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이나 지난 지금 새삼 회상을 하려니 그새 그 길었던 하루가 아닌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참 사람은 편리한 동물이긴 하네요...
과기대 생활에 익숙해져 하루의 시작이 무척 늦었던 저는 가장 처음 적응해야 했던 것이 아침 6시 기상이었습니다. 음... 그 때는 새벽이라고 했던 것 같네요. 일어나면 찬 곳에서 자고 난 다음의 뻐근한 몸을 먼저 풀었습니다. 대충... 그리고 점검을 받고 나면 밥이 올 때까지 아침운동을 했지요. 처음부터 했던 것은 아니고, 하루내 한 자세로 고정이 되니까 점차 몸이 굳다보니 안되겠다 싶어 요가책까지 구해서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습니다.
한 15분 가량의 운동이 끝나면 씻으러 갑니다. 방안의 세면공간-화장실이지만-으로. 그곳에 작은 창이 나 있어 이전에는 잘 보지 못했던 이른 아침의 공기를 만끽하고는 했습니다. 씻고 나면 밥먹고 설거지 하고... 이 때는 조금 정신이 없습니다. 음악도 흘러나오고...
9시 점검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지요. 밥상 겸 책상을 붙들고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날 읽을 책과 써야할 편지를 함께 가지고... 책을 읽으면서는 항상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나중에 누군가에게 보낼 편지에 적기 위해서 따로 노트에 적어 놓곤 했습니다. 아니면 다시 읽어보면서 그 순간의 고민, 느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꽤 정연하게 정리해서 적어 놓았더랬습니다.
하지만 가끔 책도 읽히지 않고 고민도 없이 머리가 텅 비어버릴 때면 무작정 좁은 공간을 뜯어봅니다. 작은 곳에 나있는 낙서... 언젠가 벽의 작은 무늬들을 꼼꼼히 보면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연결시키는 장난을 하다가 ‘조국통일만세’라고 적은 작은 낙서를 보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나더군요... 그 이후 방을 꼼꼼히 다 기억할 수 있게 되자 저도 여기저기 낙서를 남겼습니다. 덮는 모포에 실로 수를 놓기도 하고. ‘조국통일’이라고...
면회는 오전부터 기다리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그 곳에서는 참 많이 기다려지는 일이니까... 다른 방이 아닌 내 방만을 골라서 문을 딸 때, 그 때는 무척 설레여 집니다. 아마 그 곳에서의 유일한 기다림이자, 설레임이지 않을까 싶네요. 부모님, 친구들, 심지어는 변호사까지도 매일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었는데... 이제 다시 그들 곁으로 돌아와서는 그 간절함을 쉽게 잊어버리다니...!
식사 시간이 되면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방송에서는 날씨를 비롯한 전국적인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을, 점심에는 정서의 흐름을, 저녁에는 사건·사고들을 비롯한 뉴스를 들을 수 있었지요.
오후에는 보통 운동시간과 목욕, 혹은 머리감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들을 단 10분이라도 늘려보려고 애쓰던 기억이 납니다. 한 사동을 하루에 다 무리없이 시간분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간표와 방법까지 짜 주면서... 그래서 얻어낸 것이 하루 30분 운동. 3방정도가 함께 운동장에 나가는데 그리 크지도 않은 운동장에서 다들 수다를 떠느냐고 정신이 없더군요. 저는 독방이었기에 그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도 나누게 되고... 악의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를 죄인이라는데... 어느 정도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적응이 되자 운동장을 한사람씩 붙들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동과 통방도 하구요. 그 때 2사에 있었던 같은 공안범들과 선물-먹을꺼리-과 안부편지를 자주 나누었습니다. 당연히 사귄 언니들이 망을 바주었구요... 그렇게 싹튼 의리?
그 의리는 목욕시간에도 독방의 저를 무시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한정된 물로 목욕을 하는 것이니 전쟁이나 다름없기에 서로 미리 짝을 지어 등을 밀어주어야 했습니다. 여분으로 저까지 챙기기는 힘들지요. 그런데 저는 누군가가 꼭 챙겨 등을 밀어 주었습니다. 어린 저에 대한 안쓰러움이기도 했을 겁니다. 다들 어머니 같은 연세셨으니... 모성 본능이란...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서서히 하루를 정리할 시간입니다. 저는 이시간에 운동을 했습니다. 한 한시간정도. 한시간 운동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매일 한 량을 적어 비교하곤 했었는데 일어났다 앉았다-30번, 윗몸 일으키기-100번, 팔운동-50번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맨 처음 쉽게 생각나는 것이 PT체조였는데 이것은 한 번 저와 함께 지내던 사람이 다른 방으로 전방가면서 퍼트려 어느 새 저녁시간에는 방마다 이것을 하느라 쿵쿵거려 감방 무너진다고 호통을 듣기까지 했더랬습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 싫증이 날쯤 전 제자리 뛰기를 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자주 충대에서 과기대까지 걸어다녔었는데 그 거리들을 생각하며 자, 이제 출발해서 중앙도로, 쪽문, 궁동, 어은동... 맞아 이쯤에 붕어빵 아저씨, 이쯤에 내가 좋아하는 찻집, 학교의 길게 뻗은 길가의 계절마다의 풍경들을 생각하며 뛰면 어느새 15분 정도의 운동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몰래 샤워를 합니다. 방안에서는 샤워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냥 배짱으로 하는거죠. 여름에는 때도 밀었었는데... 찬물로 잘 밀리던데요, 참 신기했지만...
저녁을 먹고 방송까지 조용해지면 자는 시간입니다. 아주 조용한 시간이지요... 흐린 불빛만 밤새 켜져 있을뿐 아무리 늦어도 11시경이 되면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어느 정도 그 생활에 적응한 뒤에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저만의 차분한 시간이 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남사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저를 채찍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지들 생각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번은 느닷없이 밤에 어디선가 제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한총련 진군가를 비롯해 그리운 노래들이 들리더군요. 밖에서 친구들이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면 늘 별 특이할만한 일이나 성과가 없었다는 것에 조급해 하다가도 서서히 하나하나의 작은 사건들이 하루의 일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작은 달이 또 한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꼭 동지들 꿈을 꾸었기에 자주 달을 찾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공간적으로는 혼자이더라도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을 느낄 때면 가장 힘이 솟습니다. 그래서 잦은 단식투쟁을 즐겨 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무언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뻤기에, 갇힌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기에... 늘 단식 때면 주위에서는 독하다고들 했지만 많은 시간을 혼자 여사에 있는 저로서는 그렇게라도 느끼는 동지들과의 연대가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그 때를 떠올리니 맘껏 활동할 수 있는 제 상황이 새삼 크게 다가옵니다. 쉽게 잊어버리는 소중한 것을 왜 맘껏 활용하지 않는지...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고 벌써 아픔이 아닌 추억으로 자리잡은 제 경험이 준 교훈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