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서 예비군 총기난사 후 자살
13일 오전 10시53분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5사단 211연대 예비군 훈련장에서 동원훈련 중이던 예비군최모(23·서울 송파구 거주)씨가 K2 소총을 난사해 최씨를 포함해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총기를 난사한 최씨는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총에 맞은 예비군 중 박모(24)씨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된 직후 숨졌다. 목 관통상을 입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은 윤모(24)씨도 이날 밤 끝내 숨졌다.
육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예비군들이 실탄 10발이 든 탄창을 지급받아 축소사격이 시작된 직후에 벌어졌다. 최씨는 이중 1발을 발사한 뒤 돌아서서 8발의 실탄을 난사했다. 2, 3, 5사로에서 ‘엎드려 쏴’ 자세로 엎드려 사격을 하던 예비군과 옆에서 사격을 돕던 부사수 예비군들이 총탄 에 맞았다. 이날 밤 ‘다 죽여버리고 나는 자살하고 싶다’고 쓴 최씨의 유서가 최씨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최씨는 군 복무 시절 B급 관심병사로 분류돼 부대의 중점 관리를 받았고, 그의 이웃들도 최씨가 평소 동네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증언해 이날 사건이 정신적 문제를 겪던 최씨가 저지른 계획범죄라는 분석이 나왔다.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된 사격훈련은 예비군 20명이 한 조가 돼 한 조가 사격장에서 사격을 하면 3~4m 떨어진 곳에 다음조가 대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강동·송파 지역 예비군 50여명이 훈련 중이었다.이날 예비군 훈련장에는 예비군 545명 입소해 있었다.
이들은 2박3일 간의 합숙 동원훈련을 받고 있었으며, 14일 퇴소할 예정이었다.사격 당시 현장에 있던 통제 장교 3명과 조교 역할을 맡은 사병 6명은 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교들은 최씨가 총을 쏘자 사격장 아래 언덕으로 몸을 던져 피했고, 통제탑 반대편에 몸을 피해 있던 중앙통제관은 난사가 끝나고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분 사이에 119 신고와 구급 조치까지 취해졌지만, 피해자 2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육군은 14일 오후 사건이 일어난 예비군 사격장의 모습을 공개했다. 최씨가 총을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사로 총기 거치대 부분에는 검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숨진 윤모(24)씨가 쓰러진 부사수 자리 앞에는 주인을 잃은 방탄 헬멧과 벗겨진 군화 한 쌍이 놓여 있었다. 52사단 관계자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자행한 살인의 현장이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없다”고 말했다.
▶2012년‘바이올린 명장’ 재일 한국인 진창현씨 별세
👉🏿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간 진씨는 재일 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아 방황하던 중 우연히 한 강연에서 “20세기 최첨단 기술로도 300년 전 바이올린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자극받아 바이올린 제작 외길을 걷기 시작했다. 막노동을 하며 귀동냥과 독학으로 바이올린 제작 기법을 익혔다. 19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감독 및 검사 없이 바이올린을 제작할 수 있다는 ‘마스터 메이커’ 칭호를 획득했다.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는 세계에 5명밖에 없다.
▶2012년애국지사 태윤기 변호사 별세
▶2006년'한국의 햄릿'으로 불린 배우 김동원씨 별세
▶2001년인기 댄스그룹 H.O.T. 사실상 해체
▶2001년이탈리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의 야당 승리
👉🏿 이탈리아 총선이 2001년 5월 13일 실시됐다. 집권 중도좌파 동맹인 `올리브 나무`와 중도우파 야당연합인 `자유의 집`이 맞붙은 이번 총선에서,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64)가 이끄는 야당 측이 승리를 거두고 7년 만에 권좌에 복귀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재벌이자 총 재산이 120억달러(약 15조6000억원)에 달하는 이탈리아 최대 갑부이다. 이탈리아 3대 민영방송, 인터넷미디어그룹 `뉴미디어`, 출판그룹, 영화제작·배급사 `메두사`, 전국 최대 수퍼마켓 체인, 프로축구단 `AC 밀란` 등을 보유하고 있다. 1994년 총선에 출마해 총리에 올랐으나, 연정이 붕괴되면서 7개월 만에 물러났다.
▶1997년북한 두가족 서해로 귀순
▶1994년헬륨원소보다 2.5배 무거운 `헬륨10` 세계 최초 발견
👉🏿 일본 이화학 연구소는 질량이 통상적인 헬륨원소의 2.5배로 헬륨의 동위원소로는 가장 무거운 헬륨10 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1994년 5월 13일 발표했다. 이 헬륨의 원자핵은 +전기의 양자 2개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 8개로 구성돼 있다. 보통의 원자핵과 달리 헬륨10은 중성자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것이 특징이다. 우주에 있는 항성의 수명이 다하면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중성자성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중성자성의 지각 부분에는 양자가 약간 남아 있어 헬륨10 과 같은 구성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돼 왔었다.
▶1994년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의 중심지 예리코시를 팔레스타인 경찰에 정식이양
▶1993년독일, 1955년 연방군창설이래 처음으로 유엔소말리아전후복구작전에 파병개시
▶1993년일본 사회당, 사회주의노선 포기하고 한국정부의 미-일 안보조약 인정하는 획기적 내용의 당강령개정초안 마련
▶1993년간첩활동으로 수감 중인 황인욱씨, 다른 조직원을 통해 비밀문건을 밀반출하려다 적발
▶1990년`5.9사태` 배후혐의로 김근태씨 검거
▶1988년행정개혁위원회 발족
▶1988년가락동농수산물시장 개장
▶1987년이재형 국회의장 피선
▶1985년12대 국회 개원
▶1983년정부 수도권정비 기본계획 시안 공개
▶1981년교황 바오로2세 총격받고 부상
▶1979년이란 혁명 최고재판소 전 팔레비 국왕에 사형선고
▶1975년긴급조치 9호 선포
👉🏿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긴급조치9호’ 일명 긴급조치 9호를 1975년 5월 13일 선포했다. 이는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겪을 시련을 의미했다. 4월 17일 크메르가 공산 게릴라에 항복하고, 4월 30일 월남이 공산화되자 박 정권은 고조된 안보 위기의식에 편승, 총력안보와 국민총화를 굳힌다는 미명 아래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같은 해 12월 8일 0시를 기해 해제됨으로써 끝이 났다. 이 조치로 1천20명이 연루됐고 이 가운데 5백30명이 구속된 가운데 5년 7개월에 걸쳐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72년일본 오사카서 백화점 화재 118명 사망
▶1971년통혁당 재건기도 간첩단 11명 검거
▶1970년정경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
▶1965년동부 파키스탄에 태풍 12,000여명 사망, 이재민 10만
▶1964년시경 경향신문 편집국장등 7명 구속
▶1961년민자통 주최 남북학생회담환영 및 통일촉진 궐기대회
▶1958년알제리 시민들 완전독립을 요구하며 프랑스 정청 습격
▶1954년미국 수폭실험 완료 발표
▶1940년근대 헬리곱터 원조인 시콜스키 VS300 첫 비행 성공
👉🏿 1940년 근대 헬리콥터의 원조인 ‘시콜스키 VS-300’의 첫 비행이 성공했다. 미국 시콜스키사의 헬리콥터는 꼬리로터가 모두 3개로 구성됐는데 회전면 2개는 수평으로, 하나는 수직으로 세워져 각각 자세조정과 방향조정에 사용됐다. 이후에는 수평 꼬리 대신 주 로터의 회전면을 기울여 자세를 조정하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꼬리 로터의 수가 1개로 줄어들게 됐다. 시콜스키사는 VS-300을 개량한 ‘XR-4’라는 군용 헬리콥터를 개발,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육군과 해군에 수백대를 납품해 헬리콥터 상품화의 문을 열었다.
▶1930년일본 소설가 다야마 가타이 사망
▶1930년 ‘북극 탐험가’이자 ‘난민 인권 외교관’ 난센 사망
▶1926년 조선박람회 열림
▶1918년 세계최초의 항공우편 우표, 미국에서 발매
▶1914년 미국의 복싱 선수 조 루이스 출생
▶1913년 도산 안창호 주도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창립
👉🏿 도산 안창호의 주도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된 흥사단(興士團)은 정치운동을 초월하고 민족부흥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3·1운동 후에는 상하이에 원동위원부를 조직,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고, 서울과 평양에는 수양동맹회(1922년)와 동우구락부(1923년)를 결성, 국내에서 합법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37년에 불어닥친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안창호를 비롯한 200여명의 회원이 검거·투옥돼 강제해산되는 비운을 겪었다. 광복 후에는 본부를 국내로 이전했고 1969년에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07년 스웨덴 보통선거 실시
▶1906년 소설가 현민 유진오 출생
▶1905년 인도의 대통령(1974-1977) 아메드 출생
▶1902년 원산에 협무회사 설립
▶ 1882년 입체파 발전에 공헌한 프랑스의 화가 브라크 출생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 ~ 1963)는 1906년에 앵데팡당 전에 입선하였다. 처음에는 야수파(포비슴)라고 하는 대담하고 거친 붓놀림으로 선명한 색조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으나, 세잔의 영향으로 인상파에 접근하였다. 1907년에는 피카소와 친구사이로 사귀면서부터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는 데 주력하게 되었으며,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로서 프랑스 화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신고전주의적 필치로 정물, 실내화를 그렸다. 그의 작품으로 《포르투갈 인》, 《탁상 정물》, 《해변 풍경》, 《기타와 클라리넷》, 《기타를 가진 소녀》 등이 있다.
▶ 1717년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출생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 등의 통치자였다. 아들을 낳지 못한 카를 6세 사후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되지만,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내주는 대신 각 국으로부터 그녀의 승인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였는데,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 1618년 선조때 정치가 백사 이항복, 유배지 북청서 사망
👉🏿<1> 이덕형과 함께 ‘오성과 한음’ 으로 널리 알려진 백사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선조를 의주까지 수행하면서 왕조의 위기를 넘긴 충신이었다. 그는 당시 관료사회에 만연했던 당쟁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회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나라의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 나갔다. 임진왜란 때는 병조판서의 소임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지만, 백사 이항복의 진면목은 환갑을 넘어 중풍으로 쓰러져 누운 몸으로 임금(광해군)에게 패륜의 잘못을 직언, 젊은 후학들에게 용기와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2> 1617년 폐모론이 제기됐을 때, 그는 병석을 털고 일어나 비장하게 임금의 패덕을 비판하고 폐비의 불가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반신불수로 쓰러져 누워있는 이항복의 상소문…, 상소 내용이 알려지면서 백관들 사이에는 다시 동요가 일었고, 폐모론에 반대하는 신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폐모론의 주동자이자 권력의 핵심들은 재빨리 3사의 언관들을 동원하여 이항복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결국 이항복은 유배형을 받았고 유배지인 북청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 978년 신라의 경순왕 사망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군주(재위: 927년 ~ 935년)이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왕자는 마의태자(麻衣太子)이고, 둘째 왕자는 김덕지(金德摯)라 한다. 제54대 경명왕에 이어 제55대 경애왕도 친고려 정책을 고수하자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기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그의 친척인 김부(金傳)를 왕위를 계승시키니 그가 경순왕이다. 935년 11월 재위 8년 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왕건의 딸인 안정숙의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았다.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