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은 일년 전 제가 호주로 가족을 보내고 4개월 여를 지나 처음 가족을 방문한 뒤 적은 기행문입니다.
지금부터 꼭 1년 전의
이야기인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지들이 많은 이 곳에 그냥 한 번 올려 보겠습니다.
사실 이 카페에 뒤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이젠 기러기 시절을 청산한 마당이지만
앞으로 얼마 후 또 어떤 식으로 기러기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고 해서 계속 이 카페는
들락거릴 것 같습니다.
이 카페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들 저와 같은 경험들을
갖고 계실테고 현지의 가족들을 방문할 때의 심정들도 비슷할 것 같아서 심심하실
때 한 번 씩 읽어 보시라고 한 번 올려 보겠습니다. 내용이 좀 길어서 지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기러기 아빠라고 하죠? 왜 '기러기 아빠'일까요? 저도 이것이 참 궁금했었는데, 문득 대학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가 생각이 나면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영화 '남태평양' 중에 해군 병사들이 군함 위에서 부르는 노래 중에 '여자보다 귀한 것 없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 가사 중에 보면 '짝잃은 기러기같은 처량한 이 내 신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기러기는 원래 일가족이 모두 무리를 지어 다니고 하늘을 날 때도 쭉 줄을 지어 날아갑니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안항(雁行: 안항으로 읽어야 맞답니다.)', 즉 기러기 행렬입니다. 상대방 집안의 형제들을 높혀 부르는 말이라고 하지요. 그만큼 기러기는 일가족의 유대가 돈독하고 항상 온가족이 떨어지지 않고 모여 다니는데, 저같은 사람은 가족을 모두 떠나 보내고 홀로 있으니 '짝잃은 외기러기' 아니겠습니까? 기러기 아빠는 이 짝잃은 외기러기 신세의 아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 해석이 그럴 듯 하죠? 애들과 집사람이 호주로 떠난 지 벌써 4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늘 가족과 붙어 지내다 보면 집사람과 애들이 처가나, 본가에 들리러 한 며칠 집을 떠나있을 때 홀가분한 기분을 느낍니다. 처음 집사람과 애들이 호주로 떠났을 때는 이런 종류의 기분을 즐기기로 마음 먹으면서 그럭저럭 견뎌 나갈 수 있었는데, 3,4개월 지나니 아내의 빈자리가, 가족의 따뜻한 정이 그리워 지기 시작합니다. 기러기 아빠의 처량함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마침 구정 연휴도 있고 해서 이 기간을 이용해서 호주에 한 번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떠날 무렵부터 이때 쯤 호주로 한 번 가려고 했었지요. 출발 일자는 1월 25일이고 도착 일자는 2월 2일입니다. 토요일 출발해서 일주일간 지내다가 다음 주 일요일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호주에서의 채류 시간은 7일이고, 호주에서 구정을 보내게 됩니다. 집사람이 부탁한 옷가지와 학용품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빠짐없이 챙겨 넣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지루하게 한 주일을 보낸 끝에 드디어 출발하는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호주는 한여름이고 중간에 옷을 갈아입기가 곤란할 것 같아서 아침에 출근할 때 미리 짧은 여름 옷으로 갈아 입고 겨울 외투를 하나 겹쳐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퇴근하고 바로 출발하려구요. 비행기는 오후 8시 30분 비행기입니다. 원래 토요일 근무는 오후 4시까지이지만 이때 마쳐서는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1시까지만 근무하기로 하였습니다. 오전까지만 하는 근무도 일각이 여삼추더군요. 1시가 되기가 무섭게 직장을 빠져나와 자동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빠뜨리고 온 물건이 있어서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다시 집에 들렀다가 결국 2시께나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날씨는 모처럼만에 화창,포근하여 차창을 비추는 햇살이 따사로왔고, 카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셀린 디옹, 슈나이어 트웨인, 에바 케시디의 목소리는 감미롭기 그지없더군요. 영동 고속도로 여주 부근에서 잠시 차가 막혔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정체가 없어서 5시 조금 넘은 시각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하고, 마일리지 카드 만들고(제가 외국에 별로 안다녀서 마일리지 카드도 아직 없거든요), 항공권 발권받고 출국장을 통과하니 6시가 좀 넘었더군요. 점심을 걸렀더니 배가 출출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식사부터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버거킹에 가서 와퍼 하나 먹었습니다. 금방 든든해 지는군요. 이제 집사람이 내 준 숙제 마저 해야 합니다. 면세점으로 들어가서 집사람이 필요하다고 한 화장품을 몇가지 구입했습니다. 이름 적은 쪽지를 주니 알아서 챙겨 주더군요. 그리고 호주의 이웃들에게 줄 간단한 토산품도 샀습니다.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진 포크, 티스푼 세트와 자개가 박혀 있는 악세서리 함을 샀습니다. 화장품은 면세라 시중가보다 분명히 쌀테지만 토산품은 인사동보다 비싸더군요. 직원한테 이야기 했더니 그럴 거랍니다. %$#@&%$ 면세점이란 상호가 무색합니다. 호주는 여름이고 태양이 강렬하다고 하니 제가 쓸 선그래스도 하나 구입했죠. 물건을 몇가지 안 샀는데도 시간이 후딱 지나가 탑승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이래서 쇼핑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출발을 하더군요. 시드니까지는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답니다. LA가는 만큼이나 멉니다. 거의 같은 경도상에 있어서 시차가 별로 없는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앞이 막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비상구 옆에 위치한, 앞에 좌석이 없는 자리를 부탁했더니 앞쪽의 공간이 넓어서 다리가 편합니다. 더군다나 3개의 좌석 중 2개만 차고 하나는 비어있어 공간이 더욱 넉넉합니다. 이 자리의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이,착륙 때는 예쁜 여승무원과 마주 앉을 수 있다는 겁니다.^.^ 스튜어디스 아가씨와 몇마디 하면서 애들이 초등학교 5, 3학년이라고 하니 놀라면서 결혼을 아주 일찍했느냐고 묻습니다.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더군요. 스튜어디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친절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화장실 옆이라서 사람들이 자주 왔다갔다한다는 것인데 크게 문제되지는 않더군요. 옆을 보니 중년의 서양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역시 저처럼 혼자 여행하는 모양입니다. 영어가 짧아서 먼저 말을 붙이지는 못하겠고, 말을 걸어 오면 대답하려고 예상되는 문답을 속으로 연습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사람, 무척 과묵하더군요.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승무원의 질문에도 짧게 'yes', 'no'만 하더군요. 가로늦게 말 붙이기도 뭣하고, 영어도 짧고 해서(괜히 말 붙혔다가 뒷감당 못할까봐) 저도 끝가지 가만 있었습니다. 야간 시간을 이용하는 비행기라 한숨 자고 나면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을 텐데, 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영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겨우 2시간 자고 나니 말똥말똥해져서 결국 영화나 보면서 가기로 했습니다. '트리플 X'라는 영화를 틀어 주더군요. 국내 개봉에서 비교적 인기 있었다고 들었는데,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무대뽀로 두드려 부수는 스타일이더군요. 저는 첩보 영화는 아기자기하고 치밀한 구성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영 제 스타일과는 딴 판입니다. 액션은 시원시원하더군요. 호주는 한국보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빠릅니다. 게다가 요즘은 써머 타임을 실시하고 있어서 2시간 빠릅니다. 시드니 도착 2시간 정도 전인 오전 6시쯤 되니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합니다. 6시 30분쯤 되니 날이 완전히 밝았는데, 창밖으로 보는 풍경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탔다하면 육지는 잠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바다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시드니로 가는 항로는 호주 대륙의 북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날이 밝을 즈음해서부터 근 2시간여를 땅 위로만 날아갑니다. 산지가 거의 없이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대륙, 아스라한 곳에 땅과 하늘을 구분하는 지평선, 과연 광활한 땅이다 싶었습니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고 가장 작은 대륙으로 그 넓이가 한반도의 35배, 남한 면적의 70배가 넘는다고 하니 과연 큰 나라죠? 8시가 좀 넘은 시각에 비행기는 드디어 시드니 공항에 도착합니다.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았습니다. 비행기 앞쪽에 앉았던 덕분에 몸은 빨리 나왔지만 짐이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바람에 결국 딴 사람보다 더 늦어졌습니다. 이제 통관 절차가 남았습니다. 호주는 섬 나라이고 고립된 생태계여서 식품, 동식물 등에 대한 검역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런 물품을 가져온 사람들은 아예 따로 통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귀찮아서 집사람이 가져오라는 참기름을 비롯하여 통관이 까다로운 것들은 아예 가져가지 않았는데,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빨리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검역을 통과해 나오니 많은 마중객들이 있더군요. 여행객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관광사 직원들도 많이 보이구요.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손짓을 합니다. 집사람과 둘째 윤섭이입니다. 드디어 4개월 만에 가족이 다시 만났습니다. 집사람은 얼굴이 약간 그을은 것 말고는 별 차이가 없었고, 윤섭이는 살이 좀 쪄 있었습니다. 이 곳 음식이 한국 음식보다 열량이 많으니 당연하겠지만 큰일입니다. 어쨋든 모두들 건강해 보입니다. 그런데 큰녀석, 형섭이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물어봤더니 제가 늦게 나와서 딴 출구로 나오는가 하고 살펴보러 갔답니다.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서 형섭이도 저를 발견하고는 뛰어 옵니다. 이 녀석도 윤섭이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쪘더군요. 역시 건강해 보입니다. 옷들도 한국에서 늘 입었던 옷을 입고 있어서 오래간만에 봤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살이 좀 찌긴 했지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니 일차적으로 안심이 됩니다.
시드니에서 가족들이 살고 있는 뉴캐슬까지는 약 16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거리도 거리려니와 시드니 시내의 도로 구조가 복잡하여 집사람은 차를 가져오지 못하고 코치(Coach)를 타고 왔습니다. 코치는 이나라의 보편적인 교통 수단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의 봉고 비슷한 차량을 목적지가 비슷한 7-8명이 함께 타고 가는 일종의 승합차입니다. 뉴캐슬로 돌아가는 차량도 역시 이 코치를 이용한답니다. 같이 타고 갈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맥도널드에 가서 음료수와 함께 집사람이 미리 싸온 샌드위치를 아침 삼아 먹었습니다. 저는 이미 기내에서 아침 식사로 오믈렛을 먹은 터이지만 집사람이 만든 것이라 한 조각 먹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코치 운전사가 와서 탈 사람이 모두 왔다고 일러 줍니다. 나이가 지긋한 양반인데 무척 친절하고 쾌활합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모두 7명의 승객이 탔습니다. 모두 뉴캐슬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승객들의 짐을 모두 일일이 자기 손으로 실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여행시에 모든 업무 처리가 제 담당이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것을 아내가 처리하니 편하기는 하지만 뭔가 좀 어색합니다. 이런 기분은 호주 채류기간 내내 느낄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차가 서서히 공항을 벗어납니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여서 차량들이 모두 좌측 통행을 합니다. 오른쪽에 반대편 차선의 차들이 달리는 모습도 어색하거니와 특히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는 마치 딴 차선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합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드니 외곽지의 모습은 이곳이 이국 땅임을 말해 줍니다. 아파트는 거의 없고(물론 시드니 중심가는 다릅니다.) 대부분이 개인 주택들인데, 잔디가 심어진 잘 정비된 정원과 가로수들이 이국적인 풍치를 뽐냅니다. 영화에서 자주 봤던 전형적인 서구식 주택가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두세차례 시드니에 와 본 적이 있는 애들은 저희들이 아는 건축물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저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시드니를 벗어나니 뉴캐슬과 연결되는 고속 도로가 나옵니다. 호주의 1번 고속 도로로서 북쪽으로 뉴캐슬, 골드 코슽, 브리스번, 케언즈로 연결되는 호주의 대표적인 고속 도로입니다. 그런데 고속 도로의 노면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고속도로 보다 훨씬 거칠어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제법 시끄럽고 차도 툴툴댑니다. 고속 도로에 자전거가 다니는 것도 상당히 놀라운 광경입니다. 고속 도로의 양옆으로 펼쳐진 수풀은(이네들은 bush라고 이야기 합니다.) 대부분 유칼립투스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근의 잦은 산불로 인하여 이 수풀들도 검게 거을려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유칼립투스 나무의 불에 대한 저항력입니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산불이 나도 나무가 몽땅 타지를 않고 잎과 줄기의 표면만 탄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이난 뒤 몇 개월만 지나면 새로운 잎사귀들이 돋아나고, 불에 탄 줄기는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안에서 새로운 나무 껍질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불난지 1년 정도만 지나면 언제 불이 났는지 모를 정도로 수풀이 회복된다고 하니 놀랍지 않습니까? 산불이 한번 났다하면 모든 나무가 깡그리 타 버리고, 묘목부터 새로 심어야 하는 우리 나라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형편이니 이네들은 불이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답니다. 우리 나라의 나무도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시간여 차를 달리자 드디어 뉴캐슬 시가 보입니다. 풍경은 시드니 외곽과 비슷해서 나무와 녹지가 주택들과 잘 어울어져 있습니다. 시 외곽 초입에서 동승했던 할아버지를 먼저 내려 드리고 한참을 더 달린 끝에 우리 가족이 사는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은 단독 주택이 아니고 타운 하우스라고 하는 일종의 연립 주택입니다. 이층 구조의 집을 양쪽으로 대칭되게 붙혀서 지은 집입니다.
집안의 구조를 살펴보니 일층은 차고와 부엌, 거실로 되어 있고, 이층은 목욕탕과 침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 평수는 우리나라 아파트 기준으로 30평 정도의 공간 쯤 되 보입니다. 최소한의 필수 가구들만 들여 놓아서 훼덩그렁한 거실이 더욱 넓어 보입니다.
대충 짐을 푼 다음 일단 한인 교회로 향했습니다. 우리집 식구는 원래는 종교가 없었고 심정적으로는 불교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낯설고, 물설은 만리 타국에서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별탈없이 정착하게 도와준 절대적인 공로자가 이곳 한인 교회의 목사님 부부, 그리고 한인 교회의 교인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게 되었답니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간 도움을 준 목사님과 교회 신도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교회로 간 것이지요. 교회는 집에서 차로 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한국 교회라고 따로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호주 교회의 예배가 없는 시간을 한인 교회에서 빌어쓰는 형식이었습니다. 집사람은 아직까지 주기도문도 다 못외는 불성실한 교인이지만 애들은 상당히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찬송가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식사 때마다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칠 때 쯤 도착하여 목사님 부부를 비롯, 여러 교인(이 교인들도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들을 주었답니다.)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준비된 비빔밥까지 얻어 먹었습니다.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입니다. 지금이 한여름이죠. 봄은 9-11월, 여름은 12-2월, 가을은 3-5월, 겨울은 6-8월이며, 여름은 우기로 평균기온은 27℃, 겨울은 건기로 13℃의 평균기온을 나타냅니다. 전체 대륙이 남위 10.41°- 43.39°에 걸쳐 있어서 여러개의 기후대를 가지고 있으며, 북쪽에서부터 열대 우림기후, 열대성기후, 아열대성기후, 온대성기후로 나뉘어 지고, 대륙의 중앙부는 사막성 기후를 나타냅니다. 전반적으로 호주의 기후는 건조하며 일교차가 크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밤에는 긴 팔 옷이 생각나고, 한겨울에도 낮에는 반팔을 입기도 한다는 군요. 식구들이 살고 있는 뉴캐슬은 남위 32.56도의 위도상에 있어서 온대성 기후를 가진 곳입니다. 전반적으로 온화한 날씨를 보이고 한국보다 여름도 덜덥고, 겨울에도 덜 춥다고 합니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이곳의 주택들이 난방 시설이 전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상당히 낮다고 하네요. 제가 도착한 날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호주날씨로서는 보기 드물게 더운 날이라고 합니다. 수은주가 40℃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대단한 더위지요? 그러나 습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 그늘에만 가니 약간 서늘해 지고, 돌아다녀도 땀이 크게 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의 35℃보다 오히려 덜 더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선풍기도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도 크게 덥지 않더군요. 그러나 햇빛만큼은 아주 강렬해서 이나라에서는 선그래스와 햇빛 차단 크림은 필수이고, 셰계에서 피부암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피부암은 자외선 노출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데, 햇빛이 강한 나라에 사는 인종일수록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는 멜라닌 색소가 많아져서 피부색이 검어집니다. 햇빛이 이렇게 강렬한 나라에는 황인종이나 흑인종이 살아야 하는데, 백인들이 거주하니까 피부암이 많은 모양입니다.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호주 대륙에는 유럽인의 골격을 가진 흑인들이 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집사람이 공부하는 뉴캐슬 대학 구경을 나갔습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더군요. 그런데 대학 캠퍼스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우선 부지가 무지 넓고 학교 건물을 제외하면 모두 숲으로 되어 있어 마치 거대한 숲 속에 대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숲이라는 것이 거의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입니다. 그 숲 속에 캠퍼스가 군데군데 나즈막한 건물로 흩어져 있는데, 건물들도 나즈막하고 규모가 작은 편이었고, 페인트 칠도 거의 하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들이어서 마치 숲속의 오두막집을 찾아다니는 느낌이 듭니다. 인공적으로 가꾸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였다고 하지만 처음보는 제 눈엔 매우 황량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진짜 대학교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집사람이 공부하고 있는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이 대학에 재직하고 계시는 교수님에게들은 이야기인데, 외관은 그렇게 보이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시설이나 기자재들이 최신 설비로 아주 잘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의 실용주의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이 있는 포럼(Forum)으로 가니 그나마 세련된 건물이 보입니다. 이 포럼은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개의 실내 코트와 수영장을 갖추고 있어 각종 실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수영장은 10여개의 50m 레인과 관중석 까지 갖추어진 완벽한 시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드니 올림픽의 수영 경기가 여기에서 열렸다고 하더군요. 이 포럼은 지역 사회에 개방되어 있어서 이 지역 주민들이면 누구든지 저렴한 사용료를 내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애들도 수영장 정기 이용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대학 캠퍼스를 대충 둘러본 뒤 시내 구경을 나갔습니다. 뉴캐슬은 인구가 약 30-40만 정도 되는 도시입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별로 크지 않는 도시이지만 인구가 적은 호주에서는 6번째 정도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뉴캐슬이 속해 있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는 시드니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구요. 도시는 전체가 하나의 공원 같습니다. 시내 중심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고층 건물이 거의 없고, 주택들은 거의 대부분 단독 주택이거나 우리 식구들이 사는 타운하우스 같은 형태입니다. 아파트가 간혹 있기는 해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단지는 없고 거의 2-3층 정도의 높이의 소규모 건물이 한 두 동 있을 따름입니다. 모든 집들에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고, 주변에 키 큰 가로수들이 있으며, 어디서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잔디가 깔려진 운동장들이 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원시림 수준의 큰 숲들도 있고, 골프 코스도 여러개 있다고 하니 마치 거대한 공원 속에 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주택들이 이런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니 도시의 면적은 같은 인구 수준의 우리 나라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넓습니다. 느낌으로는 제가 자란 인구 300여만명의 대구 광역시보다도 더 넓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뉴램튼 지역인데 뉴캐슬에서 중심가에서 약간 서쪽으로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서 차를 몰고 동쪽으로 곧장 가니 뉴캐슬의 번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번화가라고 해도 고층 빌딩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거의가 4-5층 이하의 건물들입니다. 중심가를 통과해서 계속 동쪽으로 가니 해안이 나옵니다. 아내는 이곳까지 혼자서는 와 본적이 없어서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해야 했고 진로를 수정해야 했지만 드디어 목적하는 해안가에 다다랐습니다. Nobbys beach라고 이름붙은 곳입니다. 이곳 해안은 파도가 높은 편이어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호주는 국토의 90% 정도는 사막 지형이고, 사람이 살 만한 곳은 모두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호주 도시들은 해안을 끼고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영과 서핑은 호주인들의 필수 스포츠이고 낚시배나 요트가 이네들의 재산 목록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받으며 사진도 찍고 경치 구경도 했습니다. 해안 한쪽에 바닷물을 끌여들여 만든 해수풀도 보입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맡을 수 있는 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바닷바람을 오래 쐬고 있어도 끈적끈적한 느낌도 덜했습니다. 염도가 낮아서 그런가요? 해안 풍경을 좀 더 즐기고 싶었으나 저녁 식사 약속 때문에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호주에 와서 뉴캐슬 대학교의 한국인 교수님 부부를 알 게 되었는데, 평소에 집사람과 애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이 교수님 부부와 우리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약속을 미리 해 두었답니다. 뉴캐슬시 서쪽 편으로 맥커리 호수라고 하는 바다와 이어진 거대한 해수호가 있습니다. 이 호수가에 위치한 호텔겸 레스토랑이 약속 장소라고 합니다. 이 레스토랑의 주인은 호주에서 자수 성가한 한국 이민자로서 우리 가족이 나가는 한인 교회의 신도이기도 하답니다. 뉴캐슬 시내를 남북으로 종단하면서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오른쪽 편으로 맥커리 호수가 펼쳐 집니다. 호수가 하도 길어서 마치 강처럼 느껴지고 건너편은 보이지만 양쪽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맥커리 호수의 주변은 잔디가 잘 심어져 있는 공원으로 가꾸어 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군데군데 있고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그릴이 갖추어 져 있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서양인들의 여유있는 생활의 한 단면입니다.
레스토랑은 호수의 선착장과 바로 인접해 있어서 전면 창을 통해 맥커리 호수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약한 자리는 그 중에서도 호수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더군요. 그런데 전망은 좋았으나 아직까지 햇살이 강하게 내려쬐고 있어서 조금 더웠습니다. 시간이 6시 30분이지만 서머 타임이 실시되고 있는 탓에 아직 햇살이 제법 강합니다. 좋은 경치를 즐기는 대신 더위는 감수해야 된답니다. 조금 있다 해가 많이 기울면 시원해 진다는군요. 경치는 그만입니다. 기울어가는 석양 너머로 평화로이 떠다니는 요트들, 호숫가를 거니는 이국적인 사람들...... 내가 정말 딴 세계에 오긴 왔나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기다리니 교수님 부부도 도착하셨습니다. 40대 후반의 인자한 부부이십니다. 저의 버벅거리는 영어나, 콩글리쉬 냄새가 나는 집사람의 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호주 억양이 짙게 밴 본토박이 영어를 구사하십니다. 세련된 영어로 셀러드, 앙트레, 메인디쉬, 와인까지 주문하십니다. 한국식 양식 메뉴와는 이름들이 많이 다른 메뉴판을 보고 어떤 음식을 시켜야 될지 몰랐는데 두분의 도움을 받아 마음에 드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식당의 이름은 'Squid Ink'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오징어 먹물'쯤 되는데, 이름에 걸맞게 생선을 재료로 한 음식을이 많았으나 괜히 시켰다가 입에 맞지 않을까봐 우리는 그냥 한국에서 먹던 대로 소고기 요리를 시켰습니다. 무슨무슨 설명이 잔뜩 붙어있는 요리의 이름은 'beef fillet'입니다. '소고기 덩이 요리'라는 말인데 짐작했던대로 나중에 나온 요리를 보니 비프 스테이크입니다. 음식 맛도 괜찮고 식탁의 차림, 접시의 데코레이션까지 모두 아주 좋습니다. 식당이 자그마한데다 깨끗하긴 해도 실내 장식이나 시설이 호화롭지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음식의 질은 고급 호텔 레스토랑 못지 않습니다. 한국인 사장님의 철저한 관리가 돋보입니다. 이 식당, 앞으로도 틀림없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고운 빛깔의 태양이 바라다 보입니다. 시간이 더 흐르자 호수는 차츰 짙은 푸른빛으로 변하면서 고요하게 잠들고 있고 주위는 차츰 어둠에 잠깁니다. 어느듯 기온도 선선하게 바뀌어져 있습니다. 좋은 저녁입니다. 나중에 생각해 봐도 이날이 호주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근사했던 저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교수님이 디저트도 먹을 겸 해서 당신 댁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식당에서 제공되는 커피도 마다하고 교수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교수님 댁은 역시 이 도시의 전형적인 주택의 모습이었는데, 겉모습과는 달리 한국의 냄새가 묘하게 배어 있는 거실에서 잘꾸며진 정원을 감상하면서 열대 과일과 와인으로 차려진 멋진 디저트를 즐겼습니다. 교수님은 공학 전공인데도 불구하고 노래와 기타를 즐기시고, 사모님은 대학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바이얼린 연주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가지고 계신 멋진 분들인데, 뒷뜰에는 자그마한 음악회를 열 수 있는 무대를 손수 만들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집 뒷뜰의 전망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뒷 뜰이 블랙벗이라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무지하게 큰 원시림 수준의 숲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덕분에 블랙벗 숲 전체가 정원인 것 처럼 느껴지는 멋진 전망을 가지고 있더군요. 밤이라서 조명 너머의 어렴풋한 그림자만 보였지만 낮에 봤으면 정말 멋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집! 비싸답니다. 이곳의 집들은 기본적인 구조나 크기는 대게 비슷비슷한데, 정원의 크기나 전망,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에 따라 가격이 많이 차이 난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 교수님 댁을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더 놀겠다는 아이들 억지로 자게 하고 우리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전날 비행기에서 2시간여밖에 자지 못한데다가 더운 날씨에 하루종일 돌아 다녔더니 상당히 피곤합니다. 오늘은 무척이나 긴 하루였습니다. 호주에서의 첫날밤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To be continued......
|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다음글 기대할께요~~
세세하게 써 내려 가신 글에 푹 빠졌드랬습니다.ogoong님의 눈 높이까지는 못되더라도 보이는대로 다 담아 와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큰놈(고3) 이라 가슴이 덜 아리겠지요? 두고 올 그 마음이 두려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