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경장 이후 외세의 침투로 인한 우리나라는 근대적인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역사의식과 서양의 근대사상이 민족의 자각을 크게 촉진하여 신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하였다.
정부는 1886년 육영공원(育英公院)을 설치하고 외국교사들을 초빙하여 신시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소학교, 중학교,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등의 관립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애 대한 열의는 민간에서 더욱 왕성하여 많은 사립학교가 세워졌다. 미국선교회에 의하여 1885년 배재학당이 세워지고, 1886년에는 이화학당이, 1905년에는 보성하교, 양정의숙, 휘문의숙 등이 설립되어 전국에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무렵 사립학교령이 1908년 8월 공포됨으로서 영천지방에서도 1908년 영천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영흥(永興)학교가 설립되고 1912년 흥화(신녕)학교가 설립되었다.
그후 1927년에는 현 영천시 구역내에서 영천공립농업보습학교(영천중학교 전신)가 설립되고, 1938년에는 녹전간이학교(영천 북부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해방이후에는 1945년 일인학교를 인수하여 조양초등학교(중앙초등 전신), 1947년에는 예곡초등학교(영도초등학교 전신), 1948년남부초등학교, 1949년에는 동부초등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영천초등학교의 명칭은,
1908년 영흥학교 → 1909년 명륜(明倫)학교 → 1910년 봉명학교 → 1911년 영천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인물]
영천의 사료에서는,
1907년 성내동에서 출생한 '황성옛터'의 작사자인 연예계의 거장으로 뛰어난 재능과 애국심으로 항일운동을 벌인 왕 평(이응호)가 모교출신이며, 이애리수를 통해 발표된 조선의 세레나데라 영광받은 황성옛터는 개성의 고려 옛 궁터 만월대의 허물어진 흔적에서 암울했던 민족의 애환을 담게 되었으며 이애리수, 전수린 등이 부른 이 노래는 빼앗긴 나라에 대한 설움을 달래주는 민족의 노래였다.
이외에도 민요풍의 대한팔경, 조선행진곡(왕평 작사, 작곡), 황구의 일야(레코드 드라마) 등의 작품이 있다.
역시 같은 해에 창구동 등기소앞 구. 제일여관집에서 태어난 조선 최초 문예공모 여류작가('나의 어머니', 조선일보 공모)인 백신애가 모교출신이다. 그녀의 대표작은 '적빈', '꺼레이', '호도(糊塗)' 등이 있다.
[그냥 있을건가?]
* 전북 고부초등학교(동학갑농민운동 발상지) - 나만의 우표, 100주년 운동회
* 울산병영초등학교 -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 모교
* 보성고 - 열린음악회, 기념비, 손병희선생과 보성 10인 선정사업 등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럼 영천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영천초등학교는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