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늘 같은 하루다.
그런데 우린 특별하게 오늘은 설날이라고 명명하여 부른다.
아침에 떡국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며 서로 덕담을 한다.
무슨 말이 좋을까 하고 생각하였더니 떠오른 말이 “네 맘대로 사세요”다
그래서 늙은 아내에게 당신은 올해에도 네 맘대로 사세요 하고 덕담을 하였더니 웃는다.
오래 살아왔으니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늘 하는 얘기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는 다짐과 소망을 담아 건넸던 얘기가 왠지 싫었다.
그건 너무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의무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며칠 전 혼자 잠 못 드는 밤에 떠오른 생각이다.
나는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참 엉뚱한 의문에 정신이 번쩍 들어 뺄셈을 해보니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결과치가 나왔다.
평균수명으로 환산한들 십수 년 남은 게 내 인생이고 그 이상 늘려 잡아본들 20년을 채우기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니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고 남은 인생을 더듬어 보니 딱히 어떤 삶이어야 할지에 대해 대답을 얻을 수 없다.
아이고 내 맘대로 살란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얘기처럼 하얀 밤을 붙잡고 내린 결론이 이거라며 씁쓰레한 웃음 짓다 말고 잠들었다.
오늘 아침 아내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까 하고 궁리하는데 떠오른 얘기가 그날 밤 내가 궁리 끝에 발견한 결론처럼 당신도 당신 맘대로 살라는 뜻인 네 맘대로 사세요. 이다.
일자 인생
그게 무슨 재미가 있었냐고 사람들은 묻기도 한다.
굴곡이 없는 삶을 흔히 하는 나만의 표현방식이지만 사실은 굴곡이 없어 표현한 말은 아니다.
내가 견딜만해서 견뎌내었기에 그런 삶의 아픔을 굳이 아픔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강건함의 표현이다.
평탄한 인생도 있겠지만 누구나 한두 번은 힘든 세월을 견디며 살기에 굳이 힘들었고 괴로웠다는 표현을 하여 굴곡진 삶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존심이 있지.
그게 대수냐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살았지만 들여다보면 상처가 덕지덕지 드러나 있으나 참고 견디었으니 대단하지 않냐며 자위하는 것이다.
내 맘대로 산다는 의미는 뭘까?
우린 뒤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규제 속에서 살았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에 꼼짝달싹 못 하고 힘겨워하였으니 억울하다는 얘기다.
인간이 태어나서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인명을 경시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는 정도가 아니면 굳이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일처제이니 아내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정말 웃기는 발상이다.
내 맘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데 왜 안 되냐고 항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정답이라며 죽어 산 인생도 지나고 보니 허망하다는 느낌이 있다.
지금은 사랑해도 된다고 난리를 쳐도 관심이 없는 것 보면 모든 것은 한때 흔히 말하는 일장춘몽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릴 적엔 배고플 때가 많았다.
그러니 하교길 남의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도 훔쳐먹고들 했는데 하면 안 된다고 하니 배꼴 움켜잡고 참아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는 얘기다.
많은 고구마 중 하나 훔쳐 먹었다고 존재하지도 않은 신이 혼내겠어요.
주인이 와서 보고 한 번쯤 욕지거리 날리고 나면 사실 끝이고 내 귀에 들리지 않았으니 상관 없을 법도 한데 나쁜 짓이라고 하지 말랬으니 안 했지만, 그것이 위대한 짓이라고 찬양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한다.
개구쟁이는 개구쟁이로 자라나야 멋있는 것이고 그 삶의 방향을 어른들이 만든 잣대로 그러라고 하는 방식의 고루함이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와서 곧 세배를 할 것이다.
그때도 아내와 꼭 같은 말을 덕담으로 전할 것이다.
너희들하고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스스로 성장하면서 골라 가려내면 될 일이니 굳이 내가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답을 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이 이끌리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해보고 싶던 개구쟁이 시절에 하지 않아 추억이 없음에 한스럽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 흔히 존재하는 규범이 과연 현실에도 올바른가에 대한 찬반이 존재하듯이 유교 문화의 썩은 잔재가 여전히 도덕이라는 가면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는데 틀에 얽매여 살면 결국은 뒤처지게 되는 어리석음만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조금 독특하여 남의 눈에 드러나야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정답인듯하다.
굳이 내 마음속에 불꽃처럼 올라온 생각을 찬물로 꺼버리고 있는 듯 없는 듯이 사는 게 정답인지 모르지만 난 아니라고 봐.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올해 설날에 내가 하는 명세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죄를 짓고 살자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여태껏 짓지 않은 죄를 이 나이에 지을 이유가 없으므로 그런 상상은 할 필요가 없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24시간 온전히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고 싶다는 얘기다.
술이 그리우면 술을 먹을 것이요. 임이 그리우며 임을 그리워할 것이요, 잠이 그리우면 그것이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깊은 수면에 들 것이며 어딘가 가고 싶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다.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능력에 이루어질 수 있는 만큼 행하면 오늘이 지난 후 내일 되어 되돌아본 시간 속에 아쉬움이나 후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작은 한마디가 인생을 허전하게 만들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이 없다.
언제까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땜에 사람들은 늘 허둥대고 바쁘게 살지만, 기준치에서 한 뺄셈의 결과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다.
명절 문화도 바뀌었다.
어릴 적 어른들 찾아뵙고 세배드리고 세뱃돈 받아 동전 치기 하면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지만, 아이들이 사라지고 개인주의 사고가 늘어나고 도시라고 하는 폐쇄적인 공간에 살다 보니 명절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 세상이 발전하여 좋다고 하지만 가끔은 옛날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법석거리는 번잡함이 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양력으로 한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훌쩍 지나 새롭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이 어색해서 명절 즐겁게 보내라는 평이함이 말해주듯 우리네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명절이 갖는 의미 또한 무의미한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본다.
어제처럼 오늘도 길게 목을 빼고 아이들이 오려나 하고 창밖을 내다본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명절이 되면 언제쯤 아이들이 올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을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늙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려면 세월이 또 흘러야 하는데 그르면 이곳에 머물 시간이 또 줄어들게 됨을 안다.
기다림도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세월은 맘대로 흘러가고 멈추는 법은 없으니까.
유행가 노랫말이 정겹게 느껴진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지만 야속한 세월은 그냥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내 삶을 맞춰 살고 싶지 않다.
내 맘대로 세상을 살 것이다. 이것이 올해 맞이한 삶의 목표이고 희망이다.
인생은 내 것이고 시간은 내 방식대로 사용할 권리가 오르지 나에게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