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조차 아름답다 선척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 있는 비너스”가 된 장애인 예술가를 아십니까? 얼마 전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몸을 낮춰 한 여인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르바초프가 말을 건네는 그 여인은 아주 짧은 머리에 가슴이 깊게 파인 청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정작 양팔은 물론이고 양다리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기보다는 마치 양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상을 연상시켰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신체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사진의 모습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월드 어워드 여성 성취상”의 시상식 광경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몸을 낮춰 축하인사를 건네는 그 여인이 바로 월드 어워드 여성 성취상을 받은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1965~현재)였습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출간되어 500여만 부가 넘게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었던(오체만족)이란 책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없었던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최악의 신체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정상인 못지않게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등을 줄기며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의 유명대학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TBS방송국(뉴스의 숲) 리포터로도 활약했던 놀라운 역경돌파의 삶을 그린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앨리슨 패퍼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기형인 해표지증이라는 질병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패포지증은 임산모가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했을 경우에 이 아이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앨리슨 래퍼의 어머니는 자기 스스로를 돌볼 수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앨리슨 래퍼는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19살 때까지 보호시설에서 자라났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슬픈 운명의 장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앨리슨 래퍼는 자기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라도 하듯 어렵사리 미술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밀로의 비너스상처럼 양팔은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었고 다리도 정상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았지만 입과 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앨리슨 래퍼는 헤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을, 그것도 우등으로 졸업하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앨리슨 래퍼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예술세계를 펼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나신, 즉 벗은 몸을 모델 삼아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신체적 결함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있는 대로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이것들을 보다 적극적인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국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삶 자체도 기형일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에 대해 앨리슨 래퍼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일침을 가했습니다. 결국 이런 앨리슨 래퍼의 강철 같은 의지와 지극한 예술혼이 인정받아 2003년엔 스페인에서 “올해의 여인상”을 받았고, 영국 왕실은 그녀에게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앨리슨 래퍼는 21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9개월 만에 헤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녀는 처절한 상황에서 남편의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정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정 내 폭력 근절과 여성폭력 반대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펼쳤고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월드 어워드 여성 성취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면서 자기 삶에 대한 진하디 진한 애정을 갖고 살아온 앨리슨 래퍼는 자기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렵사리 아이를 가졌고 아들 패리스를 낳았습니다. 장애인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산을 강행했습니다. 그녀는 최악에 가까운 신체조건 속에서도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성은 위대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임신 9개월의 만삭의 몸으로 마크 퀸이란 조각가의 모델로 나서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조형작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런던시의 공모전에서 뽑혀 지난 2005년 9월부터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18개월에 걸쳐 전시 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로 보통 사람과 다른 신체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녀는 현제 영국 세섹스에 거주하면서 육아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그녀는 작은 스펀지를 입에 물고서 다섯 살 난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특수 제작된 유모차를 어깨로 밀면서 공원을 산책하기도 합니다. 팔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없는 인체 형상을 가리켜 “트로소(torso)인 셈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때로 스스로를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에 빗대 ‘현대의 비너스’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 만큼 그녀는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갖고 있는 팔다리는 없지만 앨리슨 래퍼의 삶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됩니다. 그녀는 우리 마음을 울리고 나아가 우리도 내 삶의 숨은 가능성에 보다 과감하게 도전해야겠다는 깊은 자각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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