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 Symphonie No.88 G Major Hob. I / 88
하이든 - 교향곡 88번 G장조 Hob. I / 88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
Adam Fischer
3악장 Menuetto & Trio, Allegretto
4악장 Finale, Allegro con spirito
하이든 교향곡 88번 Hob.I:88 (Haydn: Symphony No. 88 in G major, Hob.I:88)
Franz Joseph Haydn 1732-1809 오스트리아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公의 악장으로 있던 마지막 시기에 작곡된 11곡, 즉 <제82번>에서 <제92번>까지의 교향곡을 <파리 교향곡>이라 부른다. 이 곡들은 모두가 에스테르하지 家의 악단을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라 파리로부터의 청탁이 있어서 쓴 것임이 밝혀졌다. 이 <제88번>은 전 11곡의 <파리 교향곡> 가운데서 다음의 <제92번>과 더불어 가장 성숙된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제1, 제4 악장에 이 곡의 특징이 나타나 있고, 다음에 그 주제에 따른 각 악장의 구성법에 아주 원숙함이 엿보인다. 화성법도 훨씬 충실하고 창의에 넘쳐있고, 악상의 전개에 있어서도 연계가 아주 긴밀하다.
작곡된 시기는 1787년 (55세) 경이라 추측된다. 원래 이 <제88번>과 다음의 <제89번>은 에스테르하지 공의 악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한 페터 토스트의 의뢰로 작곡된 것이다. 그가 에스테러하지 공의 악단에서 떠나 파리로 가게 되자, 하이든의 새로운 교향곡을 가지고 감으로써 그곳에서의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2곡 중 하나인 <제89번>은 하이든의 자필 手稿가 남아 있어서, 1787년에 작곡되었음이 확실하므로 이 <제88번>도 같은 해에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별칭 <V字>라 불린다. 그 까닭은 런던의 어떤 출판사에서 이 악보가 출판될 때 표지에 <V>字가 인쇄되었기 때문인데, 곡 자체와 특별한 관계는 없다.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은 하이든의 ‘런던교향곡’ 전 12곡과 더불어 하이든의 교향곡 중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생기발랄한 주제와 참신한 유머감각, 그리고 특히 독창적인 2악장은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하이든은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이 교향곡을 완성한 후 악보 출판 문제로 골치를 썩기도 했다.
88번은 1784년부터 89년에 걸쳐 파리의 콩세르 스피리튀알의 의뢰에 의해 만든 것으로서, 보통 「파리 시리즈」라 불리고 있는 12곡 중의 하나이다. 하이든의 원숙기에 접어든 무렵의 걸작이며, 그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이 교묘한 수법으로 전개되어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제1악장 Adagio-allegro.
화려한 파리를 그리워하는 악장이다. 아다지오의 서주부를 가진 알레그로의 소나타 형식. 서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이 오직 기악적인 악상에 따라 다이나믹하게 표현의 완벽을 기하고 있다. 전개부가 아주 충실하다.
제2악장 Largo.
목가풍의 멜로디로 시작, 장중한 감정을 담고 마친다. <파리 교향곡> 완서악장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는 변주곡 형식인데, 그 주제는 옛날의 종교적 찬가에 의한 것이다.
제3악장 Menuett-Allegro.
민속 무곡풍의 매력 있는 악장이다. 메뉴엣인데 트리오 부분은 유연한 악상이다.
제4악장 Allegro con spirito.
풍부한 음색으로 생생하게 약동한다.
하이든 작품이라고 속여 판 사건
[교향곡 88번]과 [89번]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상인인 요한 토스트의 의뢰로 작곡된 교향곡이다. 토스트는 하이든이 악장으로 있던 에스테르하지 궁정악단의 제2바이올린 수석 주자 출신으로 하이든이 [교향곡 88번]을 완성한 이듬해인 1788년에 파리로 건너가 비즈니스맨으로서 그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자 했다. 당시 토스트는 하이든의 [교향곡 88번]과 [89번]의 악보를 들고 빈의 음악출판사 아르타리아와 파리의 출판업자 장 조르주 지버와 접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토스트의 일처리는 미심쩍은 데가 많았다. 토스트는 하이든의 교향곡 2곡뿐 아니라 [현악4중주 작품54]와 [작품 55]도 함께 가지고 당대의 유명 음악출판사로 갔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직 작품료를 받지 못한 하이든은 토스트가 이미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하이든의 악보를 판매했다는 풍문을 듣자 초조해졌다. 참다못해 그는 1788년 9월 22일에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띄웠다. “며칠 전 친애하는 귀하께서 토스트 씨로부터 저의 새로운 현악4중주 6곡과 2곡의 교향곡을 구입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저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부디 제게 소식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하이든은 또 토스트가 프랑스의 출판업자인 지버에게 그의 소나타 6곡과 4곡의 교향곡을 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1789년 4월 5일자 편지에 지버에게 “토스트 씨는 6곡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들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토스트에게는 “당신은 내게 300 굴덴을 빚지고 있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상하게도 토스트가 지버에게 판매한 하이든의 교향곡은 2곡이 아닌 4곡인데, 이는 그가 아달베르트 귀로베츠의 교향곡을 하이든의 작품이라 속여 팔았기 때문이다. 토스트의 놀라운 행적에도 불구하고 하이든은 토스트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현악4중주 작품 64]의 6곡을 헌정했다. 아마도 토스트가 하이든의 후원자 중 한 명이이자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가정부인 마리아 안나 드 옐리세크와 결혼한 까닭도 있는 듯하다. 아무튼 1789년 하이든을 골치 아프게 했던 ‘토스트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고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교향곡 88번]은 오늘날 하이든의 교향곡 가운데 매우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관현악법
영국에서는 한동안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을 “Letter V”라 불렀다. 이는 19세기에 하이든의 많은 교향곡들이 런던의 왕립 필하모닉 협회의 카탈로그에 있던 문자로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Letter V”라는 타이틀은 이 교향곡의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며 독창적인 성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이든은 이 교향곡에 1대의 플루트, 2대의 오보에, 2대의 바순, 2대의 혼, 현악합주 외에 트럼펫 2대와 팀파니가 더 편성했는데, 그가 이 교향곡에 사용한 악기들 중 트럼펫과 팀파니의 용법은 주목할 만하다. 하이든은 놀랍게도 이 시끄러운 팡파르 악기들을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에 사용했다. 18세기 교향곡에서 느린 2악장에서 시끄러운 트럼펫과 팀파니가 사용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이든은 이런 관습을 깨고 과감하게 트럼펫과 팀파니를 느린 악장에 사용해 매우 충격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1악장 아다지오 서주의 제스처는 매우 장엄하지만 악기 사용은 절제되어 있다. 보통 처음부터 강렬하게 등장하는 트럼펫과 팀파니는 1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침묵한다. 아마도 화려하고 웅장한 도입에 익숙했던 당대 파리 청중이라면 트럼펫과 팀파니 주자가 한동안 잠잠한 것을 지켜보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연주를 하지 않는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정적인 2악장에서 갑자기 트럼펫과 팀파니가 폭발적인 연주로 쇼크를 주는 장면에선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하이든은 ‘놀람 교향곡’이라 불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기 이전에 이미 이와 같은 놀라운 교향곡을 작곡했던 것이다. 1악장의 느린 아다지오에 이어 빠른 알레그로의 주제는 시골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하지만 그것이 전개되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고 지성적이다. 1악장 발전부에서 과감한 전조와 분위기 전환은 매우 인상적이며, 처음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 재현부에선 현악의 소박한 주제에 플루트의 대주제(주제에 대하여 덧붙는 또 하나의 주제)가 덧붙여져 듣는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느린 악장에 트럼펫과 팀파니를 사용한 파격 2악장의 느린 라르고는 마치 숭고한 찬송가와 같은 느낌이다. 첫 마디에서부터 독주 첼로와 독주 오보에가 옥타브 차이로 유려한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그 독창적인 악기 편성법은 특별히 돋보인다. 2악장은 하이든을 무척 존경했던 작곡가 브람스는 언젠가 이 음악을 듣고 “나의 교향곡이 이 악장과 같다면 참 좋겠다”는 말을 남겨 더 유명해졌다. 하나의 멜로디가 새로운 멜로디를 이끌어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음악은 일종의 변주 형식을 취하며, 주제가 되풀이될 때마다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장식된다. 때때로 이 숭고한 노래가 트럼펫과 팀파니의 불협화음에 의해 방해를 받을 때마다 숭고한 노래와 갑작스런 충격이 하나의 음악 속에서 그토록 훌륭하게 공존할 수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3악장 미뉴에트가 시작되면 3박자의 궁정 무곡 선율은 돈 꾸밈음의 장식으로 다소 과장된 느낌을 전해준다. 중간 트리오 부분에선 비올라와 바순이 연주하는 음악이 마치 백파이프처럼 느껴져 인상적이다.
4악장 피날레는 하이든이 작곡한 가장 생기 있고 즐거운 음악이다. 도입부의 주제는 하이든이 작곡한 선율 중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마치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듯 경쾌하게 시작된다. 4악장 중간 부분에 이 주제를 바탕으로 무거운 저음현악기들과 경쾌한 고음현악기들이 서로를 모방하며 큰 소리로 캐논(canon, 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엄격히 모방하는 음악으로 일종의 ‘돌림노래’라 할 수 있다)을 연주하는 장면에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추천음반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의 추천음악으로는 아담 피셔와 오스트리아-헝가리 하이든 오케스트라(Nimbus),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EMI), 브루노 바일과 타펠무지크의 음반(Sony), 지기스발트 쿠이켄과 라 프티트 방드(Virgin Classics)의 음반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이든, 교향곡 제88번 [Haydn, Symphony No. 88 in G major]
하이든의 교향곡
고전 음악 작곡가 하이든의 교향곡은 안토니 반 호보켄이 분류한 104곡이 있으며, 최근 발견된 교향곡 2곡이 있고 이를 A/B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교향곡 34번은 Hob. I/34라고 부른다. 이는 작곡 순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분류 방법이다.
총설
하이든의 교향곡은 1곡의 협주교향곡을 포함한 108곡의 교향곡과 2개의 단악장곡이 있다. 이 중 단악장은 다장조 ‘미뉴에트, 트리오, 피날레’와 라장조 ‘피날레’이며 교향곡은 일반적으로 네델란드의 음악학자 안토니 반 호보켄이 작성한 주제목록(1957)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이 번호는 1908년에 음악학자인 E. 만디체프스키가 ‘하이든 전집’의 교향곡 편을 발표했을 때 붙어진 번호를 계승한 것이다. 만디체프스키는 작품이 만들어진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던 것이었는데 그 후의 자료 연구에서 많은 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번호가 작곡순서를 나타낸다고 볼 수는 없다.
1771년 하이든이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가(家)의 악장으로서 〈교향곡 42번〉을 작곡했을 때, 총보에서 몇 마디를 삭제하면서 ‘이것은 상당히 숙달된 귀만 이해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이것은 어쩌면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너무 복잡한 음악을 쓰지 않도록 하이든에게 주문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쨌든 하이든이 본래의 의도를 꺾고 후작이 이해하기 쉽도록 작품을 손질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하이든은 생애의 거의 전부를 궁정 소속 작곡가로 보내며 고용주의 취향에 맞추어 교향곡을 썼다. 하지만 청중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여 작곡한다는 하이든의 기본적인 태도는 에스테르하지 후작가를 위해 쓰지 않은 〈런던 교향곡〉등 에서도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다. 또 오랫동안 인정되어온 하이든의 교향곡 창작에 관한 도식, 즉 초기 교향곡은 ‘소박하고 유치’하며, 〈파리 교향곡〉이나 〈잘로몬 교향곡〉, 〈런던 교향곡〉 등에서 양식적으로 완성되었다는 ‘성장(成長)’의 도식은 오늘날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자료 연구나 문헌 연구 등의 성과를 통해서 각각의 작품 연구는 더욱 정밀해졌고 최근의 연주법의 역사적 연구와 실천의 진보는 하이든의 음악적 발상에 관해서 구체적인 사사를 해주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근거로 각 작품의 고유의 구성원리나 창작의도를 엄밀한 방법으로 밝혀내어 하이든의 창작의 발자취를 전체적으로 새롭게 그려내는 것이 가까운 미래에 요구되는 과제이다.
하이든은 1757년경에 교향곡 작곡을 시작해 1795년에 마지막 교향곡을 썼다. 그의 교향곡 창작활동은 모차르트(1756 ~ 1791)의 생애보다도 긴 기간이었다. 당연히 초기의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각기 다른 사람의 작품처럼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개개의 작품을 도식적으로 구분하는 위험성을 알지만, 다음에 각 교향곡의 위치 구분을 하는 데 도음이 될만한 뉴 그로브 음악사전의 랄센에 의한 분류를 소개하면서 하이든의 창작활동을 몇 시기로 분류하고 각 시기의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1) 빈 시절(1761년까지).
모르친 백작가(家)의 악장 시절에 작곡한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이 포함된다.
(2) 아이젠슈타트 시절(1761~1766).
아이젠슈타트에 있은 에스테르하지 후작가의 부악장 시절로, 종교음악 이외의 모든 것을 담당하며 주 2회의 연주회(아케테미)를 위해 교향곡을 작곡했다.
(3) 에스테르하지 전성기(1766~1775).
악장 베르너의 타계로 하이든이 악장으로 승진한다. 이와 함께 하이든은 종교음악이나 오페라에 관여하게 되며, 교향곡에서는 강한 표출력이 나타나는 단조 작품을 여러 곡 창작한다. 따라서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 ‘슈트름 운트 드랑크’ 시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연대적으로나 개념으로 문제가 많다.
(4) 오페라 활동 시절(1775~1784).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후작가에서 오페라 감독으로 활동한 시기. 교향곡은 오페라와 관련이 깊지만 그 내용은 후작의 오락적인 음악취향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5) 외국으로부터 작곡의뢰를 받는 시절(1785~1790).
이제까지 하이든은 오직 후작가를 위해 작곡했지만 이때부터 빈, 파리, 런던의 출판사 등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아 작곡을 하게 되었다. 〈파리 교향곡〉부터 교향곡 92번까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6) 런던 시절(1791~1795).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사망으로 실질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이 런던의 청중을 위해 교향곡을 작곡하여 연주한 시기. 교향곡 창작은 이 시대에 끝난다.
마지막으로 하이든의 교향곡을 역사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연주자와 그런 연주에 관심이 있는 청중을 위해 그의 악단의 규모와 악기편성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자 한다. 맨 처음 교향곡을 작곡한 모르친 후작 시대의 악단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악단은 1767년 무렵 13명 내지 16명이였으며 악기편성은 현악기 3-3-1-1-1, 그르고 오보에2, 호른2, 바순1, 플루트1 혹은 플루트2였다.
1860년대 말에는 악단 규모가 커져 1768년 무렵부터 1775년 무렵까지는 16명 내지 18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악기편성은 현악기 4-4-2-1-1로 1774년과 1775년에는 제2번 바순이 고정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1780년대에는 악단의 규모가 24명까지 늘어났고 악기편성은 현악기가 6-5-2-2-2, 고정 관악기는 플루트1, 오보에2, 호른2, 바순2,로 구성되었다. 〈파리 교향곡〉을 작곡할 때 하이든이 그 규모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791년부터 1794년까지 런던의 잘로몬 악단은 총 40명으로 현악기는 8-8-4-5-4였고, 1795년 프로페셔널 콘서트 악단은 총 60명으로 현악기는 거의 10-10-5-6-5의 2관 편성이었다.
◆ 하이든의 교향곡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인기가 높아지자 다른 작곡가들이 작곡한 교향곡들을 하이든의 작품으로 가장하여 출판한 사례가 많았다. 이로 인해서 하이든이 정확하게 몇 곡의 교향곡을 썼는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략 106곡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은 대부분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서 작곡되었으나 전체적인 작품 목록으로 볼 때 이들 교향곡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a)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모로친 궁정에 있었을 때 작곡된 5개의 교향곡
(b)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 작곡된 제6~81번 교향곡
(c)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을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위촉받은 교향곡
초기 교향곡들은 일정하게 표준적인 악장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4악장으로 구성된 곡도 몇 곡 있지만 대부분의 초기 교향곡은 전고전주의 신포니아에서 유래한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제21번(1764)과 22번(1764)은 Andante-Allegro-Minuet-Presto로 되어 있으며 바로크으 교회 소나타 형식과 유사하다. 각 악장은 같은 조로 되어 있고 2부분 형식이다 그러나 제3번(1762)은 Allgro(G장조), Andante moderato(G단조), Allgro(G장조)의 표준적인 고전 교향곡의 악장 구성을 따르고 있고, 각 악장은 장단조가 교체되는 조성 구조로 되어 있다.
1761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서 작곡한 제6~8번 교향곡들도 고전형식의 4악장 구조이다. 7번은 2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로 된 트리오 소나타의 악기 편성과 동일하고, 콘체르티노(concertino)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바로크의 쿤체르티노(concertino)와 유사하다. 제6~8번에는 각각 <Le matin(아침)>, <Le midi(정오)>, <Le soir(저녁)>등의 제목이 붙어 있는데, 제목과 같은 표제적인 특성이 음악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들은 새로운 고전양식과 바로크적인 옛 양식이 자주 혼합되어 나타난다. 관현악 편성에서는 여전히 하프시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1770년경까지 하프시코드는 하이든 교향곡의 필수적인 악기로 나타난다. 초기 50여 개의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보면 일반적으로 2개의 오보에, 2개의 호른, 현악기와 하프시코드가 있는 콘티누오로 구성된다. 제20번 이후의 작품부터는 다른 악기들이 간헐적으로 삽입되는데 제20번에는 2개의 트럼펫이, 22번에는 2개의 잉글리시 호른(English horn)이 들어 있다. 제70번을 시작으로 하여 1779년 이후의 작품에는 플루트가 지속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1760년대의 교향곡에는 실험적인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제31번(D장조)에는 당시 교향곡에서 일반적으로 2개의 호른을 사용한 것에 비해 4개의 호른을 사용하고 있고, 첫 악장도 독주 호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Horn signal'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다.
1760년대 말에 이르면서 하이든은 보다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조의 조성으로 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단조 교향곡은 구양식을 탈피해서 새로운 질풍노도 양식으로 도입하려는 하이든의 의지가 보여지는 작품들이다.
1768~1773년까지 하이든은 전과 달리 많은 단조 교향곡들 (제26, 39, 44, 49, 52번)을 썼다. 1771년부터 작곡된 교향곡 제42~48번, 50~52번, 54~56번, 65번은 초기 교향곡들보다 규모가 크다. 화성은 더욱 풍부해졌고 악상 변화가 빈번하며 느린 악장에서는 현악기에 약음기를 사용할 만큼 감정의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조성의 선택에서도 18세기로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F#단조(제45번), B장조(제46번), F단조(제49번)등을 사용하였다.
제45번 <고별>교향곡은 제1악장 F#단조, 제2악장 A장조, 제3악장 F#단조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성 변화도 흔치 않은 예이다. 마지막 끝부분의 Adagio에서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악기를 정리하고 보면대 위의 촛불을 끄고 퇴장해 버리며 단지 두 명의 연주자만 남아서 작품을 끝맺기 때문에 <고별>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처럼 악기편성을 축소해 나간 이유는 휴가 중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연주 단원들이 휴가를 받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청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45번은 악기 편성 뿐만 아니라 제1악장의 발전부에 새로운 주제를 도입시키고 있다. 이것은 하이든은 교향곡 중에서도 유일하게 발견되는 창작기법이기도 하지만 이 당시의 다른 고전음악에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밖에도 1780년대의 교향곡에서 하이든은 때때로 마지막 악장에 론도 소나타(rondo sonata)형식을 사용하였다. 1782년에 작곡한 제77번의 마지막 악장에 처음으로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7개의 부분으로 된 론도(ABACABA)와 유사하다. 처음의 ABA는 제시부, C는 발전부, 마지막 ABA는 재현부로 취급된다. 론도 소나타 형식은 하이든보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먼저 나타났다.
1785년에서 이듬해까지 파리에서의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파리 교향곡(제82번~87번)과 1787~1788년 사이에 작곡한 5개 교향곡(제88~92번)은 하이든으 성숙기를 대표하는 교향곡들로 고전 교향곡의 모델로 간주되는 작품들이다. 82번과 85번 등 몇 곡은 작품 속의 악구(phase)에 나타난 특징 때문에 별명을 갖고 있다. 82번은 춤곡같은 마지막 악장에 단조로운 저음반주가 나온다고 해서 'Lours(곰)'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85번은 여왕 마리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좋아했던 프랑스 선율의 변주곡이 나온다고 해서 'La Reine(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교향곡 제88번~92번은 대부분이 위촉작품으로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헌정한 제92번 <옥스포드>교향곡이다. 이 기간에 작곡된 교향곡들에는 첫 악장에 느린 도입부가 나타나고, 마지막 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나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하는데 특별히 대위법적인 기법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88번으 마지막 악장의 카논은 이러한 예를 반영하여 준다. 교향곡 제93~98번, 99~104번은 두 차례의 런던 방문 때에 작곡된 곡들이다. 12개에 달하는 이들 교향곡은 런던의 청중들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해서 '런던 교향곡'이라 하기도 하고, 음악 흥행을 주선하는 잘로몬(Salomon)의 협조하에 작곡되었다고 해서 '잘로몬 교향곡'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들은 고전 교향곡의 정수이자 하이든 교향곡으 최고의 작품들이다. 오늘날 하이든을 대표하는 교향곡들은 대부분이 이12개의 교향곡을 가리킨다.
이 교향곡들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되었지만 대부분이 1악장에 프랑스 서곡에서 유래한 느린 도입부를 사용하였다. 도입부의 조성은 교향곡 본래의 조성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104번은 D장조이지만 도입부는 D단조로 시작한다. 긴 도입부는 코다에서 다시 확대, 발전시키므로 작품의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한다.
하이든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103번의 1, 2악장과 104번의 마지막 악장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차용한 것이다. 제99, 100, 103, 104번의 제1주제는 선율적 내용이 아니라 조성의 변화에 의해 딸림조로 제2주제에서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주제의 설정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에 기초한 것이다.
런던 교향곡들 중에는 2악장의 특징 때문에 별명이 붙여진 교향곡들이 있다. 101번은 2악장에서 시계소리와 같은 규칙적인 리듬 때문에 '시계'라는 별명이 붙었고, 94번은 2악장에서 조용한 주제가 흐르다가 약박에서 갑자기 포르테(f)가 나오기 때문에 '놀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런던 교향곡'들의 악기 편성은 이전의 교향곡들보다 크고 다양하다. 2개의 트럼펫과 팀파니는 모든 '런던 교향곡'에 들어 있고, 100번 <군대>교향곡에서는 트라이앵글, 심벌즈, 큰북이 2, 4악장에 삽입된다. 마지막 6개의 '런던 교향곡'에서는 102번만을 제외하고 2개의 클라리넷이 사용된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바로크, 전고전주의, 고전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전부 들어 있다. 하이든은 초기부터 많은 실험적인 교향곡을 발표하다가 12개의 런던 교향곡에 이르러 고전주의의 완숙한 음악형식을 실현한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악기 편성도 크고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제의 전개에서 호모포니와 대위법을 음악재료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은 색채감이 넘치고 장대하여졌다. 교향곡에 나타난 하이든의 창작기법과 실험정신은 교향곡을 고전음악의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았고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한 후기의 교향곡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한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에 위치한 로라우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대장간집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러 여덟 살 때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슈테판 소년합창단에 들어갔다. 여기서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는데, 얼마나 목소리가 아름다웠는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의 목소리를 아낀 성가대장은 하이든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카스트라토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수술을 받기로 한 날 배탈이 나서 수술이 연기되었고,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변해 카스트라토가 되는 불운을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하이든은 변성기를 맞아 합창단에서 나왔다. 그리고 10년 동안 프리랜서 음악가로 살았다. 난로도 없는 다락방에 기거하며 저녁때가 되면 남의 집 창 밑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했다. 귀족에게 하프시코드를 가르치거나 궁정 실내악단 연주자, 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나 독창자로 활동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작곡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포르포라 밑에 들어가 작곡을 공부했다.
27살이던 1759년, 하이든은 보헤미아의 모르친 백작의 궁정 악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백작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악단이 해산하면서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빈으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라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최악이었다. 마리아는 잔소리가 많고, 신경질, 질투, 허영, 낭비벽이 심했으며, 남편의 오선보를 냄비받침으로 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하이든 스스로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실패한 결혼이었다.
1761년, 하이든은 헝가리의 호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전속 음악가로 고용되었다. 에스테르하지 가는 당시 유럽 최고의 부자였고, 에스테르하지 궁은 베르사유 궁에 필적할 만큼 호화로웠다. 후작은 하이든이 대저택에 단원들과 함께 기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궁에서는 오페라와 인형극을 위한 극장이 하나씩 있었으며, 음악만을 위한 호사스러운 방이 둘이나 있었다. 매일 음악회가 열렸고, 주말에는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하이든은 수시로 후작의 궁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언제라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곡을 쓰는 것 외에 연주자를 채용하고, 이들을 교육하고, 악기를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하이든은 이 모든 일들을 불평 한마디 없이 언제나 성실하게 수행했다.
에스테르하지 궁은 음악의 중심지인 빈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이든은 가끔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악단의 최고 책임자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은 하이든은 당시로서는 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을 시도할 수 있었다.
1779년경부터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하이든은 자기 자신의 오페라는 물론, 피치니, 그레트리, 파이지엘로, 치마로사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할 작품을 선택하고, 단원과 가수를 연습시키는 일은 하이든의 몫이었다. 1780년부터 1790년까지 하이든은 모두 96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1790년 주인인 니콜라우스 공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이든은 무려 30년 동안 에스테르하지 가를 위해 봉사했다. 재임 초기에는 일에 얽매여 있었지만, 마지막 10년 동안은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유명 작곡가가 된 하이든은 빈, 파리, 런던의 음악 출판업자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았다. 스페인 카디스 성당의 위촉을 받고 쓴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과 파리의 콩세르 드 라 로주 올랭피크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파리 교향곡〉이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제 그의 음악은 에스테르하지 궁의 한정된 청중을 넘어 유럽 전역의 대중에게 퍼져 나가게 되었다. 출판업자 중에는 하이든의 이름이 상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명 작곡가의 곡에 그의 이름을 붙여 파는 사람도 있었다.
1790년, 그가 오랫동안 섬기던 니콜라우스 후작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물려받은 아들 파울 안톤은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이든의 직책이나 연금은 그대로 유지시켰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이든에게는 이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경제적 안정과 창작의 자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런던의 흥행사인 요한 페터 잘로몬이 그에게 런던에 가서 연주회를 지휘하는 조건으로 오페라와 교향곡 작곡을 의뢰했다. 오페라 한 편당 300파운드, 교향곡 6곡에 300파운드, 연주회 20회에 200파운드의 보수를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1790년 12월 15일, 하이든은 58세의 나이로 잘로몬을 따라 영국으로 갔다. 1791년 1월부터 1792년 6월까지 런던에 체류하면서 교향곡 93번부터 98번까지 모두 여섯 편을 썼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에스테르하지 궁이나 빈에서의 생활과 완전히 달랐다. 매일같이 온갖 리셉션에 불려다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1791년 7월에는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에서 빈으로 돌아왔을 때, 하이든은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어 있었다. 이때 니콜라우스 2세가 제4대 에스테르하지 후작으로 등극했다. 거처를 에스테르하지에서 아이젠슈타트로 옮긴 후작은 할아버지가 조직했던 궁정 악단을 다시 조직하고 하이든을 궁정 악장에 앉혔다. 그에게는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여름에 2, 3개월 동안만 아이젠슈타트에서 일하면 나머지 시간은 빈에서 보낼 수 있었다. 후작은 자기 아내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의 명명축일을 위해 매해 미사곡 한 편을 작곡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하이든은 자유롭게 자기가 쓰고 싶은 곡을 쓸 수 있었다. 후기 현악 4중주 작품들, 오스트리아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오라토리오 〈천지창조(Die Schöpfung)〉와 〈사계(Die Jahreszeiten)〉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1803년 말, 하이든은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그가 대중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08년 3월 27일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을 때였다. 이때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이든은 그로부터 2개월 후인 5월 31일, 굼펜도르프 가의 자택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은 기악곡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곡가이다. 그는 두 개의 서로 대조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소나타 형식을 완성했다. 청년 시절 습득한 바로크적 경험 위에 독창적인 교향악적 사고를 접목시켜 고전주의 음악의 규범이 되는 형식을 창조했다.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은 바로크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른바 질풍노도 시기(18세기 말 독일에서 일어난 문예 운동으로 자연, 감정, 개인주의를 중요시했다)에 이르면 표현력이 훨씬 풍부해진다. 그는 건반악기 협주곡의 견고한 구성을 소나타에 이식해 소나타를 교향곡적인 스케일로 발전시켰다.
하이든은 생전에 100여 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1악장 알레그로, 2악장 느린 악장, 3악장 미뉴에트, 4악장 알레그로나 론도로 구성된 교향곡의 틀을 확립했다. 그의 교향곡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교향곡 제94번 '놀람'(Symphony No.94 in G major 'Surprise')〉이다. 이 곡은 1791년에 쓰였는데, 2악장 중간에 갑자기 큰 북이 합세한 오케스트라 전체가 강한 음을 연주해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놀람'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하이든의 교향곡에서는 처음에 느린 서주가 나온 다음 빠른 템포로 넘어가 본격적인 음악이 시작되는데, 이 교향곡도 이런 전형을 따르고 있다. 처음에 아름다운 안단테 칸타빌레의 서주가 나온 다음 빠르고 경쾌한 주제가 제시된다. 이어서 2주제가 짧게 나오지만 이 주제는 발전부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2악장은 느린 템포, 3악장은 3박자의 경쾌한 미뉴에트, 4악장은 빠른 템포의 알레그로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민요풍의 제1주제와 하이든 특유의 즐거운 율동을 보여 주는 제2주제가 곡을 이끌어 간다.
'놀람' 외에 제목이 붙은 교향곡이 몇 편 더 있다. 제45번은 후작에게 여름휴가를 보내 달라는 의미에서 마지막 악장에 단원들이 한 사람씩 퇴장하도록 작곡하여 '고별(Farewel)'이라는 제목이 붙었으며, 제73번은 같은 해에 작곡한 오페라에 나오는 사냥 장면의 주제를 사용해서 '사냥(La Chasse)', 제100번은 2악장에 나오는 나팔의 주제가 군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군대(Military)', 제101번은 2악장에 나오는 스타카토의 8분음표 음형이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시계(Clock)', 제103번은 서주가 팀파니의 트레몰로로 시작해서 '큰북 연타(Drumroll)'라는 제목이 붙었다.
하이든은 4악장 구성을 원칙으로 해서 고전주의 현악 4중주의 기틀을 확립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현악 4중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1790년에 작곡한 제53번 '종달새(Lark)'이다. 1악장에서 현악기들의 피치카토 반주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제1주제가 나오는데, 이것이 마치 나무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종달새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종달새'라는 제목이 붙었다. 하이든 특유의 천진난만한 흥취가 넘쳐흐르는 악장이다. 2악장은 노래하듯 연주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 악장으로 표정이 풍부한 선율을 제1바이올린이 연주하고 나머지 악기들이 풍부한 화음으로 이것을 받쳐 준다. 3악장은 춤곡의 일종인 미뉴에트 악장이며, 4악장은 빠르게 연주하는 유쾌한 악장이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경쾌하게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느낌을 준다.
말년의 하이든은 헨델의 오라토리오에 자극을 받아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했다. 〈천지창조〉는 1798년 작으로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와 창조의 제4일까지, 2부는 창조의 제5일과 제6일, 3부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을 그렸다.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으며, 독창자로는 세 명의 천사 라파엘(바리톤), 우리엘(테너), 가브리엘(소프라노)과 아담(바리톤), 이브(소프라노)가 나온다.
〈천지창조〉가 천상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라면, 1801년에 작곡한 〈사계〉는 인간 세상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과 그 속에서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 가는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농부 시몬과 그의 딸 한네 그리고 젊은 농부 루카스가 등장하는데, 그래서 처음 이 작품이 연주되었을 때 "〈천지창조〉는 천사들이 나와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사계〉에는 천한 농부가 나와 하느님을 찬양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협주곡에 〈혼 협주곡〉, 〈트럼펫 협주곡〉, 〈오보에 협주곡〉, 〈첼로 협주곡〉 등이 있으며, 교향곡에는 제83번 '암탉', 제96번 '기적', 제104번 '런던', 현악 4중주로는 제17번 '세레나데', 제76번 '5도', 제77번 '황제', 제78번 '일출' 등이 있다.
글 : 진회숙
[글 출처] 하이든 교향곡 88번 Hob.I:88 : Adam Fischer ·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작성자 필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