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는 것도 많지 않기에 칼럼리스트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야후!격투기 싸이뉴스에서 소중한 페이지를 할애해 줄 때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으로 많은 고민을 하며 태국의 무에타이나 K-1을 소재로 몇자 씩 끄적거려 봤다. 하지만 칼럼이라고 말하기에는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왕이면 낯간지럽게 잘난 척을 안 떨어도 되는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소중한 기회를 잘 살려 필자의 소속선수들인 임치빈, 정백호, 신비태웅과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여타 대한민국 쟁쟁한 선수들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하나의 코너로 꾸며볼까 한다.
과거 선수들에 대한 추억도 포함될 테지만 주로 현재 링 위에 서고있는 선수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자가 대한민국의 모든 선수들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자칫 잘못된 글로 선수들의 명예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조심해서 필자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글을 써보고 싶다.
#1. 목숨을 건 사투. 언데드 파이터 김연종.
소름 끼치는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그 강력한 타격음은 상대의 미들킥을 옆구리에 허용하는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으리라. 누가 봐도 다운이었다. 숨이 막혀 쓰러져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상대 관자놀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상대는 더욱 몰아쳤다. 하지만 상대의 펀치 연타를 아랑곳 않고 두발을 땅에 묻어둔 채 상대 얼굴에 폭풍우 같은 펀치 연타를 돌려주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두 선수 모두 턱이 돌아가고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옆구리와 허벅지에 붉게 물든 킥의 흔적은 시간이 갈수록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관중들은 어느새 모두 일어선 채로 악을 썼다. 조마조마 한국 선수의 승리를 기원하던 몇몇 교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4라운드 중반 수건이 링 위로 날아들었고 그것으로 그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한국인 선수 김연종의 TKO패였다.
영화 같은 이 장면은 필자가 직접 목격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25일 일본 도쿄의 코라쿠엔홀에서 열린 슛복싱 대회에 출전했던 김연종(24. 천안천무)의 파이팅은 일본인 관중들을 모두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고 기립박수를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던 교포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그 기립박수와 눈물은 일본선수의 승리에 대한 기쁨이나 한국선수의 패배에 대한 실망감이 아닌 김연종이라는 사람의 눈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에 대한 반응이었다.
경기는 각본도 없고 대사도 없다. 단지 때리고 맞을 뿐이다. 그것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 그 경기 직후 필자의 두뇌 속에 있는 '내가 본 최고의 경기' 폴더에 김연종의 경기가 추가로 저장되었음은 물론이다.
경기 후 김연종의 스승인 박주연 관장과 조촐한 술자리를 갖게 됐다. 그는 술자리 내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지 벌써 6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땀을 흘리시네요”라고 묻자 잠깐 동안 머뭇거리더니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땀은 그냥 땀이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김연종은 일본으로 날아오기 3일 전 많은 양의 하혈을 하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혼절한 채로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병원으로 실려가 하루 만에 정신을 차린 김연종에게 박주연 관장은 이번 경기를 포기하자는 말을 하였으나 김연종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꼭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경기를 주선했던 필자와 일본측에는 비밀로 한 채 링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자체가 패배에 대한 변명 같으니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본으로 떠나올 때 인천공항 검색대에서 열어본 김연종의 가방 안에 왜 산소호흡기가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만난 김연종에게 왜 그런 몸으로 목숨까지 걸고 시합을 뛰었냐고 물었다. “제 스승님에게 남자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한가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김연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약속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듯 옆에서 배시시 웃던 김연종의 미소는 지금까지도 뇌리 깊숙이 박혀있다.
그 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얼마 전 ‘전사의 연대기’ 경기장에서였다. 김판수와 정백호를 상대로 스파링을 벌이던 김연종은 한결 더 업그레이된 모습이었다. 더 절제된 킥과 주먹이 빛을 발하며 상대에게 적중했고 전과는 다르게 빠른 스텝을 이용하여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그의 훈련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연종은 1982년 1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천안에서 살고 있는 천안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 200m 육상선수를 거쳐 중학교 재학시절까지는 축구선수로도 활동을 했었다. 무에타이 선수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2004년 김미파이브에 출전하면서부터였다.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에타이 라이트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선 그는 무에타이 국가대표로도 선발돼 해외경기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링을 떠날 때 일절 아쉬움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하던 김연종은 오는 8월 14일 정백호, 핑퐁, 김세기 등 거물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거제도 마린킹 70kg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이번 경기에도 그의 불타는 눈빛은 관중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라고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