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51호)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 예천 초간정 전경 |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
▲ 도로 입구에서 내려다 본 초간정 |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예천 초간정 여행칼럼니스트기자 2012-03-23
자연이 허락한 정자, 수수한 詩 한 소절처럼 낭랑하다 그곳은 무대이고 스스로 주인공이다. 그곳에는 낮과 밤, 해와 달, 하늘과 물, 바람과 비, 숲과 나무, 들판과 계절이 있고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이 있다. 때때로 그곳을 찾으면 깊이 경탄하였고 쓰리게 애통하였고 오래 기억하였다. |
▲ 예천 초간정 전경 |
◆ 초간정 |
▲ 주차장에서 내려와서 바라 본 초간경 원경 |
▲ 초간정 건너편에 세워진 비석 앞뒷 모습 |
초간정은 1582년 조선 선조 15년에 초간(草澗) 권문해 선생이 세운 정자다. 초간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분으로 총 20권에 달하는 책의 완성에는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완성이 1589년, 그러니 초간정은 선생의 그 길고 치열한 작업과 시간적으로 함께하면서 공간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내려두는 휴식처이자 수양처로 자리했을 것이다. 긴 시간 뒷수발을 감내했던 부인이 사망하자 1591년 초간 선생도 세상을 뜬다.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대동운부군옥’고본과 초간정은 소실된다. |
▲ 계곡에서 바라 본 초간정 |
초간정은 1612년에 중건되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탔다. 그 사이 ‘대동운부군옥’은 필사본으로만 남아 땅에 묻혔다. 그것이 빛을 보게 된 것은 1790년 7세손이 판각 작업에 나서면서부터다. 1836년에는 8세손에 의해 46년 만에 677장의 판목이 완성된다. 그리고 1870년 고종 7년에 초간정이 중창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그때 중창한 것으로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후손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
▲ 좌 우측에서 바라 본 초간정 |
▲ 위 아래에서 바라 본 초간정 |
정자 옆에는 몇 채의 기와집이 붙어 있다. 돌담의 부드러운 선으로 둘러쳐져 지붕만이 옹기종기 드러난다. 속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어 이 건물들의 서사는 알 길이 없다. 개울로 내려가 보니 바위에 초간정 글씨가 새겨져 있고 정자의 측면에 ‘석조헌’ 현판이 걸려 있다. 저녁에 낚시를 하는 마루인가. 물고기가 낚일 리 없다 생각되지만 낚싯대 드리우는 유유함과 자적함이 은근하게 떠오른다. |
▲ 초간정 하단 바위에 새겨진 초간정 각자 모습 |
▲ 정면에서 가까이 바라 본 초간정 |
환상적인 송림과 함께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초간정을 부러 멀리하며, 정자의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흘끔흘끔 보일 때까지 내려간다. 그 즈음 개울을 가로지르는 좁은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한 사람만이 지나갈 정도의 너비다. 다리 위 한가운데에서 물과 바위와 숲과 초간정의 조각을 바라보고 다시 숲을 크게 휘돌아 초간정이 선택한 자연과 자연이 허용한 정자를 이리보고 저리 본다. 이곳의 본질적인 사명은 매혹하여 평온을 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머리와 가슴 잔잔하여도 반하고 탐하는 데 부끄러움 없었다. |
▲ 계곡 우측으로 돌아서 초간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한옥체험 민박집 입구 및 내부 모습 |
▲ 초간정 입구에서 바라 본 한옥체험 민박집 |
▲ 초간정 입구 모습 |
초간정(경북 문화재자료 143호) |
▲ 안쪽에서 바라 본 초간정 |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 가 세운 것으로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권문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과사전류인 『대동운부군옥』 20권을 지어 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겨 놓았다. |
▲ 초간정 안쪽에 걸려있는 초간정사 현판 |
▲ 초간정 내부로 들어가서 바라 본 외부 모습 |
정자는 조선 선조 15년(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 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4년(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
▲ 초간정에서 바라 본 외부 모습 |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대청마루로 4면에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
▲ 초간정 내부에서 바라 본 모습과 외부 계곡 전경 |
▲ 초간정 내부 대들보와 바닥 모습 |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사의 현판이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는데, 신기하게도 늪에서 오색무지개가 영롱하여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파보았더니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초간정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 초간정 천장과 현판 |
▲ 초간정 뒷편 구름다리에서 바라 본 초간정 방향 전경 |
▲ 초간정 뒷편 구름다리로 건너오면 한 바퀴 돌아 나오게 됩니다. |
예천 초간정 원림 위치도 |
지도 중앙 상단의 A 부분에 예천 초간정이 위치하고있습니다.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 |
지도 좌측 상단의 A 지점에 예천 초간정 원림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문경시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