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이야기 세번째
“청포도 그리고 안동간고등어” 풍 강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泡)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에 은쟁반엔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 육사의 청포도 - 청포도의 시인 이 육사는 안동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퇴계 이황의 자손으로 안동시 도산면 원리에서 태어나셨다. 본명은 원록 또는 활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하에 민족 저항시인으로 일제의 저항하다가 무려 감옥을 17번이나 갔다 왔다. 육사라는 호도 감옥에서 수번이 64번이였던 것을 그대로 육사로 쓴것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청포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잘알려진 ‘광야’‘절정’‘황혼’‘꽃’등이 모두 육사의 작품이다. 하지만 아까운 사람은 박명한다고 이육사도 광복을 한해 앞둔 1944년에 41살의 나이로 중국 북경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흔히 청포도와 이육사를 얘기하면 안동에 청포도가 많으냐라고 묻는다. 죄송하지만 안동에는 청포도는 고사하고 포도밭도 그리 많지 않다. 이 시는 육사 선생이 영일만 청포도 밭에 들렀다가 쓰신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가 안동사람이긴 하지만 안동에는 청포도가 없는 것처럼 안동에는 고등어가 잡히는 곳이 아니다. 안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안동 간고등어란 말만듣고 안동이 경북 어느 해안지방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안동지방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진 내륙지방이다. 가장 가까운 영덕이라야 안동에서 100Km가 넘게 떨어져 있다. 요즘도 차로 두어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다. 도 전체가 바닷가와 인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에서도 두어시간이면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을 감안 한다면 안동이 얼마나 내륙지방에 속해 있는지 알 것이다. 그래서 춘천에서 안동을 지나 대구로 잇는 고속도로 이름도 중앙고속도로다. 그런데도 안동 사람들은 바닷가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고등어를 시중에 판매되는 간고등어 가격의 두배나 받고 판매하고 있다. 그것도 내륙지방인 안동이라는 지방명칭을 붙여서..... 그래도 간고등어의 맛을 아는 사람은 굳이 안동 간고등어를 사 먹는다. 이 정도면 대동강 물을 팔아 먹은 봉이 김선달에 맞먹는 안동사람들의 상술을 배워 봄직도 하지 않은가?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입맛에 딱 맛기 때문이다. 전통의 것을 살려 우리의 것을 만드는 안동 사람들만의 고집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안동간고등어를 먹어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진정한 의미의 안동 간고등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건 소금만 뿌려 분명 제대로 숙성되지도 않은 간고등어를 비슷한 상표를 붙여 파는 상술 때문 일 것이다. 전통 안동 간고등어는 일단 염도가 우리의 입에 딱 맞고, 제대로 숙성이 된 것이여야 한다. 그러니 맛이 있을 수 밖에...... 옛날의 안동사람들은 영덕 쪽에서 지고 오는 생선을 챗거리 장터(지금은 임동댐으로 댐속에 잠긴 마을, 임동의 옛이름)에서 사먹었다. 영덕에서 고기를 상하지 않게 안동까지 운반하여 팔 수 있는 방법은 소금을 뿌려 염장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염장한 고등어가 안동까지 오는 사이 가장 맛나게 숙성이 되고, 간도 알맞게 배었던 것이다. 그 옛 맛에 착안하여 새롭게 태어난 고등어가 안동간고등어이다. 가끔 안동 자반고등어라고 하여 우시게 소리로 자반(한자 반 =45㎝)이 안되는 고등어는 자반고등어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다. 다만 간고등어의 다름 이름으로 자반고등어란 말을 썻을 뿐이다.
육사는 있어도 청포도는 없는 고장, 안동 간고등어는 있어도 바닷가가 없는 고장, 안동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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