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득룡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오빠인 강득룡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강득룡(康得龍)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대절충신(大節忠臣), 본관은 신천(信川). 판삼사(判三司)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윤성(允成)의 아들이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오빠이다. |
|
|
▲ 과천보건소와 주차장 사이에 강득룡선생 묘역 안내 표지석이 있습니다. 주차장 뒷편으로 가도 됩니다. |
|
|
▲ 과천보건소 건물 뒷편으로 가면 홍살문이 보입니다. |
|
|
▲ 홍살문 우측으로 신단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고려에 관직이 추성좌리공신(推誠佐理功臣) 삼사우사(三司右使) 삼중대광첨의정승(三重大匡僉議政丞)에 이르렀다. 태조가 보위에 오르고 난 후, 남매의 정분이 있었으므로 여러 번 불러 벼슬을 권하고 타일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굳게 지켜 사사로운 친속으로 얽매이는 바가 없이 관악산(冠岳山)으로 피해 들어갔다. 의상암(義湘菴)에 살면서 날마다 의상대(義湘臺)에 올라가 멀리 송경(松京, 개성)을 바라보고 옛 임금을 연모하고 통곡하다가 굶어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암자가 연주암(戀主庵)으로, 대(臺)가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
|
▲ 강득룡의 7대조인 신성부원군 신단 전경 |
신성부원군 강지연(康之淵)은 고려의 문하시중을 지낸 인물이다. 몽고 침략에 대응하여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하였을 때 호종하여 충렬왕 때 신성부원군에 봉작되었다. 강득룡의 7대조이다. 그의 묘는 황해도 신천군 북부면 광복동에 있다. 8·15광복 이후 성묘할 길이 없어 후손들이 강득룡 묘 옆 위토(位土)에 1975년 신단을 세워 제향을 시작하였고, 1980년에 다시 정비하였다. |
|
|
▲ 신성부원군 강지연 신단 비석 |
신단 주위에는 붉은색 벽돌로 담장을 둘렀고, 신단 바로 앞에 혼유석과 상석, 향로석이 놓여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사적비가 있고, 상석 앞쪽 좌우에는 석양 2개가 있다. 석양 앞에는 망주석 2개가 있고, 망주석 사이에는 장명등이 있다. |
|
|
▲ 신단 좌우측에서 바라 본 모습 |
신단비는 3단의 기단석 위에 있는데, 1975년에 세워진 비신에는 “고려문하시중신성부원군강공휘지연 신단(高麗門下侍中信城府院君康公諱之淵 神壇)”이라고 새겨져 있다. 신단사적비는 1980년에 세워졌고, 팔작지붕형태의 비개와 비좌를 갖추었다. 비신에는 “신성부원군강공신단사적비(信城府院君康公神壇事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
|
▲ 강득룡선생 반신 동상 |
서거한 연월일을 알 수 없는데, 보첩(譜牒)에는 “송도(松都) 사기현(沙器峴) 고택(古宅)에서 돌아갔다.”고 하였고, 『연주암실기(戀主菴實記)』에는 “공이 이 산에 살다가 굶어 죽었다.” 하였는데, 뒤의 말이 신빙성이 있다. 묘소를 관악산 해좌(亥坐, 幽宅이 11시 방향) 기슭, 현 중앙동에 썼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에 봉하고, 시호를 안정(安靖)으로 추증하였다. 배위(配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니, 연안군(延安君) 엄(儼)의 딸이다. |
|
|
▲ 신성부원군 신단을 지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강득룡 묘역 입구에 선생의 반신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
|
|
▲ 묘역 하단에는 선생의 6세손의 구 묘비/석물(1507년 조성)을 묘역 정비를 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
|
|
▲ 묘역 입구 계단 좌우로 신도비와 동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그의 묘는 과천시청 뒤편에 위치한 보건소 뒷문으로 나가면 있다. 묘역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성부원군신단이 있다. 신단의 왼쪽 가까운 거리에 부인 이씨와 쌍분합장묘로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안정공의 위토로 1978년에 정부과천청사 부지로 편입되었다. 이때 주변에 산재해 있던 13기의 묘 중에서 3기만 수습되었다. 1980년 정비사업을 통하여 묘 주위에 담장을 설치하였다. 봉분 사이 중간에는 방부하엽 양식의 묘표가 있고, 그 앞으로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
|
▲ 강득룡선생 묘역 전경 |
묘표는 비문이 마모되어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크기는 32×64×13㎝ 규모이다. 1959년에 세운 비석 전면에 “안릉부원군 시안정강공득룡지묘 배정경부인연안이씨부(安陵府院君 謚安靖康公得龍之墓 配貞敬夫人延安李氏◇)”라고 새겨져 있고, 후면의 음기는 비제가 “안정강공묘갈명병서(安靖康公墓碣銘幷序)”이다. 전 성균관부제학 안인식(安寅植)이 비문을 짓고, 11대손 강천식(康天植)이 글씨를 썼다. |
|
|
▲ 동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묘역이 나타납니다. |
|
|
▲ 봉분 좌측에는 안정공유지사업회기념비와 좌우 봉분 중앙에 위치한 구 묘비 |
옛 석물은 문인석 2쌍만이 있을 뿐이고 장명등, 석양 등의 석물은 근래에 제작된 것이다. 문인석은 2쌍의 조각 양식이 비슷한데 복두공복 양식으로 눈이 불거지게 표현되었고 귀가 큰 편이다. 가슴에 양손으로 홀을 쥐고 있으며, 관복 하단부에 신발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는 135~143㎝이다. 15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
|
▲ 우측에는 신 묘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
|
|
▲ 당시에 조성된 구 석물인 문인석 2쌍이 좌우로 서 있으며, 다른 석물은 1980년대 이후에 조성되었습니다. |
왼쪽에 있는 기념비는 1980년 5월에 세워졌고, 전면에는 “안정공유지사업회기념비(安靖公遺志事業會紀念碑)”라고 적혀 있다. 강득룡 묘의 동쪽 계단 아래에 1981년 6월 신도비를 세웠다. 신도비는 귀부와 비신, 비개를 갖추었다. 전면에 “안릉부원군시안정강공신도비(安陵府院君謚安靖康公神道碑)”라고 적혀 있다. - 과천시지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강득룡선생 묘역 위치도 |
|
시작 부분에서부터 빨간선을 따라가면 지도 좌측의 빨간선 끝 지점에 강득룡선생 묘역이 위치. 소재지 : 경기 과천시 중앙동 1-3 |
|
지도 상단 좌측 빨간선 끝 부분에 강득룡 묘역이 위치. 정부과천청사역과 과천시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