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 하 개관
사무엘상 개관
1. 명칭
사무엘상, 하는 이스라엘 왕정 수립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인 사무엘의 이름을 따서 만든 명칭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두 왕인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통치의 새로운 질서를 정의한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사무엘의 역할은 모세의 역할과 유사하다(참,시99:6; 렘15:1). 왜냐하면 사무엘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이동하기 전에 언약의 연속성을 부여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하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다. 칠십인경 번역자들이 처음 이 책을 두 부분으로 구분했고, 이를 제롬이 주후 400년경 라틴 벌게이트 판에서 따랐으며, 많은 현대 역본이 받아들였다. 책의 명칭은 시대마다 달랐는데 ‘왕국 상하’(칠십인경), ‘왕들 상하’(라틴 벌게이트), ‘사무엘상,하’(히브리 전통과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등으로 불렸다.
2. 문학적 특색, 저자와 저작 연대
사무엘상, 하의 문학적 성격과 저자와 저작 연대에 대해서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사무엘상, 하의 일부 특색을 보면 책이 원래 독립적이었던 여러 개의 문헌들을 사용해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원래 편집되지 않은 형태의 문헌을 가능하면 그 형태대로 글 속에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 저자인지는 사무엘상, 하에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저자는 사무엘, 사울, 다윗의 생애와 그 시대의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임이 분명하다. 사무엘상, 하는 오직 한 번만 이와 같은 문헌 자료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야살의 책’, 삼하1:18).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이 시기에 속한 다른 네 문헌 자료에 대해 언급한다[‘다윗 왕의 역대 지략’(대상27:24),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대상29:29)].
3. 내용과 주제 : 왕권과 언약
사무엘상은 인간 왕이 대리하는 정치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수립하셨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신정 정치(하나님이 자기 백성위에 왕으로 통치) 구조의 이런 중요한 변화를 설명하기 전에, 복잡한 문맥과 상황을 묘사한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왕정 시작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제공한다.
(1) 사무엘의 출생과 유년기, 소명(1~3장)
이스라엘 첫 두 왕인 사울과 다윗의 통치를 주로 다루는 책에서 저자가 이 두 사람의 출생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이들의 선구자요, 기름 부은 자인 선지자 사무엘의 출생을 다루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런 사실 자체가 이어지는 사건들에 서 사무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왕정 수립 과정에서 살괴 피는 말씀과 영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세심하게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1~3장을 사사기의 부록으로 여기거나 사무엘상, 하의 나머지 부분에 원만하게 연결된 서언 정도로 보면 안 된다. 오히려 이어지는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역사로 봐야 한다. 왕권은 선지자 사무엘의 예언적 말씀과 사역에 의해 생겨나고 양육되었다. 더욱이 사무엘의 출생은 주제로 보더라도 나머지 책에서 기술되는 하나님의 사역의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다.
(2) 법궤이야기(4~6장)
이 단락은 하나님의 궤가 어떻게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으며, 하나님께서 여러 블레셋 도시들을 황폐케 한 후 어떻게 다시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는지를 묘사한다. 이 이야기는 법궤를 소유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적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폭로하고 있다. 또한 여호와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며 여호와 하나님이 블레셋의 신 다곤 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드러낸다. 블레셋인들은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공적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궤에 관한 이 이야기는 인간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죄된 열망을 올바른 관점에서 보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3) 사사와 구원자로서 사무엘(7장)
사무엘이 이스라엘에게 회개하고 여호와께 새로 헌신할 것을 요청했을 때,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해 크게 개입하셨고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셨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정한 지도자로 사무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동시에 여호와를 신뢰하고 언약의 의무를 순종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복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1~7장에 나오는 모든 자료들을 이스라엘의 왕정 수립을 묘사하는 8~12장의 서언 역할을 한다. 저자는 8~12장을 놀라운 솜씨로 배열함으로써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심각한 신학적 갈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들을 연구한 학자들은 왕정에 대한 태도에서 긴장 혹은 모호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에게 왕을 주라고 사무엘에게 지시하신(8:7,9,22절, 10:24, 12:13) 반면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죄로 간주하신다. 왕정에 대한 이와 같은 상충적 현상은 여호와와 맺은 이스라엘의 언약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요구할 것을 예기하고 있었으나(신17:14~20) 대왕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지속된 통치와 양립할 수 있는 형태의 이스라엘 왕정을 예기했다. 그러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을 때는 여호와의 왕권을 거부했다. 이들이 원한 왕은 주변의 열방처럼 전쟁을 지휘하며, 국가적 안전과 통일을 부여할 존재로서의 왕이었다. 결국 이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이들의 왕이신 여호와의 언약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법궤이야기(4~6장)와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들에게 왕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지명으로 사울이 사무엘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사무엘은 비밀리에 그를 왕으로 기름 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9:1~10:16). 이어서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으고 왕을 요구한 죄에 대해 권면한 후, 제비뽑기로 왕을 선택하는 과정을 주재했다. 제비로 사울이 뽑혔으며, 이는 공적으로 사울을 하나님이 택하신 왕으로 드러낸 것이다(10:24). 사울은 즉각 왕에 오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밭일을 했다(11:5,7절).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이 암몬 사람 나하스의 위협을 받게 되자, 사울이 일어나서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울의 승리는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최종 승인 표시였으며(참조, 10:24, 11:12~13) 길갈에서 왕의 즉위식을 가능케 했다(11:14~12:25).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이스라엘이 왕을 가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왕을 주는 것이 여호와의 뜻임이 분명) 이제 인간 왕이 있는 이상 어떻게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가였다. 사무엘이 사울 왕이 즉위하는 바로 그 시점에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와 여호와께 충성하도록 요청함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참조, 10:25). 언약 갱신의 문맥 안에서 왕정을 수립함으로 사무엘은 인근 열방과는 다른 기초 위에 이스라엘의 왕정을 세울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왕은 그 권위나 권세에 있어서 자율적이지 않았다. 여호와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에 복종해야 했다(10:25, 12:23). 이것은 사울에게 해당될 뿐 아니라 미래 이스라엘의 보좌에 앉을 모든 왕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왕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통치의 한 수단이었으며, 왕과 백성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궁극적 주권자로 인정해야 했다(12:14~15).
사울은 신정 정치에 있어 자신의 직무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13~15장). 블레셋과의 전쟁 준비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지시에 불순종했고(13:!3), 사무엘을 통해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 명한 대로 아멜렉 사람들을 완전히 진멸하는 것을 거절했기에 사울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여호와의 통치 도구가 될 수 없었다. 신정 정치의 직무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왕의 직분을 거절당한 것이다(15:23).
사무엘상의 나머지 부분(16~31장)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울의 후계자로 택하신 것과 다윗이 보좌에 오르기까지 긴 준비 기간을 묘사하고 있다. 사울의 통치가 그 성격상 점차 신정 정치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물리적인 힘으로 보좌를 찬탈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보좌에 오르는 일을 여호와의 손에 맡겼다.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포로가 될 것이 두려워 자살했다. 사울의 세 아들은 다윗의 친구 요나단을 포함해서 모두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31장).
4. 연대기
비록 사무엘상, 하가 연대기적 함축의 진술들을 담고 있지만,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명확한 연대기를 제시하는 것은 자료상 불충분하다. 다윗의 출생 연대와 통치 기간은 비교적 확실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연대는 그저 추론만 할 뿐이다. 사울이 왕이 될 때의 나이와 통치 기간을 언급하는 본문상의 문제점은 사울의 출생과 통치 기간에 관한 정확한 연대 추정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사무엘의 출생 혹은 죽음에 관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사무엘의 생애는 삼손의 생애 그리고 룻과 보아스의 아들이자 다윗의 증조부인 오벳의 생애와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했을 당시 사무엘이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8:1,5절). 게다가 저자가 항상 엄격한 연대기적 순서로 자료를 배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기적 불확실성이 증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무엘하 7장은 연대기적으로는 사무엘하 8:1~14절에 묘사된 다윗의 정복 기사 이후에 배치되어야 더 정확하다(삼하7:1, 8:1). 사울이 기브온 거민과 맺은 조약을 파기한 죄로 다윗의 통치 시대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내리신 기근은, 연대로는 사무엘하 15~18장에 기록된 압살롬의 반역 이전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엘하21:1~14절에 나온다(삼하21:1~14). 그러나 다음의 자료들은 사무엘, 사울, 다윗 시대의 대강의 연대기적 틀로서 큰 손색이 없다.
주전 1105 - 사무엘의 출생(삼상1:20)
1080 - 사울의 출생
1050 -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음(삼상10:1)
1040 - 다윗의 출생
1025 - 다윗이 사울의 후계자로 기름 부음 받음(삼상16:1~13)
1010 - 사울의 죽음과 헤브론에서 다윗의 유다 통치 시작(삼상31:4~6)
1003 - 모든 이스라엘 위에 다윗의 통치 시작과 예루살렘 정복(삼하5장)
997~2 - 다윗의 전쟁들(삼하8:1~14)
991 - 솔로몬의 출생(삼하12:24)
980 - 다윗의 인구 조사(삼하24:1~9)
970 - 다윗의 통치 끝(삼하5:4~5, 왕상 2:10~11)
5. 개요
I. 이스라엘 안에 왕정 시작의 역사적 배경(1~7장)
A. 사무엘의 출생, 유년, 선지자로의 소명(1~3장)
B. 블레셋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가 회복됨(4~7장)
II. 사무엘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의 왕정 시작(8:1~16:13)
A. 사울의 흥기(8~12장)
1. 백성들의 사악한 왕 요구(8장)
2. 사무엘이 사울을 비밀리에 기름 부음(9:1~10:16)
3. 사울이 공적으로 왕으로 선택 됨(10:17~27)
4. 사울이 왕으로 선택된 것이 공적으로 확인됨(11:1~13)
5. 사울의 통치가 언약 갱신 의식과 함께 시작됨(11:14~12:25)
B. 사울 왕정 실패로 끝남(13:1~16:13)
III. 이스라엘 안의 왕정 수립(16:14~31:13)
A. 다윗의 흥기(16:14~27:12)
1. 다윗이 사울을 섬기기 시작(16:14~17:58)
2. 다윗이 사울로부터 소외됨(18~19장)
3. 요나단이 사울로부터 다윗을 보호함(20장)
4. 다윗이 계속 사울을 피함(21:1~22:5)
5.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죽임(22:6~23)
6. 다윗이 그일라 거민을 구해냄(23:1~6)
7. 사울이 지속적으로 다윗을 추격함(23:7~29)
8.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살림(24장)
9. 다윗이 나발의 생명을 위협함(25장)
10.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다시 살림(26장)
11. 다윗이 아기스를 섬기기 시작(27장)
B. 사울의 통치의 끝(28~31장)
사무엘하 개관
1. 명칭
사무엘상, 하는 본래 한 권의 책이었다(참조, 사무엘상 ‘서론:명칭’)
2. 문학적 특색, 저자와 연대
사무엘상 ‘서론 : 문학적 특색, 저자와 연대’ 참조.
3. 내용과 주제 : 왕권과 언약
사무엘하는 다윗을 불완전하지만 이상적인 신정 정치 왕의 진정한 모델로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최초로 유다 지파에 의해 헤브론에서 왕으로 추대되었고(1~4장), 그 후 유일하게 생존한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살해당하자 남은 지파들의 왕으로 받아들여졌다(5:1~5). 다윗은 리더십은 결단력과 능력에 있었다. 다윗은 여부스인들에게 예루살렘을 빼앗았고 그곳에 자신의 왕도와 왕궁을 세웠다(5:6~13). 바로 그 다음에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으며 여호와의 왕권과 여호와께서 자신과 이스라엘을 다스리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6장: 시132:3~5).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셨으며 적들을 패배시키셨고 야속을 성취하셔서 국경을 애굽에서 유브라데까지 넓혀주셨다(8장). 다윗은 여호와를 위해 여호와의 궁전으로, 여호와의 보좌를 위한 처소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예배하는 장소로 성전을 지어드리기 원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은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께서 다윗의 왕조를 세워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7장은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을 전하고 있다. 이 절정의 장은 다윗 언약의 체결 역시 묘사하고 있다(참조, 7:1~29,11,16절; 시89:30~37). 후에 선지자들은 다윗의 보좌에 앉을 다윗의 후손이 신정 정치 왕의 역할을 완전히 성취할 것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속을 완성시킬 것이며, 그래서 그들에게 그와 함께 약속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권세도 줄 것이다(롬16:20).
다윗의 통치를 영광과 성공으로 묘사한 후에, 10~20장은 그의 통치에 대한 좀 더 어두운 면을 묘사하면서 다윗의 약점들과 실패들으 기록하고 있다. 비록 자신의 죄를 자진해서 고백하고 회개 했기 때문에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남아 있긴 했지만(12: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정정치의 이상에 휠씬 못 미치는 상태로 떨어졌으며 그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 징계를 받게 되었다(12:10~12).
밧세바와 지은 그의 죄(11~12장), 아들들의 불의(13:12~39)와 요압의 도전에 대한 그의 관대함(3:28~39, 20:10)은 자신의 가족과 국가 안에 음모와 폭력과 유혈 사태가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기듯 도망쳐야 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그의 통치는 이 후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참조, 왕하18:3,22).
사무엘하는 자신을 모든 적들로부터 구해내신 하나님께 드리는 다윗 자신의 찬양(22:31~51)과 왕의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나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23:3~5)로 끝이 난다. 이 노래들은 한나의 노래(삼상2:1~10)에 나오는 주제의 많은 부분이 되풀이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사무엘하의 기본 이야기를 구성하고 또한 설명하고 있다.
4. 개요
IV. 이스라엘의 왕정의 공고화(삼하1~20장)
A.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함(1장)
B.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됨(2~4장)
C. 다윗이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됨(5:1~5)
D.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함(5:6~25)
E.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옴(6장)
F.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심(7장)
G. 다윗의 왕국의 확장(8장)
H.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에 신실함(9장)
I.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범함(10~12장)
J. 다윗이 아들 암논을 잃음(13~14장)
K.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잃음(15~20장)
V. 다윗 통치에 대한 최종적 회고(삼하21~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