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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마침 (롬 10:1-4절, 로마서 26회 설교 앞부분)
오늘 로마서 본문은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주에 살펴본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이고, 또 하는 오늘 본문 4절이 말하는 “율법의 마침”이라는 개념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를 바르게 파악하면 또 하나를 바르게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또 다른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율법의 마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말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정상적인 자식은 자기를 낳아 준 에미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면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왜곡하고 율법의 마침을 왜곡하는 설교자들은 자기를 낳은 에미의 몸을 찢으면서 성장하는 괴상한 생명체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고, 구원과 연관된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오늘 설교를 들어보면서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므로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은 수준의 의로움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불의하고 더럽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모든 사람들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의 존재가 보존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드온, 삼손의 부모,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공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처음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처음 아담과 하나님은 아무런 막힘이나 간격이 없이 교제하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를 닮은 의로운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완전히 의로운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지 않고, 장로교회의 주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담을 스스로 노력하여 완전해져서 자기의 공로를 하나님 백성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창조하셨다면, 처음 아담과 하나님은 같은 공간에서 최고로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아직 아담에게 하나님과 대면하고 교제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 즉 의로움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를 보면, 처음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낌이나, 간격이나, 거리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하나님이 아담에게 처음부터 모든 피조 세계를 자기의 뜻 안에서 알아서 통치하라고 맡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아담을 자기를 닯은 의로운 백성으로 창조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사단의 유혹을 받고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선악과를 범함으로 확실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저주하시고 영원한 죽음의 심판에 처하셨습니다. 그때 아담은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모든 의를 잃었습니다. 의를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 그래서 범죄 직후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찾아오셨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의를 잃었으므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즐거이 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불러모아 언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담이 녹아버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롬 3:23절의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신 것처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더 이상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한 사람을 선지자로 부르시어 먼저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그가 나머지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구약의 선지자 제도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범죄로 잃어버린 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상의 그 무엇으로도 죄인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만드는 그 의를 다시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머리인 아담의 반역죄가 모든 아담의 후손들과 아담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이 범죄하여 죽어버렸고 더러워진 자기 백성의 의로 삼아주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자기의 절대적인 의로움을 그대로 가지시면서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되시어 죄로 죽은 자기 백성들 속으로 오신 성육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 죄로 죽은 자기 백성들을 살릴 의가 되어주시기 위해 성육신하는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사야가 만났던 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했고(요 12:4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설명했습니다. 성육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난 사람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본 것과 똑 같은 효과를 만들였습니다. 그렇게 되게하려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죽었을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으로 간주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을 때, 우리도 그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죗값을 갚고 죽은 것으로 간주되니, 더 갚을 죗값이 없습니다. 더 값을 죗값이 없으면 법적으로 자유인이고 의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받아 믿는 사람은 죄와 사망과 사단과 지옥으로 해방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하늘의 본래 계시던 곳으로 가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자기 백성들의 죗값을 갚으시기 위해 고난 당하고 죽으신 자기 몸의 흔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자기를 대신하는 분으로, 자기의 이름으로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요 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성령은 성부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분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법과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 그리스도를 직접 모셨다는 사람들은 전부 사단에게 농락되어지는 이단들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대신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람의 부활의 몸을 입으신 채로 하늘로 가진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의 때까지 하늘에 계십니다.
사람이 성령을 받음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니님의 절대적인 의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완전한 의인으로 선포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석가모니의 생애와 죽음에서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의가 나오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는 “네가 네 죄를 스스로 닦아 의인이 되어 너를 구원하라”라고 속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의를 얻게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죽으신 이유는 자기 속의 하나님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착한 행실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선한 삶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으로 우리의 죗값을 갚아주셨고, 성육신으로 가지고 오신 자기 속의 하나님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성경처럼 여기는 장로교회 교수들과 목사들은 이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문서는 처음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의를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반역하다가 그만 의를 잃어버리고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아담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완전한 의를 얻어야만 완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아담을 그렇게 비틀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도 비틀어집니다.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대신 지키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복음이 비틀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든 하나님의 의도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율법의 의라고 비틀어집니다. 사람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 속의 의로우신 속성이 하나님의 의인데, 바로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어 구원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율법을 지키신 공덕이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으로 복음이 달라집니다.
달라진 복음으로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은 99%가 좋아도, 바로 그 부분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는 심각한 하자 있는 신앙고백, 즉 잘못 만들어진 문서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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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치료도 못 받는 현실
긴급...6월27일 병원예약일 약을 사야합니다
2월6월10월은...인슐린을 사는 달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치료약 4개월치 인슐린과 여러가지 합병증 약을 사야 하는데
치료비가 없어요 돈이 필요한데 도움을 구합니다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사야됩니다
본 카페의 후원을 부탁 드리는 글입니다
카페 지기는 살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하루 인슐린 주사를 5번 맞는데 2가지를 맞아야 하고요 혈 당 체크
대문에 수시로 몸에 바늘을 10번 넘게 찔러야 하고요 먹는 약이 합병증
때문에 여러가지라서 약 먹고 주사 맞는데...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인생입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먹을 것도 사야 되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마련해야 됩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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