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영화란 좁은 의미로는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넓은 의미로는 스님, 불교의 교리, 의식, 일화가 굳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불교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면 불교영화라 볼 수 있다.
전세계에서 제작되는 불교 소재의 영화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먼저 달라이 라마를 주인공으로 하여 서구 관객들에게 티베트의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공한 영화가 있다. 두 번째는 수행승의 구도여정을 다루는 영화를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나라의 위기를 구하려는 호국불교 영화다. 네 번째는 코미디와 무협영화를 잘 섞어 수행하는 스님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사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 속에서의 불교영화란 불교소재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불교소재 영화 속에서는 반드시 스님이 등장하고 불교의 교리, 의식, 일화가 등장한다. 불교라는 종교적 주제 속에서 불교를 바라보다 보니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님과 절,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구절절하게 나오지 않아도 불교의 진리는 존재하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그러한 시각으로 불교영화를 한정지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대영화를 보는 눈은 이제 어떤 방법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지 단순히 소재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의 대부분의 영화는 다 불교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문제는 그 논점과 해석을 과연 불교적으로 갖고 갈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따라서 불교영화의 과제는 그 생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해석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한 선사의 일대기를 그리거나 불교적 소재를 영화적으로 생산해내는 일 보다는 그러한 소재를 얼마나 불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해내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제 불교영화가 진정한 불교적 색채를 드러내려면 불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는 역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종교가 권위적인 종교의 옷을 벗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움직여야 진정한 종교이듯이 불교는 책과 교리가 아닌 중생의 마음속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진정한 불교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소재를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불교를 진리를 전하는 차원높은 불교영화의 등장을 기대한다.
불교는 우리 민족의 상징적이며, 보편적인 정서로 알려져 왔다. 불교영화의 개념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출발되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 설화, 민담의 자연스러운 표출이 영화로 나타난 것이다.
불교 영화는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갖는 영화를 말할까? 이 범주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불교적 소재 혹은 불교사상적 주제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영화의 줄거리를 공통분모로 나눌 때 크게 몇 갈래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이야기의 구성은 선에서의 ‘화두(話頭) 던지기와 화두 풀어내기’의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 주인공에게 닥치는 문제는 불교의 화두와 같은 역설적인 문제이다. 지금 주인공이 놓여진 상태와 그것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어떤 처지. 이 둘의 갈등은 역설적으로 제시된다.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은 그 어려운 역설을 풀어내는 결말을 취하게 된다.
- 중심 인물의 갈등은 자기 내부자아의 성찰을 다룬 것과 외부 객관세계와의 갈등을 다룬 것으로 분류된다. 정신과 물질, 개인과 사회,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 갈등과 그것의 조화를 지향하기도 한다.
- 내부자아의 갈등에선 인간의 애욕이 중심적 주제로 택해지고, 외부세계와의 갈등은 소외된 민중의 고통에 대한 자각과 동참의식, 희생, 헌신적 행동에 대한 의지 등이 중심화된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정신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념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 불경의 에피소드가 우화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석가모니 혹은 역대 조사(祖師)들의 일생이 하나의 비유적 일화로 재구성되어 현대적으로 이야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워쇼스키 형제, 마틴 스콜세지, 장 자크 아노 감독…. 그들이 불교소재의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거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명성을 쌓아온 그들은, 공통적으로 각자의 전성기 즈음 불교를 영화로 만나게 됐다. 영화를 찍기 전, 혹은 찍으면서 그들에게 다가온 불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 유명 감독들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던 불교관을 정리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선호하는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트릭스를 만드는데 있어 불교는 분명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선 불교(Zen Buddhism)적인 요소가 많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불교와 양자물리학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고,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매혹시켰다.” (1999년 11월 6일, 네티즌들과의 온라인 채팅 중에서.)
2.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쿤둔(Kundun, 1997)’
“나는 여전히 불교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불자들이 수행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평화에 대한 갈망이 있다. 전통적인 서구의 종교는 그것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서구인들이 불교도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불교를 통해 이런 마음의 갈증을 채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1월, 쿤둔 영화작업 후 그래함 풀러(Graham Fuller)와 가진 인터뷰에서.)
“불교는 내게 한 영화를 끝낼 때 마다 ‘어떻게 죽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줬다.” (1996년, 제 37회 테살로니키 국제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4.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1997)’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불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전 LA에서 텐진 도르제(Tendzin Dorje)와 4~5개월 생활하며 불교서적을 읽고, 그와 함께 문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3시간여의 대화 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치 마음의 치유와도 같은 매우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를 통해 내 마음을 구속하던 많은 망상들을 서서히 걷어냈지만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진정한 불제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길고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듯하다.” (1997년 9월, <샴발라 선(Shambhala Sun)>과의 인터뷰에서.)
5. 폴 와그너(Paul Wagner) '윈드호스 (Windhorse, 1998)’
“내 작품은 ‘쿤둔’이나 ‘티베트에서의 7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파괴당하고 있는 티베트의 근대 문화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티베트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정신적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1998년 CNN과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