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제 3 부두를 출항하는 업셔호와 환송 인파)
나를 포함한 삼천오백여명 정도의 파월병력을 싣고 부산항 제 3부두를 떠난 미해군소속의 업셔호는 일주일 간의 거친 항해를 거쳐 월남의 중부도시 다낭 에 도착했고 곧 이어 삼천여명의 육군 전우들을 뒤로한채 오백명가량의 우리 해병대 병력 부터 먼저 하선한다
(베트남의 중부 다낭이 나타나 있고 그 바로 아래 청룡부대가 마지막 주둔했던 호이안이 붉은 글씨로 보인다)
다낭은 당시도 그랫지만 지금도 베트남 제 2 의 도시로써 지금은 없어진 군사 분계선(DMZ) 바로 아래 수십킬로 떨어진 도시엿으며 미군이 사용하는 큰 규모의 항구와 군용비행장이 잇엇으니 그 군용비행장은 주로 미공군소속의 전폭기(팬텀기), 폭격기들과 미해병대 소속의 건쉽(전투용의 아파치헬기) 및 메드백헬기(전상자 후송용) 등이 수백여대 밀집해 임무를 위해 수시로 이륙 과 착륙을 하는 바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엇는데 그곳에 주둔한 미해병 제 3 상륙사단(3rd MAF : Marine Amphibious Division)은 우리 한국군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였다
(월남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다낭 비행장과 근처 해변이 보인다)
다낭 부두에 정렬하여 각 파월병사는 대대별로 분류되는데 청룡부대 3대대는 내가 배치된 대대였으며 각 병사가 배치된 대대본부로 향하기 위해 많은 지엠 씨 병력수송용 트럭들이 붕붕거리며 이미 다낭항에 미리와서 대기중이다
3대대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타고 100여명 남짓되는 3대대에 배속된 해병전우 들이 해병대 작전지역인 호이안으로 줄줄이 이동한다 다낭에서 당시 청룡부대 가 위치한 호이안까지는 아마도 이십여분 이동하는데 가는 도로 중간에 양쪽에 협곡을 끼고있는 도로를 달린다
느낌이 불안했다 이런 협곡을 지날 때 만일에 양쪽 협곡에서 적군이 우리 에게 공격을 가한다면 꼼짝없이 전멸을 할 판이다 그런한 느낌을 가지며 협곡을 지나는데 갑자기 양쪽 협곡에서 타타탕!!!~~~ 타타탕!!!~~~ 타타 탕!!!~~~ 하며 총성과 화약연기가 치솟는다
'아앗!~ 전투도 못해보고 이 협곡에서 당한단 말인가?'
순간 놀랐는데 양쪽 협곡의 둔덕에서 그간 우리를 기다리며 숨어잇던 누런 방탄복을 입고 얼룩무늬의 철모커버가 씌여진 아해병대 전우들이 귀신들 같이 상체만 보인채 손을 흔들며 미소로써 환영의 인사를 한다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마블 마운틴)
이 협곡이 적의 공격을 받기에 취약한 지역이므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아해병대 주간매복대가 양쪽 둔덕에 근무를 서고 잇다가 아군 월남신병들 차량 들이 닥아오자 환영의 축포로 각종 색깔의 연막탄과 조명탄들을 터트린 것이다
무언 중의 그들이 말하고 있었다
" 야!~ 느그덜 월남신병들아 대한해병대의 명예를 걸고 잘들 싸우라야!~ "
3대대 본부 캠프에 도착한 후 곧 부비츄렙 식별교육을 받앗다 파월되기 전에 포항의 제 1 상륙사단의 월남전교육대에서 받았던 교육이지만 워낙이 중요한 교육이라 다시금 적들이 매설해 놓고 그들 자신들만이 식별하도록 표시하는 표시방법을 교육받고 실습에 들어갔는데 교육장의 부비츄렙 밭을 통과하던 중 여러군데의 지뢰지역을 무사히 통과했으나 한군데서 실수하여 모조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적 베트콩이 매설한 부비츄렙)
이를 지켜보던 교관 왈 "넌 죽었어!~" 하던 소름끼치게 경고하던 말과 그 엄숙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교육이 끝나자 전투중대로 배속된바 나는 11중대에 배속되엇는데 그 중대 는 호이안 외곽에 위치한 1번 도로가에 잇엇으니 그 1번 도로는 우리나라의 경부 고속도로에 해당되는 월남 제 1의 중요도로엿고 남쪽 사이공(지금 호 치민)에서 북쪽 DMZ 까지 남북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였다
(월남전 당시 전형적인 청룡부대 중대방석 모양 / 진지 가운데 사방을 감시할 수 있는 높은 관망대가 서 있고 적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2중의 원형으로 진지를 구축하였다)
내가 배속된 11중대의 캠프는(청룡부대는 중대캠프를 중대방석이라고 불럿다) 그 1 번 도로에서 서쪽으로 50여 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잇엇고 그 도로 맞은 편 동쪽에는 남푹 마을이라는 주민 수백명 가량이 살고 잇는 조그만 마을이 잇엇으며 그 1 번 도로에서 11중대로 들어오는 길목 중간에는 월남군 1개 소대 병력이 조그만 캠프를 구축하여 주둔하고 잇었는데 우리는 그 캠프를 캡소대 라고 불렀다
11중대 방석 서쪽이 모두가 초원과 정글로 뒤덮인 광활한 작전지역이다 이 작전 지역에는 대낮에도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고 만일에 순수 민간인이라도 이 작전 지역을 함부로 들어갓다가 아군이나 월남군,또는 미군에게 발견되면 적으로 오인 되어 바로 사살되니 그 광활한 땅에서 농사를 못짓고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베트남의 실정이었다
(1번 도로와 멀리 보이는 남푹마을 전경과 당시의 청룡3대대 11중대원들)
11중대에 배속되어 3소대로 배치 받고 3소대로 와서 소대장에게 배속신고 를 드린 바 나는 M-60 경기관총을 담당하는 화기분대에 배속되었다
1개 전투중대는 3개의 보병소대로 구성되고 1개 소대는 다시 3개 소총분대 와 1개 화기분대로 구성되는데 나는 화기분대에 배속된 셈이다 당시 화기 분대에는 분대장으로써 부산 출신의 김하사와 호남 출신의 서하사 그리고 화기사수인 윤수병,부사수인 해병대 입대동기 홍수병 그리고 귀국이 다된 역시 입대동기인 김수병이 있었다
(1970년 청룡 3대대 11중대 3소대 M-60 화기분대원들)
나와 같이 화기분대에 배치된 나 보다 몇기수 후임자인 박수병은 탄약 운반과 공급을 책임지는 제 1 탄약수와 제 2 탄약수의 임무를 각각 부여받았다
곧이어 M-60 경기관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교육을 받앗고 며칠동안의 소대 자체 교육을 받은 후 곧 작전에 투입되엇다 그 소대 자체 교육 중에는 며칠 밤 동안 월남에 막 도착한 월남전 신병들이 특별히 받는 엄중한 교육이 포함 되어 잇었는데 그 교육 내용은 해병대 군 기밀 상 생략한다 그 교육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 해병답게 잘 싸우고 무사히 살아 돌아가자> 는 것이다
( M-60 경기관총 야외작전 시는 삼발이를 해체하여 들고다님)
원래 월남에 막 도착한 신병은 몇주 간의 교육과 적응 기간을 거쳐 작전에 투입되는 것이 상례인데 그 당시 그럴만한 시간과 병력이 부족하엿기에 같이 신병으로 전입되어 온 후임자인 박수병은 중대방석에 남고 신병이지만 선임자인 내가 월남에 신병으로 도착한지 며칠만에 작전에 투입된다고 들었다
그 첫 작전은 며칠 간 주야간으로 벌이는 중대단위의 작전이엇는데 주간 에는 소리없이 기동하며 숨어잇는 적들을 찾아 소탕하는 것이며 야간에는 15 -16 명 단위의 축소된 소대단위로 작전지역에 산개한 후 야간매복진지를 구축하고 잠복근무를 하다가 야간에 이동하는 적을 소탕하는 작전이었다
주야간의 병력이동은 정글전의 특성 상 모두 종대로 이동하였는데 주간에 병력이동은 개인간 7 -8 메터를 유지하고 야간의 병력이동은 2메터 전후로 매우 가깝게 이동하엿으니 정글전에서는 먼저 보고 먼저 쏘는 자가 이기게 되어잇으니 병력이동시 소음방지와 주위경계는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탄약수의 무장은 일반 소총수에 비해 더 무겁다 륙색안에 12개입 씨레이션 한 박스와 함께 조명탄과 신호탄 등이 들어가고 양어깨에 2000 발의 실탄이 들어 잇는 M-60 탄통 두개를 양어깨에 매야하고 륙색 밑에는 장삽이 매달린다 대원들 모두가 착용하는 방탄쪼끼에는 양 포켓에 수통 두개 그 위에 수류탄 4개, 탄띠에 M-16 소총 실탄 수백발과 수통 2개를 착용하고 M-16 소총까지 들고나면 정확히 기억하기 어려우나 대충 25 킬로그램 전후의 무게가 아닌가 한다
이런 무장으로 작전지역의 초원지대와 정글지대를 하루 종일 진군하다가 밤에는 쉴 사이 없이 야간매복을 실시하니 피곤할 수 잇으나 야간매복시에 졸음은 절대로 잇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졸음을 방지키 위해 아래와 같은 진지 를 구축하여 야간매복을 실시하였다
(상기 도면과 설명은 필자가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ppt 파일로 작성한 것을 화면 캡쳐하여 jpg 파일로 만든 후 올린 것임 )
(월남전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사용하던 크레모아 지뢰 / 적을 향한 쪽이 밖으로 둥글게 되어있어 설치 전에 병사는 자신의 배에 이 지뢰를 대어보고 배에 착 맞닿은 부분이 자기 쪽임을 알고 어둠 속에서도 실수 없이 적을 향해 설치할 수 잇엇다 / 이 지뢰 뒤에 컴포지션 화약이 있고 그 안에 뇌관이 잇는 바 진지에서 적을 향해 스위치를 누르면그 폭발력에 약 700 여개의 베어링 산탄이 강한 폭발력으로 적에게 분사되어 산탄형태로 발사되도록 되어있다)
경기관총 M-60 조는 화력지원조 이므로 매복대를 형성할 때 가장 적이 진입
하기 쉬운 위치에 진지를 구축하기에 나는 허물어진 절간으로 들어오는 소로 길 진입로를 바라볼 수 잇는 위치에서 근무에 들어갔는데 근무 위치 바로 앞 에는 낮은 담이 있었고 절간 바닥에 앉아 전방을 보니 눈 높이 보다 절간의 담 높이가 약간 높기에 철모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전방을 보니 마침 전방이 잘 보이게 되어 전쟁터이지만 부득이 철모를 깔고 앉게 되엇다
내가 주시하는 소로길은 폭이 2자(60센티) 정도 되는 흙길이엇고 그 양쪽으로 는 바나나 나무와 잡목들이 무성하엿다 절간 담위에 무거운 경기관총 M-60 을 거치 시켜놓앗으나 이제 막 월남에 도착한 월남신병이자 이제 막 M-60 을 겨우 다루는 기술을 익힌 풋내기로써 만일에 바로 코앞에 닥아온 적이 잇다면 재빠 르게 그 무거운 경기관총 화기를 다룰 자신이 없엇다
나는 앉은 오른쪽 옆자리에 무게가 가벼운 M-16 소총을 기대어 놓고 언제 라도 적이 나타나면 먼저 M-16으로 대응하리라 마음먹고 근무에 들어갓다 내가 근무서게된 2인1조 진지에서 입대 동기생이자 그 작전에 사수를 담당한 홍수병은 먼저 잠이 들엇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근무에 들어갔다
그런데 피곤하고 잠이 온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잠을 시원히 못잔채로 며칠을 초원과 정글을 누비고 다닌 탓에 잠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졸면 죽는 근무이다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해도 폭포같이 밀려오는 잠을 어찌할 수 없다 허벅지 를 꼬집고 볼을 당기며 잠을 좇는 그 사이 잠깐 눈이 감겻다 그 때 누가 나를 부른다 내 이름을 생생이 부른다 내 나이 17세에 돌아가신 사랑하는 어머님의 목소리와도 같다
퍼뜩 눈을 떴다
그런데 누군가 내 앞에 닥아온다 워낙이 어두운 밤이라 그가 내 바로 3 보 앞에 와서야 그가 식별되엇다 그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보기 시작햇다 그런데 그나 나나 서로가 누군지 모르겟다 그만큼 어두 웠다
조명탄이 터지지 않앗기에 나는 처음에 우군인줄 알앗고 잠시 생각했다
'누굴까? ... 적이 이렇게 닥아올리가 없다 저 바로 앞에 조명탄 연결줄들이 잇는데 이 자가 만일 적이라면 그 조명탄 줄을 건드려서 조명탄이 벌써 터졌 을텐데 ... 조명탄이 안터진걸 보면 이 자는 분명히 아군인데 ... 그러나 아군 이라면 왜 내 앞에서 오냐? ... 만일에 아군이고 근무 중에 대변을 보러나갔다 면 우리 매복진지 안에서 쌀 일이지 왜 진지 앞으로 나갔냐? ... 그렇다면 분명히 적이 아니냐 ???!!!...'
마지막 생각이 미치자 그가 틀림 없는 적이라고 생각되엇다 그도 3보 앞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만일에 한국군 해병대라면 분명히 철모를 쓰고 있을텐데 내가 철모를 깔고 앉아 있는 바람에 철모 없는 맨머리에 오랫동안 머리를 못깎은 내 머리는 밤송이 머리였으니 그는 내가 자기 동료인 베트콩으로 생각도 되고 그러나 가만히 앉아잇는 내가 동료 같지도 않으니 그도 내가 식별이 안되어 고민 중이엇던 같다
(월남전 당시 우리의 적이엇던 베트콩들의 전형적인 모습)
그가 적임이 분명하였으나 100 % 확신이 안되니 그냥 사살할 수도 없다 1 % 의 실수로 인하여 아군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고민이 되엇다 그도 내 앞에 가까이 와서 나를 보앗으나 적인지 아군인지 100% 확신이 안 되니 어정쩡한 상태에서 나를 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슴이 틀림없으나 이렇게 서로가 시간을 보낼 일이 아니다
다행이 이런 일을 예상해서 M-16 소총을 내 앉은 자리 바로 옆 절간 벽에 세워서 기대어 놓앗기에 나는 그가 눈치 안채게 소리없이 옆에 놓여진 M-16 라이플을 잡았고 단안을 내려 그 소총을 쥐고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소총을 겨누며 조용한 소리로 그러나 단호히 말을 걸엇다
"누구야?!~"
순간 그의 눈에 불이 확!~ 켜졌다 베트남말이 아닌 한국말을 듣자 그는 내가 한국군 해병대원임을 곧 알았고 이어 소총을 먼저 겨눈 나를 본 순간 기겁을 하고 대응하려다 순간 포기하고 몸을 재빨리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를 놓치면 안된다 우리의 매복진지가 폭로된다
날이 밝아 사살된 그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를 살펴보니 그는 민간복을 입은 나이 삼십여세의 무장한 베트콩이었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조명탄을 건드리지 않고 우리 매복진지 안으로 들어왔나 살펴보니 그가 우리 매복진지로 접근해 온 소로길의 양쪽에 조명탄을 묶어두기 위해 꽂아 놓은 2자 간격의 말뚝 사이에는 실수로 조명탄 연결줄이 이어져 있지 않앗다 간밤이 워낙이 어두운 탓에 조명탄 연결작업에 실수가 생긴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조명탄 연결줄이 없는 그 소로길 사이로 들어왓고 바로 내 앞 3보 전방까지 왓으니 그나 나 둘중에 하나가 생존치 못할 일이엇다
그 때 하늘이 어찌 나를 살리고 그를 데려가셨는가 ........
그나 나나 살다가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니 내가 이렇게 아직 생명을 유지하고 살고 잇다는 것이 다만 삶의 길이에 차이가 잇는 것 뿐이라면 이는 하늘의 뜻이 아니리라
그후에도 몇번이나 사선을 넘나들며 생각하게 된 것은 이렇게 보존된 생명에는 분명히 창조된 어떤 목적이 잇을 것이다 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햇으며 나는 그 당시 그 뜻을 알지 못하엿으나 그 뜻을 알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이가 60 으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하늘이 내게 생명을 허락하여 주신 그 뜻을 진정으로 알고 배우며 겸손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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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무장을 하고 다닌일을 생각하면..
등에 진것이 3.5인치 라켓(무반동총) 2개
배랑에는 예비로 실탄 7줄 수통3개. 모포,우의. C레이션.삽.
탄띠에는 탄창7개 수통 2개 수류탄2발. WP탄.대검.
방탄조끼앞에 수류탄 2개와 M16소총을 들고 이동을 하는데,
그 무개가 얼마나 될까?
심지어 나는 수통을 5개씩이나 가지고 다닌적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량의 물이 필요하므로 전사자나 전상자가 생기면
헬기로 후송을 하는데, 후송보낼때 수통과 탄창을 빼내곤 했다.
탄창도 몇개 않돼서 부족하므로 탄창도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거운 무장을 지고 전투에 임하니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전투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간의 기동 중에도 전투 상황이 많았습니다만 주로 야간 매복을 실시하였으니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소리 없이 야간기동할 때가 많았지요. 추억의 순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