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색-사랑/임 봄-
나는
딱따구리
당신 뼈에
구멍을 내고
오롯이
들어앉고 싶어
<2>-백색-스마일마스크증후군/임 봄-
읽다 덮어둔 페이지는 마법의 시간
자주 사라지고 이따금 나타나는 외발자전거
고양이를 높이 들고 주문을 외우지
야금야금 뜯어먹다 구름을 만들고 싶어
목을 졸라 경쾌한 노래를 듣고 싶어
제발 나를 위해 한 번만 죽어주지 않을래
외발자전거를 탄 고양이는
매일 높은 안장위에 올라 불타는 링을 통과하죠
경계만 지나가면 지도에 없는 곳이 나올거예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곳
아무도 울지 않는 곳
불길을 통과할 때마다 뾰족한 귀가 타고
입술에서는 날개 부딪는 소리가 들려요
발톱이 부러지고 긴 꼬리에 불이 붙어요
불꽃이 꺼지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마술
둥근 바퀴는 돌고, 돌고, 돌고
당신은 처음부터 외발자전거
뾰족 귀도 긴 꼬리도 없는
외발자전거
<3>-백색–모서리를 읽다/임 봄-
둥근 앉은뱅이 밥상이 사라진 후부터 방안엔 점점 모서리가 생겨났다 네모난 식탁 모서리들을 쓰다듬는 달빛만 갈수록 둥글
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누군가가 딱딱 이를 부딪치며 울었다 울음은 어둠의 모서리에 부딪쳐 되돌아올 때 더 또렷이 존재를
드러냈다 불온한 혀끝에서 망을 보던 단어들이 조용히 밥 알갱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결별을 선언하지도 못했는데 모든 것이
일시에 사라졌다 처마 밑에서 노란 주둥이를 벌리던 제비가 사라지고 마당을 기어가던 지렁이가 사라지고 무릎걸음으로 문
턱을 넘어오던 말들이 사라졌다 슬픔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환한 대낮이 어둠을 낳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이방인의
눈물이 가득한 방에서 우리는 각자 몸을 웅크리고 모서리에 등을 댄 채 잠이 든다
<<임 봄 시인 약력>>
*1970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문학석사.
*2009년 계간 《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3년 계간 《시와 사상》 평론부문 당선.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