그래봐야 4월 말이면 끝이다. 그래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면 또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기다리면 반가운 겨울이 또 찾아온다. 그러므로 소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은(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 중에 하나가 바로 소망인 것이다. 성도는 천국 소망을 갖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신앙을 가져야 하고, 스키어는 반드시 또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는 소망 속에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눈이 내리는 겨울은 꼭 다시 찾아온다.
십삼. 스키는 사랑이 최고이다.
스키는 스키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다. 스키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억지로 할 수 없는 운동인 것이다. 두 딸들에게 스키를 가르쳐 보았다. 큰 딸은 무섭다고 해서 좋아하는 다른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고, 막내는 재능도 있고 재미있어 하면서 잘 타기도 하는데 열정이 크지가 않다. 타면 재미있고 타지 않아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다. 반드시 타야 하고 꼭 타야 하고 열심히 타야 한다는 마음이다. 스키를 사랑하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성경은(고전 13:13)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이 최고인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고 베풀었다고 해도 그것이 사랑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뽐내고 자랑하려고 한 것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랑해서 해야 하는 것이고,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스키를 사랑하면 타지 말라고 말려도 스키를 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살려고 한다.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스키도 신앙생활도 사랑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십사. 스키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좋다.
스키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리프트가 시작하는 시간이 보통 오전 9시인데, 스키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주로 다니는 뉴욕의 헌터 스키장은 2시간이 걸리고, 봄이 되면 가게 되는 버몬트 주의 오키모나 킬링톤 스키장의 경우는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가고 오는 시간 동안 설교 말씀도 듣고 찬양도 듣고 소리를 내서 마음껏 기도도 할 수 있어서 좋다. 특별히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 동안 하나님과 나만의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보통 10분이 걸리는데 그 시간동안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묵상한다.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조용히 나즈막한 목소리로 찬양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주로 주중에 스키장을 가기 때문에 혼자서 리프트를 타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 경사가 심한 급사면을 타고 내려올 때면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엔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 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영적인 대각성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같고 심령 대부흥성회에 참석하는 것과 똑같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면 찬송가의 가사처럼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가 절로 노래로 나온다.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귐과 만남이다. 그래서 은혜이고 그래서 좋은 것이다.
십오.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초심이어서 소중하다.
내가 스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때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시절이었다. 동서남북 그 어디를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고 앞은 캄캄했다. 오직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이 때에 나를 하나님께서는 스키라는 도구를 통해서 어루만져 주셨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적인 직업을 갖고 일을 하기에는 내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도 할 수 없고 경제적인 수입은 Zero이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떻게 두 어린 딸들과 아내를 부양하란 말인가?
갑자기 온 몸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나고 입은 풍을 맞은 사람처럼 완전히 돌아가서 제대로 말을 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런데 스키장을 갔다 오면 두드러기는 없어지고 돌아간 입도 제대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스키장에서 빌려 주는 카빙스키로 입문을 했지만 장비를 렌트하는 비용이 비싸서 ebay에서 옛날 스키를 중고로 15불에 구입을 했다. 이 때는 스키의 추세가 카빙스키로 바뀌는 시점이어서 옛날식 구형 스키가 매물로 싸게 많이 나왔다. 정비하는 분의 말에 의하며 제대로 구입을 했으면 $1,500불을 주었을 것을 너는 단 돈 $15불에 구입을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 10년은 넉넉히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형 스키는 본인의 키보다도 10센치는 더 큰 것으로 카빙스키가 아니어서 회전을 시키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 스키 자체를 컨트롤 하는 것도 힘이 든다. 하지만 매번 장비를 렌트를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스키를 장만했고, 부츠도 ebay에서 $35에 구입을 했다. 스키복은 마침 교회 바자회에서 $15불에 마련해 놓은 것이 있어서 장비가 얼추 구비가 되었다. 헬멧은 첫 해에는 털모자를 쓰고 했고, 그 해가 마무리될 때에 헬멧과 폴대를 세일기간에 싸게 구입을 했다.
나는 스키장을 가게 되면 이 때를 기억한다. 잊지 않고 마음 속에 새긴다. 처음 초심의 마음을 잃지 말라는 격언처럼 가장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앞이 안보이고 죽을 것만 같았으면서도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경험했던 그 축복의 고난을 다시금 회상한다. 그러면 어느새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고 가슴은 감동으로 충만해진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는 지금 광야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스키는 나에게 있어서 초심을 생각나게 해 주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고, 초심으로 감사하게 해 주기 때문에 소중하다.
십육.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은 마치 하나님의 품 같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꼭 안아 주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기듯 나는 하나님의 품이 그리워서, 하나님의 품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의 품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서 스키장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언제나 나를 꼭 안아 주셨다. 나에게 있어서 스키는 하나님의 품에 꼭 안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좋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이신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스키를 타면 내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내 안에 온전히 계신 것과 같은 인식을 강하게 하게 된다. 그만큼 갈 때부터 은혜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나는 길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하루 종일 하나님 한 분을 깊이 인식하면서 깊은 교제속에서 스키를 탄다. 스키는 하나님과 내가 깊은 관계를 맺고 교제를 나누는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우리 집의 두 딸들은 필자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서 아빠의 품에 꼭 안긴다. 나는 이 순간을 매우 좋아하고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을 보았으나 이 순간만큼은 딸들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족으로서의 일체감을 크게 느끼는 것이다. 스키는 바로 내가 하나님의 품에 꼭 안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운동으로도 좋고 신앙적으로도 매우 유익하다 하겠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되면 스키에 열심을 내고 정성을 쏟는다. 나는 나를 꼭 안아 주시는 하나님이 참 좋다. 그래서 스키도 좋다.
십칠. 나의 스키 철학은 ‘Safe Ski, Enjoy Ski’ 이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콜로라도 주로 2주간 스키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려 났더니 어떤 분이 나에게 스키를 목숨 걸고 타시는 분 같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다. 오해하여 잘못 알고 계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안전하게 스키를 타는 것 앞에 재미있고 신나게 스키를 타는 것을 우선에 두지 않는다. 좀 덜 재미있고 조금 덜 신이 나더라도 안전하게 스키를 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키를 타다가 다치게 되면 뼈가 부러지거나 골절상을 입게 되는데 그러면 다음날 일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 다음날 하루뿐이겠는가? 몇 달을 고생해야 할 것이다. 일상의 삶을 걸고 익스트림(Extreme) 스포츠를 즐기는 것처럼 스키를 타지는 않는다.
안전하게 타는 것 속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신나게 타는 것이 목표이다. 기술이 늘고 스키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 속도도 충분히 내면서 안전하게 슬로프를 내려올 수가 있다. 부상은 육지에서 하는 운동선수도 모두 안고 사는 것이다. 다치는 것을 무서워하면 그 어떤 운동도 할 수가 없는데, 최대한으로 사고없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스키를 타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다.
필자는 지난 시즌(22/23)에 43일을 스키를 타러 갔다. 그 기간동안 적어도 최소 500번 이상 상급자 코스인 블랙 다이아몬드 슬로프와 최상급자들에게 권하는 더불 다이아몬드 코스를 타고 내려왔다. 그런데 한 시즌 동안 단 한 번도 가파른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다가 넘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스키를 타는 것도 아니다. 상당한 속도감을 즐기면서 스키를 탄다. 이번 시즌(23/24)에는 모두 28번 스키를 타러 갔다. 콜로라도로 2주간 스키여행을 간 것을 포함해서 그렇다. 콜로라도에서의 9일 동안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해서 스키만 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급한 경사와 가파른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넘어진 적은 없다. 왜냐하면 Safe Ski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스키를 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두 딸이 있고 아내가 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어깨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서 이 직무를 포기할 수가 없다. 다치면 안 된다. 그래서 조심하여 안전히 재미있고 신나게 스키를 타는 것이다. 스키장을 갈 때면 아이들과 아내와 ‘Safe Ski, Enjoy Ski’로 인사를 한다. 아빠, 여보 안전하고 재미있게 타고 오세요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인사말인 것이다.
결론:
필자는 본래 스키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40이 넘은 나이에 이상한 방법으로 스키를 반 강제적으로 타게 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마치 풍을 맞은 사람처럼 입이 완전히 돌아가게 함으로써 스키에 집중을 하게 하셨다. 스키를 타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였고 강하게 인식하고 크게 신뢰하였다. 그것 만이 나를 살게 하였고, 나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었다. 이제는 스키를 꽤 잘 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왜냐하면 선생님에게 코치를 받으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유투브와 책을 보면서 10년 동안 혼자서 공부하고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평생동안 스키를 타시면서 전미주 스키 강사 협회의 회원으로 35년 동안 스키 코치를 하셨던 84세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분은 깊은 산골 속에 혼자 기거하시는 신령한 도인 같으신 분이신데 헬리콥터에서 내려서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헬스키를 타시는 분이시다. 일반 스키장에서도 정설 된 슬로프보다는 주로 모굴 스키를 즐기시니 과히 도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또 미동부 스키협회의 회장님과 회원님들을 올 해 버몬트 주의 오키모 스키장에서 만나서 3일 동안 같이 스키를 탔다. 10년 동안 혼자서만 타게 하시더니 이제는 좋은 분들을 만나서 지도도 받고 교제도 나누며 가르침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정교하게 스키를 탈 수 있게 될 것 같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그것은 80이 넘어서도 일을 하는 것이고, 80이 넘어서도 스키를 타는 것이다. 전에는 70이 목표였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난 후, 목표가 상향 조정이 되었다. 선생님은 비 시즌 동안에는 매일 같이 하루에 2시간 이상 걷는다고 하셨다.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50대인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이다. 더 노력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비록 시즌은 끝났지만 5월부터는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많이 걷고, 많이 뛰고, 많이 스쿼트도 하면서 체력 관리를 철저하게 할 계획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미신 스키라는 도구를 잘 붙잡아서 하나님과 더욱 더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체력도 실력도 발전시키고 늘려가면서 안전하고 재미있게 또 신나고 은혜롭게 스키를 타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비록 나이 들어서 배운 것이지만 80이 넘어서도 나는 스키를 타고 싶고 또 탈 것이다. 스키는 하나님과 나와의 특별한 만남이고 깊은 교제이다. 이것이 내가 스키를 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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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게 없어요,,,아무리 애써도 후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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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을 부탁드립니다..굶어 죽을 처지입니다
카페지기는 살기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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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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