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하늘과 땅 사이에서 풀과 나무가 생장하는 것은 모두 같은 기운에
의해서이지만 뿌리 내리고 싹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데에는 어렵고 쉬우며 빠르고 늦는 차이가 있어서 유독 밤나무가 모든 초목 중에 가장 늦게
생장한다. 그래서 어린 싹은 자라기가 매우 어렵지만 자라기만 하면 금방 거목이 되고, 잎은 매우 더디게 나지만 나기만 하면 금방 울창해지며,
꽃은 가장 늦게 피지만 피기만 하면 순식간에 만개하고, 열매는 가장 나중에 열리지만 열리기만 하면 바로 수확한다. 아마도 밤나무의 성질에 기울면
차고 겸손하면 보태는 이치가 있는 듯하다. 윤공은 나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때 나이 이미 30여 세였고 40세가 넘어서 첫
관직을 받았다. 사람들이 모두 늦었다고 여겼으나 공은 관직에 나아가 더욱 조심하고 삼갔다. 급기야 선군(先君)의 인정을 받아 크게 쓰이자 하루에
아홉 번 승진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명(司命)을 지으니, 일부러 애써서 이뤄내지 않았어도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다. 앞서 확립하기까지가
어려웠으나 뒤에 성취하기는 쉬웠으니, 대개 이 밤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동일한 점이 있다.
[원문]
天地之間, 草木之生, 均是一氣, 然其根苗花實, 有難易先後之不一, 獨是栗最後於萬物之生. 栽甚難長,
而長則易壯; 葉甚遲發, 而發則易蔭; 花甚晩開, 而開則易盛; 實甚後結, 而結則易收. 蓋其爲物, 有虧盈謙益之理矣. 尹公, 與余同年登科.
年已三十有餘, 而踰四十始霑一命. 人皆以爲晩, 而公就仕尤謹. 及知遇於先君之大用, 一日九遷, 登顯仕作司命, 不待矯揉而蔚乎其達矣. 其所立者先難,
而其所就者後易, 蓋有同於是栗之花實. - 백문보(白文寶, 1303~1374),
『담암일집(淡庵逸集)』 권2, 「율정설(栗亭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