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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우리의 옛 그림 한국의 전통 미술, 옛 그림 감상
누구나 한 번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우리의 옛 그림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흐나 피카소, 세잔 등의 서양 작품보다 우리 선조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옛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명작이나 유명 화가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우리의 옛 작품 중 유명한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는 어쩌면 서양의 작품을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옛 그림 역시 오랜 역사와 뛰어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우리 조상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풍속화를 통해서 선조의 옛 생활과 그들의 생각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할까? ‘무엇을 그린 걸까?’,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누가 그렸을까?’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아마 감상이 조금은 쉬워질 것이다. 옛 그림을 읽다.우리의 옛 그림은 ‘감상한다’라는 말보다 ‘읽는다’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왜 그럴까? 서양화와는 다르게 동양화는 소재와 문자의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서화동체(書畵同體)’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는 ‘글과 그림은 같은 몸이다’라는 뜻으로, 그림이 곧 글씨이고 글씨가 곧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그림 1.<일로연과도> 위 그림 <일로연과도>는 한 마리의 백로와 연의 열매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실제 뜻하는 바 또한 재미있다. 한 마리의 백로란 ‘의미의 일로(一鷺)는 한걸음’이란 뜻의 일로(一路)와 같은 음을 가진다. 또, 연꽃의 열매인 연과(蓮菓)는 ‘잇달아 과거에 합격한다’는 뜻의 연과(蓮科)와 같은 음을 가진다. 따라서 <일로연과도>는 ‘한걸음에 잇달아 과거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을 내포하게 된다. 이처럼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데서 선조의 기발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이런 풍습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끈적끈적 잘 들러붙는 성질을 지닌 엿이나 찹쌀떡을 선물하며 합격을 기원하거나, 잘 찍고 잘 풀라는 의미로 포크와 두루마리 휴지를 선물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음이자(同音異字) 풀이 형의 그림인 장닭이 우는 그림, 공명도는 많은 공을 세워 이름을 널리 떨치라는 의미를 지니고, 목숨 수(壽)자를 형상화하여 그린 향나무 그림인 백수도는 백세가 되도록 오래오래 살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사물이 가진 우화적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는 그림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석류 그림은 석류 알처럼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다산을 상징하고 모란꽃은 부귀화라고도 해, 부자가 되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옛 그림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옛 그림을 ‘보는’ 동시에 속뜻을 ‘읽어’내야 한다. 무엇을 그린 걸까?
우리는 ‘조선 시대 그림’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 봤던 김홍도의 그림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위의 두 그림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낸 그림이다. 좌측 그림 <씨름>은 사람들이 모여 씨름을 구경하는 그림이고, 우측 그림 <무동>은 잔치가 벌어진 곳에서 삼현육각(三絃六角, 삼현과 육각의 갖가지 악기) 풍류가 펼쳐지는 그림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풍습 등을 주제로 그린 그림을 ‘풍속화’라고 하는데, 그림의 성격이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을 알면, 화가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림을 분류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사람을 그린 인물화, 꽃이나 새를 그린 화조화, 산과 강 같은 자연을 그린 산수화가 있다. 하지만 화가들의 솜씨가 늘어나면서 점차 그림에 다른 소재를 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수화에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을 ‘산수인물화’라고 부르고, 계절적 배경이 더해진 화조화는 ‘사계화조화’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그림의 분류나 구분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김홍도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그리는 풍속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풍속화 속에는 종종 손이나 발이 뒤바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2의 좌측 그림 <씨름>에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뜯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화가가 일부러 장난을 쳐 놓은 장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 3은 김홍도의 작품 속 틀린 그림 찾기다. 좌측 그림은 오른손 방향이 잘못되어 있고, 중간 그림은 오른쪽 정강이에 왼발을 붙여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측 그림 역시 발 모양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김홍도는 그림을 통해 인물의 나이며 성격, 그 인물이 처한 상황까지도 섬세하게 드러낼 정도의 실력 있는 화가였다. 그런 그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틀린 그림에 대한 해석은 김홍도의 의도라는 것과 단지 실수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어떤 게 정확한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김홍도만이 가진 재미있는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우리의 선조는 다산, 부귀, 무병장수 등의 욕망을 구체적인 상징물을 통해 표현하였다. 아들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석류•수박•포도 등 씨앗이 많은 소과류나 남아의 성기를 닮은 오이•가지 등으로표현했고, 장수에 대한 욕망은 수성노인도•십장생도 등으로 표현했으며, 집안의 평안과 부귀 등에 대한 소망은 모란꽃•화조화 등으로 상징화하였다. 이런 길상(吉祥, 아름답고 착한 징조 즉 운수가 좋을 징조) 장식미술은 궁궐에서도 활용되었는데, 흔히 우리가 왕을 상징하는 동물로 용이나 봉황 등 상상의 동물을 사용하거나, 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를 그려 옥좌 뒤에 배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김홍도는 순간포착 능력과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그리는 솜씨로 유명하다. 오주석(전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은 김홍도의 작품 중 <송하맹호도>를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호랑이의 머리부분을 확대해보면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 번이나 반복해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이렇게 가는 획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그림 <황묘농접>에는 고양이가 뒤돌아 나비를 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단순히 한가로운 정원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고양이를 ‘마오’라고 부르고 나비를 ‘띠에’라고 부른다. 이 두 단어를 합친 ‘마오띠에’는 중국어로 나이 많은 노인을 뜻한다고 한다. 더불어 그림 속에 있는 패랭이꽃은 장수를 축하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그림은 김홍도가 나이 많은 노인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 추측된다. 이처럼 옛 그림은 궁중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기록화,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 인물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 등 단순한 감상용이 아닌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화성능행도>는 8폭 병풍에 담긴 그림으로 정조대왕이 수원에 행차할 때 있었던 여러 행사 장면을 그린 것이다. 교훈을 얻거나 소망을 염원하기 위해 그린 그림도 있다. 양반이 사랑방에 걸어 둔 대나무 족자 그림은 곧게 자라는 대나무처럼 항상 올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그림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장식이나 감상을 위한 그림이 있는데, 여기에는 주로 아름답고 화려한 화조화가 많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축하나 선물을 위한 선물용 그림이 있다. 먼저 살펴본 <황묘농접>도 이에 속한다. 누가 그렸을까?조선 시대의 화가는 크게 전문적인 직업 화가와 취미로 그림을 그린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직업 화가 중에는 궁의 관청인 도화서에 소속되어 나라에 필요한 그림을 그렸던 화원이 있는데, 이들이 그린 그림은 주로 왕실에 필요한 초상화나 행사 등의 기록화였다. 안견, 김홍도, 김명국, 김득신 등 조선시대의 이름난 화가 가운데는 도화서 출신이 많다. 화원은 아니지만, 생계를 위해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판매하는 화가들도 있었다. 이런 직업 화가들은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그림 감상이 유행하면서 그림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부류는 다양하다. 학문하는 선비 중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문인화가라고 불렀는데, <고사관수도> 같은 훌륭한 작품의 화가로 알려진 강희안도 이에 속한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은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를 우선으로 여겼고, 기술직이나 예술인들을 천하게 여겼다. 그 때문에 강희안은 화가로서 재능이 특출났음에도 이름 남기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림 6. 강희안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는 ‘뜻이 높고 깨끗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란 뜻을 가진 그림으로, 강희안이 남긴 대표적인 그림이다. 그 밖에 그림을 취미로 그린 화가의 부류에는 왕족 화가, 스님 화가, 부인 화가, 기생 화가 등 다양하다. 부인 화가로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대표적이다. <초충도>로 유명한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유일한 여성 화가로 꼽힌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꽃과 풀, 벌레를 관찰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고 한다. 신사임당의 부모님은 딸의 총명함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어려서부터 글공부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특히 그녀는 남편의 배려로 혼인 뒤에도 거의 십 년을 친정에서 보내며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키워나갔다고 한다.
조선의 3대 화가로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을 꼽는다. 안견은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앞서 살펴본 김홍도는 풍속 화가로 잘 알려져 있고, 장승업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았지만 한번 본 것은 그대로 재현해 낼 정도로 천재였다고 한다.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이상적인 자연을 화가 안견을 시켜 그리게 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현재 한국에 없고, 임진왜란 무렵에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 또한 일본에서였다고 하는데, 한국 그림을 얕잡아 보던 일본의 학자들이 이 그림만큼은 ‘천하의 명품’이라고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안견의 솜씨는 그림 한 점에 천금을 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몽유도원도> 외 다른 작품은 전해지는 게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옛 그림 읽기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옛 그림에는 선조의 생활상과 함께 그들이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겼는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거나 공유하지 못하고, 그저 옛 그림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선조의 그림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과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쉽게 그림 도구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교통수단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직접 보고 그리기보다는 많은 것을 상상해 그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옛 그림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림에 대한 어떠한 학습법도 없던 시절,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갔을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그림을 감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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