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 世界文化遺産 登載
연산 돈암서원(遁岩書院)
忠淸南道 論山市 連山面 林里 74
연산 돈암서원(連山 遯巖書院)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선생 의
학덕(學德)을 기리고 후학(後學)을 양성(養成)하기 위해 건립(建立)
된 서원(국가인증 사립대학)이다.
경내의 건물(建物)로는 하마비(下馬碑)· 홍살문(紅箭門) 송덕비(頌德碑),
산앙루(山仰樓)· 양성당(養成堂)· 응도당(凝道堂)· 장판각(藏板閣)·
정회당(靜會堂)·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등 조화를 이루며
옛날 모습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하게 역사속 묵향(墨香)을 가득안고
고즈넉히 거기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돈암서원 의 영향을 받아서 은진, 노성, 대덕, 연산, 공주,일대에
살았던 대표적인 사림(士林)들 광산김씨, 은진송씨 순천박씨, 를 비롯
의령남씨, 밀양박씨, 남양홍씨, 안동권씨,등 많은 사족(士族)들은
대대로 서인(西人)쪽의 정치사상(政治思想)을 갖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소논(少論/明齋)과 노론(老論/尤庵)도 갈려 나가게 되는 역사 속 에
붕당(朋黨)과 분당(分黨)의 고장이 되었다.
배향(配享)되어 있는 사우(祠宇)는 전면(前面)1칸통(間通)을 개방(開放)
하여서 집의 앞쪽에 다른 기둥(柱)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인
전퇴(前退)를 두었으며 내실(室內)에는 우물마루(井廳)를 깔아 한결
운치(韻致)를 더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空間)인 주간(柱間)의 전면(前面)에만 사분합
(四分閤)띠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회벽(灰壁)으로 처리했다.
공포(栱包)는 이익공(二翼工) 외 출목(外出目) 집과 동일한 수법(手法)
으로 짜 올렸으나 전각(殿閣)의 기둥 위에 덧붙인 소의 혀(舌)와 같이
생긴 장식인 우설(牛舌)은 그 형태가 가늘고 빈약(貧弱)하게 보이는
것은 필자 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내부의 양봉(樑奉)은 전통적(傳統的)인 모습(模樣)을 유지(維持)
하고 있어 반갑다.
장여나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인 창방(昌枋) 위에 배치된 화반형
(花盤形)의 초각(草刻)은 기둥 사이마다 1개씩 얹었다.
지붕가구(架構)는 퇴고주(退高柱)를 세워 퇴량(退樑)과 들보를 걸었는데
새우처럼 휘어진 목재(木材)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 일종의 포대공(包臺工)을 얹고 퇴고주(退高柱)와 마룻보인
종량(宗樑) 위에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두어 종도리(宗道里)를 받쳤다.
이곳 "돈암서원" 은~
서기 1993년 10월18일 사적 제383호 에 지정(指定)되었으며
서기 2019년 7월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에 등재(登載)되었다는
뉴스(News)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멀지않은 인근(隣近)에 필자 고향(故鄕)은 광석면 이며 이곳은
노성면 이고 광석면 에는 또 하나의 서원 “노강서원” 이 있다.
거리상으로 는 “돈암서원이 가깝지만 면(행정지역)이 달라 초등학교
시절 에 이곳 보다는 노강서원(魯岡書院)쪽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그런 관계로 “돈암서원”을 잘 알지 못한 것 같아 사계 선생님 께
죄송한 마음마져 들어서 “돈암서원“을 찾아 사계선생(沙溪先生)을
찾아 참배(參拜)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아 이제서야~
오늘(토) 작심(作心)하고 날 잡아 돈암서원(遁岩書院)을 찾아가서
그 배경과 역사(背景과歷史)를 알아보고 그 의(意)를 되집어 보는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기위해 愛馬 바이크 를 꺼내 집을 나섰다
필자 대전 집에서 차량(車輛)으로 3~40분 남짓이면 닿을수 있는
지근(至近)거리 이지만 오늘은 차량을 버리고 고행하는 기분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폐달을 밟으면서 갑천 을 따라 가수원~ 노루벌~
흑석리~ 대추벌~ 원정~ 꽃마을~ 벌곡~ 한삼천리~ 산을 넘어~
연산4거리~ 이렇게 달려가니 2시간반 이상이 걸리는 먼 길이다.
자전거 에 달린 속도계 를 보니 37Km 정도 된다.
돈암서원(遁岩書院)은 1634년 지방유림(地方儒林)의 공의(公議)
로 사계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학문과 덕행(德行)을 기리기 위해
忠淸南道 論山市連山面 林里에 建立하였다고 되어있었다
1659년(孝宗10) 및 1660년(顯宗1)에 두 번 의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으며...
1658년(孝宗9)에 선생의 아드님 신독재 김집(金集)
1688년(肅宗14)에 선생의 애제자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95년(肅宗21) 우암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배(趨拜)하였 단다.
1871년(高宗8년) 대원군의 전국적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존된 유서(由緖)깊은 충청지역 대표적인
서원(代表書院)이다.
“돈암서원” 은 본래 현재 위치의 서북쪽 1.5km 떨어진
임리 숲 말(숲이우거져 숲말) 현 신독재 종택 있는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연산천(連山川)이 가까이 있고 지대가 낮아 수해(洪水害)를
자주 입게 되다보니 1880년 현 위치(現位置)로 이전(移建)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숲말에 돈암 이라는 큰바위가 있는데 본래 은둔(隱遁)하는
곳 이다 라는 뜻의 둔암(屯岩)에서 온 말이라고 ...
김장생이 은둔(隱遁)하며 학문(學文)과 후진양성(後進養成)
에 힘쓰고자 했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 게다.
사계 김선생은 양성당을 지으며 기록한 글에 대둔산(大屯山)이
남쪽에 있고 북쪽에 계룡산(鷄龍山)이 솟았다고 했으며 양성당
(養成堂)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산을 우러르며 즐기고 냇물
(溪流)를 내려다보면서 물(水勢)을 살피고 자연경물(自然景物)
을 접하는 대로 이치(理致)를 깨닫는다"고 적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1548년 7월 출생(出生) 하였으며 자(字)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처음에 구봉 송익필 에게 예학을 배우고 후(後)에 그 유명한
“율곡 이이(栗谷 李珥)” 에게 성리학(性理學)을 배워 예학파
유학의 거두가 되었으며 그 뒤 우계 성혼의 문하(門下)에도
출입(入學)하여 수학(공부)하였다고 한다.
조부는 지례현감 호(鎬)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김계휘(金繼輝)
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의정부우참찬
이간공(夷簡公) 신영(申瑛)의 딸로 한성부 에서 태어났다.
고조 김극뉴(金克忸)는 사헌부 대사헌 증조 김종윤(金宗胤)은
진산군수(珍山郡守) 조부 김호(金鎬)는 지례현감(知禮縣監)을
역임했고 삼촌 김은휘 는 학행과 덕망(德望)으로 명성(名聲)을
쌓은 명문사족 이다.
그 아들이 김집(金集)과 김반 으로, 김집 은 그의 아들이자
학통(學統)을 계승(繼承)하였고 김반 은 인경왕후의 할아버지
이자 김만기,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 김만중(金萬重)의
할아버지 이며 서인 중진 광남 김익훈의 아버지 이다.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연산지역(連山地域)에서 세거(대이어거주)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輩出)한 호서명문(湖西名門) 사족가문 이다
이런 이유로 돈암서원은 서인⟶노론계 를 대표하는 서원 으로
오늘 까지 이르고 있으며, 특히 사계 김선생 이 타계(他界)한 후
제자(弟子)와 문인(門人)들이 만든 돈암서원책판(遯巖書院冊版) 등
여러분야 많은 사료(史料)들이 남아 있다.
이렇듯 돈암서원(遁岩書院)은 호서지역(湖西地域)은 물론
기호지역(畿湖地方): 서울, 경기, 인천, 충청, 을 아우르는
지역전체 에서 존숭(尊崇)받는 서원으로, 사계 김선생 을 제향 한
서원중 에서 가장 비중(比重)있고 영향력(影響力)있는 서원
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선생이 저술한 "가례집람"과 "가례해서"는 지금까지
관,혼,상,제, 의 예법을 총막라 정리한 책으로 제삿상 을 차리는
순서 "홍동백서" "조율시이" 같은 진설법도 가례집람 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가례법 의 하나 이다.
노산 이선승지 以善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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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앞에 서있는 "下馬碑" 이다. 한옥마을 에서 올라가면 처음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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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37km를 달려와 돈암서원 "홍살문" 앞 에 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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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앙루(山仰樓)
산앙루에 올라서 바라보면 왼쪽에 계룡산 오른쪽에는 대둔산이 놓여 있으니
계룡산은 청룡(左靑龍) 우측에 대둔산 이 있으니 대둔산(大芚山)은 백호(右白虎)가 되는 명당 자리 가 분명 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7D64A5DD00A7530)
돈암서원 비석군(碑石群) 앞 에서 ~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957435DD00AA425)
돈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첮문 입덕문(入德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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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당(養成堂)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ADE425DD0D52B30)
양성당
![](https://t1.daumcdn.net/cfile/cafe/9944F5465DD0D64E30)
<주련글 해석>
守口如甁 防意如城
(수 구 여 병 방 의여 성)
말을 삼가기 를 병(甁)마개 와 같게 하고,
뜻을 방비(防備)하기를 성(城)과 같게 하라.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7F1445DD0D7BC35)
出門如賓 承事如祭
출 문 여 빈 승 사 여 제
문을 나설 때에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남의 일을 맡으면 최선을 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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足容必重手容必恭
수 용 필 중 수 용 필 공
발(足)가짐은 반드시 정중하게 하고 손놀림 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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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其衣冠尊其瞻視
정 기 의 관 존 기 첨 시
의관 을 바르게 하고 그 눈길은 존엄 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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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을 세운사연과 사계와 그의 아들인 신독제 김집 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어 놓은 비석 이다.
연꽃무늬 가 새겨진 방형의 비 받침대에 대리석비석과 비석 머리가 서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 새겨진 전서체는 김만기가 썼다고 되어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86E3A5DCFD4A130)
정의재(精義齋)
정의재(精義齋)는 자세한 의의를 지닌 집이라는 뜻 인데...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경론하던 곳 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를 띠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361495DD001951F)
거경재(居敬齋)
거경은 성리학의 수양 방법 중 하나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를 가짐을 말한다. 유생들이 학습하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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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사(崇禮祠)
(사계,신독재,우암,동춘당) 을 모신 사당(祠堂)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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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꽃담(遯巖書院 Flower Wall)
꽃 담장 은 궁궐 같은곳 에서 볼수있는것 인데 숭례사 를 둘러싼 꽃 담장 은
이곳이 특별 하다는것을 이야기 하는것 같아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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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사(崇禮祠) 는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군자가 덕을 쌓고
학문을 이루는 것을 말 한답니다.
사당 내부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올린다고 했다.
숭례사 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사우로서 정면3칸 의 익공양식에 주심포 양식이 가미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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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앙 에 "사계 김장생"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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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이 동춘당 송준길 선생 이고 앞쪽이 우암 송시열 선생 위패이다.
참배객이 볼때 오른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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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신독재 김집 선생의 위패가 모셔서 있다.
참배객이 볼때 왼쪽 이라함 은 동춘당, 우암보다 서열이 위 어른 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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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사 경내 왼쪽 에 있는 소나무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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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괴목(槐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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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사 에서 바라본 경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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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9907604E5DD003E02A)
배룡나무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B134E5DD003E01B)
향나무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E964E5DD003E12E)
동재와 서재 의 모습이 조화 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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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당(靜會堂)
정회 는 유생들이 수행하는 방법중 하나로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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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도당(凝道堂)
이곳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1880년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있던 것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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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도당 들보와 아름다운 각종조각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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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도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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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현판글씨가 정말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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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마루에서 공부를 하면 머리에 쏙쏙 들어갈것 같다.
한여름 여기서 책을 읽으면 정말 시원하고 기분이 좋을것 같아서 옛날 선비들이 부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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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최고 장점이 이런것 이 아닐까?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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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벗고 청마루에 조용히 올라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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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중수기(移建重修記)인듯 한데 글씨가 너무나 작고 높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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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於其間渺然有身
인 어 기 간 묘 연 유 신
사람이 그 사이에 있어 가물가물 하게 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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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身之微太倉梯米
시 신 지 미 태 창 제 미
이 몸의 보잘 것 없음이 태창의 한톨 쌀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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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爲三才曰惟心爾
참 이 삼 재 왈 유 심 이
삼재(특별한재주)에 참여하니 말하기를 오직 마음뿐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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往古來今孰無此心
왕 고 래 금 숙 무 차 심
예 부터 지금까지 누가 이 마음이 없겠느냐 마는...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16E465DD0DC6730)
心爲形役乃獸乃禽
심 위 형 역 내 수 내 금
마음이 형체에 사역을 당하면 바로 짐승 이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42A465DD0DC6733)
惟口耳目手足動靜
유 구 이 목 수 족 동 정
오직 입, 귀, 눈, 손발,의 움직임 이 고요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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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나무가 정말 오랜세월의 흔적이 보여서 접사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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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도당 전면의 창방과 평상사이의 연꽃무늬의 화반 이다.
유교 에서는 연꽃무늬모양을 군자의 청빈함과 고고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선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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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