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님께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접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고 하시네요.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다보면 이 책처럼 다른 책에 비해 크기가 작은 책들이 골칫거리라는군요. 더구나 이 책은 표지가 빨간색이어서 눈에 잘 띄었답니다. 책의 제목도 <불안>이라서 정철님의 호기심을 많이 자극했고요. 그래서 읽게 되었고,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분류하게 되었답니다. 이번 기회에 벗님들과 함께 읽고 싶어 추천하셨다네요. 정철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관심 있는 분야를 탐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도 마음에 드셨답니다.
제하사랑님께서는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크게 불안을 느껴보지 않으셨다네요. 여자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어머니는 제하사랑님보다 나이가 더 위인데도, 물론 여자이시죠(^L^), 마흔 초반부터 굉장히 불안해하셨습니다. 그 원인은 저희 아버님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잘 만나고 못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 때 제하사랑님께서 “행복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온다.” 고 말씀하셔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곧이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지난날의 제 삶을 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돈을 위해 제 꿈을 유보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우현정님께서는 불안에 대한 남녀의 온도차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은 혼자 있을 때는 불안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북두런의 산악대장님께서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답니다.) 불안에 있어 남녀의 온도차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에 저도 한 편으론 수긍이 갔습니다. 모든 남자로 일반화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저는 혼자 있으면 오히려 불안합니다. 여러 사람(주로 친구들이지만)이 모이면 군대얘기도 하고, 왕년에 ‘내가 말이야~' 하면서 뻥도 치고 하느라 불안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 다른 남성 벗님들은 어떠신지요?
오학동님께서는 책 제목에 좀 낚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존재적 불안에 대해 쓴 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삼천포로 빠지더라네요. 오히려 참고도서로 읽은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펜클럽>이 더 재미있었고, 그 책을 읽으니까 보통이 말하는 <불안>의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우리 북두런의 회장님이신 박찬호님께서 오학동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이유는 책 제목 때문인 것 같다고 하시면서, 책 제목이 원저와 달라진 원인을 친절하게 추리(?)해주셨습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어서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원저의 제목은 <Status Anxiety>라고 합니다. 그 제목 그대로 옮기면 <지위불안>이 될 테고 조금 풀어서 쓰면 <지위에 의한 불안>정도 될 것이므로, 그러면 독자층이 좁아져서 책이 팔리지 않게 되므로,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함축적인 제목으로 <불안>을 쓴 것 같다고 추리하셨습니다. 또 Status는 계급인 Rank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본 상대적인 지위를 의미하는 Position에 더 가깝다고 하니 결석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용~~
저는 <불안>을 읽으면서 (‘첫사랑’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정독했습니다) 지금 제가 왜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만 불안했던 게 아니라 제 인생전체가 불안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 원인이 우리나라의 잘못된 (일등만 강조하는) 교육제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당시 초등학생으로서는 알 필요가 없는 지식을 많이 암기하고 다녔습니다. 그것들은 대체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의 길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의 이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나라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런 것들을 열심히 외우는 행동을 반복한 까닭은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시는’ 부모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부모님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외우고 있으면, 어쩌다가 밥상머리에서 그런 것을 자랑할 기회라도 생기면,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철이 들면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촌형들을 그렇지 못한 형들보다 더 존경하는 속물근성을 보였답니다. 70년대 말에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내가 이정도 대학을 다니니 사회적으로는 이만큼 성공하겠지.’라는 기대를 가졌다가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알게 된 이후로는 참 많이 힘들어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0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올림픽 덕분에 광고대행사라는 당시로서는 ‘듣보잡’한 직종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이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던 시기였습니다. 광고대행사는 유럽의 프로축구리그처럼 철저하게 능력주의가 적용되는 곳이었습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이기면 고액연봉과 승진이 보장되었지만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연거퍼 세 번만 지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곳이었거든요. 저는 이 시기에 속된 말로 잘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더 불안해지더군요. 친구들에 비해서는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아주 슬픈 일)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막상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니까 이제는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좋은 작품을 쓰고 죽을 수 있을까?)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제가 스무살 때, 김동리 선생님을 참으로 좋아했을 때, 좀 더 용기를 가지고 부모의 이데올로기(고정관념)에 포획되지 않고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최진실이 나왔던 광고처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걸까요?” 벗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드디어 우리 회장님이신 박찬호님께 마이크가 돌아왔습니다. 박찬호님께서는 보통이 쓴 <불안>의 장점은 논지가 간명하다는 것이라고 먼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보통을 칭송할 줄 알았는데 … 곧바로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위불안이 생기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일면 동의할 수 있지만 해결책들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내용을 들어보니 나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들을 요약하면 교황이나 주교 또는 사제들은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고 살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종교(책에서는 기독교)를 통해서 불안을 해소할 수 있지 않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시기하면서 불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기에 예술행위를 통해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오히려 지위불안은 평등의 확산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왕이 왕으로만 살고, 노예가 노예로만 살던 신분사회에서는 지위불안이라는 게 없었다고 본다. 그러면서 박찬호님은 옛날 사람들은 뉴질랜드가 있다는 걸 아예 몰랐고, 알았더라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갔다 올 수가 있어 불안해지는 거라고 부연하시면서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한 평등이 사람에게 지위불안을 가져온다고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우리 북두런의 반짝반짝 빛나는 2EN1이신 한상아님께서는 앞날을 걱정하며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는 게 더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같이 휴학한 친구들이 휴학기간에 토익 점수를 올리려고 애쓰는 걸 보면서 생기는 불안감이라는군요. 한상아님의 얘기 속에서, 지금 제가 쓰는 글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위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답니다. 청년들이 단순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를 외면하고 청년들 각자가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기본소득 비슷한 개념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준다는 줄거리가 순간적으로 떠올랐지요. 제 소설의 주인공에게 적용시켜보려고 합니다. 한상아님, 고마워요~~~ 또한 한상아님의 꿈이 이루어질 기원합니다.
조금 늦게 오신 조현우님께서 이번 토론회의 어록을 남기셨습니다. 그 어록은, ‘불안을 억지로 해소하려고 하지 마라. 거꾸로 불안을 즐겨라.’ 였습니다. 그러면서 일체유심조라는 어려운 말을 쓰셨는데…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각자 개인에 달려있다. 어떤 특별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고 설법하신 성철 스님을 다시 뵙는 듯했습니다.(^L^) 그러면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에 하는 제게도 특별한 깨우침을 주셨지요. ‘불확실하니까 인생이 재미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미리 다 정해져 있고, 누구나 그걸 알고 있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인겨?’ ▶ 발제자이신 정철님도 충격(?)을 받으신 명언이었답니다. 보통이 책에서 해법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내용들을 일거에 한 단계 높이는 순간을 (저는) 맛보았답니다. 다른 벗님들은 현우거사님의 설법이 어떠셨나요? 그 설법에 뒤이어 정철님께서 퇴근길에 만난 고등학생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내용인즉 ‘사는 게 쉬우면 재미없잖아!’ 였습니다.
송용빈님께서는 보통이 쓴 <불안>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로 <불안>이 서구문명적인 관점에서 쓴 책이라는 점을 드셨습니다. 특히 보헤미아적인 삶을 불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보통이 공부도 많이 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인생을 너무 편하게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시네요. 저도 그 점에는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송용빈님께서는 토론시간에 버지아 울프가 캠브리지 대학의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여자는 (칼리지 펠로와 동행하거나 소개장을 가져오지 않으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정치적인 해결 방법을 찾았다고 소개하셨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네요. 송용빈님과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버스를 타고 오면서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요. 그 내용들을 요약하면 우리사회가 너무 겉포장(속물근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기업에서 의뢰하는 번역을 하시다보면 두 번 일을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맨 처음에 전달되는 서류의 국어문장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심하게 말하면 일류대학일 수록 더 그렇다고 하시면서) 제대로 된 영어번역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정말 엉망인데 … 인식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인 합의가 시급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쓸데없이 어려운 영어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보단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영어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사회적인 지위불안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조금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다들 몸을 사리신 건 아니지요?) 송용빈님의 얘길 들으면서 돌아오는 4월 11일에는 꼭 투표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밖에 돌아가면서 나눈 얘기들 가운데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다 기억할 수는 없어서 기억나는 내용만 간추려봅니다. 중요한 내용인데도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① 현대사회는 불안도 획일화시키는 것 같다.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뛰게 강요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젊음을 보내려고 한다.
② MTB(산악자전거)를 살 때 300만원까지는 기능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격은 기능의 차이가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일종의 허구)다. 능력주의 관점에서, 또는 속물근성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면산악자전거를 살때 바가지를 쓰는 것처럼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③ 경제적 성취에 따른 지위의 불안임에도 보통이 경제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건 경제적인 불평등이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비교대상이 없었는데 지금은 비교대상이 너무 많아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④ 불안의 밑바닥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을 얘기하는 건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해서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지만 의식주가 해결되고 난 다음이라야 지위불안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제3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서구가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로 사회가 안정되었기에 <지위불안>을 다룬 책이 많이 팔린다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⑤ 변덕스런 재능이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속담처럼 정작 재능이 필요한 순간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 것 같다.
첫댓글 제가 벗님들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을 메모했다가 임의로 정리하다보면 잘못 쓸 수도 있지요?
맞아요!
내용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수정해주실 거죠?
그럼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진짜?
넵. 진짜!
현장 스케치를 아주 상세하게 해 주셨네요. 토론회 때의 광경이 머리에 그려지듯 떠오릅니다. ^^
와, 정말 꼼꼼하게 메모하셨군요. 대단하세요. 덕분에 저번 토론의 기억도 되살리고 좋네요. ^_^ 감사합니다.
오아오아! 빨래줄이 여기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녹음 욕망을 잠재울 도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