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9일 월요일 - 오전 흐리다가 간간히 빗방울, 오후 갬
인터넷 섬여행 카페 <섬으로(국경을 넘지 않는 해외여행)>을 통해 종종 섬 여행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있는데, 얼마 전 <한국의 섬>이라는 책을 쓰신 이재언(이섬) 작가님께서 전라남도 신안에 있는 여러 섬들을 답사할 계획이고, 이번 답사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천사(1004)의 섬으로 알려진 신안에는 보석과도 같이 아름다운 섬들이 많이 있기에 나도 이전부터 이곳을 꼭 여행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작가님께서 신안의 섬 답사를 계획하고 계셔서 로또에 당첨된 기분으로 나도 참여하겠다고 바로 신청을 했다. 신안 섬 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인터넷 자료들을 통해 신안의 여러 섬들에 대한 정보와 이재언 작가님이 쓰신 여러 글들을 찾아 읽었다. 이재언 작가님은 지난 20여년 간 전국의 유인도와 무인도 556곳을 두 차례 이상 답사하며, '한국의 섬' 여수편(2010년)과 완도편(2011년 7월) 두 권을 쓰신 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11권의 책을 더 출간할 예정인데, 이런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레임에 오늘을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신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밝았다.
4월 28일 일요일 밤 11시 10분, 용산역을 출발하는 새마을호 1103호 열차를 타고 약 4시간 52분을 달려 새벽 4시 2분에 목포역에 도착했다. 이후 역내의 대합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잡지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역 앞에 있는 보해상가 앞에서 아침 6시 5분에 압해도 송공항으로 가는 130번 첫 버스(목포역-송공항 2,800원)를 타고 약 45분을 달려 6시 50분에 송공항 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인터넷 자료를 통해 이곳 송공항이 있는 압해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압해도(押海島)는 목포에서 서북쪽으로 1.8㎞ 지점에 있으며 서쪽에 암태도가 있다. 동경 126°18′, 북위 34°52′에 위치하며, 면적은 근래에 간척공사로 염전과 논이 조성되면서 2001년 48.95㎢에서 67.4㎢로 늘어났다. 그리고 해안선 길이는 217km이며, 인구는 2009년 12월 현재 7600명이다. 그리고 2008년 6월 23일에 목포 북항과 압해도를 연결하는 1.42km의 압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북쪽에 인매산(忍梅山, 125m)과 서쪽 끝에 송공산(宋孔山, 231m)을 중심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남쪽에는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해안은 본래 만과 곶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이었으나, 간척지 개발로 지금은 해안선이 단조로워지고 소규모 섬들은 연륙되었다. 암석은 주로 산성화산암류와 편마암이다. 1월 평균기온 0.8℃, 8월 평균기온 26℃, 연강수량 984㎜, 연강설량 8.8㎜이다.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식생은 북가시나무·녹나무·후박나무·동백나무·사철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경지 면적은 논 1,058㏊, 밭 1,529㏊, 임야 1,462㏊이며, 경지율은 52.6%이다. 주민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 외에 마늘·고추·참깨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조기·민어·숭어·낙지 등이 어획되고, 남서 연안에서는 굴·김 양식과 제염업이 활발하다. 그리고 신라시대에 압해도는 군마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세가 낙지 발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압해라 불렀다 한다. 가룡리에 금산사가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알려졌다. 또한, 당나라의 대승상인 정덕성(丁德盛)이 압해로 귀양살이를 와서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 송공리에 있는 송공산성(宋孔山城)은 삼한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으며, 이 밖에도 동서리에 선돌, 광립리에 고인돌 등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아침 6시 50분, 송공항 객선터미널에 도착해 배표(송공항-오도선착장 3,300원)를 구입한 후, 신안농협페리에 승선해 아침 7시에 송공항을 출발해 오전 7시 28분 암태도 오도선착장에 도착했다. 이후 130번 버스와 신안농협페리를 같이 타게 온 분이 감사하게도 차를 태워 주셔서, 차를 얻어 타고 약 20여 분을 달려 오전 7시 50분에 자은면사무소가 있는 신안군 자은면 구영리에 도착했다. 이곳 구영리는 자은도의 면소재지이며, 농협과 마트 그리고 민박집도 있어 자은도 여행은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인터넷 자료를 통해 자은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은도(慈恩島)는 면적 52.18㎢, 해안선 길이 56.8㎞, 2003년 기준으로 인구 2,818명, 가구수는 1,236이다. 자은도는 목포시에서 서북쪽으로 41.3㎞ 해상에 위치하며 동쪽에 임자도(荏子島)·증도(曾島), 동남쪽에 암태도(岩泰島), 서남쪽에 비금도(飛禽島)가 있고 서쪽은 황해바다로 통한다. 임진왜란 당시 지원나왔던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군사 두사춘(斗四春)이 반역자로 몰려 피신하다가 이 섬에 와보니 지형지세가 모난 데 없이 평탄하고 사람들이 온후하여 생명을 보전하게 되자 감사의 뜻으로 자은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한시대 마한(馬韓)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군(勿阿郡)에 속하였다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는 나주목(羅州牧)에 속하였다. 그뒤 잠시 영광군(靈光郡)에 속하였으나 다시 나주목에 재편입되어 풍헌(風憲)을 두고 행정을 장리(掌理)하였으며, 목장을 설치하여 서곶에 말 130마리, 남곶에 말 188마리를 길렀다.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에 속하여 오다가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신설되어 분리되면서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최고점인 두봉산(斗峰山:363.8m)을 중심으로 드넓게 논밭이 펼쳐져 있고, 남서부 해안에는 12㎞에 이르는 사빈(砂濱)이 발달하여 백길해수욕장·분계해수욕장 등의 피서지로 개발되었다. 마늘·땅콩·방울토마토가 특산물이며 근해에서는 새우·병어·강달어가 많이 잡히고 김 양식이 활발하다. 유적으로는 백산리 외 4개 지역에 13기의 고인돌[支石墓]이 있으며, 두봉산·천혜방(天惠房)·용소(龍沼)·응암산(應岩山)에 얽힌 전설과 논멘소리·상여소리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인접한 암태도와 은암대교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후 구영리의 <새중앙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식당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행 첫날부터 이 무슨 낭패인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빨리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후 근처의 자은면사무소에 들러 자은도와 신안군 관광지도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번 신안군 섬 답사에 동참하는 이효웅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자은면사무소 앞에서 만나 자은도 답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답사를 진행하시는 이재언(이섬) 작가님은 목포에서 배를 몰고 자은도로 올라오시는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오후에 자은도 동편에 위치한 욕지선착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전 10시 10분 즈음, 이효웅 작가님이 갤로퍼 승용차를 몰고 면사무소에 도착해 이 작가님의 차를 얻어 타고 자은도 답사를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얻은 지도를 참고로 해서, 자은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옥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 가려면 한운선착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 고교선착장으로 와 버리고 말았다. 이후 고교선착장의 좌측 해안가를 따라 옥도로 가려다가 밀물로 인해 해안가가 막혀버려 결국 발걸음을 돌려 다시 고교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옥도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차를 몰고 약 10여 분을 달려 11시 즈음에 다음 예정지인 둔장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둔장해수욕장>은 물이 빠지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갯벌체험장으로 유명하다. 약 100㏊에 이르는 갯벌에는 백합과 맛조개가 지천이다. 또한 돌로 담을 쌓아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둔장마을의 석방렴은 국내 최대규모이다. 단단한 모래 갯벌로 이루어진 둔장해수욕장은 전통 어로방식인 후릿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체험행사를 할 수 있는데, 50m 길이의 그물을 양쪽에서 잡고 당기면 다이아몬드 제도의 해저를 누비던 팔뚝만한 숭어와 노란알이 선명한 대하, 새끼손가락만한 복어 등이 줄줄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후에는 차로 15분을 달려 11시 40분 즈음에 자은도 서쪽 끝단에 위치한 <분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칠발도 앞에 위치한 분계해수욕장은 노송 군락이 아름다운 곳이다. 모래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노송은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면서 뿌리가 드러나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 중 여인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노송 한 그루는 늘씬한 미녀가 물구나무를 선 형태로 뭇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후 12시 20분 즈음에 이효웅 작가님이 준비해 주신 음식으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재언 작가님으로부터 자은도 욕지선착장에 배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효웅 작가님과 함께 차로 약 20여 분을 달려 12시 40분 즈음에 욕지선착장에 도착했다. 이후 선착장에서 이재언 작가님과 첫 인사를 나눈 후, 이 분이 몰고 오신 선박 등대호에서 라면을 끓여 셋이서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이재언 작가님이 섬 답사를 위해 운항하고 계시는 4.7톤짜리 작은 배 등대호는 작가님이 2004년에 구입하셔서 현재 9년째 사용하고 계시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어선 위에서 식사를 해 보기는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오후 1시 20분,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셋이서 이효웅 작가님의 차를 타고, 약 10여 분을 달려 자은동부교회(061-271-8827)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지영태 목사님과 이재언 작가님은 서로 잘 아는 사이라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려 이곳을 방문하신 것이다. 약 30분 정도 교회에서 머문 후, 오후 2시 즈음에 교회를 출발해, 오후 3시 즈음에 안좌도 남쪽에 위치한 <천사의 다리>에 도착했다.
이곳 <천사의 다리>를 잠깐 소개하면, 이곳은 신안군에서 낙후된 섬 지역 발전과 갯벌체험형 관광지 조성을 위해 지난 2006년 12월에 착공하여 총 55억 1천만원을 들여 2010년 2월에 준공식을 했다고 한다. 이 다리로 인해 박지도와 반월도 주민들이 오랜 숙원이었던 식수와 교통난을 해결되었고, 압해대교 및 송공항을 통하여 신안군 중부권의 접근성이 용이하게 되어 많은 관광객이 박지도와 반월도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했던가. 과연 안좌도와 박지도, 그리고 박지도와 반원도를 연결하는 천사의 다리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섬과 바다의 풍광과 어우러져 그 멋과 아름다움이 한층 더하였다. 그리고 천사의 다리 입구에 있는 언덕에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이곳을 찾은 상춘객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오도선착장에서 구영리까지 차를 태워주신 그 분을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같이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분은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하는데, 이곳에 일이 있어서 잠시 들르게 되었는데 잠시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이후에는 <천사의 다리> 첫 번째 구간인 두리-박지 구간 547m를 건너 박지도로 들어왔다. 이곳 박지도(朴只島)를 소개하면, 이곳은 면적 1.75㎢, 해안선길이 4.6㎞ 섬으로 목포항에서 남서쪽으로 40㎞ 정도 떨어져 있다. 약 250년 전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 박지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섬의 지형이 박 모양이라 하여 바기섬 또는 배기섬이라고도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 기좌면에 속하였다가 1917년에는 안좌면에, 1969년에는 신안군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최고점은 130m이며,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고,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으며, 썰물 때는 기좌도·안좌도·반월도 등의 섬과 연결된다. 남쪽 해안 일부는 방조제를 축조해 경작지로 이용한다. 1월 평균기온 0.8℃ 내외, 8월 평균기온 27.5℃ 내외, 연강수량 1,133.8㎜ 정도이다.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 반포마을과 북쪽 해안의 문서구지에 주로 분포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농산물로는 보리·쌀·고구마·콩·마늘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멸치·참조기·가자미·갈치·낙지·해삼 등이 잡히고, 김 양식도 활발하다.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굴양식장을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목포항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1∼2회 운항된다. 초등학교 분교 1개교가 있었으나 1991년 폐교되었다. 신세타령 민요가 전해오고 마을 뒷산 정상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 때 당제를 지낸다.
박지도를 약 20분 정도 둘러본 후에는,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박지-반월 구간 915m를 건너는데, 이효웅 작가님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 돌아가자고 해서 결국 중간 지점에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박지도로 돌아왔다. 반월도에 들어가지 못한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월도에 꼭 다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 자료를 통해 반월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월도(半月島)는 면적 2.05㎢, 해안선길이 6.7km이다. 목포항에서 서쪽으로 32㎞, 안좌도에서 남쪽으로 10㎞ 지점에 있다. 섬의 지형이 반달 모양과 같다고 하여 반월도라고 했으며, 300여 년 전 이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최고점은 견산(202m)이며, 경사가 완만하다. 해안은 사질해안이 대부분이고, 동쪽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1월 평균기온 1℃ 내외, 8월 평균기온 26.3℃ 내외, 연강수량 1,135㎜ 정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한다. 주요농산물은 보리이고, 쌀·콩·마늘·참깨·고추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잡어가 잡히며, 자연산 돌김이 난다. 취락은 남쪽 해안가 반월마을과 북쪽 해안가 토촌마을에 분포한다.
초등학교 분교 1개교가 있으며, 경찰지서, 보건진료소 각 1개소와 수산업협동조합 어촌계가 있다. 상여소리가 구전되며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풍어와 무사를 위해 당제를 지낸다. 목포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이후 천사의 다리 두리-박지 구간을 건너, 입구 주차장으로 돌아와 오후 3시 55분에 주차장을 출발해 약 25분을 달려 박지도 남동쪽에 위치한 부소도에 도착했다. 부소도와 안좌도 사이에도 연도교가 있어 차로 부소도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터넷 자료를 통해 이곳을 소개하면, 부소도(扶所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존포리에 딸린 섬으로 면적 0.67㎢, 인구는 43명(1999년), 해안선 길이는 4km, 최고점은 38m이다. 안좌도와 장산도 사이에 위치하며, 북서쪽에 박지도, 남동쪽에 자라도가 자리하고 있다. 인근 섬들을 둘러싸서 보호하는 형상이라 부소도라고 하였다. 형태는 타원형을 이루었으나, 간석지에 염전(鹽田)을 조성하면서 북쪽은 존포리와 이어졌다. 평지가 넓어서 보리의 산출이 많다. 부근 해역에서 숭어, 농어 등을 어획하고 해안에서 돌김, 굴 등을 채취하나 수산업은 영세하다. 조화를 부리는 도깨비에 대한 전설과 둥당이타령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약 40분 정도 부소도의 해안가와 학교, 마을 등을 둘러 본 후, 오후 5시에 부소도를 출발해 약 30분을 달려 반월도의 서쪽에 위치한 우목도에 도착했다. 우목도(牛目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에 속했던 섬으로 본래는 안좌도의 부속섬이었으며 내우목도·장고도·외우목도 등 3개의 섬이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으나, 방조제로 모두 연결되면서 하나의 섬을 이루었고 북동쪽에 있는 안좌도와도 방조제로 연도(連島)되었다가 간척사업으로 인해 안좌도와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섬의 모양이 소의 눈과 같아서 우목도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에는 우목도를 출발해 약 20여 분을 달려 저녁 5시 50분에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955에 위치한 추상화가로 유명한 <김환기(金煥基) 화가의 생가(生家)>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1910년에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했으며, 규모는 목조기와 1동 (66.12㎡)이며 북방식 "ㄱ"자 형태의 기와집이다. 그리고 김환기 선생을 소개하면, 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1936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3~4년 동안 이곳 고향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때 신사실파(薪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에는 약 20여 분을 달려, 저녁 6시 20분 즈음에 암태도의 서쪽에 위치한 추포도에 도착했다. 이곳 추포도(秋浦島)를 소개하면, 이 섬은 면적 4.05㎢, 해안선길이 15.1㎞, 인구 140명(1999)이다. 목포시에서 서쪽으로 27.3km, 암태도(岩泰島)에서 남서쪽으로 0.9km 거리에 있으며 부근에 팔금도(八禽島)·자은도(慈恩島)·상사치도(上沙雉島) 등이 있다. 원래 북쪽의 포도(浦島)와 남쪽의 추엽도(秋葉島), 동쪽의 오도(梧島)로 분리된 섬이었으나, 1965년 방조제를 쌓아 간척답(干拓畓)과 염전을 개발하여 하나의 섬으로 만든 후 추포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고점 116m로 산지가 많은 지형이나 농사가 활발하여 쌀·보리 등의 주곡을 자급함은 물론 식량의 일부를 다른 지방에 반출하기도 한다. 부근 수역은 서남해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어업은 매우 부진하며 주변의 얕은 바다와 간석지를 이용한 김 양식과 낙지잡이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심이 낮고 송림이 울창하여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붐비는 추포해수욕장이 있으며, 추포도와 암태도 사이 갯벌 위에 자연석 돌 6,000여 개로 다리를 놓아 두 섬을 연결하였다. 목포시에서 1일 3회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이곳은 650년 전 안동장씨(安東張氏)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지며, 관광지로는 추포해수욕장이 있다.
약 20분 정도 추포해수욕장에서 낙조를 감상한 후에는, 다시 10여 분을 달려 6시 50분 즈음에 추포도 남쪽 끝단에 위치한 추포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풍광도 정말 장관이었다. 이후에는 다시 차를 몰고 약 20여 분을 달려, 이재언 작가님의 등대호가 정박되어 있는 자은도 욕지선착장에 도착했다. 이후 이재언 작가님이 동네 이장에게 욕지마을회관에 묶을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는데, 얼마 전 동네 분쟁으로 인해 마을회관 사용을 금하고 있다고 해서 결국 발걸음을 돌려 문평리 경로당으로 이동했다. 이후 마을 이장님께 부탁을 드리니 이곳에 묶을 수 있도록 기꺼이 승낙을 해 주셨다. 이후 경로당에서 밤 9시 즈음에 늦은 저녁식사를 한 후, 밤 10시 즈음에 세면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지출 - 버스요금(목포역-송공항) 2,800원, 여객선(송공항-오도선착장) 3,300원, 아침식사 7,000원
첫댓글 승용차로 신안섬들을(8곳 )두루두루
즐감하고 온 시간들..아련한 추억들이 솔솔~
안녕하세요. 산여울님. 여울님도 신안의 섬들을 여행하고 오셨나요? 어떠셨나요?
섬들마다의 나름 좋았어유..
저는 지금 일본의 사이타마 지역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지낼 때 섬으로 카페 회원들과 한국의 아름다운 섬들을 같이 여행하던 일들이 너무나 그립네요.
@미스터마돈 (이정선) 그러셨군요..
전 포항에 살고 있어서
섬카페 회원님들과 동행하기가
거리상 넘 멀어 많이 공유하지를 못하고
승용차로 다니거나 산악회서
다니는 편이어요..
저두 섬 매니아다 보니
느을 기회를 만들고 지낸답니다..
건안히 지내시다 뵈으요..
포항 오실 기회가 되시면
들리세요..맛난거 대접할게유..
010.9113.9487
@산여울(서인혜) 감사합니다. 산여울님도 일본 동경지역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주십시오. 저희가 맛있는 일본식당에서 식사 대접할께요. 저의 연락처는 일본 휴대폰 080-9717-9366입니다. 저는 현재 동경 옆 도시인 니이자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미스터마돈 (이정선) 이번 주일엔 군산에 있는 선유도를 갈 계획이구여..
다음 주말엔 1박 2일로 홍도 흑산도를 계획중에 있는데
날씨를 걱정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