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못생긴 신부>
영남 어느 고을에 사는 한 선비가 나이 마흔에 둔 외아들을 잃고 혼비백산한 끝에 미치광이 바보천치처럼 실성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어느 날 마루에 앉아 있는데 어떤 과객이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과객은 주인의 기색이 참담하고 행동거지가 수상한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주인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한 달 전에 외아들 참상을 당하고 너무도 슬퍼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소이다.”
그러자 과객이 말했다.
“당신 선산이 어느 곳에 있소이까?”
“집 뒤에 있소이다.”
“내가 산리(山理)를 조금 아니 한 번 보았으면 좋겠소.”
주인이 그와 함께 가서 산을 보여주자 과객이 말했다.
“이 산이 좋지 못해서 그런 참상을 당한 것이오.”
“길지(吉地)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소? 설사 얻는다 하더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데 죽은 자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소이까?”
“동구에 들어올 때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 보아두었으니, 급히 서둘러 면례(緬禮 : 무덤을 옮기는 일)를 행한다면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부부가 나이 쉰이 넘어 단산한 지 이미 오래인데 이제 이장을 한다 하더라도 아들을 낳을 수 있겠소이까?”
과객이 자꾸 권하므로 주인은 과객의 말에 못이겨 드디어 면례를 행하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에 상처를 당하였다. 면례한 뒤에 또 상처를 당하였으므로 슬프기가 전보다 몇 갑절이다 더하였다.
홀아비에 자식도 없는데다 집안 일을 주관할 사람이 없으므로 장사를 지낸 뒤에 곧 재취를 하게 되었다. 전번의 과객이 또 와서 먼저 물었다.
“그 사이에 상처하고 재취를 하였소이까?”
“그렇소. 당신 말씀을 듣고 경솔하게 면례를 했다가 또 상처를 당하였으니 작은 낭패가 아니오. 무슨 낯으로 또 찾아왔소?”
과객이 웃으며 말했다.
“전번의 면례는 오로지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었소. 전번 상처의 슬픔이 있지 않고서 어찌 훗일 득남의 경사가 있겠소?”
과객은 그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날을 정해주며 주인에게 말했다.
“이날 밤에 내실에서 자면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오.”
과객은 떠날 때 훗일을 기약하면서 말했다.
“기약한 달에 아들을 낳으면 그때 내 다시 와서 보리다.”
주인이 과객의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득남하였다. 손님이 언약한 날에 또 와서 기쁜 안색으로 마루에 올라와 말했다.
“주인장은 아들을 낳았소?”
“그렇소이다.”
과객은 좌정하며 먼저 갓난 아이의 사주를 보고 말했다.
“이 아이는 반드시 장수할 것이니 잘 기르시오. 이 아이의 혼처는 내가 중매를 서리다.”
주인은 치사하기 위한 말인 줄 알고 밎지 않았다. 그 아이가 자라 열너댓 살이 되니, 그 과객이 한동안 오지 않다가 갑자기 와서 말했다.
“자제를 잘 길렀소?”
주인이 곧 아들을 불러내 보이자 과객은 말했다.
“정혼하였소?”
“아직 정하지 못하였소이다.”
과객이 떠날 임시에 곧 사주단자를 청하며 말했다.
“연전에 중매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시오?”
주인은 과객의 말이 많이 적중하였기에 드디어 사주단자를 써서 주었다. 오래지 않아서 과객은 또 택일을 담은 연단(涓單)을 전하였다.
주인은 이미 그 과객의 한결같은 성실함을 믿었으므로 조금도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문벌이 어떠한지, 규수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서 혼구(婚具)를 챙겨 과객과 함께 동행하였다.
하루를 갔는데 점점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과객을 돌아보며 언짢아 했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도 심하게 사람을 속입니까?”
“당신과 무슨 혐의가 있다고 속이겠습니까?”
마침내 한 집에 이르게 되었다. 산은 감돌고 길은 깊숙한데, 높은 봉우리 위에 몇 칸의 초가집이 있을 뿐이었다.
그날이 바로 혼인날이었다. 마당에는 대충 자리가 깔려 있고 노인 하나가 나와서 몹시 불쾌하여 거기까지 따라온 것을 후회하였으나 과객은 자리에 앉아 수작하며 조금도 혐의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주인이 부득이 예단(禮緞)을 들이고 초례를 치른 뒤에 신부의 모양을 보았는데, 용모와 범절이 고루하고 촌스러워 한 가지도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주인은 조금도 마음에 차지 않아 걱정하는 내색을 겉에 나타냈다.
조금 후에 그 노인이 과객과 함께 신랑의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대사를 다행히 잘 마쳤습니다. 딸아이가 이미 출가하였으니 친정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우리집은 가난해서 실로 먼 길에 차려 보낼 형편이 못되니, 존좌께서는 오늘로 데리고 가셔야 하겠습니다.”
신랑의 아버지는 못 한다고 할 수가 없어서 과객이 타던 말에 그 신부를 태워 데리고 와야만 했다.
온 집안이 신부의 모양을 보고 놀라 탄식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아래로 비복들까지도 모두 멸시하고 박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신부는 조금도 변하는 기색이 없이 다만 한 방에 거처하며 감히 집안일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정의 소식을 가만히 알곤하였다. 시부모는 그 일을 두고 이상하게 여겼다. 하루는 노부부가 상의하였다.
“우리는 늙어서 미곡의 출납과 전답의 경작을 총괄하여 점검할 수가 없으니, 아들 내외에게 전담시키고 가만히 앉아서 얻어 먹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리고 곧 집안 일을 모두 아들 내외에게 전담시켰는데, 신부는 조금도 겸양하지 않았다.
신부는 마루에서 내려가지 않고서도 사내종이 농사짓고 계집종이 길쌈하는 일을 지휘하였는데 뚜렷하게 조리가 있었고, 날씨가 흐리고 맑고 바람불고 비오고 하는 것을 미리 알았다.
한 되의 쌀과 한 자의 베도 감히 그녀 앞에서는 속이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2, 3년 사이에 가산이 점점 일어났다. 그래서 집안과 이웃 마을에서 모두 경이(驚異)롭게 여겨 비로소 어진 부인임을 알게 되었다.
시부모도 애지중지하였고, 그 과객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하루는 신부가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춘추가 이미 칠순이시니, 가만히 앉아서 무료하게 지내지 마시고 날마다 동네 친지들과 모여서 즐겁게 보내십시오. 당일의 음식은 이 며느리가 장만해 드리겠으니, 그렇게 재미있게 세월을 보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한 지 오래였는데, 이제 네가 말하니 어찌 좋지 않겠느냐?”
이후로 이웃 노인들을 불러 모으니, 신발이 수북하고 웃음소리가 난만하였으며, 음식차림은 날이 갈수록 더 푸짐하였다. 어언 4년이란 오랜 세월을 계속하고 보니, 땅 한 조각 남김 없이 가산을 탕진하였다.
신부가 그 시부모에게 말했다.
“지금 가산을 탕진하여 남은 땅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없으니, 저의 친정동네로 이사하면 자연 풍족하게 살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 시부모는 신부를 전적으로 믿고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모두 따랐다.
“우리는 이제 늙어서 네가 하자는 대로 할 뿐이다. 생전에 배교픔이 없는 것이 상책이니, 만약 좋은 방법이 있다면 네 마음대로 하여라.”
신부가 이에 가산과 전토를 다 팔아서 가족과 노비를 거느리고 그 친정 동네로 이사하였는데, 전일 중매를 섰던 과객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가 이사 온 이후로 산업을 경영하여 재력이 점점 넉넉해졌다.
그러나 시부모는 오랫동안 산중에 있으니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신부가 시부모에게 청하여 함께 산에 올라가니, 산 밖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시부모가 놀라며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린가?”
“나라에 난이 일어났습니다. 왜적이 팔도에 그들먹하여 지금 저아래 고을에서 싸우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가 살던 집은 이미 불타버리고, 동네 사람은 도망가거나 혹은 죽거나 하였으며, 가까운 지경이 다 어육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난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기회를 보아서 우리 가족을 이끌고 여기로 들어온 것이냐?”
“비록 미물이라 하더라도 모두 천기(天機)를 알고 비와 바람을 피하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자 그 시부모는 크게 감탄하였다.
“기이한 며느리로다. 기이한 며느리로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시 고향에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산중에 들어온 지 8-9년 뒤에 신부는 가족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농사를 지어 다시 가산을 이루고 아들을 낳아 장가를 들였으니, 자손들이 많이 번성했다.
《해동야서(海東野書)》, 編著者 未詳, 藏書閣 所藏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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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며느리가 신통방통한 여자로구만 . 아주 멋진 며느리네요 .
며느리손에 집안의 흥망성쇠가 달렸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