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재다/박설희-
브래지어 사러 왔는데 치수를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눈대중으로 얼추 비슷한
치수의 것을 들고 성큼 일어선다
양팔을 들게 하고 브래지어로 내 가슴 치수를 잰다 나도 모르는 내 가슴의 치수
를 잰다 줄었다 늘었다 어떨 땐 콩알만 했다 어떨 땐 듣도 보도 못한 공간으로 휙
날아가 버리는 내 가슴을 잰다 내 가슴 크기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해보지만 막무가내, 평생 누군가를 먹
이고 입히느라 살가죽에 가까워진 젖가슴으로 당당히 서서 내 가슴 크기를 잰다
당신 가슴은 얼마라고 숫자를 댄다
황송히 그 숫자를 받아들고 아, 내 가슴이 이만하구나 그런데 큰 건지 작은 건지
기준치를 몰라 쩔쩔매다가 생각해보니 가슴 크기의 평균이 뭐가 중요하랴
내게 딱 맞는다며 자신 있게 내미는 브래지어를 웃음으로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데
주변 노점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원 남문시장의 가슴들이 다들 깔깔 웃는다 빈 가슴
으로 웃는다 비워서 충만해져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