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의 역사) 58. 원소의 왕국 주기율표 – 피터 앳킨스
주기율의 왕국으로 가 보자. 이곳은 상상의 나라이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실제와 가깝다. 이곳은 화학 원소의 왕국이며, 모든 것이 이 원소로 만들어진다. 이곳은 그리 큰 나라가 아니어서 겨우 100개 남짓한 지역(원소)으로 나눠지지만, 물질로 만들어진 실제 세계의 모든 것이 여기에서 나온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100가지 원소에서 모든 행성, 암석, 동물, 식물이 만들어진다. 원소는 공기, 바다, 지구 그 자체의 기초이다. 우리는 원소 위에 서 있고 원소를 먹으며, 우리 자신이 원소이다. 우리의 뇌도 원소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우리의 생각조차 어떤 의미에서는 원소의 성질이며, 따라서 원소도 이 왕국의 국민이다.
이 왕국은 지역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성질이 이웃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도록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다. 선명한 경계는 거의 없고, 경치는 대개 서서히 변한다. 초원은 완만한 골짜기와 섞이고, 골짜기 점점 깊어져서 끝 모를 심연으로 변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왕국을 탐험할 때 가져야 할 비유적인 이미지이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원칙은 물질세계가 100개 남짓한 원소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이 원소들이 패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실제의 세계는 엄청난 복잡성과 헤아릴 수 없는 매혹으로 가득하다. 생명이 없는 돌과 바위, 강과 바다, 공기와 바람조차 끝없는 놀라움을 준다. 여기에 생명까지 보태면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장대한 문학 작품도 따지고 보면 수식 개도 채 안 되는 문자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만들어지듯이, 이 놀라운 자연물도 겨우 100개 남짓한 원소들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만들어진다.
초기의 화학자들은 조잡한 실험 기술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이성의 놀라운 능력으로(이 힘은 그때도 지금처럼 강력했다) 세계를 화학 원소로 환원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렇게 환원시킨다고 해도 매혹은 사라지지 않고, 사물을 이해했다는 짜릿한 기쁨이 선물로 따라온다. 이해는 우리의 기쁨을 늘려줄 뿐이다.
그 다음에 거대한 성취가 뒤따랐다. 이 원소들은 물질이지만,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화학자들은 외관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친화력의 결합과 친족적 연관성의 왕국을 보았다. 화학자들의 실험과 연구에 의해 바다 밑에서 육지가 솟아올랐고, 그 육지 위에 원소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드러났다. 계속된 연구에서 이 풍경이 단지 산과 골짜기가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기성을 띤다는 것을 알려졌다. 이것은 가장 놀라운 발견이다. 그런데 물질은 왜 주기성을 띠는가?
과학의 발전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실제의 어떤 이면에 숨어 있는 단순한 개념이 드러나면 갑작스럽게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원자(그리고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명인 양자역학)가 알려지자 이 왕국의 뼈대가 드러났다. 단순한 원리들(특히 수수께끼 같은 배타 원리)에 의해 이 왕국의 주기성은 원자의 전자 구조에서 유래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왕국의 구조와, 이 구조로 가능한 모습들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이 왕국을 지배하는 심오한 흐름을 지금 다 보여 줄수는 없지만, 이 흐름은 우리에게 알려졌다. 우리는 이 왕국을 이해했지만, 그 신비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영역의 성질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일정한 범위 안에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원소와 화합물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왕국(주기율표)은 화학을 통합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온 세계의 교실과 연구실의 벽에 걸려 있는 주기율표는 화학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이 표의 배열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이것은 모순과 충돌의 왕국이다. 물질의 특정한 성질은 여러 영향들이 경쟁한 결과이다. 이 영향들은 대개 섬세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경험이 쌓여도 어떤 원소가 연구해 볼 만한 새롭고 흥미로운 성질을 가질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단순한 알파벳의 조합이 위대한 문학이 되어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원소의 왕국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알파벳과 달리 이 왕국의 하부 구조에는 다양한 성분들이 있다. 이 성분들의 여러 가지 성질이 예측하기 힘든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이 왕국은 언제나 끝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리처드 도킨스 외(지음), 피터 탤랙(엮음), 김희봉(옮김). 사이언스 북. 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