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전문가칼럼
집과 병원 사이… 日 말기암·치매 환자에게는 자기 동네에 피난처가 있다
[김철중의 아웃룩] 일본 도쿄 요양시설 르포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3.05.31. 03:00업데이트 2023.05.31. 08:29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5/31/TNQAFKUCCREUNN4WIQ5E4C7J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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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달리면 30분 정도 거리인 지바(千葉)시 중앙역.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 한복판에 3층짜리 단아한 건물이 놓여 있다. 말기 암 환자를 케어하는 민간형 요양시설 이신칸(醫心管)이다. 1인실 50개 방마다 암 환자들이 자기가 원래 입던 옷과 담요를 쓰며 지낸다. 간편한 근무복 복장의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며 주사도 놓고, 처치도 한다. 여기에 근무하는 의사는 없다. 각기 환자들이 선택한 왕진 의사만 가끔 이곳을 찾는다. 방문 진료하는 의사는 모두 이 동네에서 개업한 의사들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으면 퇴근 후 잠시 들르는 식이다. 암 케어는 간호사 중심으로 이뤄진다. 말기 환자 통증 조절 전문 자격증을 딴 간호사 한두 명이 이신칸 간호를 지휘한다.
◇말기 암 환자 요양시설 이신칸
60대 남성 기무라(가명)씨는 말기 암 환자다. 종합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다 해 퇴원했다. 집에 있자니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몸 상태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간병인을 따로 둘 형편도 못 됐다. 그러다 이신칸에 입주했다. 이곳은 병원과 달리 식사가 자유로워 콜라가 마시고 싶으면 콜라를 마실 수 있다. 가족들의 방문도 수시로 가능하다. 그는 투병 과정에서 다툼이 있던 가족들과 화해하고, 한 달 반을 이신칸에서 머물다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일본에서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거처 이신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신칸은 갈 곳 없는 말기암 환자를 따뜻한 의료의 마음으로 돌보겠다는 것을 표방하며 2014년 오사카시 근방 관동 지역에서 시작됐다. 인기를 끌며 전국으로 퍼지면서 2019년 20개, 올해는 76개로 늘었다. 창업자 시바하라 게이이치(柴原慶一) 대표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의사다. 면역항암제 개발로 2018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교토대 혼조 교수 제자다. 노벨상을 안긴 논문에 저자로도 참여했다. 시바하라 대표는 “의학 연구가 갈 길이 아니라고 느낀 차에 종합병원 말기 암 환자 병동에서 아르바이트 당직을 서는데, 환자들이 의사보다는 간호사를 찾는 것에 착안해 이신칸을 차렸다”고 말했다. 암 환자 살리는 신약 연구 의사에서 암 환자 편히 세상 뜨게 하는 의사로 변신한 셈이다.
이신칸은 말기암, 파킨슨병 환자 케어 경험이 많은 간호사를 모았다. 의사는 따로 두지 않고 왕진 의사로 대체했다. 대개의 말기암 요양병원이 도심을 떠나 있는 것에 비해, 이신칸은 철저히 동네 중심이다. 지하철역이나 기차역 근처에 있다. 시바하라 대표는 “말기 환자들이 모두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다”며 “이신칸에서는 환자들이 쓰던 이불이나 물건을 가져와 쓸 수 있고, 가족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같이 먹을 수도 있기에 말기 환자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다 삶을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케어 하우스 호스피스가 늘면서, 10년 전 80%가 넘던 병원 사망이 최근에는 70%대로 줄어들고, 재택형 케어 죽음이 15%를 넘어섰다.
◇저비용 고효율 중간 시설
일본은 200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집과 병원 사이 중간 지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료 또는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모두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걸 수용할 병상도 부족한 데다, 병원은 모든 의료진이 상주하는 고비용 구조이기 때문에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집에 놔두기에는 불안하지만 병원에 입원시키기에는 과한 고령 환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에 집도 병원도 아닌 중간 시설이 필요했던 것이다.
‘소규모 다기능 주택’이라는 간이 요양시설은 동네 골목에 자리 잡아 낮시간에 고령 환자를 케어한다. 거동 장애가 있는 노인을 목욕시키며,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에는 의사가 없이 간호사만 있으면 된다. 소규모 다기능 주택이 일본 전역에 5453개(2019년 기준) 있다. 동네마다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달여 단기 입원 위주로 운영되는 ‘노인보건시설’은 아침에 의사가 회진 돌고 약 처방을 챙기는 병원처럼 운영된다. 다만 의사는 낮시간에만 근무한다.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병세가 중한 상태가 아니기에 의사가 밤새 지킬 필요가 없다. 치매 간병 가족이 환자를 잠시 이곳에 맡기고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노인보건시설은 4285개(2020년 기준) 있다. 치매 환자 9명이 한 단위로 케어 주택에서 함께 지내는 치매 그룹 홈에도 의사는 방문 진료만 오고, 간호사가 케어한다. 치매 그룹 홈은 1만개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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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내 북동쪽 주거 단지 이타바시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병원’이 있다. 병원 이름이 ‘집으로 돌아가는’이다. 전형적인 지역 포괄 케어 병원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집에 흔히 있는 계단이나 난간이 놓여 있다. 고령 환자들이 입원복을 입지 않고 일반 복장으로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옆 한편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병원이 동네 복지센터 같은 분위기다. 외래 진료를 별도로 두지 않아도 되기에 로비가 한적하다.
야마시타 요시코 매니저는 “종합병원에서 집으로 바로 퇴원시키기 무리인 환자나 집으로 방문 진료 간 의사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환자가 주로 온다”며 “감염이나 작은 부상, 장애 등으로 집에 있기 힘든 고령 환자가 한 달 정도 머물다 회복해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처럼 환자가 집에 머물도록 도와주는 재택지원형 병원이 2020년 기준으로 1540여 개 있다. 2012년 760여 개이던 것이 두 배로 늘었다.
2년 후 2025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집과 병원의 중간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고령 환자들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장애가 생기면 병원에 입원하거나 집에서 간병을 받아야 한다. 방문 진료, 방문 간호도 취약하다.
박건우(고려대병원 신경과 교수) 재택의료학회 이사장은 “이러다 갈 곳 없는 고령 환자들로 의료 난민, 간병 난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집과 병원의 중간 요양 시설을 서둘러 제도화할 때”라고 말했다.
/도쿄=김철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