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六 章 풀린 月下美女圖의 秘密
<미녀도의 신비는 달빛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니,
누가 있어 그 오묘한 뜻을 짐작이라도 할까......>
흑마신 묵강이 탈심색혼심법으로 무형음마신공을
전수받고 쓰러져 버린 후, 주서붕은 세 사람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한펀으로는 양의귀일심의공을
운용해 여래불심항마신공을 일으켜 내상을 치료하고
손상된 진원을 보충하기에 힘썼다.
주서붕은 너무 과다(過多)한 진기의 소모로인해
마유신 등이 차례로 깨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운공을
멈출 수가 없었다.
흑마신까지 깨어난 것을 본 주서붕은 눈을 감고
다른 한편으로 천마극염지존강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점차로 주서붕의 몸을 감싸고 있던 서기어린
혈운(血雲)속에서 한 가닥 검은 기운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서붕의 몸은 순식간에 혈운과 묵운(墨雲)으로
감싸여 그 형체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묵운과
혈운은 마치 묵룡(墨龍)과 혈룡(血龍)이 주서붕의
몸을 휘감은 듯 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도는 방향이 서로 반대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복마쾌검 여몽이 넋 잃은 듯 입을
열었다.
"도대체 공자께선 어떤 무공을 수련하셨기에
운기조식하시는데 저토록 기이한 광경이 일어난단
말인가?"
"검은 기운은 아마도 지존의 천마극염지존강 같이
짐작되는데 저 장엄한 붉은 기운은 무엇인지 모르겠군
그래!"
흑마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붉은 기운은 틀림없이 무림에 전해지지 않은
불문의 기학(奇學)일 것이다."
마유신 우문수가 중얼거렸다.
"아니, 그럼 지금 공자께선 전혀 상반(相反)된 두
가지 공력을 한꺼번에 운공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에라 이 가짜 서생녀석아, 그따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냐? 사람이 어떻게 전혀 다른
무공을 한꺼번에 운기할 수 있단 말이냐?"
복마쾌검 여몽이 입을 딱 벌리자, 흑마신 묵강이
마유신을 공박했다.
"네놈은 공자께서 일반 사람이 아님을 잊었느냐?
그리고 혈운과 묵운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운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마유신의 조리정연한 말에 흑마신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주서붕은 저녁때가 되서야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떴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흑마신 등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쳤다.
주서붕이 담담히 미소지었다.
"고맙소. 그래 모두들 기분은 어떠시오?"
"검의 위력을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공자님의 덕분입니다."
복마쾌검 여몽을 위시해 모두가 다투어 치하의 말을
했다.
"좋소. 백노!"
"예, 공자님!"
"신룡풍운삼절선의 위력을 어느 정도나 펼칠 수
있을 것 같소?"
"공자님께서 깨어나시지 않아 시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칠 팔성 정도의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마유신이 자랑스러운 듯 말하자 주서붕이
미소지었다.
"신룡풍운삼절선은 도가의 내가수법을 기초로 하여
지부음마선과 그 운용방법이 틀리니 많은 노력을
해야될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헌데, 백노는 마땅한 무기를 구할 수 있겠소?"
"그게...... 우선 대용품을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소! 자, 여기 한옥선이 있으니 이걸
쓰시오. 원래 신룡풍운삼절선이 이 한옥선을 써야 그
위력이 십분 나타나는 법이오."
주서붕이 한옥선을 내밀자 마유신은 황공한 듯 얼른
받지 못했다.
"백노의 섭선을 내가 망가뜨리지 않았소? 내가
보상하는 것이니 부담은 갖지 마시오."
"가, 감사합니다."
마유신 우문수가 기쁨에 찬 음성으로 말하며
한옥선을 받았다.
"여몽! 천풍광무신검을 어느 정도 깨달았소?"
"예, 덕분에 천풍결과 광무결은 거의 다 깨친
듯합니다. 하지만 천풍광무결은 변화는 거의 깨쳤으나
막상 시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복마쾌검 여몽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그것을 생각지 못했었군...... 공력이
부족한거요?"
"예, 속하의 공력은 그래도 남다른 바가 있어서 한
갑자 가량이나 되는데 이 신검학(神劍學)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복마쾌검 여몽,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검수였으나 주서붕에게 천풍광무신검을 전수받은 후에
자신의 검술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그렇소. 천풍광무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거의 백년에 가까운 공력이 있어야지. 좋소. 내가
당신의 임독이맥을 타통시켜 주겠소."
"예? 속하의 임독이맥을요?"
"믿어지지 않소?"
복마쾌검 여몽은 기쁨에 겨워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졸지에 영웅 한 마리 나오는군!"
흑마신이 비꼬았다.
"흑노! 우리는 이제 한 집안이오! 화기(和氣)를
깨뜨리는 마른 삼가하시오!"
주서붕이 두 눈을 부릎떴다.
흑마신은 찔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여몽, 당신의 검은 어찌 되었소?"
주서붕이 다시 여몽에게 물었다.
"속하의 검은 어젯밤에......"
"알겠소......"
주서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저 책상자를 이리 가져오시오."
여몽이 주서붕의 책상자를 가져왔다.
주서붕이 책상자를 열자 휘황찬란한 보기(寶氣)가
뻗어나왔다.
손을 넣어 달그락거리던 주서붕은 그 속에서
한자루의 장검을 꺼냈다. 상아(象牙)로 된 검집과
고아(高雅)한 형태의 검자루 등은 한 눈에 그 검이
평범한 검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이것은 황깍]첬炷活?태아검(太阿劍)이오. 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시오."
주서붕이 검을 여몽에게 내밀었다.
"태, 태아검? 그, 그런 명검을...... 가,
감사합니다. 속하 여몽, 신명(神明)을 다바쳐 검의
이름을 지키겠습니다!"
복마쾌검 여몽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무릎을
꿇고 태아신검을 받았다.
자고로 검을 사랑함은 검사의 본능인 것 복마쾌검이
어찌 감격치 않겠는가?
태아검은 강호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천여 년이
넘었고 황실에서도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주서붕은
그 태아신검을 구중비고에서 발견하여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주서붕의 책상자 속에는 구중비고의 보물들, 천하의
기진이보(奇珍異寶)가 가득차 있었다.
여몽의 기뻐하던 모습을 바라보던 주서붕은
흑마신을 쳐다보았다.
"흑노."
"예, 노노도 이미 소성(小成)은 한 것 같습니다."
흑마신은 주서붕이 묻기전에 앞질러 대답했다.
"잘 되었소. 무형음마신공은 그 위력이 매우
음독(陰毒)하니 묵강파황신권과 혼용(混用)하면
놀라운 효과가 있을 것이오......"
흑마신의 안색이 묘하게 변했다.
주서붕의 말이 다 끝난 듯 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노노는 아무 것도 안주시는 겁니까?"
주서붕은 일순 멍청했다가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
"으핫핫......!"
"하하...... 하하하......!"
주서붕이 웃자 마유신과 복마쾌검도 그 의미를
깨닫고 폭소를 터뜨렸다.
흑마신만 험악한 인상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흑노, 당신은 무기를 쓰지 않으니 줄 것이 없지
않소? 더구나......"
'당신은 세 사람 중에 가장 무서운 무공을
전수받았으니 두 사람도 좀 봐줘야 되지 않겠소?'
주서붕이 뒷말을 전음으로 하자 흑마신의 심통은
봄눈 녹듯 사그라졌다.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주서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몽의 임독이맥이 타통된다면 세 사람은 거의
비등한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그 실력은 지난날과
거의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당금 무림에선 별로
적수가 없게 될 것이오."
주서붕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주서붕의 안색이 갑자기
엄숙히 변하더니 목소리가 얼음과 같아졌다.
"허나, 만에 하나라도 무공에 자만을 가지고 그릇된
짓을 한다면 그때는 무공을 거둠은 물론, 목숨조차
보존치 못할 것이오!"
주서붕의 말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으니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서운 위력으로 마유신 등의 가슴을
후려갈겼다.
"명심 거행하겠습니다."
주서붕의 위세에 압도된 세 사람은 등골에 식은
땀이 돋아남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 * *
다시금 대지(大地)에 밤의 장막이 드리우고
여기저기에는 등촉이 밝혀져 억]諍弩?장막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주서붕은 여몽과 함께 자신의 방에 있었다.
그의 앞 탁자에는 한 폭의 미인도(美人圖)가 펴져
있었다.
그 미인도의 크기는 가로 반장, 세로가 약 두 자
가량, 상당히 넓은 그 미인도에는 산수(山水)를
벗삼은 한 명의 미녀가 그려져 있었다.
미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녕 천상의
선녀라 할지라도 그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말아올린 머리는 중간부분부터 풀어져 마치 검은
구름이 흐르듯 어깨를 지나고 있었고 그 몇가닥 흐른
머리카락은 붉디 붉은 입술에 머금은 한 송이
매화꽃에 걸려 하늘거리고 있었다.
동그렇고 큰 두 눈은 슬픔을 머금은 듯 아니,
어찌보면 기쁨이 일렁이는 듯 가볍게 찡그려져 있어
심좌빈아미(深坐嚬蛾眉)라고 한 이백(李白)의
명구(名句)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담담한 황의 속에 감추어진 가녀린 몸매에서는
오히려 풍만감이 퇘]皐?듯이 느껴져 왔다.
방금 입에 문 매화꽃을 놓은 듯한 동작의 옥수는
소매가 미끄러져 백설같은 팔뚝이 드러나 있어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야공심월(夜空深月)이 비스듬히 빛을
리고 있는데 그 빛을 받으며 수목이 무성한 산세가
구름에 묻힌 듯 아련히 드러나 보였다.
정녕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다.
"과연, 오도자(吳道子)의 솜씨는 비범하구나! 내
여태껏 본 오도자의 그림 중에 이것이 가장 잘 된 것
같다!"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던 주서붕은 마침내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주서붕이 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는 월하미녀도인 것이다.
월하미녀도를 들여다 보고 있던 주서붕은 여몽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그동안 이 미녀도를 지니고 있으면서 무슨
특별한 점을 느낀 것이 없었소?"
이때, 여몽의 눈빛이 매우 담담하여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 된 상태였다.
바로 얼마 전에 주서붕이 생사금침칠성신수로 그의
임독이맥을 타통시켜준 결과였다. 그의 내력은 놀랍게
급증하여 절정고수의 반열(班列)에 발돋음하고
있었다.
복마쾌검 여몽은 주서붕의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속하는 워낙 재질이 우둔하여 아무 것도 찾아내질
못했습니다."
"알겠소. 방으로 돌아가 본신의 진원이나 잘
조절토록 하시오. 어쩌면 오늘밤 한바탕 악전이
있을지도 모르오."
주서붕의 말에 복마쾌검 여몽이 흠칫했다.
"악전이라니오! 누가 쳐들어 오기라도 합니까?"
말하던 복마쾌검 여몽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주서붕이 어젯밤 들어온 후 한번도 나간 적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가서 쉬도록 하오."
주서붕이 가볍게 말하며 탁자에 펼쳐놓은
월하미녀도로 눈길을 돌리자 복마쾌검 여몽은 방해가
될세라 얼은 밖으로 나갔다.
그 또한 즉]玲?萬“?완전히 심복한 것이다.
주서붕은 정신을 모아 뚫어지게 월하미녀도를
쳐다보기 시자했다. 그러나 얼마나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전혀 그 어떤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그림 한장이 무림을 진동시키며 능히
지존마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결코 평범한
그림은 아닐 것이다."
나직이 중얼거리던 주서붕은 한가닥 생각을
떠올리고 여래불심항마신공을 운행하여
달마역근경상의 천안통(天眼通)을 전개했다.
다섯 자의 그림이 그의 눈앞에 실물과 같이
거대하게 나타났다.
"으음! 이것은 오도자의 전작(全作)이 아니로구나!"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던 주서붕이 신음을 흘렸다.
그는 그림속에서 마침내 한 가닥의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월하미녀도는 원래의 그림 위에서 다시 오묘하기
이를데 없는 솜씨로 덧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솜씨는 놀랍기 이를데 없어서 이미 그림에 있어
일가(一家)를 이루고도 남는 주서붕조차도 발견하지
못할 뻔 했다. 하나의 단서를 찾아낸 주서붕은
전심전력(全心全力)을 그림이 어떻게 변경되었으며 왜
변경되었는가에 쏟아 부었다.
"이, 이런, 이럴 수가!"
주서붕의 온 얼굴에 가득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토록 깊은 수양을 지닌 주서붕이 놀람의 빛을
드러낸다는 것은 심중의 놀람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산세(山勢) 모두가 기관진도(機關陣圖)가
아닌가......"
주서붕이 신음했다.
과연 그러했다.
천상선녀와 같은 미녀의 몸에 그려진 산세, 그 산세
뿐 아니라 초옥 한 뿌리, 돌 하나 구름 한 점에도
현기(玄機)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무섭구나! 이토록 엄청난 기관건축이 있을 수
있다니!"
주서붕은 다시 한 번 신음했다.
구중비고를 벗어난 후, 주서붕은 천하에 자신을
능가할 수 있는 기관건축가는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어떠한가?
월하미녀도에 나타난 기관진도는 족히 자신과
어깨를 겨눌만 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한듯
했다.
"과연 세상은 넓구나.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림뿐만 아니고 기관매복지학(機關埋伏之學)의
제일인이라 부를만 하다!"
감탄을 하며 그 그림을 뚫어질 듯 살피던 주서붕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그림으로 보아 이 기관진도는 일종의
지하건축이고 실로 한 걸음마다 죽음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에 있는 것이란
말일까?"
주서붕이 아무리 정신을 기울여 보아도
기관매복진도 외에는 다른 단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주서붕은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미소짓는 것 같음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난 또......"
그것은 천안통에 의해 등신대(等身大)로 확대된
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실소를 터뜨리던 주서붕의
얼굴이 돌연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보니 정녕 그 미녀가 웃고 있지 않은가?
그 웃음은 얼마나 기이한지 실로 사람의
심혼(心魂)을 뽑아놓기에 족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주서붕조차도 그만 그 미소에 정신을 잃을
뻔한 것이다.
주서붕이 놀란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미소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것이다.
"아!"
주서붕이 다급히 부르짖으며 벽에 걸린
동경(銅鏡)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거기에 주서붕의 미소띤 얼굴이 비춰졌다
"윽! 처, 천향불심천마소(天香佛心天魔笑)다!"
주서붕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월하미녀도의
미녀를 주시했다.
일찍 천향불심천마소의 입문구결을 연성한 주서붕의
미소였다. 그런데 그림속의 미녀의 웃음이 바로
주서붕미소와 거의 같지 않은가?
그러나 다시 주서붕이 월하미녀도를 보았을 때는
미녀는 웃고 있지 않았다. 다만 처음과 똑같은 기이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얼결에 천안통의 공력을 해제한 주서붕이었는데
원래 크기로 되돌아간 미녀는 웃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잘못 보았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주서붕은 한 생각에 다시
천안통을 전개했다.
"과, 과연 천향불심천마소로구나!"
주서붕이 부르짖었다.
천안통에 의해 확대된 미녀는 다시 웃고 있었는데
그 미소야말로 천하에 짝을 찾을 수 없도록
교태(嬌態)로운 것이었다.
주서붕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그 미소에 정신을
뺏길 뻔 했다.
만약 주서붕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미소에
홀려 심력(心力)이 고갈되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월하미인소 영걸심금단(月下美人笑 英傑心琴斷)!>
"결국 그 말의 뜻은 그런 것인가? 헌데 도대체 누가
이 미녀도에 천향불심천마소를 베풀었단 말인가?"
그림에 이와같은 위력을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본신의 무공은 이미 신화경에 접어 들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이 그림을 고친 사람은 필연코
천향불심천마소에 정통(精通)했을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월하미녀도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
사람은 천향불심천마소를 분명히 연성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림에 저런
마력(魔力)을...... 혹, 천향비자(天香妃子)가?"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주서붕은 갑자기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창문을 통해 한 가닥 달빛이 흘러들어
월하미녀도를 비추었다.
그러자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월하미녀도 안에 있는 달이 달빛을 받자
월하미녀도가 기이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무슨 일인가?"
그러나 그 변화는 등불 빛의 영향인지 확연하지가
않았다.
팍! 주서붕의 소매가 흔들리는 순간, 방안의 불빛이
사라지고 대신 휘황한 달빛만이 가득찼다.
아아!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월하미녀도 속에 있는 달이 달빛을 받자 마주
월광(月光)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화예(畵藝)로다!"
주서붕이 다시 한번 감탄을 터뜨리다 흠칫했다.
정녕 인간의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글미 속의 달이 빛을 뿐어내자 미녀의 배경이 되고
있던 그 산세, 절묘한 기관배치도였던 그 산세에
기이한 음영이 지며 글자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망월등천조하미인총개(望月騰天照下美人塚開),
"보름달이 떠올라 천하를 비추일 때 미인총이
열리리라...... 미인총이라고? 미인총이 어디있단
말인가?"
넋잃은 듯 중얼거리던 주서붕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미녀의 몸에 눈이 갔다.
천하무비(天下無比)의 미녀, 그런데 그녀의 몸을
흝어보던 주서붕의 눈에 흥분의 빛이 떠오르지
않는가!
"사, 산(山)자다!"
미녀의 옷, 그 옷이 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산자와
흡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산이란 말인가? 어느 산...... 그
많고 많은 산중에 미인총이 어느 산에...... 황......
황산(黃山)! 황산이로구나!"
시음하듯 중얼거리던 주서붕이 돌연 크게 외쳤다.
황산!
어떻게 황산인가?
주서붕은 미녀의 옷이 황색임을 생각한 것이다.
얼마나 간단하고도 심오한 안배란 말인가?
"황산이라면 어디라고까지 암시(暗示)가 있을
것이다."
문득, 주서붕은 조금 전에 입에 문 매화꽃을 놓은
듯한 미녀의 옥수가 마음에 걸렸던 것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별다른 점은 없었다.
"처, 천(天)자로구나!"
또다시 주서붕이 외쳤다.
월하미녀도의 손가락이 기이함을 지켜보던 주서붕은
그것이 바로 천자를 쓰고난 다음의 동작임을 알아 본
것이다.
서도(書道)의 당대 제일의 대가(大家)라 할 수 있는
주서붕이니 그 정도를 알아보는 것은 손쉬운
것이었다.
그 순간 느닷없이 미녀도 내의 달에서 발하던
월광이 사라져 버리며 모든 것은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아, 아니?"
주서붕이 당황하여 월하미녀도를 살펴보다가 그것이
달빛의 각도때문임을 짐작하고 월하미녀도를 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달빛을 받아 보았지만 두번
다시 그러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주 미세하기 이를데 없는 각도에서 달빛을
받아야 한는 모양인데 시간이 흘러 달빛의 각도가
바뀌자 모든 변화가 사라진 것 같았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을 만든 사람의 심기는
실로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로구나......"
주서붕이 포기하고 월하미녀도를 말으면서
감탄했다.
"이로써 월하미녀도의 비밀은 거의 풀린
셈이로구나. 황산에 미인총이 있고, 이 미인총은
보름달이 뜰때 열릴 수 있으며...... 그 안의
기관도면은 여기에 나타나 있고...... 하지만 어딘지
정확한 장소를 모르니 황산 전체를 다 뒤질 수도
없고......"
딱한 듯 중얼거리던 주서붕의 눈에 이채(異彩)가
번뜩였다.
"천자! 여기에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것이 만약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황산에 있는
것이리라. 황산에는 삼십 육개 봉오리가 있으며......
거기에 천자가 들어간 것은 천도(天都)와
천개(天蓋)...... 그렇구나! 미인총은 천도봉에 있는
것이다!"
주서붕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산봉의 모습이 은연중에 도(都)자와 닮은 것을
알아낸 것이다. 수백 년 이래의 월하미녀도의 모든
신비가 명쾌(明快)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월하미녀도를 얻은 사람은 많았어도 누가 그 신비에
접근이라도 했던가?
그런데 주서붕은 단숨에 그 신비를 풀어낸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도(都)자 하나만 보아도 그렇지, 누구나 산세가
닮은 산을 찾으려고 하지 그 산세가 글자 한 자임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주서붕이 막 월하미녀도를 말아 책상자 속에 집어
넣었을 때였다.
"누구냐?"
냉랭한 마유신 우문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주서붕의 무공은 이미 예전보다 진전되고 있었기에
별채 안에 세 사람이 나타난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적이 아니오. 주공자를 만나러 왔소이다."
걸걸한 음성이 약간 당황한 어조로 들렸다.
"백노,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하시오."
주서붕이 낭랑히 외쳤다
주서붕은 이미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누가 올 것인지를......
주서붕이 대청으로 나오자 거기에는 마유신 우문수
등 다섯 명이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주서붕의 짐작대로 세 명이었는데
제각기 특색있는 차림이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전신에 형편없이 다
떨어진, 기운 것마저 너덜거리는 파의(破衣)를 입은
육칠십 가량의 거지였다. 두 눈은 취한 듯
게슴츠레하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기고
있었으며 등에는 묵은 술호로를 메고 있었다.
그런데 칠이 벗겨진 그 술호로는 놀랍게 쇠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거지는 조금도 무거운 빛이
없었다.
그리고 가운데 사람은 몸 전체가 마치 장작개비와
같고 손이 유난히 길고 컸으며 눈이 매우 가늘었다.
회의의 그의 나이는 역시 육칠십 가량 되어 보였는데
감은 듯 작은 눈에서는 연신 기이한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사방의 문과 방안 인물들의 위치등을
살피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물은 바로 개방 신향분타주인 팽진무였다.
"주공자이시오?"
첫번째 있던 거지가 물어왔다.
"소생입니다. 천방주이시겠지요?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아마 장작신풍(長斫神風) 엽문주이신 것
같군요."
주서붕이 담담히 미소했다.
그들이야말로 천쉬신개 천중열과 신투로 이름난
장작신풍 엽투인 것이다.
그들은 만통노인과 함께 모두 사이에 속해 있고
무공은 만통노인보다 높았다.
그리고 장작신풍의 경공은 무림일절로 꼽히고
있어서 무림에는 바람이 불고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주공자의 안력은 예리하구료. 이 늙은이가 바로
천충열이오."
천취신개 천중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파란 애송이가 감히 노부 앞에서 늙은이라고
자처하다니."
흑마신이 냉소했다.
주서붕에게 무공을 전수받은 흑마신의 무공은
급진해서 나직한 말 한마디마저 천취신개의 고막을
진동했다.
'아차! 저 두 노괴를 잊었구나. 과연 공력이
대단하구나.'
천취신개 천중열이 내심 후회하는 순간,
"흑노, 손님에게 무례히 대하지 마시오."
주서붕이 말하자 흑마신은 아무 말도 않고 그의
뒤에 가 섰다.
"우선 좀 앉으시지요."
주서붕이 자리를 권했다.
그렇지만 희대의 대마두 두명이 주서붕의 등 뒤에
서 있는데 불편해서 앉기가 어려운 것이다.
주서붕이 그 눈치를 채고 미소하며 말했다.
"염려말고 앉으십시오."
"체면차릴 것 없다. 노부들은 관계치 않는다."
마유신이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두 사람이 엉거주춤 자리에 앉고 팽진무가 그 뒤에
시립했다.
'만통노인의 말이 사실이었나? 흑백쌍마신같은
마두가 저토록 공손하다니...... 하지만 겉보기는
권문세가(權門勢家)의 귀공자만 같은데......'
천취신개는 주서붕의 미소를 대할 때마다 기이한
감각이 전해짐으 느끼고 방금의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주공자의 나이에 공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때 장작신풍 엽투가 입을 열었다.
"주공자께서 월하미녀도를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주서붕이 당연한 말을 듣는듯 담담히 물었다.
"아니 사실이란 말이오?"
천취신개가 대경하여 물었다.
주서붕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취신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만통노인의 말로는 주공자의 재지가
경천위지(經天緯地)할 정도라더니 어찌 이다지
미련하단 말씀이오? 기보를 얻은 소문이 천하에
퍼졌는데 그냥 그 자리에 있다니, 우선 다른 곳으로
가고 봅시다."
주서붕이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천하인들이 모르리라
보십니까?"
"그건 또 무슨 뜻이오?"
주서붕의 말에 딴 뜻이 있음을 느낀 천취신개가
물었다.
"강호상의 소문은 틀림없이 내 형모(形貌)와
신향성에 있다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그렇소! 아니 그걸 어떻게......?"
"내가 여길 나가면 소문은 또 날 것입니다.
주서붕이 또 어디로 갔다."
"그 말은 누가 주공자를 감시하고 있단 말이오?"
주서붕은 담담히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두분께서 여기 오신 것이 위험을 알려주기 위한
것뿐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소."
그런데 주서붕이 불쑥 한마디 내뱉는 것이 아닌가?
"와서 보시니 제가 어떻습니까?"
천취신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원래 만통노인은 천취신개에게 천제령 등 강호의
정세를 말하고 그 난국을 타개할 인물은 주서붕뿐이니
지닌 바 모든 역량을 다해 주서붕을 도와주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천취신개는 주서붕이 어떤 인물인가 보자고
급히 이곳으로 겸사겸사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약관의 주서붕이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랴 하는 것이었다.
월하미녀도가 주서붕의 손에 있다는 소문이 천하를
진동시키는데도 주서붕이 객잔에서 나갈 생각을
않음을 듣고 천하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고
흉을 보면 이렇게 달려왔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이건 뭔가 분위기부터 다른
것이다.
갈수록 자신이 초라해지게만 느껴지고 기이하게
주눅이 드는 것을 천취신개는 느끼고 있었다.
'기이하다. 내 평생 이와같은 인물은 단 한번도 본
적은 커녕 들은 적도 없다. 약관의 나이에도 능히
일대종사(一代宗師)를 능가하는 기도가 있지 않은가?'
내심 생각을 굳힌 천취신개는 천하제일방의
방주답게 역습을 했다.
"내가 듣기론 주공자께선 무림을 구하고자 나타나
구성(求星)이라고 자처하신다고 들었소만?"
그는 최소한 주서붕이 멋적어 할 줄 알았다.
"구성인지는 모르나 내가 강호에 나온 것은 강호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주서붕이 조금도 망설임없이 자르듯 말하며
형형한 시선으로 천취신개를 바라보지 않는가?
'무...... 무서운 안광(眼光)이다!'
천취신개는 술이 다 깰듯이 놀라고 말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마주 볼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푸른빛이 번뜩이며 한 청의중년인이
나타났다.
외팔이인 듯 한쪽 소매를 허리에 묶은 청의중년인의
신법은 어찌나 놀라운지 대청의 촛불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여대협!"
천취신개가 놀라 외쳤다.
나타난 사람은 복마쾌검 여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복마쾌검 여몽은 천취신개에게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 주서붕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공자님, 밖이 심상치 않습니다."
"몇이나 온 것 같소?"
주서붕이 짐작이라도 한듯 담담히 물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백장 이내에만 아홉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효가 계속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천취신개는 아연실색하여 복마쾌검 여몽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대검객 중 하나인 여몽이
주공자의 수하가 된 듯 하니...... 더구나 그의
무공은 전과 비교할 수도 없는 듯하구나.'
천취신개의 놀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와 복마쾌검의 무공은 거의 차이가 없고
어느면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우세했는데 방금의
신법이나 백장운운(百丈云云)하는 것을 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여대협, 여대협께선 주공자와 어떤......"
천취신개가 믿어지지 않아 확인하듯 물었다.
"천방주, 결례를 용서하시오. 나는 이미 주공자의
수하에 든 몸이라 미처 예를 갖추지 못했소이다."
여몽의 말이 명백하자 천취신개는 경악한 표정으로
주서붕을 쳐다보았다.
여몽의 기색이나 어투로 보아 주서붕의 수하에 든
것이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
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 공자에게 어떤 힘이 있기에......?'
"공자님, 어떡할까요?"
복마쾌검 여몽이 물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천취신개 천중열이 다급히
말했다.
"주공자, 아직 늦지 않았으니 속히 뒷문으로
빠져나갑시다."
주서붕이 움직일 것 같지 않자 천취신개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주공자, 결코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니오. 여대협을
쫓아 하남과 산서성에 깔렸던 고수들이 모두 신향으로
몰려오고 있소. 그들의 수효는 너무도 많아
도저히......"
"그들은 천기령주의 계획에 따라 유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측하고 기다렸는데 어찌 이제와서
물러난단 말입니까?"
말을 끊었던 주서붕이 천천히 말했다.
"여기서 내가 물러난다면 천기령주의 술수에 말려든
셈이 된어 사태는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흐흐흐...... 어린 놈들이 감히 용호(龍虎)의
수염을 잡아당긴단 말인가? 하룻 강아지같은 놈들,
허락해 주십시오. 노노가 나가서 모조리 대가리를
부셔놓겠습니다."
흑마신 묵강이 살기띤 어조로 외쳤다.
"그럴 필요없소. 그들을 살상한다면 천기령주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에 말려들게 되오."
"천기령주, 아니 그렇더라도 그렇지. 그 찢어죽일
놈들이 감히 어느 분의 물건을 노린단 말입니까?"
항의하듯 외치는 흑마신에게 주서붕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 명이 있기 전에는 그 누구도 상처조차 입히면
안되오."
"하지만 공자님, 그들은 보물에 눈이 뒤집힌
놈들인데 살려둘 가치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복마쾌검 여몽이 지난날 쫓기던 때의 원한이 생각난
듯 차갑게 말했다.
주서붕의 입가에 냉소(冷笑)가 떠올랐다.
"여몽, 그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해보고 싶은가?"
주서붕의 어조는 마치 칼로 자르는 듯 찬바람이
이는 듯 했다.
복마쾌검 여몽의 안색이 변하며 전신에 진동이
일어났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복마쾌검 여몽이 그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시오."
주서붕의 소매가 펄럭이는가 싶은 순간 복마쾌검
여몽의 몸은 막강한 잠력에 의해 일으켜지고 말았다.
"무도(武道)란 몸을 호신(護身)하고 심신(心身)을
함양(涵養)하며 나아가서 제세활인(濟世活人)함에 그
참뜻이 있는 바 그 뜻을 저버리고 무공을 믿고
기분내키는대로 행동한다면 평생을 가도 그
오의(奧義)를 체득(體得)치 못할 것이오."
주서붕의 낭랑한 목소리가 한마디 한마디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각골명심(刻骨銘心), 공자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복마쾌검 여몽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천취신개와 장작신풍은 너무도
놀라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럴수가, 평소에 자부심 강한 여몽이 저토록 변할
수가!'
그들은 점점 주눅이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흑백쌍마신이나 복마쾌검, 만통노인 등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가?
더구나 방금 주서붕이 나타난 기태(氣態)는 정녕
타고난 것으로 절로 사람을 감복시키는 절대의
것이었다.
'지...... 지존(至尊)의 풍도가 이와같은 약관의
소년에게서 풍겨나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바로 그때 주서붕이 장작신풍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장작신풍은 심신이 진동됨을 느끼고 가슴이
뜨끔했다.
'설마......?'
"엽문주는 공령문의 몇대 문주시오?"
주서붕이 물어왔다.
장작신풍은 위축된 자신을 되살리려는 듯 칵칵 마른
기침을 하더니 몇가닥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노부...... 아니, 나는 공령문의 제 십이대
문주직을 맡고 있소이다. 헌데 어떠한 연유로?"
"지금 엽문주께서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무학은
공령팔수(空靈八手)라고 들었는데 거기에
투술(偸術)이 신기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오?"
장작신풍의 얼굴에 불쾌한 빛이 떠올랐다.
"별것 아닙니다. 평소 엽문주께서 기진이보를
좋아하신다기에 만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
주서붕이 담담히 말하며 품속에서 제법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냈다.
"앗! 신보낭(神寶囊)!"
장작신풍 엽투가 짧막한 비명과 함께 다급히 자신의
품속을 뒤졌다. 주서붕이 들고 있는 것은 자신의
주머니였던 것이다. 다급히 자신의 품속을 뒤지던
장작신풍은 뭔가 만져지는 것을 느끼고 얼른 그것을
꺼내 보았다.
"윽! 천투령(天偸令)?!"
쨍그렁! 장작신풍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하나의
청옥패(靑玉牌)였는데 장작신풍은 어찌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그것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로보아 그 천투령은 원래 그의 품속에 있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장작신풍은 믿을 수 없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닥에 떨어진 청옥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오?"
주서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럼 공자가? 공령문의 제자 엽투곤]?
조사의 전인을 몰라보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장작신풍 엽투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뜻하지 않은 광경에 중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마주볼 뿐이었다.
원래 장작신풍은 강호제일의 신투였다.
그는 주서붕을 보자 전신에 보기(寶氣)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호기심을 억제치 못하고는 실례를 했다.
그야말로 눈깜박할 사이에 주서붕의 품속에 있는 것이
모두 장작신풍의 품속으로 넘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보니 오히려 자신의 품속이 텅텅
비었고 난데없이 천투령만 자신의 품속에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원래 주서붕은 그 모든 것을 알고도 모른척하고
있다가 절세의 무영신나로서 장작신풍의 품속을
오히려 모조리 털어버린 것이다.
제아무리 신투라고하나 이백년 공령문의
최고기재이던 무영천투의 절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주서붕에게 어찌 감히 당할 수 있겠는가?
"내 갈선배님의 무공을 터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의 전인은 아니니 그만 일어나도록 하시오."
주서붕의 말에 장작신풍은 고개를 저었으나
의혹어린 시선으로 주서붕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나라. 무영천투로선 우리 공자의 사부될
자격이 없다."
마유신 우문수가 냉담히 재촉했다.
당연한 말이었으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광오하기 이를데 없는 소리였다.
장작신풍은 완전히 주눅든 기색으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마유신은 내심 그것을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의 나이 아직 약관이 못되었거늘 어찌 사람을
다룸이 이토록 능란하단 말인가? 저 녀석은 평생 공자
앞에서는 기를 펼 수 없을 것이다.'
주서붕이 신보낭을 장작신풍에게 돌려주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공령문의 신투지술은 의(義)에만 쓰도록 되어 있는
것, 내 오늘 천투령과 갈선배의 무공을 공령문에
되돌려 주고자 했으나 신투지술을 함부로 남용함을
보고 잠시 유보키로 했소이다. 이의가 있습니까?"
장작신풍의 얼굴이 뻘개가지고 한마디 겨우 내뱉을
따름이었다.
"면목 없습니다."
찰싹! 찰싹! 그러더니 장작신풍이 자신의 손을
지극히 아쉬운 표정으로 연거푸 때리는 것이 아닌가.
"엽형, 무슨 일이오?"
평소 가장 친한 천취신개가 의혹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장작신풍 엽투가 울상으로 천취신개를 돌아보았다.
"말도 마시오. 내 이놈때문에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내던졌으니......"
"?"
피식! 중인들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순간, 주서붕의 기세에 눌렸던 평소 그의 익살이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태평하기 이를데 없군요. 밖은 고수들로
철통같이 포위되고 있는데 한가롭게
담소(談笑)라니......"
의외라는 빛이 주서붕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직 돌아가지 않았군. 당신도 한몫 낄퇘]六?"
주서붕이 담담히 말했다.
방금 전해온 말은 전음지성(傳音之聲)이었으므로
주서붕이 입을 열자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서붕을 쳐다보았다.
"흥!"
약이 바싹 오른 듯한 냉소가 전해왔다.
주서붕이 가볍게 미소했다.
"쥐새끼같은 놈!"
그때 갑자기 마유신이 차갑게 외치며 일지를
날렸다.
"음!"
창밖에서 답답한 신음이 들리며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듯이 쿵쿵 하는 음향이 들려왔다.
"그들이 드디어 참을 수 없어진 모양이오. 내 나가
보겠소."
주서붕이 혼자 밖으로 걸어나가자 천취신개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 밖에는 지금 수를 헤일 수 없는 많은
고수들이 몰려와 있을텐데 주공자 혼자 나가시게 한단
말이오?"
복마쾌검 여몽이 냉소했다.
"쥐새끼 백 마리가 어찌 창룡(蒼龍)을 당할 수
있겠소? 우리는 주공자께서 부르시면 나가면 됩니다."
천취신개는 다시 한번 복마쾌검 여몽을 쳐다보았다.
'괴이타. 불과 하룻만에 저토록 변할 수가......?'
그러나 천취신개 자신도 복마쾌검의 말에 어느새
동조(同調)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매력(魅力)이다!'
주서붕이 문을 열고 천천히 별채의 정원으로
나섰다.
약간 이지러진 달이 정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밝혀주고 있었다. 그윽한 정취가 풍기는
광경이었다.
그 정원을 산책하듯 나온 백의에
묵운신검(墨雲神劍)을 허리에 찬 주서붕의 모습은
정녕 돋보이는 것이었다.
"정말 미쳤군요?"
예의 차가운 음성이 다시 전해왔다.
주서붕은 그 말에 대답하듯 담장너머에 있는 누각을
한번 쳐다보고 미소지어 보이고는 낭랑히 외쳤다.
"주모를 찾아오신 분들의 현신(現身)을 바라오."
그의 음성은 조금의 공력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음성은 맑게 삼]濚堧막?퍼졌다.
"흐흐흐......"
음침한 웃음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정원은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난 사람들로 가득
차다시피 했다.
그 수효는 대략 오십여 명 가량 되는데
승니도속(僧尼道俗)의 사람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주서붕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뜻밖에 많은 분이 오셨군요. 그래 무슨 일로
여러분께서 주모(周某)를 찾아오셨습니까?"
그의 태도는 태연자약하기 이를데 없어서 마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람이라도 온
듯했다.
오십여 명의 인원이 주서붕의 태도에 완전히 주눅이
드는 판이었다. 순간,
"흐흐...... 애송이 녀석이 교활하기 이를데
없구나."
음침한 목소리가 장중을 울렸다.
별로 크지 않은 소리인데도 고막을 찌르는 듯함을
보면 그자의 공력이 이미 절정에 이른 것 같았다.
동시에, 허공에서 세 명의 인영이 낙엽이 떨어지듯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