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南本部 硏修院 漢字指導師 野外受業 가을山行 & 自然保護 산불조심 캠페인 行事 |
2007년도 11월12일
月曜日 10講 授業 -빛날 요, 익힐 강, 줄 수, 업 업
韓國漢字漢文指導師硏修院
韓國漢字漢文敎育硏修院
(社)漢字敎育振興會 忠南本部
충남금산 진악산(進樂山)
위 치 : 충남 금산군 금산읍 , 남이면 상금리
홈페이지 : 금산군청 http://tour.chungnam.net
연 락 처 : 관리소 041-750-2378
개 요 : 진악산(737m)의 우람한 모습은 위대함과 굳건함의 표상으로 금산 고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금산의 역사 속에서 진악산은 크고 작은 싸움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옛날부터 나라의 안위를 봉화로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중봉 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는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보석사 들머리에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위병승장비가 세워져 있다.
진악산은 해발 737m의 높이로, 충남에서 4번째 높은 산이다.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진악산을 감싸고 있는 숲도 무성하며 영천암과 원효암 골짜기의 개울도 좋다.
특히 진악산 북편 관음봉 일대의 암애와 암봉들, 원효암 일대의 기암괴봉과 폭포는 일품이다.
명물 명소로는 보석사 입구에 전나무숲과 천연기념물 365호인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있고, 천년사찰 보석사와 영천암, 원효암이 있으며 이밖에 영천암의 영천약수, 도구통바위, 봉화대, 관음암과 관음굴, 원효폭포, 물골의 바위굴은 명소로써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진악산 정상에서는 속리산과 서대산 천태산, 민주지산, 덕유산의 장쾌한 산줄기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운장산의 특이한 모습도 보이고 계룡산도 눈에 띈다.
등 산 로 :
* 제1코스
금산읍 - 진악로광장 - 수리넘어재 - 정상 - 737봉 - 도구통바위 - 영천암 - 보석사주차장
* 제2코스(11㎞ 3시간 소요)
금산읍 - 음지리 - 복천암 - 정상 - 능선안부 - 성곡리
* 제3코스(7㎞ 2시간 30분 소요)
족실(금산읍 계진리), 위어둥굴(음지리) - (선공암) - 골짜기 길 - 기도터 - 관음봉 - 주릉- 정상 - 737봉 - 도구통바위 - 영천암 - 보석사
* 제4코스(2시간 소요)
원효암 입구 - 원효암 - 바위능선 - 정상(732m)
※ 금산읍에서 수리넘어재를 지나는 진악로가 개설되었고 부근에 휴게소 광장이 조성되어 있음. 여기에서부터 시점을 잡아 조금만 오르면 진악산 능선을 따라 금산읍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보석사까지 편안하게 산행할 수 있음.(제1코스)
※ 금산읍 음지리, 계진리 코스는 마을로 진입하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진악로 광장을 이용하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편리함.
도로안내 :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이나 호남고속도로 서대전분기점에서 대전 남부순환고속도로로 진입 - 산내분기점 -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 금산IC - 68번 지방도 - 금산 - 남이면방면 군도 - 수리넘어재
현지교통 : *서울강남터미널 - 금산(06:30 ~ 18:30, 1시간 30분 간격, 2시간 15분 소요)
※서울강남터미널 02-535-4151~2
* 대전 - 금산(06:00 ~ 22:00, 10분 간격, 동부터미널에서 60분 소요)
※대전동부터미널 041-624-4451
* 금산읍에서 남이 석동방면 시내버스(07:10∼18:10, 1일 5회, 20분소요)
* 금산읍에서 진악산 광장 및 원효암 입구 도로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접근용이
현지숙박 : 거북장여관(752-1107), 세종장(751-2400),
황금장(753-2828), 궁전장(753-3457)
먹을거리 : 금산읍 주요 식당에서 인삼한정식 및 삼계탕, 추어탕, 한우고기 등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음
특 산 품 : 금산인삼·약초, 바리실사과, 금산배, 추부깻잎, 추부포도, 한우
주변명소 : 금산읍 인삼, 약초시장, 인삼종합전시관 및 인근에 태고사(22km),
보석사(6km), 남이자연휴양림(20km), 육백고지 전승탑(21km),
백령성지(21km), 서대산(20.4km), 칠백의총(3.5km), 12폭포(12km)
정보제공 : 금산군청 농림과
금산 진악산(進樂山)에서 본 한국의 산하/기행문
글쓴이 : 靑波 : 尹 道 均
우리는 진악산으로 가고 있다. 진악산(進樂山)은 충남 금산의 진산이다. 충남에서는 서대산903.7m, 대둔산877.7m, 계룡산845.1m 다음으로 충남에서 네 번째로 높다지만 732.3m산의 도봉산(740m) 정도 높이의 732.3m의 산이다.
일산신도시 한뫼산악회 마지막 2002년 등반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산악회가 비영리적인 친목 모임으로 저렴한데다가 평일에 떠나는 것이라서 함께 가는 이가 60대 이후의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종주보다는 구간 등반이나 하는 것이지만, 동네에서 떠나서 동네로 돌아와 주는 맛에 오늘도 즐겨 따라나선 것이다. 유유상종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이산을 종주하려면 표고 200m의 계진리회관에서 출발하여 시골 농가집 같은 서공암 암자를 지나 빈대바위를 보며 진악산으로 올라 우리가 오르고 있는 보석사로 내려오는 것이다. '빈대바위'란 진악산 우측에 있는 바위가 빈대가 붙어있는 모양과 흡사하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빈대가 사라진 오늘날에 사는 젊은이는 생소한 말일 께다.
우리는 그 반대편인 성곡리 진악산 뒤편 석동초등학교 쪽에서 보석사(寶石寺)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아서인지 추레하게 서있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낙옆을 밟고 경내 들어서니 의병승장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다.
일찍이 승장(僧杖)으로 익힌 무예를 따를 자가 없더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500명을 규합하여 조헌(趙憲) 함께 청주를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금산 벌에서 왜장 고바야까와 결전하다가 조헌과 700의사와 더불어 장렬히 전사한 의병 승장 영규대사(호:기호)를 기리는 각이다.
이 비는 일제 말에 왜놈이 자획을 뭉개어 땅속에 묻었던 것을 해방 후 복원한 것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400여m 이어진 길을 지나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40m에 둘레만도 10.4m나 되는 일천년 이상 묵은 은행나무였다. 천연기념물 제30호라는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우리 나라에서 큰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된 나무다.
신라 때 이 절을 지었다는 조구대사가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서로 붙어 저렇게 큰 하나의 나무로 자랐다 한다.
8 15 해방 때와 6 25 사변 때 이 나무는 크게 울어서 경사와 재난을 알렸다 하여 이곳 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수로 삼고 사는 나무다.
그 앞에 계곡을 가로 질러 송판으로 깔아놓은 초라하지만 운치 있는 다리를 넘어 통나무 층계를 올라선 곳이 보석사였다. 임란 때 불타 버리고 신축된 건물이었다.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때 조구대사가 지었다는 절이다. 이 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구 마곡사의 말사로, 31본사 중에서도 중요한 사찰 중의 하나다.
절 뒤 산 중턱에서 금을 캐어 불상을 주조하였다해서 보석사(寶石寺)라 이름하였다는 천년고찰이다.
임란 무렵 절에서 영규대사가 도를 닦았다 해서 경내에 의선각(毅禪閣) 이 있고 거기에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의선(毅禪) 이란 그 충의를 기리기 위해 나라님께서 내리신 이름이다.
한국의 불교는 산악신앙과 관계가 깊어 산의 가장 아름다운 위치에 아담한 절이 있고, 그 절은 바람소리, 목탁소리, 풍경소리, 종소리와 어울려 웬만큼 큰산이면 어디서나 한국적 자연을 열고 있다.
거기에다 그 고장 관공서에서는 고장 사랑으로 하여 그 주위를 아름답게 꾸미면서 고향 발전을 위하여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진악산 오르는 길도 그러하였다. 등산로 저편에는 계곡 따라 삼림욕장을 멋있게 꾸미고 그 쉼터에는 한번 길다랗게 누워 보고 싶은 의자로 등산객을 유혹하고 있고, 초가집 지붕 모양의 표지판에는 한국인이 즐겨 읊조리는 명시(名詩)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거기에다 삼림욕장에는 자연학습원을 두어 '송사리는 물을 왜 거슬러 헤엄칠까요?', '서산에 지는 해는 왜 붉게 보일까요?', '단풍은 왜 드나?', '새는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등등 무심히 지나치며 살던 지혜를 설명해 주고 있다.
영천암의 그 유명하다는 영천약수는, 산을 오르는 길에 자연히 만나게 되는 곳이 있지 않고 찾아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듬성듬성 까치 밥이 매달린 감나무 사이로 보이는 축대 위의 일자로 보이는 암자는 멀찍이서 사진에 담고, 앞서간 일행을 따라 등산길로 서둘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서기 886년에 창건하였다는 목조 고옥이라는데-, 영천암 뒤에는 굴속에서 흐르는 영천약수가 있다는데-.
계곡을 벗어나자 힘든 오름 길은 계속 되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길은 너덜겅으로 퍽퍽한데, 모처럼 만나는 널찍한 공터에는 이름 모를 무덤들이 길 가운데에서 을씨년스럽게도 길을 막는다.
다음 목표는 이름도 생소한 도구통바위다. 무슨 뜻일까? 긍금하여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도구통'이란 '절구통'의 충청, 전라, 경상 사투리였다.
절구통이란 통나무나, 돌이나, 쇠 따위를 속이 우묵하게 만들어 거기에 곡식 따위를 넣고 절굿공이로 찧거나 빻는 것인데 가서 보니 절구통이라고 하기에는 우묵한 곳이 없고, 절굿공이라 하기보다는 돛대 같은데 거기 아까의 멋진 표지 하나가 서있다. 가서 보니 엉뚱하게도 유치환의 '바위'란 시가 있다. 안내판이 있을 자리에 꼭 필요하지 않은 시가 있다니 과잉 친절이었다. 거기 또 하나의 표지가 있어 보니 백제 시절, 효자 강 처사가 노모의 병 치료를 위해 이곳 관음봉 관음굴에서 기도하다가 현몽으로 찾아간 곳에서 인삼 씨를 얻어 금산이 인삼 고장이 되었다는 말까지는 좋은데- . 사족(蛇足)을 달아놓은 곳이 못내 아쉽다.
"금산에는 1,200여 점포가 있는 전국 최대의 인삼 약령 시장이 있으며 언제든지 방문하시면 인삼과 약초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금산군수 이름으로 명승지 앞에 써놓을 말이 아니었다.
도구통바위부터는 진악산의 참모습이 시작되었다. 가는 억새 오솔길이 그러하였고, 밧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바윗길도 그러하였지만 아슬아슬한 바위 산등성이 좌우로 전개되는 연봉들이 더욱 환상적이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누구보다 가장 늦게 점심도 굶은 체 능선 따라 정상을 향하였다.
진악산 가는 길에 진악산 정상보다 5m나 더 높은 737m의 고지가 있어 일행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진악산보다 높은 곳이 여기니, 진악신 정상을 바라보며 술이나 함께 먹자는 것이다.
"산에 와서 가장 큰 낭비가 정상을 밟고 오지 않는 거거든요. 우리 나이에 언제 다시 올 수 있겠어요?"
하며 아깝게도 애써 올라온 길을 한참이나 내려가서 진악산 정상을 향하였다.
정상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였다.
"신혼여행 가는 때가 좋아요? 갔다 올 때가 좋아요?"
정상이라는 곳에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란 지붕의 간이 대피소 근처에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목적지를 보지 못하고 가는 길보다, 보고 가는 길은 퍽 수월 하였다.
정상은 평평한 것이 헬리콥터 장이기도 하였다. '732.3m 진악산'이란 돌기둥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온 나를 뿌듯하게 맞아준다.
지리산 노고단의 운해보다, 지리산 종주 길에서 만나게 되는 연봉의 모습보다 더욱 장엄한 세계가 열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저절로 탄성을 발하게 하였다.
한국에 이러한 자연이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먼 나라를 방황할 때마다 고국에 돌아가서 찾아 보리라 벼르던 한국의 산하의 절승에 나는 얼마나 행복하였는지-.
산과 산이 멀리 있으면 산 빛은 초록을 떠나 하늘보다 짙은 푸른빛을 감돌게 한다. 시드니의 불루마운틴이 그랬고, 미국의 그랜드케년이 그랬다.
거기에서 만난 감탄이 여기보다 더하지가 않았다. 거기서 본 규모가 여기보다 더 광활하지도 않았다.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머리를 한 바퀴 비잉- 360도로 돌려야 볼 수 있는 이 장관은 마치 파도가 진악산을 향하여 몰려오는 것 같았고, 망망대해에서 시선이 가는 곳마다 마주치게 되는 산하의 모습은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북으로부터 877.7m 대둔산, 903.7m 서대산, 1241.7m 민주지산, 1,614m 덕유산, 1125.9m 운장산 등등-. 산 너머 산. 연무 너머 또 산으로 계속되는 연봉들이 보이는 진악산 정상 전망대에-. 그러나 엉뚱하게 '바위'란 유치환의 시가 여기에도 있다.
이 자리에 지리산처럼, 여기 저기 불끈 솟은 산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그려 설명을 달아놓는다면 이곳을 찾는 이에게 국토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게 하여 줄 터인데-.
나는 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종주가 끝나는 곳에 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등산이 시작된 곳에 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온 분들이 연로한 분들이라서, 이곳까지 못 오신 분들이 몇 안되어서이다.
정상에서 4분도 못 되는 거리에 그 유명한 빈대바위가 있건만, 조금만 더 가면 관음굴과 물골이라는 바위굴이 있건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고스락 경치나마 이렇게 실컷 보고 부지런히 하산하자.' '고스락'이란 꼭대기를 말하는 사투리니 산정상의 경치란 말일 게다. 오늘은 즐거움(樂)으로 나아간(進) 날이로구나.
어느 학교에서인가 애국조회 때마다 부르는 교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진악산 정기를 받아 금산에 피어난 배움의 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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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2008년 2월 18일 월요일 마지막 수업 준비
개인 발표 준비 안내
1. 발표준비
1) 내용: 제목은(자유) 설명 내용 중 주요 단어를 한자어로 변경하여 주요부분을 설명하면 됩니다.
2) 물량: A4용지 표지 포함 3p~5p 정도
3) 발표시간 : 개인별 3분~5분 정도
2. 표지 구성
1) 제목
2) 2008년2월18일
3)
주관 |
한국한자한문지도사연수원 |
진행 |
충청남도 지역본부(금산군) |
강사 |
申 鉉 淑 |
성명 |
|
장소변경으로 진행
충북 영동군 천태산 산행
위 치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관 리 자 : 영국사 (043-743-8843)
연 락 처 : 영동군청 문화공보과 (043-740-3211∼5)
개 요 : 해발 715m의 천태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돈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족단위 등산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 1경으로 시작되
고 많은 문화유적들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은 4개의 등산코스로 이루어져 특히 75m의 암벽 코스를 밧줄로 오르는 맛
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태산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천태산의 입구
에서 가을 단풍길을 따라 20여 분 가다보면 기암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
포의 빼어난 절경을 맛볼 수 있으며, 조금 더 길을 걸으면 1,300 여년 동안이나
이산을 지키고 있는 영국사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 233호)의 뛰어난 자태를
엿볼수 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
종때 대각국사가 국창사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
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라 개칭한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등산코스 : 주차장 →용초폭포 →은행나무 →송판서묘 →암벽 →정상 →헬기장 →영국사(산
행거리4.6km,약 3시간20분소요)
도로안내 : 경부고속도로 옥천I.C.-> 4번 국도 -> 이원면 -> 501번 지방도 -> 개심저수지 ->
율치 -> 양산면 누교리 -> 영국사
※ 승용차로는 영국사 만세루 바로 밑에까지 갈 수 있다. 누교리 대박식당(043-
744-3033) 바로 옆으로 난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누교저수지를 지나면 아랫도
가실 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영국사 팻말을 따라 좌회전, 산길을 계
속 들어가면 영국사에 닿는다.
대박식당에서 영국사까지는 총 4.3km 거리이다.
현지교통 : 영동읍내에서 영국사 입구를 거쳐 누교리/명덕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여
섯 차례 있다. 영국사 입구에서 하차 후 영국사까지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버스시간표 : 영동역에서 06:20, 08:10, 11:00, 13:10, 17:00, 19:00, 1일 6회,
30분 소요)
현지숙박 : 민박(통나무집) 043-744-2507
천태파크 043-744-2361
천태산 맑은물 043-745-2939(011-458-9390)
주변관광지 : 송호국민관광지, 옥계폭포, 난계사
정보제공자 : 영동군청 문화공보과 (043-740-3211∼5)
[화제]충북 영동 영국사의 천년지기 은행나무
은행나무에서 가을의 끝자락인 춤사위가 펼쳐진다.
◇ 샛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는 여성
늦가을을 즐기려면 영국사로 가 볼 일이다. 그곳에는 지금 천년세월 건너온 은행나무가 가을을 마무리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가는 길은 가파르지 않다. 그 길은 계곡을 끼고 있는 등산로를 따라 30분정도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곳 이다. 폭포를 지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탁 트인 시야 끝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반긴다.
일주문 격인 은행나무는 유독 둥치와 가지가 검어 샛노란 잎들과 대조를 이룬다. 산 계곡을 휘몰아가는 바람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무 주변 바닥이 온통 노란색으로 융단을 깔았다.
“나무아래 모여든 관광객 표정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익산에서 왔다는 2명의 젊은 여성은 춤사위를 벌이며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다 말고 그만 보호막을 세운 철 난간을 넘어 들어가 은행잎을 두 팔로 껴안는다. 때마침 주지스님은 소리를 지른다.
나무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만 가지는 흔들지 마세요.” 일부 관광객들이 은행을 털기 위해 나뭇가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 영국사 은행나무가 황금빛이다.
때마침 주지스님은 소리를 지른다.
나무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만 가지는 흔들지 마세요.” 일부 관광객들이 은행을 털기 위해 나뭇가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이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는 1400살이라고 하지만 아는 이가 없다. 절 창건연대가 분명치 않다.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창건했다는 설로보아 절을 짓고 난후 나무를 심었다면 절집나이와 맞아떨어진다. 높이가 35m, 둘레는 11m 로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다. 서쪽 가지 하나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 검은둥치와 노란 은행잎
국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22그루, 이 나무들은 수령 1000년의 노거수들이다.
오래 묵은 세월에도 건강미와 빼어난 자태가 천연기념물로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소리 내어 운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을 왔을 때 큰 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다시 싸움에서 개경을 되찾게 되자 공민왕은 편안한 나라라는 뜻으로 현재의 절 이름인 영국사(寧國寺)로 이름을 고치고 개경으로 돌아갔다. 절 오른편 둔덕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 2점과 원각국사비등의 문화재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편안한 절집 영국사는 지금 황금빛 은행잎이 춤사위를 펼쳐지고 있다.
조용한 산사 앞을 지키고 있는 거목에서 가을의 끝자락은 아마도 일주일은 볼 것 같다.
한국한자한문지도사연수원 충남본부 연수원
금산군 2기 한자지도사 산행 행사
자연보호 및 산불조심 캠페인 행사
한자지도사 충남본부 연수원에서는 2007년 봄부터 2007년11월 현재까지 지역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계룡산, 계족산, 수통골과 금산군, 계룡시를 중심으로 자연보호 및 산불조심 현수막 200장을 제작 각 지역 주요 등산로에 부착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170여장을 부착하여 지역 주민을 위한 간접적인 광고 홍보 효과를 고지시키고 있다.
현수막 내용은 본 내용으로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규격으로 제작
하여 본 내용과 아래 사진의 내용으로 캠페인을 실시 간접 광고홍보 효과를 위한 영업을 실시하고 있다.
충남교육연수원 한자지도사 교육생
2007년11월12일 충북 영동군 천태산에서
설치장소 : 계족산 등산길, 수통골 등산길, 계룡산 등산길
설치장소: 충남 계룡시 전 지역 주요 등산길
설치장소 : 충남 금산군 전 지역 주요 등산 길 및 진악산
200장 × 5,000원=1,000,000원 충남본부 제작 진행